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380
제381화
인면오공주가 서 있는 곳에 도달했다.
여전히 하늘을 날고 있던 김서준 일행이 날 내려다본다.
그중 채정연은 시선이 닿자마자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리더니 욕을 했다.
만나자마자 바로 욕을 하다니….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이해 못 할 건 아니지만, 나름 은인인데 좀 너무한 거 아닌가.
“어떻게 우리랑 비슷하게 도착하는 건데….”
채정연이 맥이 탁 풀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어깨에 둘러멘 아르카를 바라본다.
아르카는 여전히 수백 미터짜리 마나 칼날을 뿜어내고 있었다.
역시….
김서준 일행은 내가 게이트에 들어왔었다는 것과 다른 곳의 인면오공들을 사냥하고 왔다는 걸 알고 있었다.
딴 일을 하고 왔는데도 그들과 인면오공주 앞에 비슷하게 도착한 것이 불만인 모양이다.
그녀에게선 얼핏 자괴감도 느껴졌는데,
“좋은 아침입니다, 도운 씨.”
“안녕, 백 형!”
김서준과 황시열에게선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둘은 반갑게 인사를 전해왔고 황시열은 손까지 붕붕 휘둘러댔다.
채정연처럼 불만을 토로할 줄 알았더니?
반응 달라도 너무 달라서 당황스러울 정도다.
채정연도 나와 같은 기분을 느낀 얼굴로 두 사람을 흘겨본다.
그러고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나만 걱정인 거야?”라고 투덜거렸다.
“우리 제주도에서 보고 처음 보죠?”
“네. 그래도 도운 씨 활약은 계속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나도 그래요. 위버멘쉬. 요즘 잘나가던데?”
“하하. 백운천에 비할 바는 아니죠.”
그야 당연하지.
비교 대상이 우리 백운천이면 어떡해?
뭐, 그게 김서준의 야망이리라.
생각해 보니, 배수현에게 이곳에 온 이유로 ‘10대 길드 안에 들 거라는 의지 표명’이라고 말했었던가?
아예 마음에도 없는 말은 아닌 모양이다.
주목적은 아니지만, 그것 또한 포함된 거겠지.
“흐음….”
콧숨을 짧게 내쉬며 인면오공주를 바라본다.
지네의 몸뚱이에 미녀의 얼굴이 어울리지 않게 달려 있었다.
그 아름다운 얼굴엔 불안과 두려움이 담겼다.
주변에 기어 다니는 인면오공들은 내게 접근하고 싶지 않은 거북함만 있을 뿐 공포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는데….
인면오공주는 내가 압도적인 강자라는 걸 알아차린 것이 분명하다.
역시 보스 몬스터답군.
아니, 내게만 그러는 건 아닌가?
그것은 이따금 하늘에 있는 걱정스럽게 김서준도 올려다봤다.
「…….」
하긴….
인면오공주의 입장에선 하늘을 나는 김서준 일행 역시 껄끄러운 상대이리라.
함부로 부하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리지 못하고 나와 김서준 일행을 지켜보고 있는 것도 그런 원인일 터였다.
뭐….
그건 우리 인간들도 마찬가지였다.
“…….”
“…….”
“…하하하.”
“하하핫!”
나와 김저준은 서로를 마주 보며 웃었다.
이를 어쩐다….
차라리 삼파전으로 죽고 죽이는 싸움을 하는 거라면 대수롭지 않게 나섰을 거다.
하지만 이건 그런 싸움이 아니다.
두 헌터가 한 몬스터를 두고 어떻게 할지 결정하는 싸움이다.
“서준 씨. 양보해주지 않을래요?”
“죄송하지만 그럴 수는 없겠네요.”
“나 서준 씨 구해준 은인인데요?”
“공(公)과 사(私)는 구분해야죠.”
“허….”
공과 사라니.
참 명료한 사람이네.
[세계수 어린나무가 나뭇가지를 떨굽니다.] [관리인에게 안타까움을 전합니다.]사실, 새싹이의 계산으로는 내가 김서준 일행보다 먼저 인면오공주한테 도착할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계산에 따라 움직여보니 비슷하게 도착해 버렸다.
정확하게 거리를 따져보면 내가 아주 조금 더 멀리 떨어져 있다.
땅에 와글와글 기어 다니는 인면오공들을 상대하는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으니 차치해 두고.
새싹이의 계산이 틀린 이유는 인면오공주 탓이었다.
나와 김서준의 마나를 느끼고 부하들을 이끌고 자기 서식지에서 직접 나와버린 거다.
그렇다.
새싹이는 인면오공주가 움직일지도 모른다는 건 계산에 넣지 않았다.
[어린나무가 자신의 실수를 순순히 인정합니다.] [관리인에게 심심(甚深)한 사과를 전합니다.]뭘 또 심심한 사과까지.
실수에 일가견 있는 사람으로서 한마디 하자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
어떻게 늘 완벽하겠어.
