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547
◈ 547. [STAGE 31] Too Young To Die (2)
“여기 잡졸들은 내가 병사들과 함께 정리할 테니까.”
나는 루카스에게 명령했다.
“너는 정예 영웅들을 데리고…… 미하일을 구출해라.”
영웅들이 빠지면 이쪽은 병사들만으로는 저 수백의 허수아비를 상대하기 버겁고,
영웅들 또한, 이들만으로는 전진기지 병력의 힘을 대부분 흡수한 군단장을 상대하기 버겁다.
양쪽 다 버거워진다. 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다. 해내야 한다.
“예, 주군.”
그렇기에 루카스는 한 마디도 토를 달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른 동료들에게 턱짓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토르켈, 노바디, 체인이 나섰고, 그리고…… 제니스가 일어섰다. 조금 염려스러워서 물었다.
“움직일 수 있겠나, 제니스? 무리하는 거 아니야?”
“전혀 무리가 아닙니다.”
막 탈진에서 벗어난 제니스는 힘겨워 보였지만, 아저씨 특유의 껄렁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치유사제의 유무는 전술에 영향을 크게 끼치지 않습니까.”
“…….”
옳은 말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어차피 모두가 무리해야 하는 상황이기도 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마력 요새의 한쪽 성벽 경사면을 완만하게 조정했고, 네 영웅은 그 성벽을 타고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리고,
“……후우.”
한니발이 숨을 가다듬으며 성벽가에 섰다.
나는 그런 한니발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겨 주었다.
“이번 작전에서는 네가 중요해, 한니발. 내가 미리 일러준 대로만 하면 돼.”
“넵, 전하……!”
이를 악문 한니발은 앞선 아저씨들의 뒤를 쫓아 눈썰매라도 타듯이 성벽을 따라 주르륵 내려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디어뮈딘.
“…….”
노마법사는 수염을 쓸며 흘깃 내 쪽을 묵묵히 돌아보더니. 대뜸 이렇게 말했다.
“또 봅시다, 애쉬 황자.”
“……?”
의아하게 눈을 치뜬 나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럼요. 또 봐야죠. 금방 쫓아가겠습니다.”
“너무 급하지 않게 오시오.”
디어뮈딘은 의미 모를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땅을 훌쩍 차고 허공을 활강해서 성벽 아래로 내려갔다.
허수아비 군단장에게 쇄도하는 영웅들을 보다가 나는 일반 병사들을 향해 뒤돌아섰다.
“자, 그럼 얼른 정리해볼까!”
허수아비들이 가장 우글거리는 성벽 쪽에 서서, 나는 [크라켄의 반지]를 발동했다.
“소환-!”
그러자 허공에 마법진이 형성되며, 3스테이지당 한 번만 소환할 수 있는 최강의 두족류 괴수가 떨어져 내렸다.
콰과과광!
쿠오오오오오!
강하를 완료한 크라켄이 포효했다. 일대가 마구 진동하며, 안 그래도 잔뜩 대미지를 받고 무너져가는 전진기지를 뒤흔들었다.
‘마음 같아선 포획괴수 다 풀어놓고 싶지만.’
다들 충성도 관리가 안 되어서 여럿 풀었다간 괜히 서로 싸우고 아군 공격하고 난리 날 수 있으니까, 확실하게 소환 해제가 가능한 크라켄만 풀었다.
“자아, 속전속결이다! 얼른 이것들 쓸어버리고 친구들 도우러 가야지!”
크라켄의 등 위에 올라탄 나는 쏟아지는 허수아비들을 보며 고함을 질렀다.
“가자아아-!”
***
전진기지로부터 조금 떨어진 숲속.
미하일은 죽어가고 있었다.
허수아비 군단장의 품에 붙들린 채, 마지막 남은 영혼의 정수 밑바닥까지 모조리 빨아 먹히는 중이었다.
‘……뭐, 상관없나.’
