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355
◈ 355. [Side Story] 세상에 태어난 죄 (2)
게임에서, 영웅 캐릭터들은 서로 상호작용하며 호감도를 쌓는다.
서로 간의 관계에는 직업적 특성이 반영되곤 하는데, 가장 빠르게 아군에게 호감을 얻는 직업군은 아무래도 치유사제였다.
아군의 다친 상처를 치유해 주니까.
그 다음은 탱커.
아군의 공격을 대신 몸으로 받아 내며 희생하는 직군이다 보니, 지켜진 영웅 캐릭터의 입장에서는 탱커에 대한 호감도가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래서 게임에서는 치유사제에 이어 두 번째로 캐릭터 호감도가 높은 직업군이 바로 탱커였다.
어지간하면 다른 영웅 캐릭터들과 우호 관계가 떠 있곤 했다.
하지만 나병척살대는 달랐다.
이들이 가진 부정특성 [문둥병]은 전투성능에도 영향을 끼쳤지만, 이들의 대인관계에는 더 큰 영향을 끼쳤다.
이들은 아무리 열심히 탱킹을 하고, 아군을 몸으로 지켜 내도, 우호관계를 쌓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도 유저인 내 입장에서는 상관없었다.
게임에서는 성능이 최우선이었으므로 나는 큰 문제를 느끼지 않고 나병척살대를 중용했다.
하지만 게임이 현실이 된 지금, 나는 이제야 [문둥병]의 치명적 디메리트를 깨닫는 중이다.
지난 열흘간 모든 전투에서 앞장서 탱킹하고, 모범적으로 싸워 온 나병척살대이건만…… 그 부상을 치유하러 온 신전에서조차, 아군에게 기피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심지어 그 아군을 지키다가 대신해서 입은 부상임에도 불구하고.
“저 같은 놈을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하. 그리고 대공 각하.”
끝끝내 마지막 순번에 치료를 받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신전의 구석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토르켈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순간의 측은지심으로, 너무 저희를 가까이 하지 마십시오……. 천벌이 옮습니다.”
“천벌이라니…….”
“천벌이지요. 얼마나 여신님께 미운 죄를 저질렀으면,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었겠습니까.”
나는 그런 토르켈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려다, 삼켰다.
일생을 저 병을 앓으며 고통 속에서 지내온 사람이다.
내 어설픈 위로가, 오히려 그에게는 더 상처를 헤집는 말이 될지도 모른다.
“지은 죄를 다 참회하지도 않고 다시 세상에 태어나려 했으니, 여신께서 응당한 벌을 내리신 겁니다.”
부상을 입은 온몸에서 피를 뚝뚝 쏟으며, 토르켈은 무감각하게 중얼거렸다.
“저희는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죄니까요…….”
그때였다.
“말씀 중에 죄송한데.”
드르륵- 하고 의료기구가 담긴 카트가 끌리는 소리가 나더니, 한 치유사제가 피곤한 얼굴로 우리 옆으로 왔다.
“여신님께서는 그렇게 쫌생이 같은 분이 아니시거든요?”
성녀 마르헤리타였다.
오늘도 격무에 시달렸는지, 피로에 잔뜩 절은 얼굴로 다가온 그녀가 짜증스레 으르렁댔다.
“뭔 전생의 죄를 현생까지 끌어와서 벌을 내린다느니…… 그거 다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라니까요? 우리 여신님께서는 그렇게 도량이 좁지가 않으셔요.”
“…….”
당황하던 토르켈이 더듬거리며 물었다.
“교리에, 그렇게 나와 있습니까?”
“교리에 일언반구도 그런 언급이 없으니까 하는 이야기지요. 명색이 신이신데 막 그렇게 억하심정 품고 정성껏 사람 하나하나한테 병을 심을 만큼 한가하시겠어요?”
카트에서 붕대와 약병을 꺼내든 마르헤리타는 토르켈에게 확 삿대질했다.
“아니, 그리고! 부상이 큰 사람부터 먼저 치료받으라고 했잖아요. 토르켈 씨. 왜 맨날 구석에 숨어서 마지막에 치료받는 거예요? 이러다 상처 덧나면 내 일만 더 늘어나잖아요. 나 일 많은 거 안 보여요?”
“……큰 부상이, 아니라서요.”
“아니기는 개뿔이. 다른 사람이 이만큼 다쳤으면 지금쯤 의식 잃고 저기 실려 갔어요. 발밑에 피웅덩이는 뭐에요? 이거 또 우리 사제들이 다 청소해야 한다니까?”
