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344
◈ 344. [Evil Side] 어전회의 (2)
《너다.》
마왕이 가리킨 것은 테이블의 말석(末席)이었다.
모든 군단장들의 시선이 일제히 테이블의 끝쪽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곳에 앉은 이는-
《…….》
고블린 신왕.
칼리-알렉산드르였다.
《예?》
《아니…….》
《이게 무슨-》
악몽 군단장들 사이로 작은 동요가 퍼져 나갔다.
사실 이곳에 모인 이들 중 누가 뽑히더라도 납득할 수 있다.
그들 하나하나가 세상을 멸망시키기에 충분한, 인류의 입장에서 보면 대재해(大災害)에 가까운 존재이므로.
하지만, 그러나.
저 고블린만은 예외였다.
아무리 고블린 중에서 돌연변이로 태어나, 그 종족 중 가장 강한 개체라고 해도, 그래 봐야 결국 고블린.
이곳에 모인 다른 군단장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순식간에 한 줌 핏물로 만들어 버릴 수 있을 만큼 나약한 존재였다.
《……이번에는 또 무슨 짓궂은 장난인지 모르겠소만, 왕중왕이시여.》
서열 4위, 역병군주 레이븐이 까마귀 마스크 너머로 혀를 끌끌 찼다.
《우선, 나는 귀공의 결정에 찬성하는 바이오. 기왕 저 미천한 고블린과 그 군단을 쓸 거라면 한시라도 빨리 출진시키는 게 낫겠지. 애쉬와 그 부하들이 조금이라도 더 강해지기 전에. 저 고블린들이 조금이라도 더 쓸모가 있을 때에.》
《…….》
면전에서 모멸을 주고 있음에도 칼리-알렉산드르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레이븐은 계속했다.
《하지만 왕중왕이시여, 그러면 앞에 하신 말씀은 취소해 주시는 게 어떻소?》
마왕의 하얀 입꼬리가 즐겁다는 듯 위로 말려 올라갔다.
《앞에 한 말? 내 말의 어떤 부분을 취소해 달라는 말이냐?》
《‘인세 멸망을 믿고 맡길 만한 자를 선별’한다 하시지 않았소? 그래 놓고는 이곳에 모인 경천동지할 역천괴(逆天怪)들을 제하고 저런 미물을 선택하셨으니.》
아예 자리에서 일어난 레이븐은 주위의 다른 군단장들을 손으로 훑은 뒤, 자신의 가슴에 손을 올리고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우리 입장에서는 실망스럽기도 하고, 또 우리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오.》
다른 악몽 군단장들 사이로 동의한다는 눈치가 파도처럼 퍼져 나갔다.
마왕은 이제 입을 가리고 큭큭 웃음을 참았다.
《그러니까, 쉽게 정리해서, 내가 너희 중 가장 믿음직한 이를 뽑겠다 해 놓고는, 가장 약한 저 고블린을 선택하니까, 빈정이 상했다는 것이렷다?》
레이븐은 굳이 대답하지 않고 고개만 숙여 보였다.
마왕은 크흠! 하며 헛기침과 함께 웃음을 정리하고는.
《내가 이번 대범람에 고블린 군단을 선택한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천천히 손을 들어, 테이블에 앉은 부하들을 쭉 훑었다.
《우선, 고블린 군단을 제외한 너희 모두는, ‘너무 강하다’.》
《……?》
악몽 군단장들의 얼굴에 어리둥절한 빛이 스쳤다.
너무 강한 게 어째서 문제가 된단 말인가?
《나는 이번 대범람을 위해 그동안 다크 이벤트…… 그러니까, 인세를 침공하는 내 군단에게 항시 내려 주던 ‘축복’을 사용하지 않았다.》
《……?》
《모아서 사용하면 위력이 증폭되거든. 그런데, 고블린 군단을 제외한 너희 모두는, 너무 강해서 이 축복을 사용할 수가 없다.》
해당 스테이지의 난이도가 최대에 달하면, [다크 이벤트]는 사용할 수가 없다.
