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216)
216화. 역할
시간이 지나 어둠이 찾아온 12월 25일의 늦은 밤.
연두와 나는 나란히 침대에 누웠다.
울음을 그친 지 한참 지났는데도 퉁퉁 부어있는 연두의 눈.
그럴 만도 하지. 엄청 격하게 울었으니까.
“괜찮아, 연두야?”
“네, 괜차나여!”
연두는 생긋 웃으며 대답을 건넸다.
뭐가 괜찮냐고 물은 것도 아닌데, 찰떡같이 알아듣고 대답하는 모습.
눈이 붓기는 했지만 활기를 되찾은 거 같아 다행이었다.
스윽.
천장을 바라보니 자연스레 아까의 기억이 떠올랐다.
트리 앞에 앉아서 연두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
아니, 정확히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는 편이 맞겠구나.
‘물론.’
이전에도 연두와 대화를 나눈 적은 많았다.
매일이라고 해도 거짓말이 아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연두와 대화를 나누니까.
하지만 오늘의 대화는 느낌이 조금, 아니 많이 달랐다.
‘처음이었지.’
연두가 과거의 상처를 직접적으로 꺼내서 보여준 건 처음이었다.
사실 전부터 몇 번이고 듣고 싶었던 이야기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한테만큼은 뭐든지 숨기지 않고 말해주길 원했으니까.
‘막상 이야기를 들으니.’
드디어 말해줬다는 기쁨보다는 아픈 감정이 더 컸다.
직접적으로 얘기하는 만큼 연두의 상처 또한 직접적으로 와 닿았으니까.
말하는 내내 연두는 울음을 그치지 못했지.
“흐윽.. 그래서..”
어떤 얘기를 할 때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기도 했다.
그런 연두를 보는 내 심정은 정말이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억장이 무너진다.’라는 게 어떤 게 어떤 기분인지 몸소 체감이 됐다고 해야 할까.
허나 내 감정을 내색하지 않았다.
버텨냈다. 연두가 전부 터 놓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그럼에도 모든 얘기를 듣지는 못했다.
어느 시점에 연두가 고개를 파묻고 말을 멈췄으니까.
어쩌면 내가 들은 건 빙산의 일각, 극히 일부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더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충분했으니까.’
연두가 상처를 꺼내서 보여줬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당시로서는 나 역시 한계였다.
더 표정을 유지할 자신이 없었다고 해야겠다.
나는 그저 흐느끼는 연두를 품에 안은 채로 이야기했다.
“괜찮아, 연두야. 힘들면 더 얘기하지 않아도 돼. 그리고……”
또 한 마디를 덧붙였다.
“연두 잘못이 아니야.”
그 말에 다시 한번 울음을 터트렸던 걸로 기억한다.
아무튼 그렇게 아프면서도 의미 깊은 시간이 지나갔다.
어느새 잠에 들 시간이 되었고.
“히히.”
나는 피식 웃으며 물었다.
“그렇게 좋아?”
“네! 연두는 이게 두 번째로 마음에 드러요..!”
연두가 말하는 건 바로 일곱 번째 선물인 연두색 카메라였다.
마음에 드는지 아까부터 계속 만지작거리고 있다.
그나저나 두 번째? 의아해진 나는 물었다.
“카메라가 두 번째로 마음에 들면.. 첫 번째로 마음에 드는 선물은 따로 있는 거야, 연두야?”
연두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산타할아버지가 준 편지..!”
“아.”
그 편지를 보고 그렇게나 울었는데도.
가장 마음에 든 선물로 꼽는 모습에 뭔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와중 연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연두 비밀상자에 넣어써요..”
“비밀상자에?”
“네.”
문득 궁금해진 게 있었다.
“비밀상자에 뭐뭐 들어있어, 연두야?”
조금의 텀도 없이 대답이 들려왔다.
“아빠가 그린 연두 일러스트, 누렁이 그린 아빠랑 연두 커풀티,…, 산타할아버지가 준 편지요!”
순식간에 몇 개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이걸 하나도 안 빼먹고 얘기하는 게 신기하네.
‘그러고 보니.’
전부 나와 관련된 추억이 담긴 물건들이었다.