“…….”
“몸 튼튼하다고 유세 떨지 말고, 다음부터는 앞 순번으로 오세요. 알았어요?”
토르켈은 대답하지 않았다.
마르헤리타는 거칠고 우악스럽지만 정확한 손길로 토르켈의 부상에 약을 뿌리고 붕대를 감고 치유마법을 투여했다.
몸의 부상 치료가 얼추 끝난 뒤, 마르헤리타가 이마의 땀을 닦으며 턱짓했다.
“투구 벗어요. 안쪽도 다친 거 같은데.”
“…….”
“투구 벗으라니까?”
“그, 저기, 투구는…… 안…….”
끝까지 토르켈이 머뭇거리자 마르헤리타가 사납게 눈을 부라렸다.
“나 바쁘다고! 벗어! 빨리!”
이 광경을 지켜보던 더스크 브링어와 나는 서로 끌어안고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의느님 무서워…….
“…….”
머뭇거리던 토르켈은 손을 올려 천천히 투구를 벗었다.
나와 더스크 브링어가 있는 쪽에서는 그의 뒤통수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흉하게 짓무르고 변색된 피부가 훤히 보였다.
마르헤리타는 한껏 인상을 찌푸린 채로 그의 정수리와 귀 뒤에 난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
치료가 거의 끝나자, 토르켈이 나지막이 물었다.
“끔찍하지요?”
“그렇네요.”
“…….”
“늘 그래요. 다친 사람 치료하는 일은, 늘 끔찍하죠.”
치료를 끝내고, 피에 물든 손을 앞치마에 닦아내며 마르헤리타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나한테 사람은 두 종류뿐이에요. 다친 사람, 나은 사람.”
“…….”
“솔직히 말해서, 토르켈 씨. 당신 피부 같은 건 아무 관심도 없어요. 나는 그 피부 아래의 뼈와 내장이 모조리 헤집어진 부상자를 매일 치료하고 있다고요. 당신 피부병보다 훨씬 끔찍한 걸 매일 보고 산다고.”
토르켈의 두 눈을 똑바로 마주보며 마르헤리타가 사납게 내뱉었다.
“그러니까, 벌써 몇 번째 말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부상이 크면 알아서 먼저 치료받으러 오세요. 괜히 덧나서 내 끔찍한 업무 두 배로 만들지 말고.”
드르륵-
카트를 끌고 신전 안쪽으로 향하던 마르헤리타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성녀의 얼굴에 의아함이 스쳤다.
“황자 전하. 어디 아프셔서 오셨어요?”
“아뇨, 멀쩡한데 그…… 혹시 몰라서 검진, 받으러…….”
“…….”
“……왔는데 역시 신전이 바빠 보여서, 하하. 이만 돌아가볼게요, 성녀님.”
머쓱하게 대답하며 나는 팔꿈치로 더스크 브링어를 쿡쿡 찔렀다.
‘대공 때문에 괜히 여기 와서 눈치 보이잖아요!’
‘이, 이런 분위기일 줄 과인이 알았겠느냐!’
우리가 그러고 있는데, 마르헤리타는 엄한 목소리로 나와 더스크 브링어를 타일렀다.
“크로스로드에 전시 체제를 선언하신 분은 전하시잖아요. 현재 이곳은 야전병원과 다름없습니다…… 특별한 증상이 없으시면 검진은 다음으로 미루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래도 걱정되시면 데미안에게 부탁하세요. 아니면 황도에서 주치의를 부르셔도 되고. 겸사겸사 여기 인력 보충도 좀 해 주시면 좋겠네요.”
마르헤리타는 피곤한 얼굴로 대충 목례해 보이더니 카트를 끌고 안으로 사라졌다.
“…….”
“…….”
나는 계속 더스크 브링어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꾸욱 찔렀다.
더스크 브링어는 ‘아 미안하다니까-’라며 옆으로 움찔움찔 밀려났다.
“…….”
한편 토르켈은 치료가 끝난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천천히 투구를 썼다.
“……이 세상에 태어난 죄 때문이 아니라면.”
투구 속에서 그의 뭉툭한 목소리는 전보다 더 힘을 잃고 옅어져 있었다.
“그럼 대체 무엇 때문에, 저는 이 병을 앓게 된 것일까요. 천벌이 아니라면, 대체 어떠한 인과 때문에, 이런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일까요.”
