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78)
78화. 연두가 이모?
선우영을 만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 나는 연두를 데리고 피자가게로 향했다.
땅콩이라 불려서 울적해진 연두를 달래주기 위해서였다.
서러운 마음을 달래는 건 맛있는 음식이 최고니까.
피자는 최근 들어 연두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였다.
‘처음에 같이 먹은 이후로.’
먹고 싶은 거 있냐는 질문을 연두에게 던지면 피자는 대답의 매우 큰 비중을 차지했다.
건강 때문에 매일같이 먹일 수는 없었지만.
끼이익.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어머! 우리 예쁜 연두 왔네?”
요즘 자주 와서인지, 피자가게 아주머니와 부쩍 친해진 상태였다.
워낙 아주머니가 연두를 예뻐하기도 했고.
연두도 배꼽에 손을 대고 아주머니를 향해 꾸벅 인사했다.
“안녕하세여..!”
“호호, 어쩜 인사도 이렇게 예쁘게 할까.”
아빠로서 보기 흐뭇한 장면이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테이블에 연두와 마주 보고 앉았다.
“오늘은 뭐 먹을 차례지, 연두야?”
“잠깐만여.. 프, 프, 포…”
연두는 메뉴판을 바라보며 끙끙거렸다.
역시나 아직은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거센소리 투성이인 포테이토피자를 발음하는 건.
‘전부 다 먹어보기로 했지.’
피자가게의 메뉴를 차례대로 전부 먹어보기로 약속했다.
단 하나, 매운 게 들어간 메뉴들을 제외하고는.
그동안 연두와 함께 꽤 많은 종류의 피자를 먹었다.
‘오늘은 포테이토피자를 먹을 차례고.’
연두에게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피자이기도 했다.
지금껏 연두가 가장 맛있게 먹은 피자는 다름 아닌 콤비네이션피자.
초딩 때는 나도 제일 좋아했던 메뉴였다.
‘언젠가부터는 쳐다도 안 봤지만.’
다른 맛있는 피자가 많아서인지, 입맛이 바뀐 건지.
언젠가부터는 눈길이 가지 않았다.
그렇게 추억의 콤비네이션피자는 머릿속에서 잊혀 갔다.
다시 먹게 된 건 순전히 연두의 덕이었다.
피자에 입문할 때 가장 무난하고 적합한 메뉴라고 생각했으니까.
예상대로 연두는 무척이나 맛있게 먹었다.
입에서 ‘리얼 꿀마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안타깝게도 내 입맛에는 아니었다. 오랜만에 먹은 콤비네이션피자는 맛없었다.
심지어 치즈 외에 토핑이 없는 치즈피자가 내 입맛에는 더 맞았다.
허나 다른 의미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행복한 표정으로 피자를 먹는 연두의 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
‘오늘은 넘어섰으면 좋겠는데.’
아직까지 처음 먹은 콤비네이션피자를 이긴 녀석은 없었다.
개인적인 입맛을 고려할 때 오늘은 기대를 걸어볼 만했다.
“포테이토피자야, 연두야.”
“포..테이트요..?”
“포테이토. 감자가 들어간 피자.”
“아! 구럼 감자피자에요..?”
“하하, 그렇지.”
외래어도 안 쓰고 좋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감자피자 하나 부탁드릴게요.”
***
얼마 후 기다리던 포테이토피자, 아니 감자피자가 나왔다.
조각마다 올려져 있는 도톰한 감자.
그 위에 토핑된 하얀 갈릭소스가 입맛을 자극했다.
‘.. 응?’
그런데 자세히 보니 평소의 피자와 느낌이 달랐다.
도우가 더 두꺼운 거 같기도 하고, 뭔가 전체적으로 더 풍성해 보이기도 하고.
내가 포테이토피자를 좋아해서 그렇게 보이는 건가?
이게 말로만 듣던 확증편향이라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주머니가 입을 열었다.
“치즈크러스트 추가했어요. 그럼 훨씬 맛있거든요. 참, 지금 손님 없어서 드리는 서비스니까 비밀 지켜줘야 해요!”
그렇게 말하며 아주머니는 우리를 향해 눈을 찡긋했다.
깜짝 놀란 나는 대답했다.
“괜찮은데.. 아, 치즈크러스트 추가가 얼마인가요? 지금 계산……”
“호호, 아니에요. 예쁜 따님이랑 맛있게 드세요!”
뭐라 대답할 틈도 없이 아주머니는 안으로 들어가셨다.