그나마 아닌 걸 꼽자면 마지막에 나온 ‘산타할아버지가 준 편지’인데.
사실 저것도 내가 쓴 거니 나와 관련된 거라 할 수 있고.
‘이걸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기분이 좋긴 한데 깊게 생각하면 조금 걱정도 된다.
너무 나랑 함께한 추억밖에 없는 건 아닐까 해서.
앞으로 만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겠지.
“아!”
그때 무언가 생각난 듯한 연두의 표정.
까먹고 안 말한 비밀상자 속 물건이 있는 걸까?
나를 보며 연두는 말을 이었다.
“주여니언니 일러스트도 이썼는데.. 저번에 줘서 업써져써요…”
“하하, 그랬어?”
“네. 아빠랑 연두랑 가치 그린 그림…”
상자를 벗어난 물건까지 빼놓지 않는 연두였다.
기특한 마음에 나는 손을 뻗어 연두의 머리칼을 쓸어내렸다.
연두는 쿡쿡 웃더니 갑자기 손가락을 하나씩 뻗었다.
“하나, 둘…, 아홉, 열…”
열까지 수를 세고는 혼자 감탄하며 입을 벌리는 연두.
나는 아리송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 하는 거야, 연두야?”
“선물…”
“응?”
“열 개나 대요! 연두가 아빠랑 산타할아버지한테 받은 선물.. 우아…”
그런가? 어디 보자. 꽃이랑 케이크까지 선물로 치고.
트리에 건 선물이 일곱 개니까 합하면 총 아홉 개인데?
참. 산타 모자까지 선물이라고 하면 딱 열 개가 되긴 하네.
“우와.. 진짜 열 개네? 연두 선물 짱 많이 받았는데?”
일부러 놀란 척 호응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왜인지 나를 바라보는 연두의 표정이 미묘했다.
“아빠…”
“응, 연두야.”
“갠차나요? 연두는 그러케 마니 받았는데……”
꽃을 줬을 때도 들은 말이었다.
그때도 이렇게 얘기하려 했는데, 지금은 더 확실히 대답할 수 있었다.
“괜찮아. 이미 받았거든.”
“.. 진짜여? 누구한테요…?”
“흠, 글쎄?”
‘연두 너한테’라는 말을 애써 삼켜냈다.
실제로 나는 이번 크리스마스에 두 가지 선물을 받았다.
행복에 찬 연두의 미소, 그리고 연두가 꺼내 보인 진심.
‘비교할 수 없어.’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값진 선물이었다.
***
어느새 몸을 웅크린 채로 잠에 빠져든 연두.
‘이렇게 자면 안 좋은데.’
곧게 펴고 자야 키도 크고 몸에 무리도 안 가는 법이었다.
우스운 건 정작 나는 바른 자세로 잘 못 잔다는 거지만.
왜인지 연두는 가만히 둘 수 없었다.
스윽.
“우웅…”
자세를 교정해주자 귀여운 잠꼬대를 흘리는 연두.
쭉 펴고 자는 걸 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너는 그렇게 안 자면서 웃긴다고? 그렇게 묻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를 해 주고 싶다.
‘부모가 되면 압니다.’
내가 생각할 때 어느 정도의 모순은 부모로서의 덕목이었다.
아이가 내 장점은 닮았으면 좋겠고, 단점은 안 닮았으면 하니까.
뭐, 거드럭대는 건 이쯤 하기로 하자.
‘부모가 된 지 얼마나 됐다고.’
아이를 오래 키운 부모님들이 보면 엄청 가소롭지 않을까.
그나저나 아까 연두에게 들은 이야기 때문인가.
싱숭생숭한 마음에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여러모로.’
이번 크리스마스는 절대 잊지 못할 거 같았다.
한참 뒤척이다가 나는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린 연두튜브 접속.
툭.
채널이 떠오르는 동시에 잊고 있던 사실이 떠올랐다.
‘.. 정산날이잖아?’
매달 25일은 유투브 정산날이었다.
즉, 오늘은 크리스마스인 동시에 정산날이었다는 뜻.
지금껏 한 번도 정산날을 잊어먹은 적이 없었는데.
크리스마스를 준비하고 연두와 보내느라 감쪽같이 까먹고 있었다.