몇 번이고 피를 토해내서 붉게 얼룩진 얼굴로, 초점 잃은 눈을 내리깐 채, 미하일은 생각했다.
‘어차피 돌아가도 죽을 테고.’
자신은 버밀리온의 왕세자.
실패하면 그 즉시 지위가 폐해지고, 몸속에 투여된 그리핀의 피 또한 회수당한다. 다시 말해서 산 채로 모든 피가 빨린다.
어떻게 해도 죽을 목숨이다. 다만 그 시간이 조금 앞당겨졌을 뿐.
‘이렇게 죽을 거면, 차라리 그때 죽을걸…….’
불과 얼마 전, 움직이는 숲 군단에게 붙잡혔을 때가 떠올랐다.
군단장 장로나무에게 속박당한 채, 미하일은 자신을 구하기 위해 날아드는 부하 기사들을 지켜보아야 했다.
그들이 하나 하나 처참하게 죽는 모습을. 뜬눈으로.
차라리 그날, 자신이 첫 실패를 겪은 그때 죽었다면, 이렇게 괴로울 필요는 없었을 텐데.
아니, 어쩌면 그것보다 더 이르게 죽었다면…… 부하들이 자신을 구하려다 죽는 일도 없었을 텐데.
‘이렇게 주위에 피해만 끼치고, 나는 대체 왜 살아있었던 걸까…….’
미하일의 귓가에 허수아비 군단장의 포만감 가득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이 끔찍한 수확도 이제 끝나가는 모양이었다.
얼른 죽고 싶었다.
빨리 끝이 왔으면…….
그때였다.
“좀 뜨거울 거요.”
상아탑주, 디어뮈딘의 목소리가 울리더니.
화르르르륵!
화염이 솟구쳤다.
지면에서 원을 그리며 솟아오른 마법의 화염은 절묘하게 미하일의 등 바로 뒤, 허수아비 군단장의 본체까지만 불태웠다. 무시무시하게 정교한 컨트롤이었다.
《크학?!》
불길에 휩싸이자, 태생이 나무로 이뤄진 괴수인 허수아비 군단장은 버티지 못하고 몸을 움직여야 했다. 자연스럽게 수확도 중지되었다.
“애쉬 황자가 더해준 힘이 굉장하긴 하군.”
자신이 시전하고도 위력이 평소보다 월등해서 놀란 디어뮈딘이 중얼거렸다.
총알처럼 앞으로 쏘아져 나가며 루카스가 괜히 으쓱거렸다.
“이제 아셨습니까? 제 주군께서 이렇게 굉장한 분입니다!”
“굉장한 분인 건 맞지만, 지금은 그 자랑할 때가 아닙니다……!”
탱킹력 자체는 크로스로드의 모든 영웅 중 최고지만, 기동력은 최악인 토르켈이 헉헉거리며 외쳤다.
그런 토르켈의 몸을 흑마법사 체인이 어둠으로 이뤄진 팔을 이용해 홱 잡더니, 앞으로 던져주었다.
토르켈의 갑옷과 대방패까지 포함한 육중한 몸이 마치 공성용 투석처럼 쏘아졌다.
《이 해조(害鳥) 놈들! 썩 물럿거라! 추수 중이지 않느냐!》
가뿐하게 몸을 물러 그런 토르켈의 육탄돌격을 피해낸 허수아비 군단장이 포효했다.
《방해하지 마라! 가장 밑바닥에 남은, 정수 중의 정수를 이제 막 삼키려는 참인데……!》
“알지, 알아! 코코아를 마실 때도, 컵의 바닥으로 갈수록 달고 진해지잖어? 나도 그래서 컵 바닥에 쌓인 거 좋아해!”
허공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당혹한 허수아비 군단장이 고개를 위로 홱 들었다. 바로 머리 위로 맹인검객 노바디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래서 다 마시기 직전에 엎어야 빡치잖어-!”