그래서 마왕은 그동안 보스 스테이지마다 [다크 이벤트]를 쓰지 못했다.
스테이지 5의 흡혈귀 군단도, 스테이지 10의 웨어울프 군단도, 너무 강력해서 난이도를 진작 최대치까지 채워 버렸으므로.
하지만 고블린 군단은 보스 스테이지에 동원할 수 있으면서, 난이도는 아슬아슬하게 최대에 달하지 않는 군단이었다.
이번 스테이지 15에서는 [다크 이벤트]를 적용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를 위해서 마왕은 스테이지 11부터 14까지 [다크 이벤트]를 사용하지 않고 이월 증폭해 두었다.
《……대체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처음 듣는 군단장들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당혹스러워했다.
《이 게임의 ‘룰’이다. 너희가 이해할 필요는 없다. 이런 게 있다고만 알면 돼.》
마왕은 더 설명하기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아무튼 현재 이 조건에 맞는 군단은 너희 중 고블린 군단뿐이다. 그래서 골랐고. 무엇보다.》
마왕은 씩 웃으며 칼리-알렉산드르를 응시했다.
《나는 고블린 군단이 딱히 약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군단장 개인의 강함으로 놓고 보면, 확실히 알렉산드르. 너는 이중 최약이지.》
마왕은 칼리-알렉산드르의 이름 중 앞의 수식어인 ‘칼리-’를 떼고 뒤의 이름만을 불렀다.
그동안은 어떤 모욕을 들어도 가면 속에서 미동도 않던 고블린 신왕의 눈이 꿈틀했다.
그러나 가면 밖으로는 어떤 티도 내지 않았다.
《그리고 너희 종족의 개별 개체 또한, 이곳 호수왕국의 모든 악몽들 중에서 가장 나약하다 할 수 있다.》
《…….》
《그러나.》
마왕이 부드럽게 턱짓했다.
《너희 종족이 모여 결집한 너의 ‘군단’은…… 결코 약하지 않다. 그렇지 않느냐?》
《……위대한 왕중왕이시여.》
처음으로 칼리-알렉산드르가 입을 열었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고블린 신왕이 예를 갖추고 허리를 숙여 보였다.
《기회를 주신다면, 말씀해 주신 바를 입증해 보이겠나이다.》
가면과 왕관이 결합된 투구 속에서, 고블린 신왕은 깊게 응축된 목소리를 읊어 냈다.
《저의 군단이 어떻게 이 자리의 말석을 차지했는지, 그 이유를 세계의 모든 이들에게 보여 주겠나이다.》
《기회를 주겠다.》
앞으로 손을 내뻗은 마왕이 명령했다.
《인세를 침공하라. 모든 것을 죽이고 모든 것을 불태워라. 너와 네 군단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하라.》
《…….》
《그리고 입증하라.》
마왕은 다른 군단장들에게 들으라는 듯, 아니, 거의 다른 군단장들을 도발하는 듯한 말투로. 다음 말을 뱉었다.
《네가 이곳의 다른 군단장들에게 밀리지 않는 존재임을. 그리고 너의 종족이, 다른 어떤 악몽들에 견주어도 밀리지 않는…… 최강을 목표하는 군단임을.》
척!
칼리-알렉산드르는 허리를 숙이며 예를 표했다. 그런 고블린을 노려보며 다른 악몽 군단장들은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천천히 허리를 바로 세우며 예를 거둔 칼리-알렉산드르가 물었다.
《왕중왕이시여. 다만, 하나만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물론.》
《저희 종족에게 축복을 내려 주신다 하였는데…… 그것의 내용을 알 수 있겠습니까?》
히죽.
마왕의 그림자로 뒤덮인 새카만 얼굴에 하얀 미소가 초승달처럼 떠올랐다.