‘신기하네.’
그런 나 자신이 신기했다. 뭐, 딱히 상관은 없었다.
늦게 본다고 달라지는 것도, 주어지는 불이익도 없으니까.
나는 곧바로 ‘크리에이터 스튜디오’에 들어갔다.
언제나 그렇듯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구독자 수였다.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한 수치였다.
구독자가 무려 150만에 육박하고 있었으니까.
저번 정산날에 120만 전후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 30만.’
한 달 만에 무려 30만 가량이 오른 셈이었다.
생각해 보면 한 달간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한 영상들이 많았다.
김장하러 간 시골에서의 영상이 엄청났지.
‘그중에서도 선동이의 비밀장소.’
그곳에서 별을 보는 영상의 조회수가 예상치 못하게 폭발했다.
뿐만 아니라 학부모 참관수업의 영상도 밀리지 않는 조회수를 기록했고.
그렇다고 나머지 영상이 크게 떨어지는 게 아니었다.
‘가장 조회수가 낮은 영상이 백만을 가볍게 넘겼으니까.’
유투브를 하면서 다른 여러 채널을 알게 됐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자연히 조회수도 눈에 들어왔고.
그 과정에서 나는 알 수 있었다.
‘연두튜브의 희소성.’
드문 수준이 아니라 그냥 없었다. 이렇게 단 하나의 영상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 채널은.
그만큼 연두를 향한 구독자들의 애정이 크다는 뜻이었다.
영상의 내용 이전에 그저 연두를 보기 위해 올 정도로.
스윽.
구독자 확인 이후 자연스레 손이 움직였다.
본론인 수익을 확인할 차례였다.
달칵.
[10월 25일 ~ 11월 24일]익월인지라 저번 달에 발생한 수익이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마우스 커서를 내렸다.
[추정 수익]$67,211
[추정 광고 수익]$67,211
이제는 정말 머릿속으로 계산이 정확히 되지 않았다.
암기력이 부족한 탓이 아니라 액수가 너무 커서.
나는 포털사이트로 가 계산기를 두드렸다.
툭. 툭.
$67,211 = 8,085만 4,833 원
떠억.
말 그대로 입이 떠억 벌어졌다.
역시나 구독자에 비례해서 증가한 수익.
조금 너프하게 잡으면 거의 1억에 육박하는 액수였다.
‘이쯤 되니.’
놀라움을 넘어서 겁이 날 정도였다.
뭔가 보고 있자니 머리가 핑핑 도는 기분이다.
나는 황급히 ‘크리에이터 스튜디오’에서 나갔다.
휙. 휙.
머리를 휙휙 저으니 그나마 실감이 갔다.
내가 본 액수가 현실이라는 게.
정말이지 몇 번을 봐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놀라고 나면 그다음 달에는 더 놀라운 수치가 눈앞에 펼쳐지니까.
‘없는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차라리 좀 적게 수익이 났으면 싶을 정도였다.
연두와 행복하게 사는 데는 이렇게 큰 금액은 필요하지 않고.
나란 녀석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액수니까.
‘생각해 보자.’
천천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듯했다.
어떻게 관리하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일지.
“후우.”
달칵.
정신을 차린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한 후 영상을 클릭했다.
크리스마스 전에 업로드한 눈밭에서 노는 영상이었다.
눈밭에서 뒹굴고 눈사람을 만드는 장면을 편집한.
그리고 이번 영상에는 헤어지기 전에 만난 나은이도 등장했다.
엄마 이가흔이 한 얘기가 있었으니까.
‘저는 오히려 좋죠. 주위에 보여줄 수도 있구요. 우리 나은이 연두튜브 탔다고, 흐흐.’
그 바람을 이루어주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뒷부분을 살짝 할애해서 넣기만 하면 됐으니까.
진짜 자랑하려나. 우리 나은이 연두튜브 탔다고.
‘별 상상을 다 하네.’
그렇게 나는 댓글창을 클릭했다.
역시나 웃음짓게 만드는 댓글들이 가득 달려 있었다.
-어이!! 기다리고 있었다고!!!
┕ㄹㅇ ㅋㅋ 원스타에 올라온 사진 보고 목 빠지게 기다렸다. 눈에서 노는 영상 언제 올라오나.
