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57
◈ 057. [Side Story] 세상을 지키지 말거라 (3)
본래라면 클리어할 수 없는 튜토리얼 스테이지에서, 본래라면 죽일 수 없는 검은 거미 여왕을 죽이고 마력핵을 얻었다.
본래 검은 거미 군단을 상대하는 것은 2년차 중반 이후다.
이 마력핵으로 만든 장비 또한 현재의 장비 수준을 뛰어넘으리라고는 짐작했다.
‘짐작이야 했지만…… 이건.’
나는 손에 들린 검은 마총을 꽉 쥐고 마른침을 삼켰다.
검은 거미 여왕 마력핵으로 만든 SSR등급 마총, 블랙 퀸.
‘이건 밸런스 브레이커다.’
그동안 이 마력핵을 아껴왔던 게 바보처럼 느껴질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장비가 튀어나왔다.
숨겨진 옵션이 어떤 건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나머지 옵션만으로도 충분. 아니, 넘친다.
‘적어도 1년차는 이거 하나로 멱살캐리 가능하다.’
깡뎀만으로도 슈퍼 죽창이다.
앞으로 1년 정도는 어지간한 정예 몬스터는 물론이고, 보스급 몬스터도 약점만 맞춘다면 이거 한 방으로 정리 가능할 거다.
게다가 이 총의 사용자는 데미안. [천리안]을 가진 치트 캐릭터다.
이 압도적 대미지를 적재적소에 꽂아 줄 수 있다는 뜻이다.
‘요 요 거지발싸개 같은 게임! 드디어 나를 좀 편하게 해 주려나 보구나?’
입가가 절로 씰룩거렸다. 도저히 웃음을 참기 어려울 만큼 끝내주는 아이템을 얻었으니 당연하다.
내가 만족하자 대장장이 조합장과 연금술사 조합장도 활짝 웃었다.
“전하께서 마음에 들어 하시는 듯해서 정말 다행입니다!”
“만드는 내내 뭔가에 홀려 있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저희도 이런 걸물(傑物)을 만들 수 있어서 기쁠 뿐입니다.”
“두 사람 모두 잘 해 주었다. 공방의 모두도 고생 많았고.”
나는 공방 안의 모두를 둘러보며 치하해 주었다.
“내 보너스 두둑이 내려주지. 다음 것도 잘 부탁한다.”
“옙, 전하!”
“여부가 있겠습니까!”
루카스에게 마총들을 들게 하고, 나와 루카스는 공방을 나섰다. 그런 우리의 뒤로 두 조합장이 연신 허리를 숙였다.
“이 마총이 그렇게 대단한 물건입니까, 주군?”
궁금해하는 루카스에게 나는 씩 웃어주었다.
“전쟁의 판도가 바뀔 거다.”
“그 정도입니까……?”
루카스는 자신의 손에 들린 마총을 새삼스럽게 내려다보았다.
“스테이지 시작 전에 완성되어서 정말 다행이군.”
나는 앞으로 남은 시간을 살폈다.
[STAGE 3]– 시작까지 : 20시간 30분
다음 스테이지 시작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는 상황.
데미안에게 마총을 전달하고, 익숙해지도록 훈련까지 시킬 수 있다.
‘에이더를 욕한 게 미안해지네.’
디렉터 녀석에게 쓰레기 게임 난이도 조절 안 하냐고 욕했었는데.
반대로 욕은 내가 먹어야 할 정도다. 이렇게 갑자기 게임이 술술 풀릴 줄이야.
희희낙락하며 마차를 타고 저택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방어전 전날이라 미리 파티원들을 저택으로 소집해 놓았다. 다들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
“주군.”
마차가 저택에 가까워졌을 즈음, 마부석의 루카스가 나를 불렀다.
“응? 왜 그래?”
“직접 보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나는 마차 창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그랬더니.
영주 저택으로 통하는 돌담길 입구.
웬 조그마한 체구의 소녀가 그곳에 서 있었다.
“…….”
늦은 오후의 햇살 아래에서도 환하게 빛나는 백금발에, 선명한 녹색 시선을 가진 소녀였다.
