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163
제164화
“그럼 저거 어떡해?”
태천이가 이무기를 가리켰다.
그의 얼굴엔 의심보다는 걱정이 담겨 있었다.
뭘 걱정하는 거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요.”
도희가 차갑게 말했다.
“S급 헌터들이 알아서들 하겠죠.”
“음. 그럼 계속 이렇게 가만히 있어?”
“그럼요?”
눈을 치켜뜨며 묻는다.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는 도희를 보며 태천이는 빙긋 웃었다.
웃기는.
“미안하지만.”
두 사람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건 안 될 거 같은데.”
“네? 안 된다니요?”
“선택해야 하거든. 내가.”
“…무슨 소리예요? 오라버니가 뭘 선택해요?”
검지를 뻗었다.
끝에는 이무기가 활공하고 있다.
실드 마법, 아니.
전대 세계수의 보호를 받으면서.
새싹이의 설명에 따르면 새로운 논리를 창조해 절대적인 법칙을 적용하는 마법이다.
아무리 S급 헌터들이라고 해도 저걸 깨뜨릴 순 없을 것이다.
[어린나무가 관리인의 생각에 긍정합니다.] [저 인간들은 분명 강하지만] [그렇다고 명제 마법을 깨뜨릴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전합니다.]역시….
명제 마법을 깨뜨릴 수 있는 건 강함 따위가 아니다.
아마 이곳에서 저 명제 마법을 깨뜨릴 수 있는 건 나뿐이리라.
내가 선택을 해야 하는 거다.
무슨 선택을 해야 하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이무기를 선택한다고?”
“밀러가 말한 거 기억나냐?”
“기억하겠냐.”
“그래. 물은 내가 잘못이지.”
“따스한 손길. 그것이 약속의 증표이니. 증표를 지닌 자여. 선택하라. 이 아이는 무엇인가.”
도희가 술술 읊는다.
저 구절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다 외운 건가.
“저 말이 왜?”
이무기에게 뻗었던 검지를 되돌린다.
태천이의 시선에 닿게 올린다.
그러고는 마나를 모았다.
검지가 따듯해지는 게 느껴진다.
“따스한 손길….”
“응?”
“그게 이거야.”
검지를 위아래로 까딱인다.
“응? 뭐라고?”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스킬 말이야. 이거 이름이 따스한 손길이야.”
“뭐? 잠깐만. 그럼-”
“증표를 지닌 자가, 오라버니라는 거예요…?”
도희가 태천이의 말을 이어받았다.
두 사람은 미간을 찌푸린 채 내 검지를 빤히 바라본다.
“맞아. 나야.”
“…….”
도희는 검지를 빤히 쳐다봤다.
까, 딱.
까, 딱.
까-
“그만둬요.”
“응.”
딱.
위아래로 까딱이는 것을 멈춘다.
도희는 그걸 보곤 이마를 짚었다.
어라, 그만두라는 게 이거 아니었나?
“아니, 그거 말고요….”
“어? 그럼 뭐를 그만둬?”
“저거요. 저거 내버려 두라고요.”
도희는 이무기를 가리켰다.
그러고는 바로 말을 덧붙였다.
“꼭 증표를 보여줄 필요 없잖아요.”
“필요가 없다니?”
“그렇잖아요. 오라버니가 왜 전대 세계수의 강요에 따라줘야 하는데요.”
“에이, 강요는-”
“설명도 없이 선택하라고 하는 게 강요지 뭐예요?”
“음….”
반박할 수가 없군.
나도 설명이 없는 건 좀 불만이다.
디싱도 설명이 부족했는데, 누가 파트너 아니랄까 봐 전대 세계수 씨도 하는 짓이 똑같다.
도희는 단호하게 말했다.
“무시해요. 선택해서 얻는 것도 없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어, 그래도 할 수 있다면 하긴 해야지.”
잠자코 있던 태천이 끼어들었다.
홱!
도희가 고개를 돌려 태천이를 노려본다.
백발 마녀, 가 절로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얘를 대체 누가 하얀 성녀라고 부르는 거야.
어떻게 봐도 마녀인데.
“명제 마법이란 걸로 이무기가 전대 세계수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거잖아.”
태천이는 목을 긁적이며 말했다.
평소라면 바로 머리를 조아렸을 텐데….
말을 계속해서 이어나간다.
“그런데요.”
“그럼 아무리 저 네 사람이라도 이무기를 쓰러뜨릴 수 없다는 소리 아니야?”
“그렇겠죠. 그래서요?”
“그래서요라니….”
