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523
◈ 523. [STAGE 25] 내일의 태양
전투에 이어 뒷정리까지 마무리된 새벽.
전사자는 물론이고 부상자도 없다시피 했다. 상대가 악몽 군단장이었음을 감안하면 기적적인 전과(戰果)였다.
우리는 조촐한 뒤풀이를 했다.
영웅들은 곳곳이 허물어진, 그러나 여전히 아름답게 꾸며진 연회장 곳곳에 주저앉아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며 술을 마셨다.
파티는 끝났기에, 다들 곳곳에 주저앉아 차분하게 이야기하며, 음료를 마시고 간단한 간식을 먹었다.
평소의 승리 연회와는 조금 다른, 온화하게 가라앉은 분위기.
그리고 그 중심에는 무명이 있었다.
무명은 처음에 연회장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다른 여러 왕들에게 눈총을 받았다.
그럴 수밖에. 괴수를 토해내는 저 호수왕국의 대표로 온 입장이니.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이 아닌가- 하는 경계 어린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왕들이 흥미, 그리고 경외를 담아 그런 무명에게 몰려들어, 말을 붙이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하긴, 그런 빛의 검을 휘둘러대는데. 누가 봐도 괴수들을 물리치기 위해 태어난 존재 같은데.’
평범한 인간의 이해를 아득히 벗어난, 이계의 신격이 어둠 속에서 강림하려 했고.
무명은 자신의 검을 휘둘러 빛을 뿜어내, 그 신격을 물리쳤다. 그 모습은 이 자리의 모두가 보았다.
이 자리의 왕들은 모두 직접 검을 들고 싸우는 자들.
그런 이들이 무명의 이런 비범함을 놓칠 리가 없다.
해서 이 자리에 있는 여러 왕들은 무명과 어떻게든 대화를 나누고, 또 친분을 다져두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무명 또한 처음에는 당혹해했으나, 지금은 의연하고 기품 있게 대처하는 중이었다.
몇백 년 지났다고는 해도 왕녀 시절 몸에 배인 자세가 아주 사라지는 건 아닌 모양이지.
‘무명의 현세 데뷔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게 성공인 듯하네.’
2층 테라스에 서서 이 모습을 지켜보는데, 뒤에서 살짝 토라진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괴수와의 전쟁 중에 지인 분의 데뷔탕트를 챙겨주시다니…… 정말이지, 대범하시달지. 범상치 않으시달지.”
돌아보자, 세레나데였다.
물빛 머리칼을 목뒤에서 가볍게 묶은 그녀는 심플한 블랙 드레스 차림이었고, 어깨 위에 가볍게 코트를 얹어둔 상태였다.
손에 들린 유리잔 중 하나를 내게 건네며 세레나데가 은빛 눈을 흘겼다.
“전하께는 늘 감탄만 하게 됩니다.”
“하하…… 무명의 현재 가치를 가장 잘 입증할 수 있는 자리는 전장이고, 그중에서도 어려운 적과의 전투라고 생각했거든.”
이제 세계수호전선이 본격적으로 발족하면, 전 세계에서 또 다른 여러 왕들이 각자의 병력을 이끌고 이곳 크로스로드에 모일 것이다.
그 전에 무명의 편이 되어 줄 이들을 미리 만들어둘 셈이었고, 나쁘지 않게 성공했다.
“데뷔탕트라고 하기에는 좀 거창하지만, 뭐. 의도했던 대로 되긴 했네.”
세레나데가 건넨 샴페인 잔을 받아든 나는 찡긋 눈짓했다.
“오늘 고생했어, 세레나데. 네 지휘 덕에 무사히 작전이 성공했네.”
“전하께서 사전에 지시해주신 대로 했을 뿐인걸요.”
“네 임기응변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완벽한 결과는 나오지 못했을 거야. 얌전히 내 칭찬을 받아.”
우리는 조용히 샴페인을 삼켰다.
전투 때문에 곳곳이 무너져 내린 연회장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멋쩍게 입맛을 다셨다.
“그나저나…… 호텔이 엉망이 되어버렸네. 미안해,”
“후후. 아니에요. 이런 시설이야 복구하면 그만인걸요. 보다 중요한 인명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얼마든지 괜찮습니다.”
짤막한 침묵이 흘렀다.
세레나데는 가만히 무명을 보더니, 툭 내뱉었다.
