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376)
376화. 프라이빗 룸
우리를 위해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준비하신 수찬쌤.
내 손에는 열쇠 하나가 들려있었다.
수찬쌤의 말이 이어졌다.
“그럼 좋은 시간 보내라.”
“.. 감사합니다.”
선물을 받았는데 감사 인사를 빼놓을 수는 없는 노릇.
더군다나 거절도 하기 힘든 선물이었다.
만약 물건 같은 걸 선물로 줬다면 모르겠지만, 이건 그런 류의 선물이 아니었으니까.
선생님은 멋쩍은 듯 턱을 만지며 얘기했다.
“나도.. 고맙다.”
“네? 뭐가..”
“축가! 축가 고맙다고, 이 녀석아.”
“아.”
문득 아까의 장면이 떠올랐다.
노래에 맞춰 연기하며 끝내 신부와 입맞춤하던 선생님의 모습이.
괜히 지금 언성을 높이는 것도 그 때문이겠지.
“흐흐.”
원래라면 장난을 쳤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신부도 거의 바로 옆에 서 있고, 시간이 그리 여유롭지 않으니까.
빨리 발리에 가셔야 하지 않는가.
결국 이 정도로 타협했다.
“확실히 그건 고마울 만하긴 하죠.”
“뭐? 무슨 뜻이야.”
“하하, 아니에요.”
“크흠. 어쨌든.. 연두랑 애기들한테도 고맙다는 말 한 번 더 전해주고. 아까 말했지만 재밌는 시간 보내라.”
“네. 선생님도 즐거운 신혼여행 되세요.”
“그래.”
신부와도 인사를 주고받고 나는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자연히 쏠린 관심.
친구 녀석들이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수찬쌤이 뭐라셔?”
“주원이만 쏙 불러서 얘기하시고. 이거 완전 특별대우 아니야? 와나. 서운해지려 그러네.”
“킥킥, 억텐 보소.”
“니가 서운해지면 어쩔 건데.”
바로 설명해줘야 할 거 같았다.
우선 입을 여는 대신에 나는 열쇠를 테이블 위에 내려놨다.
짤랑.
“이게 뭐야?”
“웬 열쇠?”
“나 열쇠 진짜 오랜만에 보는 거 같아. 아날로그 감성 좋네.”
“잠깐만. 열쇠?”
뭐지. 설마 알아챈 건가.
이것만 보고 알아챌 수 있을 리가 없는데.
무언가 떠오른 듯한 표정을 지으며 준수가 입을 열었다.
“연두야.”
뜬금없이 그 방향은 연두를 향했다.
“네에.”
“나는.. 그게 참 궁금하다?”
“으응? 머가요..?”
“우리 연두의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는 어디에 있을지.”
내 이럴 줄 알았다. 알아채고 얘기했을 리가 없지.
그새를 못 참고 또 무근본 주접을 떠는 맛이 간 감자삼촌이었다.
자연히 디스가 쏟아졌다.
“왜 주원이 할머니가 널 보고 그렇게 불렀는지 알겠다.”
“뭐라고 하셨는데?”
여자애들이 궁금한 듯 물었다.
모처럼 쏠린 관심에 성현이는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싹 난 감자.”
“정확히는 싹 난 감자같이 생긴 놈이라고 하셨지.”
“방금 드립은 진짜 싹이 나도 한참 나긴 했다.”
“인정. 싹이 나다 못해 썩었다.”
바르셀로나 급 티키타카를 보여주며 준수를 신랄하게 까는 성현이와 윤우.
간만에 준수로 옮겨 간 타깃이었다.
우스운 건 전혀 개의치 않고 준수는 주접 중이라는 거다.
“이상하네. 주머니에도 없고, 테이블 아래에도 없고, 어디에도……”
“크흡.”
뭐든 꿋꿋이 밀고 나가야 한다고.
확실히 녀석들 말대로 드립 자체는 별로였는데, 뻔뻔하게 밀고 나가니 결국 웃긴다.
이것도 재주다, 이 녀석.
아무튼간에 이제 선물의 정체를 오픈할 차례였다.
“이 열쇠는……”
나는 차근히 설명을 시작했다.
설명의 내용은 아까 수찬쌤이 내게 한 얘기 그대로였다.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셨지.
“너희가 오랜만에 만났잖아.”