등에는 큼직한 가방을 메고서, 먼 길을 떠날 채비를 끝낸 채.
에반젤린 크로스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덜컹!
마차에서 내린 나는 에반젤린에게 다가갔다.
“에반젤린.”
“…….”
에반젤린은 특유의 뾰족한 눈으로 나를 멀뚱하게 올려다보더니, 이윽고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영주 보좌관 아저씨가 저한테 이걸 갖다 주시더라고요.”
에반젤린은 품에서 마법적 처리가 된 종이다발을 꺼냈다.
금화 증명서다.
무거운 금을 일일이 다 들고 다닐 수는 없으니까.
대륙 상인연합과 마법사 동맹 상아탑의 보증 아래, 이만큼의 금화를 실제로 갖고 있으며 실물은 어디에 있는지 증명하는 마법 문서다.
쉽게 말해 수표.
보통 증명서를 써야 할 만큼 금화를 산더미처럼 갖고 있는 사람은 꽤 드물기 때문에, 증명서 자체는 대륙 어디에서든 꽤 신용을 받는다.
말이 길었는데, 아무튼 크로스 가문의 가산을 얼추 정리하자 꽤 금액이 나왔다.
저 증명서의 금액 정도만 있으면 에반젤린이 어디로 가든 먹고 사는 데에는 별 지장 없을 거다.
“일주일도 안 걸려서 일을 다 처리해 주신 건 정말 감사한데…….”
에반젤린은 도드라진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댔다.
“이거 받고 직후에 보좌관 아저씨가 말하더라고요.”
“뭐라던?”
“‘영주님께서 말씀하시길, 이 돈 받았으면 이제 이 도시에 볼 일 없으니, 조속히 퇴거하고 도시를 벗어나라 하십니다아~’ ……라고.”
에이더의 말투까지 따라한 에반젤린은 불만스럽게 팔짱을 꼈다.
“그리고 영주님 명령이라면서 제 짐 전부 싸서 저택 밖으로 쫓아내지 뭐예요. 어이가 없어서 선배님한테 직접 물으려고 여기서 기다렸어요. 이거 진짜 선배님이 시킨 거예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니, 너무 급하게 쫓아내려고 하는 거 아니에요? 아직 인사도 다 못했는데.”
“기왕 헤어지려면 빨리 헤어져야지. 정 들어서 뭐하게.”
나는 짐짓 엄한 목소리를 냈다.
“내일이면 다음 방어전이 시작돼. 여기는 전쟁터가 될 거야. 이런 진창에 휘말려서 같이 구르고 싶어?”
“그래도…….”
“잔말 말고 얼른 떠나. 너는 이제 이 도시와 아무 연관도 없으니까.”
작위도 포기했고, 재산도 모두 정리했으면서.
무슨 미련이 남았는지 우물쭈물하던 에반젤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래도 다음 방어전, 도와드릴게요. 선배님께서도 저 도와주셨으니까…….”
“아니!”
나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어차피 떠날 거면 깨끗한 채로 떠나. 괜히 몸에 진흙 묻히지 말고.”
“하지만!”
“너 같은 어린애 손 안 빌려도 이 도시는 충분히 지킬 수 있어.”
내 말에 에반젤린은 발끈했다.
“저 싸우는 거 보셨잖아요! 충분히 한 사람 몫을 할 수 있어요! 아니, 그 이상을…….”
“에반젤린!”
내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놀란 에반젤린이 딸꾹이며 뒤로 물러섰다.
나는 그런 에반젤린에게 검지를 들이밀며 몰아붙였다.
“너는 고향을 등지고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살기로 마음먹은 게 아니었나? 그래서 작위도 포기하고, 가문의 재산도 처분했잖아. 돌아올 집도, 미련도 모두 처분했잖아!”
“그건…… 그렇지만.”
“그렇게 마음을 먹었으면 확실하게 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떠나란 말이다!”
나는 계속해서 신랄하게 쏘아붙였다.
“네가 말한 대로다. 여기 괴수전선에는 죽음과 먼지뿐이야. 그리고 그 죽음과 먼지는 네가 한 번 발을 들이면 끝까지 널 놓지 않을 거다!”