“……아름다운 분이시네요.”
“무명? 그치? 나도 깜짝 놀랐다니까. 저 지하 던전에서는 완전히 땟국물이 줄줄 흐를 정도였는데, 씻겨놓으니까…….”
“오늘 상대한 적장도 미인이었고.”
“백야? 피부가 새파랗긴 했지만, 그래, 뭐 절대적 기준으로 보면 꽤 미인이었을지도.”
“언제나 전하 주위에는 미인이 끊이질 않네요…….”
멍하니 중얼거리던 세레나데가 어깨를 움찔 떨며 퍼뜩 정신을 차리더니, 내게 마구 손을 저어 보였다.
“아니아니, 질투하는 게 아니라요! 저한테 그럴 자격은 없으니까요! 다만, 그냥…….”
“세레나데.”
피식 웃은 나는 다 마신 샴페인 잔을 내려놓았다.
“질투해도 돼.”
“네……?”
세레나데는 멍하니 은빛 눈을 깜빡였다.
“저어, 그 말씀은……?”
“세레나데.”
“네, 네?”
“앞으로 바빠질 거야. 어쩌면 한동안은 이런 자리가 아주 없을 수도 있지. 그러니까…….”
나는 1층을 향해 턱짓했다.
“춤출까?”
세레나데는 멍하니 눈을 깜빡이더니, 이윽고 붉어진 뺨으로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우리는 환하게 불이 켜진 메인 홀이 아니라, 이미 조명이 꺼지고 정리가 끝난 옆의 작은 회장으로 조용히 내려왔다.
음악 소리 대신 옆의 홀에서 사람들이 웃고 마시는 소리가 울려왔다. 꺼진 조명 대신 창문을 통해 흐릿한 달빛이 떨어졌다.
이곳에서 우리는 천천히 손을 잡고, 몸을 붙이고, 느릿하게 스텝을 밟았다.
발그레해진 얼굴로 조심스럽게 발을 옮기는 세레나데에게 나는 속삭여 물었다.
“아쉬워?”
“네? 뭐가요?”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모두에게 주목받으며 추는 게 아니라…… 이렇게 어두컴컴한 그림자 속에서, 조용히 춤추는 거.”
나는 세레나데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미안해. 진짜 소중한 건 남들에게 자랑하지 않고, 꼭 감싸 안고 혼자 아껴보는 타입이라서.”
“…….”
기가 막히다는 건지, 아니면 순수하게 감탄하는 건지.
잘 모를 표정으로 나를 보던 세레나데가 이윽고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정말이지…… 말이나 못하면.”
캄캄한 좁은 회장 구석에서, 악단도 음악도 없이, 우리는 달빛을 받으며 빙글빙글 춤을 추었다.
***
“자~ 그러해서!”
연회장의 구석.
갑옷도 드레스도 벗고, 편한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에반젤린은 음료가 든 병을 바닥에 놓으며 선언했다.
“오랜만의 크여영용위! 오늘은 신규회원 가입 신고식까지 겸해서! 해가 뜰 때까지 마셔봅시다!”
자리에 모여 앉은 것은…… 에반젤린, 쥬니어, 윤.
마지막으로 신규 멤버인 무명이었다.
얼떨결에 이 자리에 끌려 온 무명은 고개를 갸웃했다.
“……크여영용위?”
“아, 지금 이름 이상하다고 생각했죠? 무명 언니, 들어봐요. 이 이름에는 아주 깊은 뜻이 담겨 있는데…….”
에반젤린이 쫑알쫑알 무어라 거창하게 설명했다.
앞에 놓인 잔에 술을 따르며 쥬니어는 생각했다. 그냥 ‘크로스로드 여성 영웅 및 용병 권익위’ 앞글자 딴 것뿐이잖아…….
설명을 끝낸 에반젤린은 의아해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우리 선임마법사…… 릴리님은?”
“시드 보러 바로 퇴근하셨잖아요.”
크여영용위 부회장인 릴리는 출산 몇 개월 전부터 불참하고 있었다. 오늘도 작전 끝나자마자 보모에게 맡겨둔 시드 보러 칼같이 퇴근했다.
못내 아쉬워하면서 에반젤린은 입가를 슥 닦아냈다.
“와~ 진짜 시드 생각만 해도 입에 침이 고이네. 애기들은 원래 그렇게 귀엽나?”