┕인정. 연두 원스타 연두튜브 예고편으로 활용중 ㅋㅋㅋ
┕나만 그런 게 아니었네 ㅎㅎ
┕흐읍! 흐읍! 얼마 만에 마시는 연두성분이냐.
-진짜 연두 순백의 요정 같다…
┕ㄹㅇ 갑자기 앞에 나타나서 눈의 요정이라고 해도 믿을 듯.
┕전부터 느낀 건데 연두는 진짜 뭘 해도 다르지 않냐. 뭐라 말로 표현은 못 하겠는데 그럼.
┕와, 쌉인정. 진짜 행동 하나하나가 그럼. 먹을 때도 놀 때도 초록님이랑 얘기할 때도.
┕생각이 깊어 보이면서도 동시에 진짜 애기같아요.
┕확실한 건.. 모든 순간이 귀엽다는 거. 평생 연두해!!!!
구독자들이 느낀 감정이 뭔지 알 거 같았다.
뭔가 다르게 느껴진다는 말의 의미를.
-마지막 뭐야 ㅋㅋ 연두보다 더 애기 등장이네. 연두 언니미 폭발 ㅎㅎ
┕진짜 뽀짝 삼총사야 ㅠㅠㅠ 내 심장 뿌셔!!
┕애기 옹알이랑 연두 기적의 대화 빵터지네 ㅋㅋㅋㅋ
┕나만 부러웠냐.. 연두가 아끼는 동생 포지션이라니…
┕ㄹㅇ 세상 다 가졌네 ㅋㅋㅋ
주접 댓글도 빼놓을 수는 없었다.
웃는 와중 눈에 들어오는 히읗이 가득한 댓글들.
-초록님.. 아시죠? ㅎㅎ
┕크리스마스 특집 영상 기대하고 있습니다 ㅎㅎ
┕설마 연두랑 단둘이 알콩달콩 보내시느라 촬영도 잊은 건 아니시겠지? 에이, 설마… ㅎㅎ
┕우리 초록님을 뭘로 보시고 그러세유! 연두만큼은 아니지만 초록님이 우리를 얼마나 아끼시는데유!! ㅎㅎㅎ
┕죄송합니다 ㅠㅠ 제가 실언을…
┕특집인 만큼 최소 일곱 편 기대합니다. 한 번에 올려주시면 더 좋고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
예상은 했지만 역시 많았다.
크리스마스 특집 영상을 기대하는 댓글들이.
조금 난처한 부분들도 보였다.
‘일곱 편은 무리야.’
아무리 생각해도 일곱 편은 도저히 무리였다.
한 번에 올리는 건 더더욱 무리이고.
그렇지만 다행히도 촬영을 잊은 건 아니었다.
‘찍는 걸 잊거나 일부러 찍지 않은 부분이 몇몇 있긴 하지만.’
그걸 고려하더라도 영상으로 만들기에는 충분한 분량이었다.
다만 촬영했음에도 올리지 못할 장면이 존재했다.
다름아닌 내가 편지를 읽어주는 장면이었다.
‘웬만한 건 숨김없이 구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지만.’
둘만 기억하고 공유하고 싶은 순간도 있는 법이었다.
편지를 읽어주는 순간도 그중 하나였다.
사실 처음에는 영상으로 올릴 생각으로 시작한 촬영이긴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연두는 처음으로 상처를 꺼내 내게 보여줬다.
즉, 마음을 연 건 오직 나뿐이라는 뜻이었다.
그마저도 완전히 열었다고 확신할 수는 없고.
‘그렇기에.’
구독자들이 아닌 누구라도 마찬가지였다.
그 순간을 공유하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도 안 됐다.
연두가 내게 보여준 믿음을 저버리는 거니까.
‘이해해 주겠지.’
연두를 아끼는 구독자들인 만큼 이해해 줄 터였다.
오직 둘만이 공유해야 하는 시간도 있다는 걸.
그렇다면 내 역할은 간단했다.
구독자들과도 공유할 수 있는 순간들을 가능한 한 가장 퀄리티 높은 영상으로 만들어 보답하는 일.
머릿속에 촬영한 영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떻게 영상을 만드는 게 좋을까.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나는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