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114
제115화
배 사무관에게 연락이 왔다.
저녁쯤 헌터관리부 장관실로 와달라는 것이었다.
어젯밤 일로 문제가 생겼나 싶어 순간 마음이 조마조마해졌다.
장관실에는 황 장관과 배 사무관 그리고 한진환이 있었다.
내가 자리에 앉자 배 사무관이 말했다.
“두 사람은 경호원이 아니라 방문을 환영하는 환영단으로 나가게 됐습니다.”
다행이다.
날 부른 건 다른 이유였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런 날 보고 한진환과 황 장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는지 이유를 아는 배 사무관만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나를 향한 두 사람의 시선을 돌리고자 질문을 던졌다.
“왜 환영단으로 바뀐 겁니까?”
“상황이 바뀌었으니까요.”
“상황이요…?”
“네. 원래는 알레딩 밀러가 연구팀과 함께 비밀리에 입국할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지 않나.”
“아하.”
그녀의 말마따나 상황이 변했다.
전 세계의 S급 헌터가 모두 모이는 일이 됐다.
정부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일이 되기도 했고.
“환영단이기는 하지만 두 분이 할 일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표면적으로는 환영단. 하지만 주된 업무는 경호 일, 이라는 거지?”
“네. 바로 그겁니다.”
“흐음….”
“후후.”
황 장관이 짧게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은 나를 포함한 세 사람의 시선을 잡아끄는 데 충분했다.
갑자기 왜 웃어?
그는 날 보며 웃고 있었다.
내 얼굴에 뭐 묻었나?
날 향해 검지를 내민다.
“환영단으로 명명된 순간 도운을 제외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지….”
“음? 뭐야, 도운이 제외된 겁니까?”
“어, 그건 좀 너무한데요.”
진환과 내가 한 마디씩 던졌다.
황 장관이 바로 손을 휙휙 휘젓는다.
“아니, ‘나왔지’라고 말했잖아.”
“나왔지….”
“과거형이네요.”
말이 나오긴 했지만, 채택되진 않았다는 거다.
흠. 이야길 꺼낸 황 장관의 얼굴이 의기양양한 걸 보니….
아무래도 그가 힘을 좀 썼나 보다.
나를 제외해야 한다는 의견을 뭉개버리는데 말이다.
“회의에서 여러모로 검증된 게 부족하다는 이유로 도운을 제외하려고 했어.”
“음….”
틀린 말은 아니다.
나는 아직 헌터로서 해낸 일들이 부족하다.
딱 하나 누구나 인정할만한 업적을 이뤄내긴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 내가 했다고 떠들어댈 만한 일은 아니다.
전 세계의 시선이 이곳으로 향해 있었으니까.
그걸 제외하면…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는 업적을 이뤄내지는 못했다.
랭킹에 오른 다른 A급 헌터들과 비교하면 전혀 없다고 보는 게 옳으리라.
황 장관이 검지를 접고 엄지를 펼친다.
두꺼운 손가락이 자신을 가리켰다.
“하지만 내가 밀고 나갔지.”
“장관님이요?”
“그래. 자네를 제외하자는 의견을 열심히 무시했어.”
퍽 자랑스러운 듯 떠들어댄다.
누가 보면 무용담이라도 말하고 있는 듯하다.
설득도 아니고 무시했다는 점에서 자랑스럽게 말할 일은 아닌 것 같지만.
뭐, 얘기를 꺼낸 본인이 우쭐해 하고 있으니 괜히 꼬집지는 말자.
“한 명씩 지쳐서 나가떨어질 때까지 말이야.”
“…….”
으하하.
거나하게 웃기까지 하는 황 장관을 가만히 바라봤다.
황 장관은 왜 나를 밀고 나간 걸까.
배제하자는 의견이 나왔을 때 그냥 받아들였어도 문제는 없었을 거다.
여러모로 검증된 게 부족한 사람이라는 평가는 적확하니까.
나도 기분은 나쁘지만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였을 거다.
이런 일은 사람이 변경되는 경우가 잦기도 하고.
“하하, 하…. 흠, 흠!”
빤히 쳐다봐서일까.
이내 황 장관이 호탕하게 웃던 웃음을 멈췄다.
내 시선에 담긴 뜻도 읽었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후후 웃기만 했다.
왜 그렇게 했는지 말해줄 생각이 전혀 없다는 뜻이다.
이 양반 뭐지…?
“또 한 가지 변경된 점이 있습니다.”
나와 황 장관이 서로 바라만 보고 있자 배 사무관이 끼어들었다.
그녀는 한숨을 짧게 내쉰 후 말을 이어나갔다.