“아니, 귀여운 건 맞는데 침은 왜 고이는데…….”
“그 말랑한 볼따구에 뽀뽀 한 번만 해봤으면 소원이 없겠으니까 그러죠. 하아, 이래서 다들 조카 바보가 되는 건가?”
확실히 시드는 매우 귀엽긴 했다.
‘나중에 정말로 뽀뽀하게 시켜주려나……?’
크여영용위로서의 의리를 내세우면 릴리가 허락해주지 않을까, 생각하며 쥬니어는 잔에 술을 모두 따랐다.
쥬스를 따른 에반젤린의 잔까지 해서, 총 다섯 잔이었다.
술잔이 돌려졌다. 자리에 앉은 네 명 모두 잔을 받았고, 한 잔이 남았다.
탁.
에반젤린은 그 잔을 빈 바닥에 놓았다. 무명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이 빈 잔은?”
“음, 그러니까.”
에반젤린은 쓰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우리 크여영용위 소속이셨는데, 먼저 떠난 분들을 위한 잔이에요.”
“아…….”
“그분들 인원수만큼 따르려다가, 그러면 괜히 일일이 생각나서 슬퍼질 것 같기도 하고…….”
에반젤린은 쿨하게 덧붙였다.
“나중에 늘어나면 감당 안 될 거 같아서, 한 잔만 따라두기로 했어요.”
“…….”
이것이 전선의 술자리.
무명은 먼저 떠난, 그리고 앞으로 떠날 이들을 위한 잔을 멍하니 보았다. 넘칠 듯 따라진 술이 붉게 찰랑이고 있었다.
“자, 무거운 이야기는 그만하고! 무명 언니의 신규 가입을 축하하며! 짠!”
네 명은 술잔을 서로 부딪혔다.
“원래 더스크 브링어 언니랑, 베르단디 언니랑, 그리고 엘리제 언니도 다 가입 멤버인데 오늘은 각자 뒤풀이 있는지 안 왔네요. 그래도 다음 모임에는 꼭 다같이 모여서 한 잔 하자구!”
이윽고 멤버들은 여러 주제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시드를 키우는 릴리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먼저 떠난 동료들- 그 중에서도 이곳의 멤버였던 마르헤리타나, 기습처럼 찾아와서 깽판을 놓았던 레이나나, 그 레이나와 인연이 있던 쥬피터나…….
지난 2년간 많은 추억이 쌓였고, 또 많은 이별이 쌓였다.
연거푸 술이 돌았고, 젊은이들의 술자리가 으레 그렇듯 이야기는 다시 연애로 흘러갔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쿠일란 그 녀석의 입술을, 콱!”
“어머, 어머, 어머! 세상에! 언니 개쩔어요!”
“그리고 바로 뒤이어서 후속타를 이렇게, 딱! 딱!”
“꺄아아아, 미쳤어, 미쳤어! 나도 꼭 배워서 써먹을 거예요!”
윤이 오늘 있었던 무용담(?)을 늘어놓자, 입을 가리고 감탄하던 에반젤린이 갑자기 무명을 홱 보았다.
“아 참, 그러고 보니 무명 언니! 언니는 아까 춤 춘 분 누구에요?”
“음?”
“멀리서 얼핏 봤는데, 웬 분이랑 춤 추고 계시더만! 누구였어요? 지상에서 괜찮은 남자 찾았어?”
쥬니어가 맞장구쳤다.
“그…… 영주 보좌관 아저씨! 맞아, 그 분이랑 춤 추시던데?”
“아, 그 분이랑 춤 추셨구나! 언제나 우리한테 밥이랑 음료 주시는 좋은 분이에요.”
에반젤린은 영주 보좌관을 영주 저택 갈 때마다 식사와 잠자리를 챙겨주는 자판기 정도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에반젤린이 턱을 괴고 음~ 소리를 냈다.
“그런데, 그 분 성함이 뭐더라…… 제가 아카데미 입학한 뒤에 여기 부임한 분이라, 잘 모르겠네.”
쥬니어도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게요. 그 분 존재감이 이상하게 흐릿해서, 기억을 잘 못하고 있었어요. 성함이…… 으음…….”
“…….”
무명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어째서일까? 아까 춤을 췄는데도, 벌써 그 사람의 얼굴이 흐릿했다.
