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162
제163화
“어려울 것 같다?”
“그렇소.”
“어째서? 예전에도 한 번 해본 적 있는 일 아니오?”
리롄제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질문했다.
질문을 받은 그위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때와는 상황이 다르오. 그 아이는 당황하고 무서워하고 있었소. 그러니 이곳은 괜찮다고 진정시켜주면 되었지. 하지만….”
“…….”
“저 친구는 지금 분노하고 있소.”
“분노…?”
“그렇소. 다가가는 것조차 거부하는 크나큰 분노요.”
“허어….”
리롄제는 이무기를 바라봤다.
푸른 이무기가 아가리를 크게 벌려 자신의 몸통만큼 거대한 번개를 토해냈다.
그위친의 말을 들었기 때문일까?
노인은 이무기의 모습이 마치 마음속의 분노를 토해내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가 저 아이의 영역을 침범했기 때문인가?”
“아니. 그건 아니오. 저 친구는…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와 같소.”
“버림받은 아이?”
“그러니 저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그위친은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지켜보고 있던 밀러가 그위친을 불렀다.
“그위친?”
“…….”
“그위친. 계속 말해줄래요?”
그위친은 그러나 말을 잇지 않았다.
질문의 답이 아닌 다른 말을 이어나갔다.
“…분노한 상대와 친구가 되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오.”
“음….”
“당신도 알지 않소? 화가 많이 난 이에겐 말을 잘 건네도 신경질만 더 돋울 뿐이라는 걸.”
“일리 있는 말이로군….”
리롄제는 공감했다.
그 또한 심기가 불편해지면 타인이 없는 곳으로 자리를 떠나는 일이 왕왕 있었다.
길가의 나뭇가지 꺾듯 목을 쉬이 꺾어버리기 전에.
“그래서 지금 당장은 친구가 될 수 없소.”
“그렇군….”
리롄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위친이 한 말을 떠올렸다.
지금 당장은 친구가 될 수 없다.
다른 말로 하면 얼마간의 시간이 더 있으면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밀러가 실드 마법을 분석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분명 몇 분 몇 시간 정도로는 이무기의 분노를 잠재울 수 없으리라.
아마도 최소한 며칠이라는 시간이 필요할 터.
“흐으음….”
이런 상황이 아니었더라면, 노인은 순순히 되돌아가자고 말했을 터였다.
허나 전 세계에 방송되고 있는 이 상황에서 얻어낸 것도 없이 그냥 물러나자고 말할 수는 없었다.
S급 헌터들이 모여 놓고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퇴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만큼 창피한 일은 또 없으리라.
리롄제의 고민은 깊어져 갔다.
“어찌하면 좋을꼬.”
5분 전에 중얼거렸던 말을 다시 중얼거린다.
생각해봐도 좋은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실드 마법을 우회할 수 없고.
이무기를 길들일 수도 없다.
그렇다면 남은 건 실드를 부수는 것뿐인데….
스미르노프의 공격을 거뜬히 막아내고, 용의 숨결도 손쉽게 막아낸 실드다.
저걸 부수려면, 아마 그가 ‘전력’을 보여야만 할 것이다.
다른 S급 헌터들이 보고 있는 앞에서.
리롄제는 제 실력을 노출하고 싶지 않았으므로 그 선택만은 피하고 싶었다.
“…차라리 잘됐네요.”
밀러의 말이 리롄제의 고민을 끊었다.
“그게 무슨 소린가? 잘 됐다니?”
“생각해봐요. 우리가 이곳에 온 건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잖아요.”
“……!”
리롄제는 놀란 얼굴로 밀러를 바라봤다.
밀러는 싱긋 웃은 채 노인을 마주 봤다.
피식, 노인은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그녀의 말이 전적으로 옳았다.
네 명이 함께한다면 전력을 보이지 않아도 이무기의 실드를 깨부술 수 있을 터였다.
리롄제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혼자서 해결하려고 했다.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해놓고선 혼자 알아서 하려고 했던 거다.
내가 어리석었군.
리롄제는 순순히 자신을 탓하며 반성했다.
하지만, 사실 그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소년에서 노인이 될 때까지, 그는 늘 혼자였다.
오랜 시간 동안 그와 동등한 위치에 서 있는 사람은 없었다.
오로지 홀로 시기와 질투와 동경을 받아냈었다.