세상에나. 치즈가루 하나를 서비스로 받은 적은 있어도 치즈크러스트 추가를 서비스로 받아보다니.
연두가 없다면 평생 겪어보지 못할 엄청난 경험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미 연두의 시선은 피자에 고정된 상태였다.
슥.
나는 피식 웃으며 피자 한 조각을 연두의 접시에 올려줬다.
연두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 아빠. 머거도 대여?”
“응. 대신 뜨거우니까 호호 불어서 먹어야 한다?”
“네에!”
자연스레 나는 카메라를 꺼내 들어 연두의 모습을 담기 시작했다.
연두는 접시 위의 피자를 한참 동안 후후 불었다.
그러다 조심스레 크게 앙 베어 물었다.
“으응..?”
피자를 베어 문 연두의 입에서 의문사가 튀어나왔다.
그야, 평소와는 다른 상황이 연출됐으니까.
쭈우우욱.
치즈크러스트를 추가한 피자는 툭 끊어지지 않고 쭉 늘어났다.
처음 보는 피자의 모습에 당황한 표정의 연두.
늘어난 치즈를 어떡해야 할지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가까스로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하하, 다 먹어버리면 돼, 연두야.”
그제야 연두는 늘어난 치즈를 입안으로 빨아들였다.
조그마한 입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오물. 오물.
오물거릴수록 연두의 볼이 선홍색으로 물들었다.
맛이 없다면 나올 수 없는 표정이었다. 이쯤이면 꼭 해야 할 질문이 있었다.
나는 카메라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물었다.
“어때, 연두야?”
“모가요..?”
“콤비네이션피자랑 감자피자. 뭐가 더 맛있는 거 같아?”
이게 뭐라고 어떤 답이 나올지 조마조마했다.
“.. 우음.. 피자요오.”
삼키고 물어볼 걸 그랬나.
아직 입안에 음식이 있어 대답이 정확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물었다.
“뭐라고 했어, 연두야?”
“.. 이 피자가 마시써요! 구리고 이만쿰 느러나요!”
연두가 팔을 좌우로 쭉 뻗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치즈크러스트의 신축성이 마음에 든 모양이다.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으면 계속 치즈크러스트로 시켜줬을 텐데.
별생각 없이 항상 기본 메뉴만 먹고 있었다.
‘어쨌든.’
조금 반칙이 있긴 했지만 드디어 콤비네이션피자를 무찔렀다.
가게 아주머니의 서비스에 힘입어.
이후에는 즐거운 식사가 이어졌다.
어느 정도 배가 찬 기분이 들 즈음, 나는 넌지시 입을 열었다.
“오늘은 미안해, 연두야.”
“네에..?”
“아빠가 계속 우영이 오빠랑만 얘기했잖아. 많이 심심했지?”
내 물음에 연두를 고개를 좌우로 휙휙 저었다.
그리고는 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엄청 행보캐 보여써요…”
“응?”
“아빠가 웃는 거 계속 바써요. 그래서 하나도 안 심심해써요, 헤헤..”
순간적으로 뭉클한 기분이 올라왔다.
가만히 앉아있었던 게 아니구나. 연두는 계속 내 표정을 보고 있었던 거구나.
그 별거 아닌 사실에 심장이 무언가로 가득 차는 느낌이었다.
나를 이 정도로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그리고 그게 연두라는 게.
“.. 하하, 그랬구나. 그럼 연두는 우영이 오빠는 어때?”
더 얘기하면 또 괜히 혼자 벅차오를 거 같은 기분이다.
나는 자연스레 이야기의 화제를 전환했다.
배시시 웃던 연두의 표정이 금세 바뀌었다.
“.. 자꾸 연두 놀려요! 땅콩 아닌데 땅콩이라구..”
“크크, 그럼 연두는 우영이 오빠 싫어?”
“안 시러요..”
“왜?”
“아빠가 우영이 오빠 조아하니까.. 아빠가 조아하는 사라믄 연두도 안 시러요.”
예상치 못한 대답에 어안이 벙벙했다.
내가 그 녀석을 좋아한다고? 연두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던 건가?
뭐, 선우영이 싫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다. 첫인상이 밉상이었던 건 사실이지만.
‘.. 그렇다고 엄청 좋은 것도 아니긴 한데.’
뭐라 해명하기는 애매했다.
싫어한다고 할 수도 없고, 좋지도 않고 싫지도 않다고 하는 건 그거대로 이상하고.
그냥 이대로 넘어가는 수밖에 없을 듯했다.