“네.”
“보니까 어색하지도 않은 거 같고 얘기도 잘 통하는 거 같고.”
그런 얘기들을 하신 뒤에 수찬쌤은 본론을 꺼냈다.
“결혼식 바로 옆 건물에 프라이빗 룸이 있어.”
“프라이빗 룸이요?”
“응. 보통 하객들 뒤풀이 장소나 파티 장소로 활용되는 곳인데 가 보니까 넓고 쾌적하더라고.”
이쯤 얘기했을 때 어느 정도 감이 왔다.
선생님이 하시려는 말이 뭘지.
얘기를 끝까지 들은 결과,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내 결혼식 때문이라고는 해도 동창끼리 오랜만에 만난 건데. 거기에서 시간 되는 애들끼리 회포나 풀라고. 원래라면 나도 갔겠지만 신혼여행에 가야 하니까.”
그렇게 건넨 게 열쇠였다.
한 마디로 수찬쌤의 선물은 뒤풀이를 위한 프라이빗 룸 열쇠라는 뜻이다.
들은 말 그대로 친구들에게 전했다.
뜻밖의 선물에 하나같이 놀란 표정이 떠오른다.
“아까 한 말 취소. 주원이한테만 주는 특별 선물이 아니었네.”
“이 정도로 우리를 생각하신다고?”
“대여비 꽤 비쌀 텐데.”
“프라이빗 룸이면 최소 결혼식 전에 준비하신 거 아니야? 어떤지 가 보기까지 하시고.”
생각해 보니 결혼식 전에 수찬쌤한테 그런 말을 듣긴 했다.
준비해야 할 게 있다고.
확신은 못 하지만 그게 이거였다면 감동이긴 하네.
조나예가 말했다.
“이 정도면 우리, 동창회 하기 싫어도 해야겠는데?”
“어? 그 말은 넌 하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한다는 거?”
“아니, 바보야! 말이 그렇다는 거지.”
티격태격하는 둘을 두고 준수가 나섰다.
“그럼 여기서 먼저 거수하자. 이따가 나는 일정이 있어서 뒤풀이 겸 동창회에 참석할 수 없다 하는 사람 손.”
눈치 보지 말고 거수해도 된다는 말을 덧붙였다.
당연한 게, 사전에 얘기가 없던 일정이다.
불참한다고 해서 비난하거나 할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오..”
생각과는 달리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준수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툭 말을 내뱉었다.
“오케이. 다 한가한 거 확인. 거의 한가인 급.”
“.. 너 오늘 약 먹었냐?”
확실히 오늘 좀 맛이 간 느낌이긴 하다.
이런 드립을 칠 녀석이 아닌데.
진짜 싹이라도 났나.
‘그건 그렇고.’
따로 물어봐야 하는 대상이 있었다.
나는 식사에 집중하고 있는 우영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영아.”
물을 마시고 우영이가 대답한다.
“네.”
“넌 어쩌고 싶어?”
같이 가면 좋지만 불편해할 수도 있었다.
곧이어 들려오는 목소리.
“그냥 버스……”
허나 우영이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당연히 같이 가야지!”
“…?”
“같은 학교에 같은 수찬쌤 제자잖아. 그럼 우리 동창이나 마찬가지지. 그리고 여기 차편도 되게 안 좋아.”
확실히 내가 태워주는 편이 좋긴 했다.
그 사실을 말하자 우영이는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뭐, 형이 그게 편하면요.”
“하하, 그래.”
다음 대상은 시은이와 레나였다.
“데려다주고 다시 오려면 주원이 너 되게 힘들 거 같은데. 같이 가면 안 되나?”
“음..”
확실히 그렇긴 했다.
허나 내가 결정할 문제는 아니다.
그때였다.
“저는 갈래요!”
손을 들고 말한 건 다름 아닌 시은이였다.
분명한 의사표현과 함께 시은이는 말을 이었다.
“저도 가고 싶어요, 뒤풀이!”
“그, 그래?”
요즘 들어 적극적인 시은이의 모습을 꽤나 자주 보는 거 같다.
원래는 보기 드문 장면이었는데.
뒤따라 레나도 자그맣게 목소리를 냈다.
“나도.. 가고 싶다…”
하기야 혼자 빠지고 싶지는 않을 터였다.
연시레는 하나니까.