“…….”
“앞으로 괴수와의 전쟁에는 아예 발을 담그지 마라. 영영 떠나서, 네가 정말로 하고 싶은 다른 일을 찾는 거다.”
잠깐 숨을 들이쉬었다가, 나는 천천히 내뱉었다.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라. 그게 네 아버지의 유언이었다.”
“……!”
“불효녀가 되고 싶다고 했지, 에반젤린. 청개구리처럼 살고 싶다고. 하지만 네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 정도는 착실하게 들어다오.”
딱딱하게 굳어 있는 에반젤린을 스쳐 지나서 나는 저택의 입구로 들어섰다.
“너는 이제 외부인이다. 이 저택은 더 이상 네 가문의 것이 아니고.”
“선배님, 잠시만……!”
“우리는 내일 방어전을 대비한 회의를 해야 한다. 조속히 퇴거해 줬으면 한다.”
“…….”
나는 뚜벅뚜벅 발걸음을 옮겨 저택 안으로 향했다.
그런 내 등을 에반젤린이 어떤 표정으로 보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요 며칠간 감사했습니다, 선배님. 아니, 황자님.”
깍듯한 목소리로 인사가 들려왔다.
“마지막으로 부모님 묘에 들렀다가…… 크로스로드를 떠나겠습니다.”
“…….”
“앞으로 황자님께서 나아가실 길에 무운이 함께하길 바랍니다.”
나는 끝까지 대답하지 않고 저택 현관으로 들어섰다.
현관에 들어서면서 흘깃 돌아보자, 90도로 허리를 숙인 채 가만히 있는 에반젤린이 보였다.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네 삶에도 행운이 함께하길 바란다.”
쿵!
현관문을 닫고 나는 한숨을 돌렸다. 에구구.
그런 내 옆에 서 있던 루카스가 쓰게 웃었다.
“그렇게까지 엄하게 말씀하실 필요는 없으셨잖습니까.”
“어중간하게 말했다간 저 녀석도 미련이 남을 거 아냐. 말하는 거 들었어? 뭐? 방어전을 도와줘? 한 사람 몫을 해? 하이고!”
나는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렇게 하루만 더 한 번만 더 하다가 영영 눌러앉게 되는 거야. 그럼 안 되잖아. 썩 쫓아내야지.”
“그래도, 잘 타이를 수도 있었을 텐데…….”
“이별에 눈물이 꼭 필요한 건 아니잖냐? 금화 증명서 다발이면 충분하지, 뭐.”
나는 저택 복도의 창문으로 슬쩍 밖을 내다보았다.
에반젤린은 배낭을 고쳐 메고, 자신의 창과 방패를 허리에 묶은 뒤, 남쪽으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부모님의 묘에 들리겠다고 했던가.
“…….”
멀어지는 소녀의 자그마한 뒷모습을 가만히 보다가 아쉬움에 한숨을 작게 내뱉었다. 바이바이, 내 비싼 SSR아…….
“자자, 간 녀석은 간 녀석이고!”
나는 옆에 있는 내 다른 SSR등급 기사의 등을 퍽 쳤다. 루카스는 난감하게 웃어 보였다.
“우리끼리 잘 해 보자, 루카스!”
“주군의 말씀을 따를 뿐입니다.”
나와 루카스는 저택의 응접실로 들어섰다.
응접실에는 메인 파티 멤버들이 미리 소집되어 대기하고 있었다. 쥬피터, 데미안, 그리고…….
“왜 또 나야아아아아!”
우리 불꽃의 대마법사, 릴리 님.
나는 사악하게 히죽 웃으며 그런 릴리의 앞자리에 앉았다.
“짧은 자유는 달콤했니, 릴리? 그럼 다시 부려먹힐 시간이란다.”
“으아아아아! 전하! 제발 공방으로 돌려보내 주세요! 뼈가 가루가 되도록 일할 테니까, 제발 사무직으로!”
온몸이 포승줄로 꽁꽁 묶인 채 릴리는 눈물콧물을 뿜어내고 있다.
