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585
◈ 585. [STAGE 35] 파리대왕
《…….》
파리대왕의 정신세계 안.
좌선을 틀고 앉은 늙은 파리는 침착하게 ‘자신들’의 상태를 관조하고 있었다.
‘만전(萬全)의 상태는 아니군.’
우선 인간들에게서 빼앗은 수단을 살폈다.
개념포식(槪念捕食).
악마종인 임프와 파리가 합쳐지면서 새로이 생겨난 권능이다.
상대를 개념째로 제물로 삼고, 파리로서 포식해 빼앗는.
‘너는 정말로 유용하군, 임프.’
늙은 파리는 새삼스럽게 임프에게 감사를 표했다.
작고 하찮은…… 이제 이름마저 잊은 상대였지만, 그 임프가 자신을 위해 안배해둔 것들이 너무도 유용해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튼, 이러한 개념포식으로 빼앗은 힘은 셋.
배리어, 속성마법, 그리고 텔레포트.
배리어와 마법은 유용할 터였지만, 늙은 파리는 텔레포트를 사용하는 것을 망설이고 있었다.
이 마법이 근본적으로 피안의 저편에 접속해야 하는 수단임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피안의 저편을 통해서 순간이동을 하는 마법인가…….’
자신들은 결국 호수왕국 아래의 악몽 속에서 되살아난 존재.
피안의 저편- 영계에 들어섰다간, 다시 현세로 돌아오지 못하고 휩쓸릴 것이 자명했다.
다른 악몽 군단이 텔레포트 게이트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유였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늙은 파리는 킥킥킥킥 사악하게 웃으며 가슴 앞에 손을 모았다.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겠지.’
적들에게서 빼앗은 수단을 치워두고, 늙은 파리는 이제 파리대왕으로서 자신의 종족이 보유한 나머지 자원을 살폈다.
‘침투해온 인간들 때문에 부화장에 보관 중이었던 알들 상당수가 불타버렸다.’
호수왕국의 악몽 속에서 부활한 파리들은 새로운 알을 낳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자체적으로는 잃은 알을 보충할 수단이 없었다.
알뿐만이 아니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현세의 정보를 얻고자 아낌없이 성체 파리들을 소모한 것도 컸다. 전력 소모가 생각보다 심대했다.
‘하지만 남은 알들이 아직 있다.’
부화장의 알들 중 상당수가 불타버렸지만, 남은 알들은 안전하게 보관 중이다.
이 알들은 모두 신세대의 파리로 태어날 것이다.
앞서 내보낸 키메라 형태의 파리들은 시작에 불과했다.
계속해서 주입할 수 있는 정수를 모두 집어넣어, 최강의 파리를 잉태시킬 셈이었다.
개체 하나에 들어가는 품이 늘어날수록, 알에서 구더기로, 구더기에서 번데기로, 다시 성충으로 변태해가는 과정이 지극히 느려졌지만.
결과물은 만족스러웠다. 신세대의 파리들은 하나 하나가 막강한 괴수였고, 계속해서 더욱 강력해졌다.
‘남은 알들은 모두 안전한 부화장 최상층에 옮겨두었지만…….’
어쨌든, 수가 부족하다. 당장 요새를 무너뜨리기에는 충분할지 몰라도 세상을 초토화시키기에는 적다.
그렇기에 늙은 파리의 생각은, 여타 정복군주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현세의 파리들을 찾아 우리의 일원으로 흡수해야 한다.’
세상에는 언제나 파리가 넘쳐나니까.
그런 파리들을 찾아 세력권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실제로 이미 검은 호수에서 이곳까지 진격하는 동안, 숲과 강 곳곳에 살고 있던 파리들은 유충부터 성체까지 모두 파리대왕에게 흡수당했다.
‘성벽을 무너뜨리고 세상의 한가운데로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온 세계의 모든 파리를 그러모아…….
다른 모든 생물을 해치고, 모독하고, 그 시체 위에 알을 놓으리라.
그리하면 비로소 이 모순된 세계는 파멸하고, 다시금 새로운 세상이 태어날 테니까.
무수한 파리와 구더기로 가득 찬, 그 무엇보다 낮고 비천하며 또한 행복으로 가득 찬 세계가…….
허리를 숙이고 키득거리며 웃던 늙은 파리는 문득 웃음을 멈췄다.
《……?》
파리는 자신의 속에서 무언가 이물감을 느꼈다. 흐릿한, 그러나 확실한 불편함이 그의 속을 메스껍게 만들고 있었다.
‘뭐야.’
늙은 파리는 다시금 자신의 내면을 관조했지만, 무엇도 감지되지 않았다.
모든 파리들의 집합의식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정신체를 형성했고, 늙은 파리는 그 정신체의 주도권을 완전히 틀어쥔 주인이었다.
그는 파리라는 종이 선택한 종족신이었다. 모든 파리는 그에게 복종을 맹세했고, 그러지 않은 파리는 모두 그에게 영혼을 씹어먹혔다.
