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132
132
죗값 (2)
* * *
세르넬이 사라진 것은 다음 날 해가 뜬지 좀 지나서야 밝혀졌다.
공주의 성질을 잘 알고 있던 하녀들은 그녀의 허락이 있기 전까지 방문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흐르자 불안해진 하녀들이 문을 연 것이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그 사실은 곧바로 알베르토에게 전해졌다.
“한밤중에 공주가 사라졌다니. 그것도 왕궁에서!”
프로드 왕국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라 자부할 수 있는 자신의 성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랬기에 그는 도저히 이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폐하, 죽여 주시옵소서.”
그의 앞에 납작 엎드려 있는 것은 하녀장이었다.
다른 하녀들에게서 공주가 사라진 것을 들었을 때, 그녀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자녀들에 대해서는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알베르토였다.
그런데 자신의 딸이 사라졌다니, 분명 그냥 넘어갈 상황은 아니었다.
“혹시 공주가 왕성 어딘가에 있는 것은 아닌가? 마음이 상하면 곧잘 가던 곳이 있지 않았는가.”
알베르토의 눈은 일말의 희망을 바라고 있었다.
“왕궁의 모든 곳을 돌아다녔지만, 공주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죽여 주시옵소서.”
그의 표정은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졌다.
“왕실 근위대부터 궁정 마법사들까지. 그들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책임자를 모두 불러오라.”
그의 소집령에 따라 왕실 근위 단장 칼부터 대원수 아카드, 그리고 마탑주 루이스까지 그들 모두가 소환되었다.
이미 소식을 들은 그들이었기에 서둘러 대전으로 모일 수 있었다.
“지난밤 중에 공주가 사라졌다. 무예나 마법을 배운 적이 없는 공주가 제 발로 성을 나가지는 않았겠지. 그렇다면 외부인의 소행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그들은 알베르토의 말을 곧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시간대 근무자들을 불러 조사해 보았으나, 아무것도 나온 것이 없었습니다.”
근위단장 칼이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그럼 누가 공주를 납치했단 말인가?”
“근위대는 성벽 위까지 삼엄하게 경계를 펼쳤습니다. 마법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면 그 누구라도 경계를 뚫지 못했을 것입니다.”
칼을 그렇게 말하며 루이스의 눈치를 슬쩍 보았다.
자신의 말을 해석하면 마법 결계를 담당하는 루이스의 잘못이라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마법 결계에도 특이 사항은 감지되지 않았습니다.”
루이스의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마법이 아니고서는 이곳을 뚫을 수가 없었다.
‘나보다 높은 수준의 마법사가 있다?’
순간 떠오른 것은 하메론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이내 그 모습은 사라졌다. 아무리 그가 신의 재능이라 불린들 자신보다 낮은 수준이었다.
“근위대도 모른다. 마법도 아니다. 그렇다면 공주가 하늘로 솟거나 땅으로 꺼지기라도 했단 말인가? 아니면 왕궁 안에 귀신이라도 있나 보군.”
알베르토의 불편한 심기가 그대로 드러났다.
“이번에는 공주였지만, 다음번에는 그 귀신이 나의 목숨을 노릴 수도 있겠군.”
“이번 일이 마무리되기까지 제가 폐하의 곁을 지키겠나이다.”
“아카드 경의 말은 고맙다. 하지만 공주의 행방이 우선이다. 지금부터 왕실을 출입할 수 있는 모든 이들을 조사하라. 그 누구라도 예외는 없을 것이다. 공주를 찾아내지 못하면 경들도 무사하지는 못할 것으로 알라.”
아카드조차도 그의 노기를 억누르지 못했다.
아카드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지금의 그를 막지는 못할 것이다.
* * *
“이대로 괜찮겠습니까?”
“그래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 자신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공주님의 뜻이 그렇다면 저도 더는 말리지 않겠습니다.”
“이제 나를 공주님이라고 부르지 말아 주세요.”
세르넬의 표정은 침울해 보이면서도 어딘가 편안해 보였다.
“그대에게는 다시 한 번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어요.”
그녀가 엘런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지금까지 입고 있던 화려한 왕실의 옷이 아니라 평민들이나 입는 옷을 입고 있었다.
엘런은 힘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녀의 죗값인 만큼 부당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대로 영영 떠나는 것이냐?”
가느다란 목소리이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힘.
그것은 로미우의 것이었다.
그는 엘런보다 한 발자국 떨어진 곳에 서서 그녀를 보고 있었다.