[지금 상황에 할 말은 아니지만] [어린나무는 관리인이 실수에 일가견이 없었으면 한다고 바랍니다.]어허.
난 이해해줬는데 그러기야?
너무하네.
[…….] [어린나무는 관리인과 김서준 일행을 향한 시선을 느꼈습니다.]응?
지금 말 돌리는 거…는 아니네.
김서준도 게이트 입구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릴 향한 시선을 느낀 게 분명하다.
새싹이와 그가 느낀 이 시선은 분명 최희석 일행에 의한 것일 거다.
그의 파티에 있던 중년 여성 마법사가 천리안 계열의 마법을 쓴 것이겠지.
타이밍 한 번 적절하네.
그쪽도 새싹이처럼 인면오공주 앞에 도달할 시간을 계산한 모양이다.
김서준이 나를 보며 말했다.
“다행스러운 일이군요.”
“뭐가요?”
“저렇게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 말에 채정연과 황시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두 사람은 이 시선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나도 새싹이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몰랐을 거지만.
알아차린 김서준이 대단한 거다.
“도운 씨가 강압적으로 나오진 않겠어요.”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내가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러지 못할 거라고?”
“정정할게요. 최소한 우리 세 사람을 죽인 후 인면오공을 토벌하고 돌아가시진 않겠죠.”
“음….”
최희석 일행이 지켜보고 있건 단순히 강압적으로 나가는 건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죽이는 건 얘기가 달라진다.
김서준이 단순한 범죄자라면 모를까.
또는 최희석이 실시간으로 보고 있지 않다면 모를까.
물론, 나도 그도 알고 있다.
큰 문제라도 생기지 않는 한 내가 이런 데서 살인 따위를 저지를 리 없다는 걸.
굳이 저런 식으로 말을 한 건 자기 의사를 전달한 것뿐이다.
이번 인면오공주 토벌에 사활을 걸고 있다고.
독샘을 얻으러 온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인면오공주에게서 얻을만한 건 심장뿐이었다.
그마저도 다른 A+등급 몬스터에 비하면 질이 좋지 않았고.
괜히 안마도 게이트가 인기가 없는 게 아니다.
“모르겠네….”
“네?”
“서준 씨라면 다른 곳도 충분히 사냥할 수 있지 않아요?”
“뭐, 그렇죠.”
하지만 그는 이곳으로 왔다.
또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단순히 자존심 때문에 그럴 리는 없었다.
김서준이 그런 거에 목숨 거는 사람이었다면 처음 만났을 때 나와 싸우는 걸 쉽게 포기하지도 않았으리라.
다른 이유가 있는 거다.
“다만, 시간이 조금 걸리겠죠.”
그가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확실히 좋은 재료를 구할 수 있는 A+등급 게이트는 대형 길드가 관리하는 경우가 잦았으니 시간이 필요할 거다.
아무리 적게 걸려도 올해 안에는 사냥은커녕 진입도 하지 못할 터.
“지금 필요한 거군요?”
“…….”
그는 대꾸하지 않고 어깨만 으쓱였다.
물론,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위버멘쉬는 당장 A+등급 몬스터의 심장이 필요한 거다.
“잘됐네.”
“잘됐다고요?”
“난 인면오공주의 심장 필요 없거든요.”
“역시 그랬군요.”
“예상했나 보네요?”
“인면오공들을 사냥하고 오셨으니까요. 심장이 목적이었다면 굳이 다른 것들까지 사냥할 필요가 없어요.”
“훌륭한 통찰이네. 그럼, 내가 뭘 얻으러 왔는지도 알겠어요?”
“짐작해볼 뿐이죠. 도운 씨가 필요한 건….”
그러나 김서준은 말을 끝까지 맺지 않았다.
인면오공주 때문이다.
오랫동안 무시하고 대화를 나눈 탓일까?
놈은 이제 우리에게 공포가 아니라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그래.
이 정도면 오래 참았지.
“누가 처리할까요?”
“심장을 가져가야 하니, 위버멘쉬가 하는 게 여러모로 보기에 좋을 것 같네요.”
“고맙습니다.”
“별말씀을.”
“그럼 하겠습니다.”
그 말과 동시에 김서준이 오른팔에서 화염을 뿜어냈다.
어느새 돌처럼 변한 오른팔은 화염 골렘의 그것과 똑 닮아 있었다.
과연 염제의 전 제자.
화염에서 느껴지는 열기가 장난이 아니다.
그 열기에 휩싸이고 싶지 않은지 채정연은 더 높이 날아올랐다.
아마 두 사람은 김서준이 인면오공주를 상대하는 동안 다른 인면오공들을 상대하는 역할을 맡은 것 같다.
내 존재로 할 일이 사라졌지만.
그래도 두 사람 다 상관없다는 태도였는데, 채정연은 귀찮은 일 하지 않아서 좋고 황시열은 내가 사냥하는 걸 구경해서 좋은 모양이었다.
