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381
제382화
“지금 심장과 독샘이라고 하셨습니까?”
– 그래. 서준이 인면오공주의 전신을 불태우고 딱 그 두 가지만 남기더군.
“으음….”
“이해가 가지 않는군그래.”
황정희 장관이 끼어들었다.
배수현은 장관실에서 최희석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A+급 헌터인 백도운과 한창 유명세를 얻고 있는 위버멘쉬 길드가 마찰을 빚게 될지도 몰랐던 상황.
장관실에서 두 사람이 함께 최희석의 보고를 기다리는 건 당연했다.
“인면오공주의 심장은 쓸 데가 있으니 이해가 가. 아슬아슬하지만 영약을 만들 수 있는 수준도 되고.”
“네. 등급이 깡패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물건이죠.”
“그런데 독샘? 독샘이라고? 그걸 대체 어디다 써?”
– 나야 알 수 없지요. 그저 서준이 도운에게 건네는 걸 보고 전달하는 것뿐.
“허….”
– 도운이 사냥한 인면오공의 사체를 전부 챙겨간 것도 독샘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흐음….”
그 말에 황 장관은 고민에 빠졌다.
정부의 감정사들과 연구원들이 조사한 바로 인면오공의 독샘은 굳이 안마도 게이트까지 내려가 사냥해 얻을 만큼 쓸만한 재료가 아니었다.
A등급 몬스터의 독샘이라는 이름답게 독성이 너무 강한 탓이다.
강한 독은 그 자체로도 사용처가 있긴 했으나 세상엔 지네의 독보다 훨씬 강하고 유용한 독이 많았다.
또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독샘을 이용하려면 일단 쓸 수 있을 만큼 독성을 없애야 했는데, 그 처리 작업은 쉬운 편이 절대로 아니었다.
조심스럽게 다루지 않으면 독샘 자체가 뭉개지기 일쑤였던 탓에 신경을 쓰며 집중해야 했다.
그런 이유로 인면오공의 독샘을 쓸 바엔 다른 몬스터의 독샘을 얻는 게 나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떠오르지 않는군.”
“저도요.”
“후…. 백도운, 아니. 유재이는 대체 왜 독샘을 구해오라고 시킨 걸까.”
– 음? 그야 장비를 만들기 위해서 아닙니까. 그녀는 대장장이이니.
“…….”
“…….”
– …아닙니까?
그거야 당연한 거고…!
황 장관과 배수현은 소리치고 싶은 마음을 참았다.
최희석은 경험이 많고 노련한 헌터였다.
그 탓에 짧고 단순하게 생각한 후 결정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게이트 안에서 오래 생각하는 건 죽겠다는 거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장관님은 유재이가 무슨 장비를 만들려고 하는 것일지 궁금한 겁니다.”
– 아아….
“독샘…. 왜 하필 인면오공의 독샘일까…?”
– 글쎄요. 잘은 모르겠지만, 엄청난 무기를 만들 것 같아 기대되는군요.
“무기? 자네 지금 무기라고 생각했나? 왜? 도운이 넌지시 전한 말이라도 있었어?”
– 그런 건 아니고…. 유재이는 도운의 아르카를 제작한 대장장이잖습니까. 그래서 막연하게 무기를 제작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아….”
황 장관은 좋다 말았다는 듯 한숨을 내뱉었다.
후배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는 최희석은 이런 말 저런 말을 듣는 경우가 잦았다.
그 이런 말 저런 말에 내포한 정보의 가치를 알지 못한다는 게 문제였지만.
이번에도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닌 모양이다.
배수현이 알 수 없는 일에 고민을 쏟는 것을 끝낼 요량으로 화제를 바꿨다.
“…참, 허동휘를 데리고 가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번 일은 분명 큰 도움이 됐을 겁니다.”
– 도움이 되긴. 중재에 나서지도 않았고, 멀리 떨어져서 구경한 게 다인데.
“정확히 그게 필요했거든요.”
– 음?
“허동휘는 지금까지 말 그대로 차원이 다른 헌터의 본 실력을 본 적이 없습니다. 젊은 데다 이제 막 전역하고 헌터가 된 지라….”
– 아아. 강한 헌터가 싸우는 모습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된다는 말이로군.
“바로 그겁니다.”
– 하지만… 배 국장 뜻대로 되진 않았을 것 같네.
“네?”
– 하하….
스마트폰에서 최희석의 허탈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그의 모습이 저절로 떠올랐다.
왜 저러지?
배수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 오늘 도운이 안마도 게이트에서 한 일은 수백 미터에 달하는 마나 칼날을 뿜어내 인면오공을 베어낸 일이 다네.
“아. 괜찮습니다. 그것도 이미 상정했으니까요.”
– 그래?
“선배님도 아시잖아요. 압도적인 힘은 보는 것만으로 여러 공부가 된다는 것을.”
– 아하.
최희석은 알겠다는 듯 탄성을 흘렸다.
실제로 그도 한진환을 맞닥뜨리고 변화한 인물들을 직접 본 적이 있었다.
머릿속에 당장 떠오르는 이들만 해도 셋이나 된다.
윤건, 최동훈, 서지혁….