해결책을 강구해 봐야 할 듯했다.
***
다시 식사 모드에 돌입한 우리.
나와 연두의 두 번째 접시는 아까는 먹지 않은 해산물과 초밥 등으로 구성됐다.
맛만 본 대게 다리도 잔뜩 가져왔다.
“잠깐만, 연두야.”
“네에.”
초밥에서 와사비를 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걸 본 연두가 말한다.
“아빠.”
“응.”
“연두색 왜 빼요?”
“이건 샐러드 위에 올라가는 연두색 소스랑은 다르거든.”
“그럼요..?”
“매운 소스야. 혀가 아야한 소스.”
“..!”
화들짝 놀라는 연두.
연두색 소스가 매울 거라고는 상상도 못한 모양이다.
그런데 초면은 아닐 텐데.
역시나 연두가 무언가 떠오른 듯 입을 열었다.
“아!”
“응?”
“회 머글 때 머거써요! 연두색..”
“하하, 그렇지?”
“그.. 그.. 코찡! 코찡 소스..!”
“푸흣.”
코찡 소스라니.
당시에 와사비 푼 간장에 회를 실수로 찍어 먹고 데굴데굴 굴렀던 연두였다.
코찡이라는 단어와 함께 설명해줬는데 기억하고 있네.
“연두는 시러요.. 연두색 소스..”
“괜찮아. 아빠가 다 빼 줄 테니까. 코찡 소스.”
“네..”
아직 연두에게 사랑받기에는 다소 이른 코찡 소스였다.
***
세 번째 접시는 튀김류와 냉모밀, 네 번째 접시는 과일과 디저트류.
“후아..”
연두는 한계에 다다랐다.
처음에 말한 열 접시는 무리였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선방한 셈이다.
이게 전부 배를 준비시킨 샐러드 덕이 아닐까.
‘그 증거로.’
시은이는 두 접시밖에 못 먹었거든.
다른 친구 녀석들도 대충 식사를 끝마친 거 같았다.
그러나 아직 끝난 건 아니다.
“얘들아. 잠깐 와 볼래?”
“네에.”
“네.”
아이들을 데리고 내가 향한 곳은 와플 칸이었다.
뷔페의 마무리를 장식하는 와플.
신기하게도 배가 꽉 찬 와중에도 항상 와플은 들어가곤 했다.
인당 한 개는 무리인 감이 있으니,
“두 개 만들어서 반씩 먹자. 아저씨가 만들어 줄게.”
주르륵.
반죽을 와플 틀에 붓고 뚜껑을 닫았다.
시간은 90초.
90초가 지나는 동시에 뚜껑을 열어 집게로 와플을 꺼낸다.
툭.
좋아. 눌어붙지 않고 완벽한 모양새다.
입을 벌리고 바라보는 연시레.
나는 웃으며 말했다.
“자, 공주님들. 원하는 맛의 아이스크림 있나요?”
“딸기요.”
“바니라요..”
딸기와 바니라.
바니라가 아니라 바닐라긴 하지만.
마침 잘 어우러지는 조합이었다.
툭. 툭.
적당량을 덜어 와플 면에 반반씩 펴 바른다.
그리고 반을 접은 뒤.
찌익.
자비 없이 찢어버린다.
왜냐고? 그래야 이렇게 완벽하게 갈라지거든.
“자, 시은아. 레나야.”
“.. 고맙습니다.”
“우와.”
아암.
둘은 질세라 와플을 한 입 베어 문다.
커지는 눈동자.
“맛있어…”
“Köstlich!”
가만 보면 레나는 진심인 경우에 독일어가 나오는 거 같다.
심지어 이번에는 덧붙인다.
“마싰다는 뜨시에요..”
“흐흡, 그래.”
스스로 한 말까지 동시통역을 진행할 줄이야.
그런 와중 옆에서 들리는 소리.
“후릅.”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배불러서 몸을 못 가누던 게 불과 몇 분 전인데 금세 또 입맛을 다시는 연두를 보고.
나는 씩 웃으며 연두를 향해 말했다.
“걱정하지 마.”
“.. 네?”
“연두는 아빠만의 특제 레시피로 특별한 와플을 만들어 줄 테니까.”
설렘이 가득 차오르는 연두의 표정.
물론 나는 자신이 있었다.