“…….”
“심려 끼쳐, 죄송합니다. 전하. 각하. 이만 가 보겠습니다.”
토르켈은 꾸벅 인사해 보인 뒤, 절뚝거리며 걸음을 옮겨 신전 바깥으로 걸어 나갔다.
텅 빈 신전 안에 서서 나와 더스크 브링어는 동시에 한숨을 폭 뱉었다.
“후우~”
“하아아…….”
쓰게 입맛을 다시던 더스크 브링어가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어렵구나.”
“그렇지요?”
원래 세상이 그렇다.
괜히 고민하는 쪽에게 어려운 법이다.
나의 적도, 나병에 걸린 사람도, 모두 세상에 태어난 것이 잘못이라고 뭉뚱그려버린다면.
그러니 없애고 탄압할 대상이라고 선고하고 끝낸다면. 세상은 쉬울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그러니 고민해야 한다. 설혹 정답에 도달하지 못하고 헤맬지라도, 고민하기에 우리는 아직 인간이다.
‘참 사치스럽구만…….’
곧 몰아닥칠 괴수의 파도 앞에서 이런 고민이나 하고 있다니.
그야말로 인간다워서, 나는 쓰게 웃고 말았다.
***
같은 시간.
호수왕국 심부. 8구역 워존(War Zone).
커다란 스타디움처럼 지어진 이곳은 본래 호수왕국 주민들이 여러 격렬한 스포츠를 관람하던 시설이었다.
고블린 군단은 이곳을 거점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워낙에 수가 많았기에 이곳 외에 다른 여러 곳 또한 점령 중이었다.
하지만 오늘 이곳 워존은 텅 비어 있었다.
전 병력을 출병을 위해 호수왕국 정문 쪽으로 이동시키기 시작한 참이었기 때문이다.
텅 빈 스타디움 가운데에는 고블린 신왕 칼리-알렉산드르가 남아 이번 전쟁의 전술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의 친위대 소수가 함께 남아 그를 호위 중이었다.
《5만인가.》
최종적으로 이번에 자신이 부리게 될 군단의 숫자를 되뇌인 뒤, 칼리-알렉산드르가 짧게 내뱉었다.
《……적구나.》
전성기 시절, 칼리-알렉산드르가 이끌던 고블린 군단의 숫자는 일백만에 육박했다.
전 대륙의 그린스킨들을 통합했고, 세계의 서쪽을 초토화시켰다. 수많은 나라를 무너뜨렸고 수많은 종족을 멸종시켰다.
5만이 적은 병력은 아니지만, 그때에 비하면 손색이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고작 5만을 내려 주시면서 ‘유례없는 규모의 대군단’을 주겠다 하신 겐가. 왕중왕께서는.》
마왕에게, 고블린은 결국 고블린일 뿐일 터.
5만 정도면 ‘고작 고블린 왕’치고는 많이 지휘하는 것이라 생각한 것이겠지.
《이름을 부를 때에 ‘칼리-’를 떼서 부르시질 않나, 지휘관으로서의 역량을 한참 얕게 보시질 않나…….》
칼리-알렉산드르는 옅게 한숨을 뱉었다.
《왕중왕께서는 우리 군단의 역량을 한참 작게 평가하시는 듯하군.》
그래도, 그러나, 충성한다.
그 악마가 두 번째 기회를 준 것 또한 틀림없는 사실이므로.
‘이 5만의 목숨을 어떻게 사용한다……?’
하나하나가 정예인 다른 괴수 군단과는 다르게, 고블린 군단은 숫자로 밀어붙이는 물량공세 군단이다.
군단 구성원들의 목숨이 곧 탄환이며, 창끝이다. 고블린 군단의 강함은 고블린들의 목숨을 아낌없이 갈아 넣는 데에서 나온다.
인세의 수호자가 지키는 방어선을 함락시키는 데에는 5만이면 충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칼리-알렉산드르의 목적은 고작해야 방어선 함락 정도가 아니었다.
‘세계를 정복하기에는 부족하다.’
이루지 못한 종족의 숙원.
서쪽 땅에서 멈춰 버린 정복을 재개하는 것.
고블린 종족의 지도자로서 칼리-알렉산드르의 목적은 그것이었다.
처음부터 그에게 애쉬가 지키는 괴수전선은 거쳐야 할 장애물이었을 뿐, 최종 목표가 결단코 아니었다.