덕분에 마음 편하게 인면오공들을 사냥할 수 있었다.
뭐, 사냥이라고 해봐야 아르카를 한 번 휘두르면 끝났지만.
부우웅…!
길이가 길이인지라 아르카는 인면오공들을 베면서 김서준과 인면오공주도 지나쳐갔다.
몸이 절단 난 줄 알고 기겁하는 인면오공주와 달리 김서준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집중력 참 대단하네.
그때, 채정연이 내 옆에 날아와 착지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보다 열기가 약해진 것 같네.
“미친 괴물 새끼….”
“흠? 칭찬 고맙다?”
“칭찬 아니었거든! 욕이었거든!”
“그럼, 욕을 듣게 된 사람의 반응을 해줘도 되겠지?”
그러면서 아르카를 뒤로 당겼다.
마나 칼날을 뿜어내고 있는 아르카를 보고 채정연은 인면오공주처럼 기겁했다.
황시열을 붙들고 있지 않았다면 두 손을 마구 휘둘렀으리라.
“칭찬이었어! 칭찬이었으니까, 그거 내려놔!”
“칭찬 확실해?”
“확, 확실하고말고!”
그녀의 얼굴에서 비굴함이 내비쳤다.
확실하게 칭찬이 아니었군.
채정연한테 칭찬받아봐야 쓸데도 없으니 별 상관없지만.
아르카를 다시 어깨에 둘러메고 세계수의 뿌리를 써서 인면오공의 사체들을 한데 모았다.
“휴….”
“킥….”
“넌 웃지 마!”
“누님. 백 형한테 뺨 맞고 나한테 화풀이야?”
“닥쳐!”
두 사람의 시답잖은 소릴 들으며 김서준을 구경했다.
그가 뿜어낸 화염이 어느새 인면오공주의 몸을 뒤덮었다.
그런데….
“……?”
열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바로 앞에서 4m 가까이 되는 땔감이 불타오르고 있는데도.
어떻게 된 거지?
“대단하지?”
“뭐냐, 이거? 왜 안 뜨거워?”
“나도 잘은 몰라. 서준 씨 말로는 열기를 제어한 거래.”
“열기를? 왜 그런 짓을 하는데?”
“안 그러면 피해가 막심하니까. 주변은 당연하고 자기 자신도.”
“아.”
무슨 소린지 알겠다.
큰불은 옆에 있는 것만으로 영향을 끼치는 법.
그건 시전하는 사람도 마찬가지.
우채연도 그랬다.
몸속에 있는 음기가 너무 강해 마나의 순환을 방해했었다.
“그리고…. 이건 다른 소리인데 완벽하게 제어해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나 봐.”
“다음 단계?”
“나도 잘은 몰라.”
채정연은 어깨를 으쓱였다.
모르는 척이 아니라 진짜 모르는 것 같았다.
그녀와 달리 황시열은 뭔가 아는 눈치다.
다음 단계, 라….
기분 탓인가?
어쩐지 예전에 들어본 적이 있는 기분이 드는데.
[어린나무는 나뭇가지를 가로젓습니다.] [화염 마법의 다음 단계 같은 말은 들은 적이 없다고 전합니다.]음….
역시 그렇지?
그냥 착각한 건가 봐.
“…난 당연히 그쪽도 제어하고 있는 건 줄 알았는데.”
“응?”
“그거 말이야.”
채정연은 아르카를 가리켰다.
아르카는 여전히 마나 칼날을 뿜어내고 있었다.
게이트를 푸른 빛으로 비출 만큼 강렬하게.
“아닌데. 그냥 내뿜은 거야.”
“말도 안 돼.”
“진짜야, 백 형?”
두 사람은 경악하며 아르카를 바라봤다.
수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그것을 아무런 제어도 하지 않고 있다는 말을 믿을 수 없는 듯했다.
사실, 지금까지 힘을 제어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마나 칼날을 뽑아낸 지금도.
솔라빔을 연달아 쏴댔던 어제도.
왜냐하면….
[어린나무는 나뭇가지를 치켜듭니다.] [당연하다고 전합니다.] [세계수 관리인의 마나는 세계수의 마나.] [강하게 뿜어냈을 경우 건강해지면 건강해졌지 피해를 받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물론, 부정한 존재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입니다.]그렇다.
내가 마나를 뿜어냈을 때 피해를 받는다?
그건 절대 일반적인 존재가 아니다.
마족이거나.
스켈레톤이거나.
뱀파이어거나.
혹은 인간 머리가 달린 지네이거나.
“아, 끝났다!”
황시열의 말에 김서준을 바라봤다.
어느새 4m짜리 땔감은 타오르고 타올라 그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부분 변태만으로 A+등급 몬스터를 저런 꼴로 만들다니.
몸 전체를 변태할 경우 화력이 얼마나 올라갈지 궁금한걸.
“기다렸죠?”
그의 양손엔 각각 두 기관이 들려 있었다.
인면오공주의 심장과 독샘이다.
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