흑마법사 체인은 일부러 요란스럽게 토르켈을 내던진 뒤, 연이어 은밀하게 노바디를 투척한 것이었다.
누런 이를 드러내며 노바디가 활짝 웃었다.
“나 오늘 컨디션 만땅이니까! 거의 두 눈 뜬 거나 마찬가지니까! 각오하라고!”
맹인검객의 칼집에서 장도가 번뜩이며 뽑혀 나왔다.
츠카악!
닿기만 하면 무엇이든 베어내는 참격이 후려갈겨졌다.
노바디의 말대로, 그의 참격은 전에 없이 정확한 경로를 그렸고, 허수아비 군단장의 목을 완벽하게 노렸다.
《큭?!》
허수아비 군단장은 다급하게 피하려 했지만, 이미 공격의 범위 안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아까 전진기지의 성벽을 베어낼 때 장도가 반토막이 나버렸다는 것.
칼날의 범위가 짧아졌고, 그것을 감안하고 평소보다 더 바짝 붙으며 참격을 후려쳤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이가 부족했다.
쩍-!
노바디의 참격은 허수아비 군단장의 목을 베어냈다.
절반만.
깨끗하게 쳐내지 못하고 덜렁거리는 적장의 목을 느끼며 노바디는 이를 갈았다.
“에라이 망할, 컨디션 좋았는…….”
퍼억-!
허수아비 군단장이 거칠게 뿌린 팔에 얻어맞은 노바디가 뒤로 나가떨어졌다.
노바디는 몸에 부딪힌 숲의 나무들을 몇 그루나 꺾으며 멀리 날아갔다.
한참 뒤에야 흙바닥에 처박힌 그는 피를 토하며 한 번 몸을 일으키려다가, 그대로 바닥에 고개를 처박았다.
“노바디!”
“큭, 이게 안 먹히다니…….”
루카스는 이를 갈았다.
회심의 기습이었는데, 유효타를 넣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단칼에 적장을 해치우는 데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래도 지금 끝장내야 한다!’
투학-!
[집념의 일보]를 사용한 루카스가 탄환처럼 쏘아졌다.기사의 손에서 [하사받은 검]이 빛의 칼날을 형성하고, [의지의 일격]을 머금고 눈부시게 번뜩였다.
적장이 유효타를 허용한 지금, 단숨에 끝장을 본다!
루카스는 검을 앞으로 세우고 최속의 일격을- 찌르기를 그대로 허수아비 군단장의 옆구리를 향해 욱여넣었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빙글.
허수아비 군단장은 가뿐하게 몸을 옆으로 돌려, 가슴팍에 매달린 미하일을 그 검로에 놓았다.
미하일의 텅 빈 시선과 루카스의 새파란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
찰나지간 루카스는 갈등했다.
그의 냉철한 사고는 지금 이대로 미하일과 함께 허수아비 군단장을 꿰어 죽이는 것이 최선이라 판단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나-
일순 루카스의 뇌리에, 자신이 따르는 남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깃발을 휘날리며 앞에 선, 애쉬의 등이.
“……크으윽!”
주군이 지키고자 하는 기치가 바로 눈앞에 있는 듯해서. 차마 찌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루카스는 검로를 틀었고,
《멍청하기는.》
허수아비 군단장은 그런 루카스의 배에 전력을 다해 주먹을 후려쳤다.
콰아아앙!
포탄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그 일순 루카스는 [집념의 일보]를 이용해 뒤로 뛰며 충격을 줄였고, 괴수의 주먹이 오는 경로에 자신의 검을 밀어넣어 가드까지 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의 칼날이 산산조각 났고- 루카스는 피를 토하며 수십 바퀴 바닥을 튕긴 끝에 흙바닥에 처참하게 처박혔다.
미하일의 힘만 흡수했을 때도 허수아비 군단장의 힘은 엄청났는데, 전진기지에서 경비를 서던 백여 명의 힘을 모두 독차지한 지금은…… 그야말로 재해(災害) 수준이었다.
