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164
제165화
“알았다고요?”
도희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녀는 아직 내가 깨달은 걸 깨닫지 못했다.
아까 말한 대로, 선택을 권하려면 우선 선택지를 줘야 했다.
하지만 전대 세계수 씨는 나에게 선택지를 주지 않았다.
왜 주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단순하다.
“응. 선택지를 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안 준 거야.”
“네?”
“이 아이는 무엇인가…. 말 그대로 그 질문에 답하면 되는 일이었어.”
“뭐래. 설명이 전혀 안 됐다는 거 알지?”
“……!”
태천이가 눈을 찌푸린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거다.
반면, 도희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도희가 알면 됐다.
빙긋 웃으며 태천이를 놀렸다.
“리롄제도 아는 걸 한국인인 네가 모르면 어떡하냐.”
“뭐?”
“하긴. 네가 아는 것도 이상하긴 하다.”
“이게.”
태천이 주먹을 휘두른다.
진심 펀치가 아니었으므로 간단히 피할 수 있었다.
피하면서 도희를 바라봤다.
“얘기는 이걸로 끝. 도희야.”
“네?”
그녀의 지팡이에서 흰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캐스팅하고 있던 마법이 끝난 게 분명하다.
“이무기 앞까지 갈 방법, 떠올랐지?”
“네.”
“그럼 시작하자.”
“…….”
시작하자는 말에도 도희는 시작하지 않았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실행할 준비가 다 끝났는데도, 나를 걱정하느라 발을 더 내딛지 못하는 것이다.
언제쯤이면 저런 표정을 다시 안 보게 될 수 있을까.
한진환만큼 강해지면 안 볼 수 있으려나….
“괜찮아.”
“그 말을 태천 오라버니가 했으면 믿었을 텐데….”
“응?”
“2년 전에도 그렇게 말했던 거 기억하죠?”
“…….”
기억한다.
그날 일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내가 살면서 가장 잘한 짓인데.
자랑스러운 마음을 듬뿍 담아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아까 그리고 2년 전에 했던 말을 반복했다.
“괜찮아.”
“……하아.”
도희가 깊은 한숨을 내쉰다.
그 한숨에는 그러나 걱정이 담겨 있지 않았다.
착각인지도 모르지만, 답답해서 언짢던 마음이 풀린 듯 후련함이 느껴진다.
후련함은 곧이어 행동으로 이어졌다.
도희가 지팡이 끝에 모여 있던 흰빛을 태천이에게로 날려 보냈다.
파앙…!
이마에 닿은 흰빛이 곧 그의 온몸으로 퍼져 감쌌다.
태천이 은은하게 빛나는 제 몸을 내려다봤다.
“갑자기 웬 버프?”
“태천 오라버니.”
“응?”
제 몸을 훑어보던 태천이 고개를 들었다.
도희는 시선이 닿자마자 오른팔을 옆으로 뻗는다.
나와 태천의 시선은 저절로 도희가 팔을 뻗은 곳으로 옮겨졌다.
그곳에는 오로지 숲이 울창하게 펼쳐져 있었다.
“달려요.”
“어디까지?”
“끝까지요.”
“오케이.”
왜 달려야 하는데?
그런 질문은 하지 않는다.
태천이는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곧바로 도희가 가리킨 곳으로 달려갔다.
아니, 이유는 좀 듣고 가지….
저게 오빠야 부하야.
현역 군인도 한번 물어는 보겠다.
태천이처럼 부하가 아닌 나는 오빠로서 도희에게 물었다.
“태천이는 왜 달리게 한 거야?”
“…기억 안 나요?”
뭐지.
태천이한테 “기억 안 나?”라는 말을 들어서 기분 나빴나.
자꾸 기억 안 나냐고 묻네.
“이무기요.”
“이무기가 왜?”
“처음 마주쳤을 때 계속 태천 오라버니 바라봤잖아요.”
“아, 참. 그랬었지.”
이무기는 S급 헌터들을 앞에 두고서도 태천이만 바라봤었다.
심지어 리롄제가 마나를 끌어 올리기 전까지는 S급 헌터들은 관심 없다는 듯 거들떠보지도 않았었다.
지금이야 스미르노프와 싸우고 있어 태천이를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지만….
여유로운 상황이었다면 태천이를 향한 관심을 거두지 않았으리라.
“이무기는 현재 태천 오라버니에게 지대한 관심을 두고 있어요.”
“그렇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생각할 수 있는 건 두 가지.”
도희가 두 손가락을 펼쳤다.
“예전에 마주쳤던 기억 때문이거나.”
“이거나?”
“오라버니가 건네준 방패 때문이거나.”
“건네준 방패…. 멘테 말하는 거야?”
“네.”