그러던 와중 연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또 구림도 잘 그리니까.. 아빠가 더 잘 구리지만…”
“하하, 왜 아빠가 더 잘 그린다고 생각해?”
연두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왜 구런지 잘 모르게써요.. 그냥.. 연두는 아빠 그리미 더 조아요.”
오히려 더 와 닿는 대답이라 입꼬리가 올라갔다.
사실상 연두에게 그림을 판단할 만한 기준이 있을 리 없으니까.
나는 빙긋 웃으며 연두를 향해 말했다.
“그렇구나. 근데 그거 알아, 연두야?”
“…?”
“아빠도 연두가 좋아.”
가끔은 이런 것도 즐거운 법이었다.
앞뒤 맥락없는 딸을 향한 직접적인 애정표현 말이다.
곧바로 연두의 수줍은 대답이 들려왔다.
“연두도요. 하눌만큼 땅만쿰 조아해요, 아빠..!”
또 내가 더 좋아한다는 말로 장난을 하려는 순간.
테이블 위에 놓아둔 카메라가 눈에 들어왔다.
연두랑 이야기하느라 깜빡 잊고 있었네, 이거.
‘놓아두길 잘했어.’
안 끄고 테이블 위에 놓아두길 잘했다.
그야, 방금의 연두는 엄청나게 귀여웠으니까.
***
끼익.
연두와 단둘이 피자 한 판을 끝장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지이잉.
현관문을 열기가 무섭게 걸려오는 전화.
발신인을 확인하니 다름 아닌 외할머니 민홍임이었다.
-민홍임
핸드폰 화면에 떠오른 발신인을 확인하니 괜히 죄책감이 들었다.
외할머니도 아니고 민홍임이라고 저장해 뒀다니.
이 습관도 슬슬 고치는 게 좋을 듯하다. 누구든 이름으로 저장하는 습관 말이다.
나는 자연스레 전화를 받았다.
“네, 할머니.”
“내 팔자야. 손주라는 놈이 할미가 전화하기 전까지는 전화 한 통을 안 하는구먼.”
시작부터 푸념을 늘어놓으시는 할머니였다.
그건 그렇고 내 입장에서는 상당히 억울한 발언이었다.
‘만나서 식사한 지도 얼마 안 됐고.’
그전에는 꼬박꼬박 연락도 드렸으니 말이다.
뭐,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를 수 있으니 넘어가기로 하자.
또 실랑이를 해 봐야 내가 질 게 뻔하니까. 할머니한테 이기고 싶은 마음도 없고.
“하하, 어쩐 일이세요?”
“.. 쥐방울 지금 옆에 있냐?”
“연두요?”
“그래.”
“네, 있어요. 바꿔드릴까요?”
할머니의 무언은 긍정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나는 자연스레 연두에게 핸드폰을 넘겼다.
“연두야. 할머니 전화 받아봐.”
“할모니요..?”
“응.”
연두는 신이 난 표정으로 핸드폰을 건네받았다.
“할모니..!”
“…”
스피커폰으로 해 놓지 않아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잠시 후, 연두가 발끈한 표정으로 핸드폰에 대고 말했다.
“여, 연두한테 쥐방울이라고 부루지 마세요!”
“푸흡.”
이 레퍼토리는 전화에서도 이어지는구나.
다행히 이어지는 말을 들으니 정상적인 대화를 주고받는 거 같았다.
그 틈을 타 나는 작은 목소리로 연두를 향해 말했다.
“연두야. 아빠 잠깐 세수하고 올 테니까 할머니랑 통화하고 있어.”
“네에!”
조금 전부터 갑자기 얼굴이 따끔거리는 기분이었다.
이럴 때는 세수를 하는 게 정답이었다.
콸콸!
곧바로 화장실로 가서 물을 틀고 따뜻한 물로 얼굴을 헹궜다.
얼마간 세수하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았다.
다행히 따끔함이 한결 가라앉았다.
툭. 툭.
손바닥으로 얼굴을 살짝 두드리고는 화장실을 나섰다.
연두를 보니 아직도 통화 중인 거 같았다.
그런데 연두가 핸드폰을 든 채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왜 그래, 연두야?”
“아빠아..”
“응.”
이윽고 연두가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빠가 연두한테 이모라고 해야 대여..? 연두는 아빠 딸인데…”
황당한 물음에 잠깐 동안 말문이 막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아오, 진짜.’
당분간 외할머니와 연두의 통화는 막는 게 좋겠다.
의외로 장난꾸러기이셨다. 우리 외할머니, 민홍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