“환영단 멤버가 늘어났습니다.”
“아, 그렇겠네요.”
당연한 일이다.
미국, 러시아, 중국.
세 군데가 동시에 입국하기로 한 상황이었으니까.
나와 한진환만으로는 환영하러 나갈 인원수가 부족하다.
한진환이 궁금한 듯 물었다.
“누가 참여하기로 했어?”
“먼저, 백운천의 이태천과 백도희가 참여하게 됐습니다.”
“어라?”
“이들은… 아, 따로 설명해 드릴 필요 없겠네요. 두 분 다 잘 아실 테니.”
“그야 그렇죠.”
세상에서 그 두 사람을 가장 잘 아는 건 다름 아닌 나다.
다른 사람에게서 둘이 어떤 사람인지 설명을 듣는다는 건 나에 대한 실례다.
하지만…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희랑 태천이가 이 일을 받아들였다고요?”
“네? 네.”
“어떻게 받아들였지?”
“네?”
배 사무관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내 고개도 절로 갸웃거려졌다.
백운천은 현재 굉장히 바쁜 상황이다.
아니, 현재라는 표현은 고쳐야겠다.
백운천은 늘 바쁜 상황에 부닥쳐 있다.
바쁘지 않은 경우가 더 적다.
“백운천은 이런 일을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롭지가 않은데요.”
“여유롭지가 않다고?”
“네. 적은 인원수로 A등급 길드로서의 일을 해야 하니까요. 두 사람을 제외하면 A급 헌터가 10명 정도밖에 되지 않거든요.”
“아….”
한진환이 대충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소수 정예로 이뤄진 길드.
그런 길드들은 ‘A등급 길드로서 해야 할 일’을 하느라 진땀을 빼곤 한다.
해내지 못하면 등급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사실 일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길드 건물 주변에 있는 게이트를 관리하고 정부와 협회가 의뢰하는 퀘스트를 해결하는 것 정도니까.
문제는 백운천의 인원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정확하게는 정부와 협회가 의뢰하는 퀘스트를 해결할 정도의 능력이 되는 인원이 부족하다.
“역시. A등급 길드가 되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진다니까?”
“그에 관해서 여러 번 얘기가 나오기는 했는데….”
“저는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오히려 그 정도도 못해내면 A등급 길드여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정부와 협회가 주는 혜택이 얼만데요.”
“그래. 이 말이 일리가 있어서 매번 기각되고 있지.”
“인원이 부족하다면 채우면 될 일입니다. 백운천은 한국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길드 중 하나니, 실력 좋은 인재를 충분히 채용할 수 있을 거고요.”
“뭐… 그렇기는 하죠.”
순순히 수긍했다.
한진환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럼 채용하면 되는 거 아니야? 왜 안 해?”
“그게… 백운천은 우선순위로 보고 있는 게 있거든요.”
“우선순위? 그게 뭔데?”
“실력…은 아닐 거고.”
“인성도 아니겠죠.”
“음? 왜 그렇게 생각하나?”
“인성이라면….”
배 사무관은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날 힐긋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뭘 얘기하고 싶은지 알 수 있었다.
내 인성이 좋지 못하다고 말하고 싶었겠지.
뭐,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이 그리 좋지 못하다는 걸 인정한다.
바로 어젯밤만 해도 협회에 붙잡힌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그것도 쓰레기를 땅에 파묻은 행위로….
“보육원 출신을 우선순위로 뽑고 있습니다.”
“뭐?”
“네?”
황 장관과 배 사무관이 반문했다.
눈을 동그랗게 뜬 것이 전혀 몰랐던 듯하다.
“도희가 그러고 싶다고 했거든요. 우리처럼 보육원 출신인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싶다고.”
“허… 그랬나. 그래서 그런 이상한 인사가 있었군….”
“역시 하얀 성녀님이시군요….”
배 사무관이 도희의 호칭을 중얼거렸다.
살짝 멍해진 눈빛에서 진심으로 감탄했음을 알 수 있었다.
우리 도희가 좀 착하긴 하지.
히히.
그런 이유로 도희와 태천이는 언제나 막대한 업무량에 치여 살고 있다.
그러므로 두 사람이 이 일을 받아들였다면 이유는 둘 중 하나다.
여유가 생겼거나 무리하고 있거나.
한진환이 또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깐만.”
“……?”
“동생이 그렇게 바쁜 걸 알면서 너는 길드를 탈퇴한 거냐?”
“하하. 착한 동생의 오빠는 나쁜 오빠라는 게 국룰 아닙니까?”
“뭐어?”
“역시 여동생 등골 브레이커….”