기대에 완벽하게 부응할 자신이.
***
쿠키와 아이스크림을 활용해 만든 이주원표 특제 와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감동에 가까운 연두의 반응을 끌어냈으니까.
“마시써…”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에 뿌듯함이 일었다.
이래서 내가 요리를 한다니까.
와플 만드는 걸 요리라고 하기에는 스스로도 낯간지럽긴 하지만.
이렇게 끝난 뷔페에서의 식사.
식사가 끝나자마자 나는 핸드폰을 꺼냈다.
‘물어봐야지.’
축가를 위해 결혼식에 데려온 시은이와 레나였다.
아무리 아이들이 가고 싶어 한다고 해도.
부모님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뒤풀이에 데려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여보세요.”
차례로 세연씨와 이은경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생각 이상으로 흔쾌한 대답이 이어졌다.
“괜찮아요. 그 대신..”
“네?”
“축가 영상 찍은 거 보내주세요, 흐흥.”
“하하, 그거야 쉽죠. 아마 보면 깜짝 놀랄걸요?”
이은경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이를 잠깐이라도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긴다는 건.
‘뿌듯하네.’
학부모로서 신용받고 있다는 사실이 괜히 뿌듯하게 다가왔다.
뭐, 반대도 마찬가지긴 하지.
나 역시 세연씨에게는 마음 놓고 연두를 맡길 수 있었다.
레나네 집에도 몇 번이고 혼자 보내기도 했고.
‘다행이야.’
좋은 사람들과 이렇게 바람직한 유대관계를 쌓을 수 있게 돼서 다행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것도 다 연시레의 케미 덕일지도 모른다.
아이들 간의 케미가 부모 간의 신뢰로 이어진 케이스라고 할까.
‘부응해야지.’
당연히 그 믿음에 부응할 생각이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 것.
첫째는 아이들의 안전, 둘째도 안전이다.
‘좋아.’
아이들을 눈에 담은 뒤 말했다.
“그럼 갈까?”
“오케이.”
“기대된다. 결혼식 뒤풀이는 해 봤어도 프라이빗 룸 같은 데서는 처음 해 보는데.”
“나도. 어떨지 감도 안 와.”
나는 수찬쌤으로부터 들은 게 조금 있었다.
미리 말하면 재미없겠지.
아이들의 손을 잡고선 일행과 함께 결혼식을 나섰다.
이동은 거의 불필요했다.
수찬쌤 말대로 프라이빗 룸은 결혼식장 바로 옆 건물에 있었으니까.
곧바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11층.
라운지는 11층, 정확히는 1101호였다.
엘리베이터가 넓어서 이번에는 한 번에 타도 서로 밀착될 일은 없었다.
자연히 아이들을 바라봤다.
‘이번에는 붙어있네.’
아까와 달리 연두랑 레나와 꼭 붙어있는 시은이였다.
역시 아까는 복잡하다 보니 의도치 않게 거기 서게 된 게 틀림없었다.
내가 더 잘 챙겨줬어야 하는데.
-11층입니다.
스륵.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1101호는 바로 눈앞에 보였다.
아날로그식 감성으로 열쇠를 넣고 돌려야만 열 수 있는 문.
스윽.
주머니에 손을 넣어 열쇠를 꺼냈다.
“주원! 빨리 열어!”
“기대된당..”
“열쇠 쓰는 거 너무 오랜만이지 않냐? 뭔가 금고 여는 기분인데.”
“나는 집에 개인 금고 있는데.”
“진짜? 얼마 들었는데?”
“만삼천 원.”
“…”
들어가기도 전부터 시끌벅적한 녀석들을 뒤로하고 나는 앞으로 나섰다.
열쇠를 문고리에 끼웠다.
쾌감이 들 정도로 딱 알맞게 들어가는 열쇠.
철컥.
시계 방향으로 돌리니 잠금이 풀리는 듯한 개봉음이 들린다.
열렸다는 건 바로 알 수 있었다.
열쇠를 빼고 손잡이를 잡아 돌렸다.
끼익.
그에 따라 열리는 문.
활짝 여니 그 안으로 프라이빗 라운지 내부가 환히 들어왔다.
감상은 한 마디로 압축이 가능할 거 같았다.
“오우 쉣!!
어디선가 터져 나온 감탄사.
그 말대로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공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