“저는 이제 왕가의 식구가 아닙니다. 오라버니도 저를 잊어 주세요.”
“어쩌다가 이렇게…….”
“다 저의 불찰이에요. 왕위에 눈이 멀어 저질러서는 안 될 짓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로미우는 그동안 그렇게 철천지원수같이 지냈던 그녀와의 일들을 떠올렸다.
순간순간 감정에 휘둘려 자신의 동생을 앞서려고 했던 행동들이 후회되었다.
“지금까지 너를 진짜 동생으로 대해 주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오라비로서 면목이 없다.”
“괜한 그런 말씀으로 저를 더 구석으로 몰지 마세요. 분하지만,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눈이 엘런을 향했다.
엘런은 덤덤하면서도 작은 안타까움이 묻어나오는 얼굴을 한 채,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세르넬은 얼른 고개를 옆으로 돌려 버렸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내가 왕이 될 수 있었을까요?’
끊임없이 들었던 생각.
왜 저자는 자신의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하지만 이제는 모두 쓸모없는 생각이었다.
“베리타티 경이 오라버니께 간 순간부터 오라버니는 왕의 자질을 갖추게 되었지요. 제가 가장 경계했던 상황이었습니다. 오라버니께 부족했던 건 오직 자신감뿐이었으니까요.”
세르넬이 작게 웃어 보였다.
“지금의 오라버니라면 분명 후대에 길이 남을 성군이 되실 겁니다.”
그녀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로미우에게 예를 올렸다.
로미우는 세 걸음 다가서서 그녀의 가녀린 어깨를 감싸 주고 싶었다. 그러고서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따뜻한 말 한마디를 전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발을 내디딜 수 없었다.
이미 그와 세르넬 사이에는 그 거리만큼의 벽이 쌓였기 때문이었다.
“이제 톤턴으로 갈 예정입니까?”
“네, 그들에게 평생 죄를 갚으며 살 거예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죽어서 이번에 희생된 백성들의 얼굴을 볼 수가 없어요.”
세르넬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안녕히.”
그녀는 그 흔한 호위조차 없이 톤턴을 향해 걸어갔다.
스윽.
엘런과 로미우는 그녀와는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이제 더는 아는 사람인 체할 수 없는 그녀였기에 돌아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어느새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였다.
빠득.
로미우의 이빨이 마찰하며 큰 소리를 냈다.
그의 손등에는 핏줄이 툭툭 튀어나왔다.
“엘런.”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그의 목소리는 착 가라앉아 있었다.
“말씀하십시오.”
“체들턴가. 기필코 그놈들에게 죗값을 치르게 할 거야. 왕실의 모든 힘을 다 동원해서라도.”
엘런도 그의 감정을 그대로 전달받을 수 있었다.
“왕자님, 결코 쉽지 않을 싸움일 것입니다.”
로미우가 고개를 돌려 엘런을 보았다.
두 눈에 가득 찬 눈물이 분에 겨워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았다.
“하지만 저 또한 그들에게 갚아 줄 빚이 많습니다. 왕자님과 함께할 것을 약속드리겠습니다. 그전에…….”
엘런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들의 앞에는 왕실 근위병들이 보였다.
그들은 해리포드의 모든 가구를 돌아다니며 조사를 벌이고 있었다.
알베르토가 납치 사건이 내부인의 소행이라 생각하고 전수 조사를 명한 것이다.
“국왕 폐하부터 먼저 만나 봬야겠습니다.”
이대로라면 공주의 흔적을 찾을 때까지 국정이 돌아가지 않을 지경이었다.
아이들에 대한 그의 콤플렉스는 그 정도로 심각했다.
“아바마마께서도 이 소식을 들으면 충격 받으시겠지?”
“하지만, 언제까지고 공주님을 행방불명으로 둘 수는 없습니다.”
“그렇겠지. 아바마마께서도 잘 받아들이실 거야.”
그들은 로미우를 보고 깜짝 놀라며 달려오는 근위병의 안내를 받으며 왕실로 향했다.
* * *
“내가 왕실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말라고 하지 않았는가? 어찌 그렇게 돌아다니는 것이냐?”
알베르토는 근위병의 안내를 받아서 온 로미우를 보자마자 크게 꾸짖었다.
“베리타티 경도 이런 상황에서 왕자를 보았으면 바로 왕실로 데려와야 할 것이 아닌가?”
그의 눈총은 엘런에게도 향했다.