“그게 왜?”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다.
도희는 그리 말할 줄 몰랐다는 듯 눈썹을 찌푸렸다.
갸웃거린 채로 가만히 있자, 도희는 설명을 시작했다.
답답해하면서도 설명해주는 게 우리 도희의 귀여운 점이다.
“그러니까아, 멘테는 전대 세계수의 솔방울로 만든 거잖아요. 이무기는 전대 세계수의 마법으로 보호받고 있고요.”
“아!”
“알겠어요?”
“응. 완벽히 이해했어.”
이무기는 전대 세계수 씨와 아는 사이일 터다.
설령 아는 사이가 아니라고 해도, 마법으로 보호받고 있는 만큼 한 번쯤 마주친 적은 분명히 있을 터였다.
그런 이무기였으니 전대 세계수의 솔방울로 만든 멘테를 지닌 태천은 관심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과연….
설명을 듣고 보니, 이무기가 태천이를 바라보던 게 이해가 가는걸.
“그래서 달리게 한 거예요. 이무기가 태천 오라버니를 쫓아갈 수 있도록.”
“쫓아갈 수 있게…?”
“네.”
“아~ 그렇구나. 완벽히 이해했어!”
따악.
손가락을 튕기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도희는 눈을 게슴츠레 떴다.
두 눈에는 의심이 담겨 있다.
그녀의 의심은 옳았다.
이무기가 태천이를 쫓아가게 하고 싶은 건 알겠다.
그런데 쫓아가게 해서 뭘 어쩌려는 걸까?
그 이유를 모르겠다.
더군다나….
“저 상황인데 쫓아갈 수 있긴 할까?”
이무기는 스미르노프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상황이 못 됐다.
버스트 모드를 쓰기 전과는 달리 싸움이 성립되고 있었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서로의 공격이 통하지 않은 채 공방이 지겹도록 이어졌다.
아마 저걸 시청하고 있는 시청자들은 지루함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이무기가 스미르노프를 무시하고 도망치기에도 무리가 있어 보인다.
스미르노프가 실드째로 이무기를 붙잡았었던 것처럼, 리롄제와 밀러가 이무기를 포박할 생각으로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못 쫓아가죠. 그래서 내가 도와줄 거예요.”
“도와준다고?”
“네.”
둥실….
도희가 곧바로 하늘로 떠올랐다.
그러고는 마법을 캐스팅한다.
도와줄 거라니….
대체 뭔 짓을 하려는 걸까.
[두근두근] [세계수 어린나무는 관리인 동생이 무엇을 할지 기대된다고 전합니다.]나도 기대되긴 하는데….
도희가 나와 같은 백 씨 성을 가진 아이라서 마음 한편엔 걱정스러운 마음도 있었다.
이상한 짓 하는 거 아닌지 몰라.
마음속을 기대와 걱정이 절반씩 양분하는 순간,
“빛의 성역…?”
도희에게서 거대한 빛기둥이 솟아올랐다.
하늘로 올라간 빛기둥은 순식간에 뇌운을 몰아냈다.
그와 동시에 눈부신 빛이 내려와 몸을 따스하게 감싼다.
[관리인 백도운 님이 빛의 성역 안에 있습니다.] [광합성 모드의 충전량이 증가합니다.] [광합성 에너지 91%….] [광합성 에너지 92%….] [광합성 에너지 93%….]“설마….”
빛의 성역.
그것은 광역 버프 스킬인 동시에 광역 디버프 스킬이다.
그녀가 동료로 인지한 이의 능력을 높이고, 적으로 인지한 이의 능력을 낮추는 식이다.
즉, 도희가 대상을 ‘어떻게 인지하느냐’에 따라 아군인지 적군인지가 결정된다.
그리고 도희는….
[어린나무가 어리둥절합니다.] [이무기의 힘이 정확히 2배 강력해졌다고 전합니다.] [반면, 관리인과 번개 마나 소유자를 제외한 인간들의 힘이 아주 조금 약해졌다고 전합니다.]이무기를 아군으로 인지한 동시에 S급 헌터들을 적으로 인지했다.
스스로 말한 대로, 이무기가 태천이를 쫓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서.
그래, 2배로 강해졌으니 확실히 도망칠 수는 있겠어.
[광합성 에너지 100%.] [어린나무의 모든 이파리에 빛과 번개가 채워졌습니다.] [그에 따라 백도운 님은 광합성 모드(리히텐베르크)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곧바로 광합성 모드를 사용하시겠습니까? (YES/NO)] [※주의! 사용 후 페널티가 발생합니다.]타이밍 좋고.
***
“대단합니다, 스미르노프! 이무기에게 쉴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계속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그리 말하면서 공철은 정하설을 바라봤다.