한진환과 같은 세대인 그들은 한진환과 마주하고 나서 인생이 뒤집혔다.
윤건은 한진환을 쫓기 위해 제 인생을 바쳤고, 최동훈은 선을 그어 포기했으며, 서지혁은 열등감에 타락하고 말았다.
그런 한진환과 비견되는… 아니.
훨씬 더 재능이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 도운을 마주한 허동휘는 어떤 기분을 느끼고 있을까.
“선배님이 걱정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자기애가 워낙 긍정적으로 강한 사람이라서요.”
– 자기애?
“네.”
– 으음…. 아무튼, 동휘 군은 괜찮을 거라는 거지?
“그렇습니다. 모두 최희석 선배님 덕분입니다.”
– 하하. 내가 한 게 뭐 있다고.
“…….”
배수현은 빙긋 웃었다.
그녀 또한 한진환의 압도적인 실력과 재능을 보고 변화한 사람들을 안다.
한진환을 신경 쓰다 삶이 어떻게 변해버렸는지도.
하지만 개중에는 변화하지 않고 오롯이 서는 사람도 있었다.
그게 바로 최희석이다.
자신과 한진환의 차이를 순순히 인정하고 다른 삶을 사는 사람.
그런 사람과 함께 서 있다 보면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는 법이었다.
“…그래. 백도운과 김서준은 지금 뭘 하고 있지?”
– 서울로 돌아갔습니다.
“둘 다?”
– 네. 서두르는 게 꼭 시간에 쫓기는 사람처럼 보이더군요.
“흠…?”
– 뭐, 유재이를 빨리 보고 싶었나 보지요.
최희석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 말마따나 도운은 지금 백운천의 해체소에 유재이와 함께 있었다.
안타깝게도 단둘이 있지는 않았다.
***
척, 척, 척….
해체소 한쪽에 인면오공의 사체를 차곡차곡 쌓았다.
그것을 보고 해체업자 아저씨들이 나를 째려봤다.
마치 “백도운 너 이 녀석, 우리를 죽이려는 게 목적이로구나!”라고 묻는 것만 같았다.
설마 내가 그러려고.
오해는 풀기 어려운 법이니, 일단 옆에 있는 유재이에게 눈 화살을 돌려야겠다.
“얘가 많이 잡아 오라고 시켰어요. 다 얘 때문이에요.”
“야, 너…!”
유재이가 화들짝 놀라 날 쳐다봤다.
물론 오해를 풀어야 했으니 날 보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황급히 아저씨들을 돌아보고는 팔로 X자를 그리면서 부정했다.
“아니에요! 난 얘한테 그런 말-”
“했잖아. 많이 필요하다고. 거짓말은 나쁜 거야, 재이야.”
“했지. 했지만! 이렇게 많이 잡아 오라고 하지는 않았어요!”
“후후….”
안타깝네, 유재이.
난 아저씨들에게 몬스터 해체 작업을 직접 가르침 받았어.
백운천에 해체업자와 직접 계약을 맺자고 제안한 것도 나고, 아저씨들을 데려온 것도 나야.
그 덕분에 나와 아저씨들은 1년을 넘게 함께 일했고.
뿐인가?
전명환 때문에 사선까지 함께 넘은 사이.
그렇기에 나와 아저씨들 사이의 우정은,
“웃기고 있네!”
“우리 재이가 그랬을 리 없어!”
“맞아, 맞아!”
“백 팀장, 또 자네가 생각 없이 일을 저질렀겠지!”
“암! 그렇고말고!”
없었다.
아주 말끔하게.
눈이 녹았을 때의 흔적만큼도.
어떻게 한 명도 날 안 믿을 수가 있지?
“다들 너무한 거 아니에요?”
“너무한 건 백 팀장이지!”
“내가 뭘요?”
“이것들을 언제 다 해체하냐고! 대체 몇 마리야?”
“1453마리요. 아. 인면오공주 제외한 숫자예요.”
“미친…. 천사백…?”
아저씨들이 말문을 막힌 듯 인면오공의 사체들을 바라봤다.
한쪽 벽을 가득 채운 그것들의 숫자는 500체.
인벤토리에는 아직 두 번 더 비울 분량이 남아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아저씨들이 진저리치는 모습을 보면서 다른 쪽으로 걸어갔다.
인벤토리에 있는 나머지 것들도 비워내기 위해서다.
“근데 왜 하필 인면오공이야?”
“독이 강해서 건드리기도 쉽지 않은 놈인데!”
“독만 강하면 다행이게? 독샘 그거 조심스럽게 다루지 않으면 다 뭉개져 버려서 쓸 수도 없어!”
아저씨들이 불평불만을 쏟아냈다.
이번엔 진짜 내 잘못이 아니다.
인면오공을 지목한 건 내가 아니었으니까.
“그건-”
“죄송해요. 제가 필요하다고 했어요.”
“아, 그런 겨?”
“필요한 거면 어쩔 수 없지.”
“그럼, 그럼. 대장장이가 필요한 재료 구해오라는 게 뭐 문젠가.”
…뭔데.
유재이를 향해서는 단 한 마디의 불평도 없는 이 모습은.