이름.
그 사람의, 이름…….
다급하게 자리에서 일어선 무명이 나머지 멤버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만, 다녀오겠다.”
그리고 무명은 다급하게 연회장을 뛰쳐나갔다.
“캬, 무명 언니. 그렇게 안 봤는데……”
멍하니 그 뒷모습을 보던 에반젤린은 감탄하며 자신의 음료 잔을 들어올렸다.
“젊구만!”
아니, 니가 제일 젊어…….
생각하는 쥬니어와 윤에게 에반젤린이 재차 잔을 들어올렸다.
“자, 자기 인연 찾아 떠난 왕녀님은 내버려두고! 우리끼리라도 마셔요! 앞으로 또 언제 이런 자리가 생길지 모른다고요?”
***
멀리 동녘에서 새벽이 밝아오고, 달이 서녘으로 사라지려는 시간.
“…….”
에이더는 호텔 입구에 멍하니 서서, 서녘으로 사라지려는 달을 눈으로 쫓고 있었다.
타닷-
그때 구두소리가 울렸다.
놀란 에이더가 천천히 뒤를 돌아보자, 거칠게 숨을 가다듬는 무명이 보였다.
에이더는 흐릿하게 미소해 보였다.
“……제게 용무가 있으십니까, 왕녀님?”
“하아, 하아, 하아…….”
겨우 숨을 가다듬은 무명은, 힘껏 용기를 내서…… 물었다.
“이름을 물어도 되겠나, 보좌관?”
“…….”
“비록 나는 그대에게 알려줄 이름이 없지만…… 그래도 그대의 이름을, 알고 싶다.”
에이더는 잠시 망설였지만,
“……에이, 더.”
천천히 자신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에이더라고 합니다, 왕녀님.”
“에이더…….”
입 안에서 그 이름을 굴리며, 눈을 감고 어감을 음미하던 무명은 쑥스럽게 미소했다.
“좋은 이름이군.”
“……그렇지요.”
에이더는 마주 쑥스럽게 웃었다.
“정말…… 좋은 이름입니다.”
“그대의 이름을 기억하겠다, 에이더. 오늘 그대와 함께 했던 시간도.”
무명은 땀에 젖은 얼굴로 생긋 미소했다.
“다음에 또 만나지.”
가볍게 예를 차려 보인 무명은 다시 연회장 안으로 사라졌다.
“…….”
사라지는 무명의 뒷모습을 보며, 에이더는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한 표정이었다.
그런 에이더의 옆에 누군가가 태연하게 다가오더니, 에이더의 어깨에 팔을 올려 걸쳤다.
“왜 그렇게 세상 다 잃은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
돌아보자, 애쉬였다.
한참 대답하지 못하던 에이더가 힘겹게 웃었다.
“오늘이 끝나는 게 싫어서요. 저 분과 춤을 출 수 있었던, 이런 기적 같은 하루가…… 끝나는 게, 싫어서.”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야.”
애쉬는 씩 웃으며 그런 에이더의 어깨를 두들겼다.
“또 좋은 날이 올 거라고, 에이더.”
“……그렇습니다. 또 다시, 내일이면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겠지요.”
에이더는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환하게 밝아오는 동녘은 이미 일출 준비를 끝냈고, 서녘 끝에 걸린 달은 이미 흔적도 거의 남지 않았다.
“하지만 저는 오늘의 달빛을 잊지 못할 겁니다.”
에이더는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무명과 춘 춤을, 그 영혼 깊숙이 기억하려는 것처럼…….
“결코…… 잊지 못할 거예요.”
***
[STAGE 25 – CLEAR!] [STAGE MVP – 애쉬(EX), 스칼렛(N)] [레벨업 캐릭터]– 애쉬(EX) 외 30인
[사망 캐릭터]– 없음
[부상 캐릭터]– 없음
[획득 아이템]– 마술대제 마력핵(SSR) : 2개
– 엘리트 리치 마력핵(SR) : 10개
– 리치 군단 마력핵(R) : 30개
– 공격 마법 부적 : 10개
– 방어 마법 부적 : 10개
– 보조 마법 부적 : 10개
[스테이지 클리어 보상이 지급되었습니다. 인벤토리를 확인하여 주십시오.]– SSR등급 보상 상자 : 2개
– SR등급 보상 상자 : 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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