약한 척 하지 마, 릴리. 너 할 때는 하는 사람이잖아. 네 유능함은 황자님이 다 알아요.
“자, 방어전이 이제 하루도 안 남았다. 마지막으로 우리 파티의 전략을 점검하자.”
릴리를 어르고 달래며 작전 회의가 시작되었다.
골렘을 대비한 방어 전략은 이미 수립되어 있었다. 오늘은 세부사항 확인과 숙지, 그리고 마지막 점검이었다.
성벽의 지도를 펼쳐 둔 채 회의는 1시간 정도 이어졌다.
모두의 역할을 다시 한번 설명하고, 릴리에게도 적절한 후방지원 임무를 내려 준 뒤.
“그리고 데미안. 네게 또 선물을 가져왔다.”
나는 히죽 웃으며 데미안에게 포장된 마총 두 자루를 내밀었다.
눈이 동그래진 데미안이 내가 건넨 마총들을 받아 들었다.
“제가 포장을 뜯어도 되나요?”
“당연하지! 얼른 열어 봐.”
데미안이 조심스럽게 마총의 포장을 풀고, 내가 그 마총이 얼마나 대단한 물건인지 설명하려는 순간이었다.
쾅!
응접실 문이 거세게 열렸다.
놀란 모두가 문 쪽을 보았다. 그곳에는 다급하게 숨을 헐떡이는 병사가 한 명 서 있었다.
“허억, 허억! 아룁니다, 전하! 비상사태입니다!”
“뭐야. 무슨 일인데 그래?”
“정찰부대로부터 보고입니다! 괴, 괴수들이……!”
이어진 말에 나는 눈을 부릅떴다.
“괴수들이 출몰했습니다! 종류는 골렘 군단, 대형 괴수입니다! 숫자는 200여! 현재 무시무시한 속도로 도시로 진격해 오고 있습니다!”
“……뭐?”
당황한 나는 급히 시스템 창을 띄워 보았다.
“무슨 헛소리야, 아직 스테이지 시작까지는 시간이 있는데?”
[STAGE 3]– 시작까지 : 18시간 55분
“이것 봐! 아직 열아홉 시간이나…….”
바로 그 순간.
[???의 ??가 게임에 개입합니다!]목에 차인 목걸이가 뜨거워지는 기분이 들더니,
촤르륵!
[STAGE 3]– 시작까지 : ■■시간 ■■분
난데없이 시스템 창의 숫자들이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남, 았…….”
나는 떨떠름하게 말끝을 흐렸다.
어?
이건 또 뭐야.
뭐가……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분명히 남아 있던 시간이, 촤르르륵 소리를 내며 아래로 떨어진다.
떨어지고, 또 떨어져서-
철컹!
[STAGE 3]– 시작까지 : 00시간 30분
사라졌다.
남아 있던 19시간의 유예가. 고작 30분만을 남기고 모조리 증발했다.
“……미친.”
어이가 없어서 나는 굳어 있었다.
아니, 사기 치지 마. 적어도 시스템 창은 사기를 쳐선 안 되는 거잖아.
이게 대체 무슨……?
“그뿐만이 아닙니다, 전하!”
병사가 연이어 소리쳤다. 퍼뜩 정신을 차린 나는 그쪽을 보았다.
“보고에 따르면 괴수들이 이상행동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이상행동? 무슨?”
“놈들이 두 무리로 나뉘었다고 합니다!”
몬스터 군단이? 두 무리로 나뉘었다고?
왜?
“전체의 8할 정도인 본대 200여 개체는 곧장 도시로 오고 있습니다만, 나머지 2할, 본대에서 갈라져 나온 50여 개체는…….”
다음 말에 순간 머릿속이 아찔해졌다.
“변경백께서 생전에 기거하시던, 과수원 쪽으로 가고 있다고 합니다!”
“……뭐라고?”
나는 천천히 옆을 돌아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루카스 또한 창백한 얼굴이었다.
지금 그 과수원에는…….
– 마지막으로 부모님 묘에 들렀다가…… 크로스로드를 떠나겠습니다.
……에반젤린이, 가 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