“우리가 알게 뭐예요? 쪽 당하는 건 저 인간들이지 우리가 아닌걸. 오히려 잘됐네요. 잘난 척하던 꼴들 보기 못마땅했는데.”
“백도희.”
태천이 도희의 이름을 불렀다.
성까지 붙여서.
얘 갑자기 왜 이래.
“…….”
말을 쏟아내던 도희가 입을 다문다.
그러고는 태천이를 찬찬히 바라본다.
태천이가 왜 그러는 건지 이유를 알고 싶은 듯하다.
[꿀꺽]새싹이도 놀란 듯하다.
하긴, 새싹인 처음이겠구나.
태천이가 이렇게 진지한 얼굴을 하는 건.
“왜… 그래요? 내가 뭐 잘못했어요?”
“기억 안 나?”
“……?”
태천이가 저런 말을 하다니….
거 엄청나게 안 어울리네.
기억 안 나요?
저 말은 원래 도희가 나랑 태천이한테 자주 하던 말이었다.
“진입하고 나서 말했었잖아. 마나가 달라졌다고.”
“아….”
말했었다.
태천이는 진입했을 때 “저번에 들어왔을 때보다 마나 농도가 짙어졌다”라고.
즉, 녀석은 지금 게이트 브레이크를 걱정하고 있는 거다.
그래.
이게, 태천이지.
오죽하면 요즘 시대의 한국에서 ‘기사’라는 별명이 붙었을까.
“지금 저걸 어떻게 하지 않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게이트 브레이크가 일어날 거야.”
“그, 그래도요. 지금 당장 할 필요는 없잖아요. 지금은….”
도희는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돌렸다.
카메라를 바라본 것이다.
도희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안다.
온 세상이 보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 내가 나선다면….
썩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세상은 S급 헌터들이 이무기를 쓰러뜨리지 못하리라는 걸 생각하지 않고 있으니까.
난 눈에 띄려고 제멋대로 나대는 놈 정도로 보일 터였다.
“저들이 떠난 후 우리끼리 오면 돼요.”
우리끼리….
안타깝지만 그건 안 될 거다.
오늘 되돌아간다면, 울릉도 게이트는 S급 헌터들 네 명이 공략에 실패한 곳이 된다.
그런 곳을 정부와 협회가 가만히 내버려 둘 리 없었다.
다른 헌터들의 진입을 통제할 가능성이 크다.
또 게이트 브레이크를 염두에 두고 울릉도에서 사는 사람들을 내륙으로 떠나보내겠지.
방법이 있다고 해도… 정부와 협회는 믿지 않을 거다.
왜?
S급 헌터들이 실패했으니까.
A급 헌터들의 방법이 있다는 말 따위 중히 여기지 않을 거다.
한진환이 설득한다고 해도 통하지 않겠지.
설령 상황이 좋게 흘러 설득했다고 해도 문제는 남아 있다.
게이트 브레이크가 언제 일어나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란 점이다.
“다시 돌아왔을 땐 늦었을지도 몰라.”
태천이가 말한 대로다.
설득하는 데 오래 걸려 늦었다면?
울릉도 게이트가 이미 폭발해버렸다면…?
“그럼 이곳에서 살던 사람들은 고향을 잃게 되는 거야.”
“…….”
그뿐이 아니다.
A+등급 게이트의 폭발이다.
아마 그 영향은 울릉도에만 미치지 않을 거다.
동해 전역에 미칠 것이 분명하다.
레드 드래곤이 살던 게이트가 폭발해 북한이 멸망한 것처럼.
“후우…. 알았어요. 해요, 지금.”
도희가 백기를 들었다.
태천은 씩 웃으며 쾌재를 불렀다.
“좋았어!”
“하지만…. 문제가 있어요.”
“문제?”
“오라버니가 선택하려면, 우선 저것 앞까지 가야 한다는 거잖아요.”
“아마도 그렇겠지?”
따스한 손길이 증표라고 해봐야 집게손가락일 뿐이다.
멀리 떨어져서 들어 올린다고 해도 이무기는 거들떠보지도 않겠지.
놀라울 만큼 관심을 주지 않으리라.
그러니 증표를 보이기 위해서는 이무기 앞으로 가야 했다.
“아….”
이무기를 바라본다.
푸른 벼락은 또 다른 벼락을 뿜어냈다.
그것도 한두 줄기가 아니라 무수히 많은 벼락을.
천재지변(天災地變).
그야말로 그 단어가 절로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저걸 막아내는 스미르노프는 인간이 맞나 싶기도 했다.
“오라버니가 저길 어떻게 가요?”
도희는 순수하게 떠오른 의문을 물었다.
이무기의 벼락은 그 스미르노프조차 무시하지 못했다.