배 사무관이 이번엔 내 별명을 중얼거렸다.
찌푸린 눈살에서는 진심으로 날 경멸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반면 한진환은 흥미롭다는 듯 입꼬리를 올린 채 날 쳐다본다.
내가 뭐 재미있는 소리를 했었나?
왜 저렇게 쳐다본담?
“그럼 나도 백운천에 가입 신청이나 해볼까?”
“네?”
“뭐?”
배 사무관과 황 장관이 반문했다.
깜짝 놀란 듯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번엔 나도 놀라서 그들처럼 눈을 크게 떴다.
백운천에 가입 신청을?
“진심입니까?”
“나도 보육원 출신이니까. 우선순위로 뽑힐 수 있을 거 같은데.”
“…….”
우선순위….
한진환이 오겠다면 무조건 영순위다.
어떤 미친 길드가 한진환이 오겠다는데 거절할까.
뭐, 한쪽 입꼬리가 올라간 채인 걸 보면 농담일 거다.
황 장관도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농담이라는 걸 알아차린 거다.
“아무튼. 그래서 어떻게 받아들인 건지 궁금해한 겁니다. 무리하고 있는 거 같은데.”
“그 점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가 요청한 것인 만큼 편의를 봐 드리려고 했으니까요.”
“아, 정말입니까?”
“네.”
“그럼 괜찮을 것 같네요.”
“동생한테 팍팍 요청하라고 해. 팍팍.”
한진환이 끼어들었다.
“팍팍 요청하라고요?”
“그래. 정부는 지금 네 동생이 꼭 필요하거든. 네 친구랑.”
“뭔 소리예요?”
“이렇다는 소리.”
그러면서 한진환은 스마트폰을 두드리고는 내밀었다.
화면엔 흑인 여자가 사근사근한 미소를 지은 채 말하고 있었다.
“밀러잖습니까?”
“그래. 오늘 KBC랑 화상 인터뷰한 영상이지.”
“헤, 밀러랑 인터뷰라니…. 어떻게 했대요?”
“밀러가 자청했대.”
“밀러가요? 왜요?”
“이유는 이거 때문이었어, 봐봐.”
한진환이 턱짓으로 화면을 가리켰다.
고개를 내려 다시 화면을 봤다.
인터뷰어가 밀러에게 질문을 던졌다.
[다음 질문입니다. 혹시 한국에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까?]뜬금없는 질문이다.
그리 생각했지만, 정작 질문을 받은 당사자인 밀러는 해맑게 웃었다.
아무래도 기다리고 있던 질문이었던 것 같다.
아마도 사전에 물어봐달라고 요청하지 않았을까.
밀러가 바로 대답했다.
화면 아래쪽에 밀러가 한 말이 번역되어 떠오른다.
[하얀 성녀, 백도희와 만나고 싶어요.]뭐야.
밀러가 도희를?
“크. 참 대단한 동생을 뒀어?”
“혹시 태천이가 참가하게 된 건….”
“그래, 네 예상이 맞아. 스미르노프 녀석이 SBC에서 이태천과 만나고 싶다는 인터뷰를 남겼어.”
“일이 재미있게 돌아갔네요.”
밀러가 도희를, 스미르노프가 태천이를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한진환의 말처럼 정부는 지금 두 사람이 꼭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렇게 인터뷰를 남겼는데 두 사람을 초대하지 않는다?
엄청난 빈축을 살 것이 분명하다.
과연…. 이런 거라면 괜찮을 듯하다.
정부와 협회가 A등급 길드의 업무를 해결해줄 테니까.
“…또 마인 길드가 참여하게 됐습니다. 직접 참여하겠다는 뜻을 내비쳤기 때문에 무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 말한 배 사무관이 내 눈치를 살핀다.
마인 길드라면….
“네. 백운천을, 아니. 도운 님을 암살하려 했을지도 모르는 길드죠.”
“…….”
“정확한 건 아니지만요.”
그녀의 말이 옳다.
‘그랬을지도 모른다’라는 건 절대로 ‘그랬다’가 되지 못한다.
증거도 증인도 없으므로 죄는 성립되지 않는다.
있었더라면 백운천이 마인이 한자리에 있게 되는 일은 없었으리라.
백운천이 빠지든가 마인이 빠졌겠지.
“그리고 마인 길드는… 이런 말씀 드리긴 죄송하지만.”
배 사무관은 잠깐 쉬었다가 말을 이었다.
“무시할 수 없는 길드이기도 합니다.”
“…….”
무시할 수 없다….
그래. 그럴 거다.
마인 길드는 한국 최강의 길드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