이곳에 있는 다른 이들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좋아. 그럼 밀러 양 말대로-”
“아니, 그럴 필요 없소.”
“음?”
그위친이 리롄제를 말렸다.
리롄제는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묻듯 그를 바라봤다.
밀러도 마찬가지다.
설마 스미르노프가 전력을 다해 실드 마법을 깨뜨리기라도 한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두 사람은 앞을 바라봤다.
“……?”
이무기의 실드는 그대로였다.
여전히 스미르노프의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내고 있었다.
밀러는 이무기의 실드가 멀쩡히 유지돼있는 것을 보곤 물었다.
“그위친. 왜 그럴 필요 없다는 거예요?”
“…….”
그위친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를 바라보지도 않는다.
두 사람의 시선이 그가 바라보는 쪽을 향해 시선을 옮겨졌다.
“백도운…?”
그곳에는 도운이 앉아 있었다.
도운은 동생과 친구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리롄제가 의문을 던졌다.
“저 애송이들은 왜 쳐다보는 거요?”
“나는 늘 혼자였소.”
“……!”
리롄제가 살짝 눈을 크게 떴다.
후우….
노인의 입가에 미소가 패였다.
역시 이 자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만… 이젠 아닐 수 있소.”
“그래, 이해하오. 아닐….”
리롄제는 입을 다물었다.
그위친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젠…?”
이젠 아닐 수 있소.
이젠 아닐 수 있소.
이젠, 아닐 수….
이젠….
“…….”
시간이 지날수록 노인의 심경이 어지러워졌다.
입가의 미소가 지워지고, 길게 늘어진 흰 눈썹이 꿈틀거린다.
노인은 그들을 만나 혼자가 아니게 되었다.
그런데.
그러나.
함께인 줄 알았던 이는 자신과 예전에 만났음에도 ‘늘 혼자였다’라고 말했다.
어지러운 심경이 슬픔과 닿아 분노로 바뀐다.
“감히….”
“이 순간.”
그위친은 리롄제의 분노를 일축했다.
그의 어조 없는 목소리는 노인의 분노를 손쉽게 억눌렀다.
리롄제는 나뭇가지를 꺾어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의 선택에 따라… 세상의 운명이 크게 바뀔 거요.”
“뭐라? 세상의 운명?”
“그위친. 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따스한 손길을 지닌 자.”
목소리에 어조가 없어서였을까.
그의 눈은 옹이구멍처럼 텅 비어버린 듯했다.
“선택해야 할 순간이오.”
따스한 손길을 지닌 남자.
그 남가 할 선택을 두 눈에 담으려는 듯….
“그 친구는, 대체 무엇이오…?”
그위친은 오로지 그만을 보았다.
***
[전대 세계수의 마나라고 밝힙니다.] [현재 이무기는 전대 세계수의 마법으로 보호받고 있다고 전합니다.]전대 세계수 씨라니….
“오라버니?”
“도운아?”
도희와 태천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말을 하다 말고 가만히 있으니 걱정이 된 거다.
아마 썩 좋지 않은 내 표정도 한몫했을 테지.
걱정을 불식시켜주고자 두 사람을 잠깐 바라봤다.
시선을 마주 보아서일까.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일까.
두 사람은 조금 안심이 되는 듯 굳었던 표정을 풀었다.
도희가 말했다.
“기다릴게요.”
새싹이와의 대화를 먼저 끝내라는 뜻이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메시지창을 바라봤다.
곧바로 새로운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세계수 어린나무는 이무기를 보호하는 마법이 전대 세계수의 명제 마법이라고 밝힙니다.] [명제 마법은 새로운 논리를 창조하는 마법이라고 전합니다.] [즉, 절대적인 법칙을 적용할 수 있다고 전합니다.]절대적인 법칙을, 적용한다고?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이를테면] [세계수 관리인을 죽이지 않으면 세계수를 해할 수 없다.] [그러한 법칙을 적용할 수 있다고 전합니다.] [법칙이 적용되면] [세계수 관리인을 죽이기 전까지 절대로 세계수를 해할 수 없다고 전합니다.]“……!”
말도 안 돼.
그런 마법이 있다고?
[전대 세계수가 창조한 마법이라고 밝힙니다.] [드래곤도 쓸 수 없는 세계수만의 마법이라고 자랑합니다.]응? 잠깐.