애쉬의 표현을 빌리자면, 스태이터스 드레인(Status-Drain).
일격일격이 백명분의 힘을 응축한 것이나 다름없는 괴물.
《네놈들의 방해로 수확이 완전하지는 못해도, 이미 나의 곳간은 풍족하다.》
반쯤 목이 베여, 옆으로 90도가 넘게 기괴하게 고개를 꺾은 채. 허수아비 군단장이 기긱 기긱 웃었다.
《기습이 실패한 시점에서, 네놈들에게는 승산이 없다.》
“크, 윽……!”
《자, 이리 오너라. 너희도 모두 먹어치워주마.》
땅을 박차고 가뿐하게 솟아오른 허수아비가 루카스를 향해 내려 찍혔다. 루카스는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으나, 피할 수 없음을 직감했다.
“흐읍-!”
그 사이에 토르켈이 끼어들었다.
토르켈은 거대한 대방패를 치켜들고 허수아비 군단장의 공격을 받아냈다.
콰아앙!
토르켈은 가까스로 버텨냈지만, 그 단단한 대방패가 움푹 파였다. 토르켈 또한 투구 속에서 코피가 치솟고, 그만 한쪽 다리가 바닥에 꿇려질 정도였다.
애쉬의 버프가 아니었다면, 이 일격만으로 이미 빈사였을 것이다.
“토르켈!”
“괜찮…… 습니다. 어서 정비를……!”
두번째, 세번째, 네번째 공격이 연이어 날아왔다.
허수아비 군단장이 팔다리를 가볍게 휘젓기만 해도 땅이 뒤집어지고 거목들이 뿌리째 뽑혀 나갔다.
“크으으윽!”
토르켈은 자신의 궁극기, [인간은 패배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는다]를 발동하고 버텨냈다.
몸은 버텨내고 있었지만, 그 단단하던 갑옷과 방패가 단숨에 허물어지고 있었다.
“루카스 경! 회복을!”
노바디의 응급처치를 끝낸 제니스가 달려와서 루카스에게도 치유마법을 걸어주었지만, 워낙 대미지가 깊어서 완전한 회복은 어려웠다.
체인과 디어뮈딘이 어떻게든 공격을 욱여넣기 위해 기회를 보았다.
하지만 마법이 날아들 때마다 허수아비 군단장은 미하일을 그 경로에 내밀었다. 그러면 체인과 디어뮈딘은 이를 악물고 억지로 마법을 해체해야 했다.
“그만둬.”
자신의 앞에서 처참하게 무너져가는 구조대를 보며, 미하일이 중얼거렸다.
“그만둬…….”
지금 눈앞의 광경이, 자신의 부하들이 죽던 모습과 겹쳐 보였다.
미하일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 같은 걸 위해서, 죽지 마아아……!”
허수아비 군단장은 이제 아예 제자리에 서서, 즐겁다는 듯 기괴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마구 팔을 휘두르고 있었다.
방패를 든 토르켈의 두 다리는 거의 땅에 박혀가고 있었다.
“너희 다 나랑 아무 상관도 없잖아!”
더 이상 보지 못하고 미하일은 눈을 질끈 감았다.
“왜, 나를 구하려고 목숨을 버리는 거야……!”
미하일이 울부짖는 것과 동시에,
“왜 구하려 했냐니요. 그냥…….”
옆에서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놀란 미하일이 옆을 돌아보자, 그곳에는 더벅머리 소년이 있었다.
조그마한 체구에, 땅의 정령을 이용한 지면 은신까지 더해서.
모두가 시선을 끌어준 틈에 마침내 몰래 접근에 성공한 한니발이었다.
한니발은 미하일의 몸을 속박한 나뭇가지들 위에 손을 올리더니,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그냥.”
후두둑!
나무의 정령들이 허수아비 군단장의 억센 속박을 단숨에 풀어냈고, 미하일은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