“송구합니다, 폐하.”
둘이 동시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둘의 반응에 알베르토도 더는 목소리를 높일 수만은 없었다.
“후우, 베리타티 경이 함께했다면 왕자도 안전했겠지. 그래, 나간 것처럼 다시 몰래 들어가면 되지 어찌 이곳을 찾아온 것인가?”
로미우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폐하, 송구하오나 이것은 듣는 자가 아무도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여 이 신성한 장소에 마법을 사용해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라.”
딱.
엘런이 손가락을 튕기자 사일런스 마법이 대전을 감쌌다.
옆에 있던 아카드는 엘런의 강대한 힘을 느끼고는 흠칫 놀랐다.
“아바마마, 세르넬 납치 사건의 범인은 저와 엘런입니다.”
로미우가 말투를 평어로 바꾸어서 말했다.
더는 이 대전이 공식적인 장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금 뭐라고 했느냐?”
예상대로 그는 당황했다. 하지만 이내 그의 얼굴에는 분노가 가득 차올랐다.
“네놈들이 벌인 짓이라고? 로미우, 네가 기어코 왕위가 탐이 나서 너의 누이를 해한 것이냐?”
그는 당장이라도 옆에 있던 검을 뽑아 들 것 같았다.
“그것이 아닙니다.”
로미우는 그의 반응에도 침착하기만 했다.
그러고는 씁쓸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로미우의 말을 들을수록 알베르토의 분노는 사그라졌다. 대신, 그의 표정은 로미우와 비슷해져 갔다.
“그래서 그 아이는 톤턴으로 떠났습니다. 그곳에서 평생 죗값을 치르겠다고 했습니다.”
“하아…….”
로미우의 말이 끝나자 알베르토는 그 어느 때보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세르넬과 꼭 닮은 모습을 하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 바로 그의 후궁 로렌스의 모습이었다.
‘이 모든 비극의 시작이 내가 그녀에 대한 마음을 참지 못했기 때문이구나.’
왕비에 대한 미안함과 로렌스에 대한 미안함.
그것이 그녀들의 아이들에게까지 이어진 것이다.
그는 고개를 돌려 그 모습을 흩어 버렸다.
지금은 자신의 치부 때문에 모진 일을 겪은 딸의 마음을 이해할 때였다.
“그것이 그 아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었느냐?”
끄덕.
로미우도 목이 메었는지 고개만을 끄덕였다.
“못난 아비를 둔 덕분에 너희들이 고생이 많았겠구나.”
국왕에 오르면서 그는 우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 어떤 때라도 국왕이 눈물을 보이는 것은 권위를 깎아내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엘런은 똑똑히 보았다.
눈물이 흐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알베르토는 분명 울고 있었다.
“폐하, 이 빌어먹을 놈들은 당장에 씨를 말려 버려야 합니다.”
알베르토의 옆에 있던 아카드가 당장이라도 검을 뽑을 기세로 외쳤다.
“아카드 경의 말이 맞습니다. 체들턴 놈들의 도가 지나쳐도 너무 지나쳤습니다. 당장이라도 귀족들을 모아 그들의 죄를 만천하에 공개해야 합니다.”
로미우 역시 끓어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하지만 알베르토와 엘런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알베르토는 왕의 권위를 생각해서 이유를 말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결국, 엘런이 나섰다.
“왕자님, 아직도 반절 이상의 귀족들이 그들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마탑. 송구하오나, 그들이 그 세력을 지니고 있는 한 왕실은 체들턴을 몰락시킬 수 없습니다.”
그것이 현실이었다. 알베르토조차 그들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이유.
엘런은 알베르토가 하고 싶은 말을 눈치채고는 자신이 대신해 준 것이다.
“그렇다. 마도왕국 프로드에서는 어쩔 수 없는 힘의 균형이 있다. 그들은 이 균형의 축이다. 그것을 한 번에 깰 수 있는 자는 프로드에 없을 것이다.”
알베르토는 침울한 표정으로 엘런의 말을 받았다.
“제기랄.”
국왕의 앞에서도 기분대로 욕지거리를 내뱉은 이는 아카드였다.
“하지만 내 그놈들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왕위를 걸고서라도 내 딸을 망친 그놈들을 내칠 방법을 생각하마.”
그것은 국왕으로서 한 말이 아니라 가장으로서 자신의 아들에게 한 말이었다.
“부탁드립니다, 아바마마.”
그렇게 체들턴 가문에 대한 그들만의 선전포고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