데미지를 감수하고 싶지 않아 두 팔로 방어하고 있었다.
그런 위력을 가진 번개를 내가 맞는다면…?
분명 사지가 멀쩡하게 붙어 있지 못하리라.
“그러게? 나 저놈 앞까지 어떻게 가지?”
“후우, 잠시만요….”
도희가 한숨을 내쉰다.
그러면서도 고민을 시작하는 게 도희의 착하고 성실한 점이다.
나도 팔짱을 끼며 고민을 시작했다.
맡기기만 하는 게 미안해서다.
흐음….
이무기 앞까지 어떻게 가야 잘 갔다고 소문이 날까.
고민하고 있는데,
“내가 탱킹해서 가면 되지 않겠어?”
태천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 바보는 뭐라는 거야.
“뭐?”
“이 녀석과 함께라면 우린 어디든 갈 수 있어.”
그러면서 손으로 멘테를 부드럽게 쓸어댄다.
잘생겨서 그런가?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그럴듯하게 보였다.
물론, 단지 그뿐이었다.
도희와 나를 설득할 힘은 없었다.
“후우….”
“…되겠냐?”
“왜 안 돼?”
“…….”
대답하는 대신 손을 뻗어 이무기와 스미르노프를 가리켰다.
푸른 번개들이 꽝꽝 소릴 내며 비처럼 쏟아졌다.
저걸 맞고도 스미르노프는 멀쩡했다.
몸 자체가 최고의 갑옷이라더니….
“저거 안 보여?”
“보여.”
“한 번이라도 실수했다간 크게 다치는 거로는 안 끝날 것 같지 않냐.”
“도운아. 내가 실수할 것 같냐?”
그리 말하는 태천이에게선 한국 최고의 탱커라는 자부심이 엿보였다.
그 자부심은 아까의 발언과는 달리 설득력이 있었다.
물론, 설득력이 있을 뿐이었다.
설득당하지는 않았다.
“태천아. 실수는 자기도 모르게 하는 게 실수야.”
“음….”
“세상에 실수하고 싶어서 일부러 하는 사람은 없어.”
실수는 안 하는 게 쉽지 않아 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태천이 또한 마찬가지다.
실수하지 않을 자신이 있어도 해버릴지도 모른다.
그 여파는 고스란히 내게 향하겠지.
내가 아무리 회복력이 좋다고 해도 저 벼락의 비를 연달아 맞았다간 어떻게 될지 모른다.
[세계수 어린나무는 관리인이 괜한 걱정을 한다고 전합니다.] [쏟아져 내리는 벼락의 비를 맞는다고 해도 관리인은 죽지 않을 것이라고 전합니다.]어, 그래?
내 회복력이 그 정도야?
그래도 맞으면 아프긴 할 거잖아.
[어린나무는 고통을 모른다고 밝힙니다.] [가지치기하며 괴로워하는 관리인도 이해하지 못한 것을 전합니다.]아. 그랬었지, 참.
괴로워하는 내게 가지치기는 즐거운 거라며 정정을 요구하기도 했었고.
메시지창으로 읽어서 그런가?
가끔 새싹이 네가 나무라는 걸 깜빡깜빡한다니까.
게임 속에서 채팅으로 대화하는 것 같고 그래.
“뭣보다, 무턱대고 저 이무기한테 가면 다른 인간들이 우릴 가만 내버려 두겠냐?”
“아, 그러네….”
“생각 좀 해라.”
“언제는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라며.”
“그건…, 그렇긴 한데.”
“쯧쯧. 제가 한 말도 까먹고….”
“…….”
으허허, 짜증 나.
이태천한테 말문이 막히다니.
“오라버니.”
속으로 분통을 터뜨리고 있는데 도희가 날 불렀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그녀는 마법을 캐스팅하고 있었다.
밀러처럼 캐스팅하면서 말을 한 건 아니었다.
캐스팅을 도중에 멈추고 질문한 것이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나…?
“뭘 선택해야 하는지는 알겠어요?”
“어?”
“…기억 안 나요?”
그 말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태천이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미소를 짓는다.
그래. 저 말은 도희가 해야 어울린다.
나나 태천이가 하면 영 어색하다.
“증표를 지닌 자여. 선택하라. 이 아이는 무엇인가?”
“아. 그거.”
“뭘 선택해야 하는지 알겠어요?”
“으음….”
팔짱을 끼며 고민을 이어나갔다.
이무기가 무엇인지 선택하라니.
선택하라면 선택지를 주는 게 인지상정인데….
응…?
“…아. 알았다.”
그래서 선택지를 안 준 거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