그러고 보니, 아까 이 아저씨들 ‘우리 재이’라고 말했었지.
그녀도 답지 않게 공손하게 굴고 있고….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래?
[세계수 어린나무가 사뭇 진지하게 관리인을 바라봅니다.] [이어 관리인이게 지난 삶을 반추해보는 것은 어떤지 심각하게 제안합니다.] [함께 보낸 시간은 관리인 쪽이 분명히 더 길 텐데, 어째서 저 인간들이 관리인보다 유재이를 소중히 대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전합니다.]그러게나 말이다.
우리가 함께해온 시간은 대체 어떻게 된 걸까.
[……,] [어린나무가 나뭇가지를 가로젓습니다.] [거짓말이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사실, 알 것 같다고 전합니다.]새싹아.
네가 더 나빠.
“아, 참. 독 걱정은 하지 마세요.”
“으잉? 인면오공을 해체하는데 어떻게 독 걱정을 안 해?”
“독은 이 인간이 깨끗이 정화할 거거든요. 그러면 다들 작업하실 때 편하실 테니까.”
대꾸하면서 내 등을 친다.
팡!
등에선 생각보다 좋은 소리가 났다.
“백 팀장이?”
“어떻게…?”
아저씨들이 물끄러미 나를 쳐다봤다.
그리 묻는다면 가르쳐드리는 것이 인지상정…!
-이지만, 사실 별다른 건 없었다.
해체소 중심에 서서 인면오공을 향해 강렬하게 마나를 뿜어내면 그만이었다.
그저 A등급 몬스터의 독을 정화하는 것뿐이라면 세계수의 뿌리를 쓸 것도 없다.
물론, 세계수의 뿌리를 쓰는 쪽이 더 확실하기는 한데….
저 많은 걸 언제 다 하고 있어?
반장 아저씨가 눈을 찌푸리며 물었다.
“백 팀장? 지금 뭐 해?”
“뭐하긴요. 정화하고 있잖아요.”
“정화라니…. 가만히 서서 마나를 뿜어낸다고 정화가 될 리가….”
휙.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리듯 검지로 인면오공을 가리켰다.
반장 아저씨는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푸른 마나에 닿아 독기가 정화되어가는 인면오공의 사체들이 보였다.
“…있네? 저게 왜 되지?”
반장 아저씨가 당황하더니 인면오공을 향해 다가갔다.
다른 아저씨들도 그를 따랐다.
가까이 다가간 그들은 동시에 마스크를 벗더니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훕.
미리 말을 맞춘 사람들처럼 동시에 숨을 멈춘다.
그렇게 1초, 2초, 3초….
“괜찮…나?”
“괜찮은… 거 같은데?”
“괜찮네!”
의심이 긴가민가한 상태로 바뀌고, 이어 확신으로 바뀌었다.
인면오공이 깨끗이 정화됐음을 깨달은 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손에 끼고 있던 두꺼운 장갑을 벗었다.
그러고는 맨손으로 덥석덥석 만지며 살펴보기 시작했다.
어째 장난감을 갖게 된 아이 같아 보이네.
해체업자들이라고 해도 독이 있는 A등급 몬스터를 맨손으로 만지는 경우는 별로 없으니 그럴 만도 한가?
“상태 어때요?”
“깨끗해. 백 팀장, 대체 어떻게 한 거야?”
“어떻게 하긴요. 마나 뿜어내서 정화했잖아요.”
“하하…! 말해 줄 생각 없다 이거로군.”
아저씨들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사실대로 말했는데 믿지를 못하네.
“반장님. 얼마나 걸릴 것 같아요?”
“음…. 가장 문제가 되던 독이 없어졌으니, 오늘 안에 300구 정도는 끝낼 수 있을 것 같구나.”
“잘됐네요. 그 정도면 충분해요! 150구 정도만 빠르게 작업해서 보내주실 수 있나요?”
“그럼. 우리 재이 부탁인데 당연하지. 그렇지, 다들!”
“오!”
아저씨들은 주먹을 쥐며 들어 올렸다.
그러니까, 언제부터 우리 재이가 된 건데.
재이도 답지 않게 아저씨들한테 공손하게 구는 것 같고….
“그런데 재이야. 대체 뭘 만들려고 독샘이 이렇게 많이 필요한 거니?”
“아. 아르카 Ver.2 만들 거예요.”
“아르카 Ver.2?”
“네.”
“그러니까… 마나 칼날을 뿜어내는, 백 팀장이 들고 다니는 그거?”
“네.”
“……?”
아저씨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인면오공의 독샘으로?
얼굴에 그런 의문이 떠올라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르카를 제작하는데 인면오공의 독샘이 어떻게 사용될 것인지 감도 잡히지 않는 것이리라.
사실, 나도 그렇다.
인면오공의 독샘을 대체 어떻게 쓰려는 걸까…?
***
[A등급 인면오공의 독샘] [인면오공은 원래 독을 생성하지 못한다.] [대신 다른 독성이 있는 생물을 먹고 독을 뽑아내어 저장해둘 수 있다.] [그렇게 저장한 독은 더 강한 독으로 가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