그렇기에 이 정신세계 안에서 그는 실로 무적이었다. 그를 불편하게 할 것은 무엇도 없었다.
찬찬히 내면을 살피자, 이물감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진 뒤였다. 늙은 파리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이윽고 정면을 보았다.
화악-!
거대괴수 파리대왕의 시야에.
좌우를 메운 숲이 사라지고, 널따란 평야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너머에.
마침내 인간의 요새가 높다란 성벽을 세우고 그 모습을 드러냈다.
***
저녁놀마저도 지고, 밤이 가까워진 시간.
요새도시 크로스로드. 남쪽 성벽 위.
상공에 떠오른 비공함대. 그 중앙의 알카트라즈.
함대장 맥밀란은 파이프 담배를 꾹 깨문 채 마법 패널에 표시되는 적 괴수의 등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거의 동시에 모든 채널에서 비명처럼 보고가 쏟아졌다.
「괴수, 쾌속 접근 중! 속도를 줄이지 않습니다!」
「파리대왕이 육안으로 보입니다-!」
「아군 사거리에 들어오기까지 앞으로 5분 남았습니다!」
구름을 헤치고 등장한 적 괴수는 시시각각 거대해졌다. 단순히 가까워진 것뿐이지만, 맥밀란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으득-
너무 세게 문 탓에 아끼던 파이프 담배의 나무관이 으깨졌다.
맥밀란은 연초 맛이 스며든 나무관을 잘근잘근 씹으며 자신의 제독 모자를 고쳐 썼다.
‘황자 전하의 작전은 성공했나? 아니면-’
직후 맥밀란은 조용히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군인이 대비해야 할 일은 언제나 하나.
‘아니면’의 경우뿐이다.
“전 함대, 발진! 적 괴수를 영격한다!”
투학-!
상공에 떠오른 채 대기하던 비공함들의 후면 쓰러스터에 일제히 마법의 불길이 일었다.
짓쳐들어오는 괴수에 맞서 마주 진격하는 함대의 중앙에서, 맥밀란이 재차 입을 열었다.
“우리가 1차로 놈의 속도를 떨어뜨려야 요새에서 놈을 저지할 수 있으니, 전 함대! 이번에야말로, 정말로…….”
맥밀란이 호통을 쳤다.
“인류 측 에이스들의 힘을 보여주자! 발포하라-!”
일제히 측면으로 돌아선 비공함들은 그대로 속도를 줄이지 않으며 파리대왕에게 접근.
동시에 파리대왕 쪽으로 향한 측면에서 포대를 전개하고, 마구 화망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펑! 퍼버버벙!
콰과과과광-!
비공함이 흩뿌린 탄막이 파리대왕에게 빗줄기처럼 쏟아진 뒤, 화려하게 폭산했다.
비공함들은 그동안 크로스로드에서 먹통이 된 배리어 시스템을 교체했다. 동시에 함포 시스템 또한 일신했다.
괴수와의 최전선인 크로스로드는 포탑 및 화약 기술이 다른 지역에 비해 기형적일 정도로 발전해 있었고, 아낌없이 그 노하우를 공유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모든 기술자와 대장장이들이 달려들어 비공함의 화력을 조금이라도 강화하기 위해 애썼다.
그 결과, 첫 교전 때보다 유의미하게 화력이 증대된 상황이었다.
‘찢어발겨 주마, 파리 자식아……!’
눈부시게 폭발하는 폭약의 불꽃을 바라보며 맥밀란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한쪽 측면으로는 포대 발사, 한쪽 측면으로는 쓰러스터를 회전 전개해 전진.
양쪽으로 불을 뿜어내며 파리대왕을 향해 접근하는 비공함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장관이었다.
하지만,
“……?!”
얼마 지나지 않아 맥밀란은 이변을 눈치챘다.
포탄이 터져나가며 흩뿌린 불길과 자욱한 연기가 걷힐 무렵, 파리대왕의 거체를 둘러싼 연푸른 막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다른 함장들 또한 파리대왕의 몸에 둘러진 그 막의 정체를 눈치챘다. 당혹한 신음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왔다.
「저, 저건…….」
「맙소사. 망할-」
「이 괴수 새끼가, 이게 무슨…….」
입에서 뗀 파이프 담배를 손에 쥔 맥밀란이 씹어 뱉었다.
“……배리어.”
괴수가 인간에게서 빼앗아간 배리어 기술이었다.
마치 동면이라도 하듯 잔뜩 몸을 웅크린 듯한 자세를 취한 채.
거대한 파리대왕은 자신의 온몸에 배리어를 전개하고 비공함대의 전력 화력투사를 가뿐하게 버텨냈다.
동시에, 괴수의 온몸에서 붉은 빛이 산란했다.
괴수의 몸을 이룬 모든 파리들의 눈이 번뜩여서 생긴 효과였다.
꼬리 끝에서부터 일어난 붉은 빛은 배를 타고 상반신까지 오르더니, 머리에 도달해서- 뿔에 닿았다.