그리고 마왕은 그 축복을- 다음 스테이지에 사용할 [다크 이벤트]의 내용을 망설이지 않고 말해 주었다.
《‘번식’이다.》
《……!》
《기대해도 좋다, 알렉산드르.》
마왕은 푸하하하- 호쾌하게 웃어젖혔다.
《너는 지금껏 네가 지휘해 본 적 없는, 유례없는 규모의 대군단을 지휘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마왕의 광소를 들으며, 자신을 적대적인 눈빛으로 보는 다른 군단장들의 시선을 받으며, 천천히 칼리-알렉산드르는 고개를 숙였다.
가면 속에서 고블린 신왕은 얼굴은 복잡한 빛을 띠고 있었다.
그래, 결국.
죽이고 불태우는 수밖에 없다.
고블린이 고블린임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그중에서도 쓸모 있는 고블린임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그 길뿐이기에.
***
“Happy New Year~!”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자고 아침에 일어나, 잠옷 사이로 배를 긁으며 어기적거리며 식당으로 기어 나왔더니, 느닷없이 이런 인사를 받았다.
에반젤린과 데미안이었다. 우리 파티 최연소 멤버 두 명이 방글방글 웃으며 내 앞에서 겨울꽃잎을 뿌려 댔다.
식당에는 루카스와 쥬니어도 보인다.
식탁 위에 분주하게 식기를 차리던 두 명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손을 흔들었다. 이게 뭔 일이여?
“……어? 새해?”
자느라 부은 눈을 손등으로 비비며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뭔 소리야, 새해라니?
“아이참. 선배님은 정말 달력도 안 보고 사시나 봐. 보세요!”
에반젤린이 벽에 걸린 달력을 가리켰다.
하루에 한 장씩 뜯어 쓰는 방식의 수제 달력인데, 정말이다.
어느새 두툼한 새것으로 바뀐 데다가, 여봐란듯이 1월 1일이라는 숫자가 박혀 있다.
나는 수면용 모자를 벗고 부스스한 머리를 긁으며 힘 빠진 목소리를 내뱉었다.
“요 며칠 아팠잖아…… 달력 같은 거 볼 정신이 있었겠냐…….”
며칠 전 그 사건이 있고 벌써 수일이 흘렀다. 나는 그동안 침대에서 끙끙 앓았다.
그래도 오늘은 좀 몸이 나아서 어떻게 식당까지 기어 나왔더니, 이렇게 난데없이 파티원들이 해피뉴이어 행사를 준비 중이었던 것이다.
“사실 준비 다 끝내면 선배님 깨우러 가서 다 같이 놀래켜 드릴 생각이었는데, 먼저 나오셔서 여기서라도 기습을…….”
“굳이 나를 놀라게 해야 하냐……?”
“어제는 12시 땡 하자마자 작년 달력 불태우는 행사도 했는데! 선배님은 주무시느라 참석도 안 하셨죠!”
“아팠다니까…… 좀 봐주세요…….”
그보다 밤에 그런 불장난을 한 거냐. 불놀이하면 자다가 지도 그린다. 주의하도록 하여라.
소악마 같은 에반젤린의 타박이 지나자, 천사처럼 웃는 데미안이 내게 건강의 축복을 내려 주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황자님! 올해는 아픈 일 없이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말뿐 만인 게 아니라, 뿌리는 꽃잎 사이에 신성력이 좀 섞여 있는 것 같다. 컨디션이 조금 상쾌해지는 게 느껴졌다.
“흑흑, 데미안, 진짜 너뿐이구나……!”
나도 모르게 감동해서 데미안을 끌어안고 엉엉 우는 시늉을 했다. 데미안은 왜 이러시냐며 놓아달라고 버둥거렸다.
“저는 신성력은 못 뿌려 드리지만, 대신 다른 방식으로 건강을 드릴게요.”