세계수만의 마법이라면….
그럼 새싹이 너도 그 마법을 쓸 수 있는 거야?
[어린나무는 나뭇가지를 떨굽니다.] [어린나무는 자신은 아직 어린나무라고 전합니다.]아….
못 쓰는구나?
꼬맹이라.
[어린나무가 분개합니다!] [관리인의 이마에 꿀밤을 때리고 싶다고 토로합니다.] [어른 나무로 성장하면 쓸 수 있게 된다고 전합니다.]헤에, 그렇구나….
우리 새싹이를 성장시켜야 할 이유가 또 하나 늘었네.
새싹이가 명제 마법을 쓰는 거 보고 싶어.
[어린나무는 관리인의 생각에 긍정합니다.] [그러니 관리인에게 어서 손가락을 움직이라고 조언합니다!]좋아, 좋아.
화면을 두드리며 도희를 봤다.
설마 울릉도 게이트에 들어와서까지 스마트폰을 두드리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이무기를 보호하는 마법은-”
“마법에 쓰여 있던 건….”
명제 마법에 관해 말하려 할 때, 밀러의 목소리가 귓가로 파고들었다.
평소보다 낮은 목소리로 말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어떤 마법을 쓴 것일까.
그녀의 목소리가 또박또박 들려왔다.
“따스한 손길. 그것이 약속의 증표이니. 증표를 지닌 자여. 선택하라. 이 아이는 무엇인가?”
[어린나무는 당황합니다.]…어라?
새싹아, 지금 이거….
전대 세계수 씨가 나한테 메시지를 보낸 거지?
[어린나무는 그렇다고 동의합니다.] [이어 의문을 가집니다.] [관리인이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전합니다.]그러게.
선택하라고 해도, 뭘 선택해야 하는지 선택지는 줘야 하잖아.
그것도 안 주고선 무턱대고 선택하라고 하면 어떡해?
이상한 걸 선택하면 어쩌려고.
“…오라버니?”
“어?”
“마법이요. 말하다 말았어요.”
“아. 미안. 저거, 명제 마법이래.”
“명제 마법…이요?”
도희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태천이도 마찬가지다.
의문으로 가득한 얼굴은 처음 들어본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명제 마법, 명제 마법….”
도희는 반복해서 중얼거렸다.
마치 게임 화면이 넘어갈 때 ‘loading’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듯했다.
다만, 도희는 다음 화면으로 넘기지 못했다.
머릿속에 명제 마법이라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은 거다.
“처음 들어보는 마법인데요?”
“그렇겠지. 전대 세계수 씨의 마법이니까.”
“……!”
도희가 눈을 휘둥그레 뜬다.
오늘 여러 번 놀라네, 우리 도희.
뭐, 그럴 만한 말을 하긴 했다.
전대 세계수가 이무기를 보호하고 있다는 것이었으니.
“대체 왜….”
목소리는 싸늘했다.
마치 적을 앞에 두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내리깐 눈빛 또한 서늘했다.
스마트폰 속 새싹이를 얼어붙게 하려는 것처럼.
스마트폰 화면을 살짝 돌렸다.
괜찮아, 새싹아.
도희는 나 걱정돼서 그러는 거야.
“도희야.”
“…….”
이름을 부르자 눈을 감는다.
3초가 채 지나지 않았을 때, 도희는 다시 눈을 떴다.
서늘했던 눈빛은 사라져 있었다.
“전대 세계수가 이무기를 보호하고 있는 거예요?”
“아마도.”
“대체 왜요?”
“모르겠어.”
“세계수는요? 뭐래요?”
[어린나무는 모르는 일이라고 주장합니다.]“새싹이도 모르는 것 같아. 당황하기도 했고.”
“…….”
서늘함이 느껴질 듯 말 듯한 눈으로 스마트폰을 내려다본다.
새싹이를 적으로 취급할지 말지 고민하는 게 분명하다.
의심의 싹이 피어날 만도 하다.
A+등급 몬스터인 이무기를 보호하고 있었으니….
마치 게임 속 최종 보스를 조종하는 흑막 같아 보인다.
그래, 그래.
형은 우리 새싹이 믿어.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웃고 웃었는데.
하지만 도희는 그동안 함께 하지 못했잖아.
신뢰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지.
[어린나무는 시무룩해 나뭇가지를 떨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