더 이상 헤일로는 없었지만, 파리대왕의 머리 위에는 마치 악마 같은 거대한 뿔이 돋아 있었고…… 그곳으로 막대한 마력이 응집되고 있었다.
「적 괴수, 마력 응집 중!」
「미, 미친 규모입니다! 이 마력 포집량은…….」
「무언가 거대한 게 옵니다! 맥밀란 경! 지시를!」
이 순간에도 파리대왕과 비공함대는 서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맥밀란은 침착하게 전황을 가늠했다. 파리대왕이 이쪽의 배리어 기술을 가져가서 당황했지만, 이쪽에도 배리어가 있는 것은 같다.
저쪽이 무슨 공격수단을 사용하든, 이쪽도 배리어로 버텨내면 그만-
“어?”
다음 순간 맥밀란의 입에서 얼빠진 소리가 흘러나왔다.
파리대왕의 뿔 위에서, 눈에 익은 도형과 술식이 마력진을 이루며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었다.
맥밀란은 마법에도 조예가 있었다. 그렇기에 바로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파리대왕이 지금 준비하는 공격수단은 바로-
“……마법.”
인간 마법사들에게서 빼앗은 합동마법이었다.
번쩍-!
세상을 집어삼킬 듯 맹렬한 화염, 끝이 보이지 않는 높은 해일, 세상을 뒤집을 듯한 산사태, 하늘을 찢을 듯한 토네이도, 그리고 태초의 섬광처럼 눈부신 벼락.
인간 중 가장 명석한 연구자들이 혼신을 다해 함께 공명하며 펼쳐낸 마법들을, 파리들 또한 종족째로 공명하며 연산해서 쏟아냈다.
눈앞으로 쏟아지는 재해를 보며 맥밀란이 고함을 질렀다.
“공역을 이탈해야 한…….”
직후, 맥밀란은 무언가를 알아챘다. 그는 창백해진 얼굴로 뒤를 홱 돌아보았다.
비공함대가 비키면 이 마법을 직격으로 맞게 되는 것은, 바로…….
‘크로스로드……!’
파리대왕이 마법으로 노리는 것은 애초에 비공함대가 아니었다.
괴수전선의 성벽이었다.
찰나지간 넋을 놓고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맥밀란의 귓가에 날카로운 통신이 울렸다.
「몸으로 막아요! 어서-!」
“……!”
투학-!
맥밀란이 앞을 보자, 다급하게 배리어를 끌어올리며 앞으로 쏘아지는 한 대의 함선이 보였다.
하얀 털이 붙은 우스꽝스러운 생김새의 비공함.
아리안 왕국의 비공함, 아리안 베어였다.
지난 전투에서 함장이 부상을 입어 대신 탑승한 함장 대리- 윤 아리안이 고함을 질렀다.
「우리가 안 막으면 크로스로드는 끝장이에요! 다들 배리어 올리고, 몸으로 막아-!」
“큭……!”
배리어는 결코 무적이 아니다.
출력 한계까지의 대미지는 무사히 받아낼 수 있지만, 출력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녹아버린다.
그리고 한눈에 봐도 저 무시무시한 합동마법의 위력은 출력 한계를 까마득히 넘어선 것이었다.
“……전함, 배리어 전개! 아리안 베어의 뒤를 따라라!”
그렇다고 해서, 물러날 수는 없다.
일순 갈팡질팡하던 모든 함대는 아리안 베어를 선두로 재빨리 배리어를 끌어올리며 허공에 방진을 짰다.
“전함 마력로를 강제 폭주시키고, 출력 리미트 해제! 모든 마력을 배리어로 돌려! 그리고 모든 함 일렬 정렬로 배리어 공명을 시도한다!”
맥밀란이 빠르게 명령했고,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도 에이스 중의 에이스인 비공함 승무원들은 지시대로 이행했다.
정연하게 모여 선 비공함들이 일제히 출력 폭주된 배리어를 끌어올렸고, 한데 합쳐진 배리어는 마치 거대한 방패 같은 모양으로 허공을 막아섰다.
그리고, 그 위로…….
한때 인류의 것이었으나 이제는 파리의 것이 된 마법 폭격이 떨어졌다.
***
…….
일순 세상에서 소리가 사라졌다.
엄청난 충격파와 후폭풍이 일대를 휩쓸었다.
성벽 위에서 궁극기를 발동할 준비를 하던 에반젤린은 가까스로 성벽 끄트머리를 붙잡고 날아가는 것을 버텼다.
먹먹한 귀를 붙잡고 휘청거리던 에반젤린은 겨우 고개를 털어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고개를 든 에반젤린의 눈에 보인 것은,
“……!”
새카맣게 타버린 채 연기를 내뿜으며 힘없이 아래로 추락하는 비공함들.
그리고 그 뒤에서, 어둑해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자욱한 먹구름과 연기를 헤치고, 태연하게 가부좌를 틀고 합장을 한 채 다가오는…….
파리대왕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