옆에서 에반젤린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나는 데미안의 어깨에 몰래 콧물을 닦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넌 또 뭘 꾸미고 있는 건데.
“이제 아프신 것도 거의 다 나으신 것 같으니…… 매일매일 아침운동이에요!”
“Nooooo-!”
나도 모르게 통렬한 반대의 외침을 뱉고야 말았다. 그게 무슨 무서운 소리야! 아침도 싫고 운동도 싫은데 그 둘을 합치다니!
“너는 악마냐!”
“댁 후배입니다만……. 아니, 그보다 진짜 운동하셔야 한다니깐.”
에반젤린과 데미안은 나를 식당 테이블로 안내했다. 루카스와 쥬니어는 테이블 세팅을 끝내 두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좋은 새해 아침입니다, 주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전하!”
“다들 고마워. 복 많이 받아.”
이따가 세뱃돈이라도 챙겨 줘야겠군…… 아니 잠깐. 그럼 그 전에 먼저 세배부터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나는 테이블 상석에 앉았고, 파티원들 또한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아!”
그러자 큼지막한 냄비를 올린 트레이를 끌고 에이더가 나타났다.
오븐 장갑을 양손에 낀 에이더는 그 냄비를 영차영차 옮겨서 식탁 위에 놓았다.
“새해에는 역시! 뜨끈~한 고기완자 스튜죠!”
뚜껑을 열자, 붉은 국물에 고깃덩이와 완자, 채소 등이 둥둥 떠 있는 스튜가 뜨거운 김을 뿜어냈다.
에이더가 국자로 스튜를 떠서 우리에게 그릇을 나눠 주었다. 스튜가 어찌나 뜨거운지 그릇까지 금세 뜨끈뜨끈해졌다.
“흐으음~! 역시 1월 1일에는 이걸 먹어야 새해를 맞은 느낌이 든다니까?”
스튜 향을 맡으며 에반젤린이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뭐야. 그러니까, 떡국 같은 건가?
“이걸 먹어야 한 살 더 먹는 거지?”
“예?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저는 매년 이거 다섯 그릇씩 먹는데 그럼 선배님보다 더 나이가 많게요?”
지구-한국의 떡국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에반젤린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기겁했다.
농담이니까 너무 진지하게 듣지 마렴…….
“……그보다 다섯 그릇씩 먹냐?”
“최고 기록은 여덟 그릇이에요. 후후!”
아니 뭘 자랑스러워하고 있는 건데.
그러자 옆에서 듣고만 있던 루카스가 나지막하게 내뱉었다.
“열 그릇.”
“하앙? 뭐라고요, 아저씨?”
“이 몸. 최고 기록. 열 그릇.”
의기양양하게 웃은 루카스가 보란 듯 피식- 하고 웃었다. 에반젤린의 송곳니가 도드라진 입가가 짜증스레 파르르 떨렸다.
“저는 매년 성장하고 있다고요. 키가 크는 만큼 위장도 더 커질 거고! 그러면 아저씨의 기록 따위는 내가 한참 아래로 내려버릴걸!”
“하지만 지금 너는 쪼끄마하고, 위장도 쪼끄마하겠지. 여덟 그릇이 네 한계다.”
“이이이익! 좋아요. 한번 자웅을 겨뤄 보자고! 덤벼!”
“따라올 수 있겠나, 애송이……!”
두 기사는 뜨거운 스튜를 식히기 위해서 경쟁적으로 후후 입김을 불기 시작했다.
에반젤린은 미리 다음 그릇을 식히기 위해서인지 두 번째 그릇에 국자로 스튜를 퍼 담기까지 했다.
이 꼴을 지켜보던 내가 참지 못하고 외쳤다.
“거 새해 아침부터 적당히 처먹어! 이 돼지 새끼들아!”
니들이 그렇게 다 퍼먹으면 우리는 뭘 먹겠냐고!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