‘방어선을 돌파한 뒤 북상하며, 인세에 남아 있는 그린스킨들을 휘하에 결집시킨다…… 세계의 북쪽 끝에 도달할 무렵이면 예전 군단의 위세를 복구할 수 있겠지.’
침략군답게.
물자 보급도, 병력 확충도, 현장에서 해나가기로 칼리-알렉산드르는 마음먹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저 인세의 수호자가 지키는 성벽을 넘어야 한다…… 칼리-알렉산드르는 효율적인 침공을 위해 5만 병사들의 편제를 세분화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콰앙-!
스타디움의 정문이 산산조각 나 사방으로 나가떨어졌다.
기겁한 고블린 친위대가 그쪽으로 창끝을 겨누었고, 칼리-알렉산드르는 의아하게 눈을 들었다.
《크르르. 크르르르륵.》
괴악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등장한 것은 거대한 덩치의 녹색 피부 괴수였다.
근육질 온 몸에 스파이크가 잔뜩 달린 갑옷을 입고, 커다란 기둥을 무기삼아 등에 찬 거구의 오크.
오크 황제, ‘울화통’ 다이마크였다.
그의 양손에는 이곳 거점의 입구를 지키던 고블린 친위대가 머리통 째로 붙잡혀 있었다.
콰직!
다이마크가 두 손에 힘을 주자, 고통어린 비명을 지르던 두 고블린의 머리가 산산조각 터져 나갔다.
오크 황제는 잔혹하게 웃으며 시체를 던져 버린 뒤, 손에 묻은 핏물을 입술에 발랐다.
칼리-알렉산드르는 침착하게 물었다.
《여기엔 어쩐 일이지, 다이마크? 너에게는 ‘이름 없는 자’를 저지하는 임무를 맡겼을 텐데.》
《크르륵…… 알렉산드르. 보면 모르겠나?》
우르르르……!
열린 문을 통해 오크 군단이 쏟아져 들어왔다. 모두가 고블린들보다 체격이 몇 배는 더 커다란 건장한 전사들이었다.
삽시간에 칼리-알렉산드르와 친위대가 포위당했다. 오크 황제는 비죽 솟은 엄니를 치키며 웃었다.
《모반이다, 약골 신왕이여!》
《……나는 왕중왕께 이번 인세 침공의 지휘권을 받았다. 이런 나를 치면 왕중왕께서 너를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크르르르! 모르는 소리. 왕중왕께서는 우리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것은 언제나 눈감아 주셨다!》
쿵!
다이마크는 등에 차고 온 거대한 기둥을 가볍게 휘둘러 바닥에 내려찍었다. 뒤이어 오크 황제는 거칠게 포효했다.
《이 자리에서 네놈을 죽이고, 내가 그린스킨의 지배자가 된다! 그리고 이번 인세 침공을 내가 지휘한다!》
《…….》
《너희 고블린은 세계의 곰팡이다. 신이 우리 오크를 빚고 남은 찌꺼기에서 태어난 쓰레기들이다! 너희에게는 전사도, 전쟁노래도, 축제도 명예도 없다! 그저 숫자를 밀어붙여 세계를 불태우는 야만적인 놈들 같으니!》
오크에게 야만적이라는 말을 들으니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사실 맞는 말이었다.
고블린에게는 무엇도 없었다.
신왕인 자신이 시켜 옛 서부 인간 왕국 양식으로 옷을 입히고 무기는 들게 했으되, 대부분의 고블린들은 이 모든 일들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명령을 따를 뿐.
오크만큼의 문화조차도 없는 야만족.
그것이 고블린이었다. 신왕인 자신이 사라진다면, 삽시간에 석기시대만도 못한 상태로 되돌아갈 종족이었고,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다.
《오늘 너를 쳐죽이고, 오크와 고블린 사이의 서열을 바로잡겠다.》
다이마크가 포효하며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고블린! 너희는 태어난 것이 죄인 종족이다! 이제 인세가 멸망하고 또 억겁의 시간이 흐를 때까지, 우리 오크에게 노예로서 봉사해라!》
《태어난 것이 죄라…….》
자리에서 일어선 칼리-알렉산드르는 허리춤에서 시미터를 뽑아들었다.
《자주 듣던 말이로군.》
고블린 신왕은 시니컬하게 중얼거렸다.
《……이쪽은 태어나고 싶지도 않았는데 말이지.》
고블린 신왕의 칼날과 오크 황제의 기둥이 맞부딪혔다.
그리고, 그린스킨 사이의 내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