그의 얼굴은 썩 좋지 못했다.
스스로 말한 대로 화면 속 스미르노프는 이무기와 격렬하게 싸우고 있었다.
그러나 이 모습은 벌써 5분째 이어지고 있었다.
아무리 격렬한 싸움이라고 해도 5분을 넘어가게 되면 사람들은 지루함을 느끼게 된다.
– 실드 마법 언제 깨지는 겨?
– 깨지긴 해?
– 다른 사람들은 뭐하냐?
– 구경하고 있겠지, 뭐.
그가 걱정한 대로 지루함을 느끼는 시청자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대체 왜 리롄제와 밀러와 그위친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일까.
공철의 머릿속에 그런 의문이 떠올랐다.
정하설이 공철을 도와주려는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현재… 스미르노프는 일정한 포인트를 공격하고 있어요.”
“일정한 포인트…요? 저렇게 빨리 움직이는 이무기를 상대로 말입니까?”
“네. 1cm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한 포인트를 때리고 있어요.”
“허….”
– 미친…!
– 그게 가능함?
– 한 곳만 집중해서 치고 있다는 소리?
– 그런 짓을 대체 왜 함?
– 왜 하긴. 실드 부수려고 그러는 거지.
– 와, 무식하다고 해야 할지,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 대단한 거지. 저게 말이 되는 짓이냐?
– ㄹㅇ….
“역시 스미르노프다. 그 말밖에는 할 수가 없네요. 그야말로 신기에 가까운 기술이에요.”
“신기에 가까운 기술…. 네, 그 말씀이 맞네요. 저렇게 빠르게 움직이는 이무기를 상대로 똑같은 곳만 공격하는 건 스미르노프만이 할 수 있는…, 엇?”
“이건…!”
순간, 두 사람이 바라보던 화면이 밝아졌다.
어찌나 밝아졌는지, 마치 화면 바깥으로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만 같았다.
이어 화면이 바뀌었다.
스미르노프와 이무기의 싸움을 찍던 카메라가 돌아간 것이다.
화면엔 온통 하얀 여자가 허공에 떠 있었다.
그녀의 하얀 머리카락이 사방에 빛을 흩뿌리려는 듯 휘날렸다.
– 빛의 성역!
– 빛의 성역이다!
– 갑자기 왜 빛의 성역을?
– 답답했던 거 아님?
– 억, ㅇㅈ ㅋㅋ
– 아 일정한 포인트 때리는 거 언제까지 보고 있냐고 ㅋㅋㅋ 그냥 다 같이 부수라고 ㅋㅋ
– ㄹㅇㅋㅋ
“백도희 헌터가 전매특허 마법인 빛의 성역을 썼습니다.”
공철이 빙긋 웃으며 정하설을 바라봤다.
같은 것만 계속 반복되던 상황이 바뀌어 안심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모르는 분이 없는 스킬이죠?”
“네, 맞아요. 공철 씨가 말씀하신 대로기 때문에 스킬 설명은 쿨하게 생략할게요!”
– ㅋㅋㅋㅋㅋ
– 그럼, 우리나라에서 빛의 성역 모르면 간첩이지 ㅋㅋ
– 아재요, 아재 냄새나요. 간첩 없어진 지가 언젠데.
– 아뿔싸!
– 아뿔싸 ㅇㅈㄹ ㅋㅋ
– ㅋㅋㅋ
– ㅋㅋㅋㅋ
“아무래도 백도희 헌터가 이무기의 실드 마법이 생각보다 강력해 도와주기로 한 것 같죠?”
“네. 빛의 성역을 받게 됐으니, 분명 스미르노프는 이무기의 실드 마법을 금방 부술-.”
정하설은 말을 하다 말고 멈췄다.
그녀의 말이 끝나면 다음 말을 이어나가려던 공철도 눈을 휘둥그레 떴다.
방송사고와도 같은 일이 벌어졌지만, 시청자들은 아무도 그들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다.
시청자들도 자신들이 본 광경에 놀라고 있었다.
– 실화냐?
– 도망이라고…?
채팅이 더디게 올라왔다.
화면 속에서는 이무기가 줄행랑을 치고 있었다.
푸른 꼬리가 진흙탕 속 미꾸라지처럼 마구 팔딱였다.
– 와, 이무기가 방송할 줄 아네….
– 이해해주자. 빛의 성역이잖아. S급 헌터들이 2배로 강해진 거라고.
– 억 ㅋㅋㅋㅋㅋ
– 상상하니 바로 이해 가네 ㅋㅋ
– 개 끔찍해 ㅋㅋㅋㅋ
– 나 같아도 도망가겠다 ㅋㅋ
– 아무튼 빛의 성역 개사기 스킬이라니까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