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500
제502화
베르동 협곡은 밤인데도 한낮처럼 밝았다.
1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 파티를 하고 있어 활기차기도 했다.
이곳이 오늘처럼 생기가 가득한 적은 아마 없지 않았을까 싶다.
S등급 게이트는 그 존재만으로 인근 분위기를 가라앉게 하는 요소였으니까.
그때, 유재이가 내게로 다가왔다.
그녀는 평소와 똑같이 캐주얼한 차림을 하고 있었다.
사실 파티라고 해도 차려입은 사람은 얼마 없었다.
분위기를 내고 싶은 몇몇 사람만 차려입은 정도였다.
재이가 엄지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뉴스에서, 당신이 저 블랙 드래곤을 토벌하는데 핵심이 됐었다던데….”
현재 베르동 협곡의 하늘엔 블랙 드래곤의 사체가 둥실둥실 떠다녔다.
밀러의 마법으로 사체를 보존 처리한 뒤 전시한 것이다.
죽은 존재에 대한 경의를 찾아볼 수 없는 야만적인 모습이었으나….
알게 뭔가?
마족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았다는 이유로 분풀이로 인류를 멸망시키려고 한 놈인데.
구경거리로 전락하는 것은 죽은 놈이 마땅히 감수해야 할 일이다.
“금방 왔네?”
“헌터 협회에서 마중 나왔더라고. 워프 게이트도 태워줬고.”
“그랬군. 수정 씨는?”
“이자벨 성녀님한테. 전용 버프 포션 복용했다며? 그거 어땠는지 물어보고 싶은 것 같아.”
“아항….”
고개를 끄덕이며 재이를 바라본다.
오늘 파티엔 토벌대원들과 협회 직원들 말고 다른 사람들도 초대됐다.
바로 이번 토벌에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들이었는데, 당연히 유재이와 홍수정은 초대 영순위였다.
헤미스 캐논을 제작한 데다가 온갖 종류의 최상급 포션을 제조해 줬으니 영순위가 아닐 수 없었다.
아.
그리고 앨릭스 협회장은 생각지도 못한 이들에게 초대장을 보냈다.
평양 던전의 레드 드래곤과 태평양 던전의 그린 드래곤이 바로 그 초대장의 주인공이다.
말할 것도 없이 그들은 참가하지 않았다.
올 리가 있나.
도와주지 않겠다고 시치미 떼고는 뒤에서 몰래 도와준 양반들인데.
털썩.
그녀가 내 옆에 앉으며 물었다.
“왜 이런 데 혼자 떨어져 있는 거야?”
“정말로 몰라서 물어보는 거?”
사람들이 활기차게 즐기는 파티, 의 중심에 있는 백도운.
하하….
스스로 생각해도 정말 어울리지 않는 문장이었기에 실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재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하여간 성격 참 이상하다니까.”
“네가….”
“응?”
“…….”
휴우….
내 입이지만, 참 방정맞다니까.
하마터면 “네가 할 말이야?”라고 말할 뻔했네.
“내가 뭐?”
그녀가 상체를 살짝 숙여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며 묻는다.
아마도 시원스럽게 뻗은 눈썹 때문일 것이다.
내 입가에 미소가 절로 피어오르는 것은.
흠, 흠.
미소를 조심스럽게 거두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흥. 아무것도 아니긴.”
그녀는 내가 말하려고 했던 말을 알아차린 듯 콧방귀를 뀌었다.
하긴, 뭐….
아예 입을 다물고 있었으면 모를까, “네가…”라고 말해버렸으니 눈치챌 만도 하다.
톡.
재이는 허공에 올려놓듯이 팔을 뻗었다.
길고 가는 집게손가락 끝이 한창 생명감이 넘쳐흐르는 파티의 한가운데를 향했다.
그곳에는,
“세계수를 좀 본받는 게 어때?”
어린나무 형태로 모습을 바꾼 우리 새싹이가 서 있었다.
푸른빛을 마구 발산하면서.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흐뭇하게 치켜듭니다.]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흐뭇하게 치켜듭니다.]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흐뭇….]그렇다.
이 파티는 지금 우리 새싹이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중이었다.
마치 수학여행에서 모닥불을 피워 놓고 얘기하고 춤추고 노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수학여행이 아니기에 새싹이 주변엔 그저 놀고먹는 사람들만 있지는 않았다.
밀러를 필두로 그녀의 학생들과 교황청 사제들이 새싹이를 자세히 관찰하고 탐구하고 있었다.
예의 있는 지성인들답게 따로 경고하지 않았는데도 함부로 새싹이 몸을 건드리는 사람들은 없었다.
“세계수는 파티의 중심에 있는데, 그 관리인인 당신은 파티 언저리에 덩그러니 혼자 있고…. 이래도 괜찮나 몰라.”
“안 괜찮을 건 뭔데?”
“글쎄?”
으쓱.
재이는 히죽 웃는 낯으로 어깨를 올린다.
참 대단하지.
저 얄미운 표정이 사랑스러울 수 있다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건 내 배려거든?”
“뭐? 혼자 떨어져 있는 게 어떻게 배려야?”
“생각해 봐. 내가 저기 끼어들어서 몇 마디 하는 순간 파티 분위기는 싸해질걸?”
“앗, 으음….”
재이가 탄식하더니 신음을 작게 흘렸다.
아마 그녀의 작은 머릿속엔 내 말로 인해 분위기가 착 가라앉게 된 파티의 모습이 떠올랐을 테지.
“즐겁고 신나고 기뻐야 할 날엔 그럴 수 있게 내버려 두는 게 좋지 않겠어?”
“…그냥 당신이 입을 조심하면 되는 일 아니야?”
그야말로 정론이었다.
스스로 문제를 알고 있으니 그녀의 말대로 조심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생각하지 못한 문제가 있었다.
바로 그 이유로 인해서 리롄제도 파티에 참석하지 않은 거였다.
그것은 바로….
“내 입은 이 검지랑 유사한 점이 아주 많아서 말이야.”
까딱까딱.
오른손 검지를 허공에서 위아래로 두어 번 움직였다.
알만한 사람들은 알 텐데, 이 녀석은 잠을 잘 때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려대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런 녀석과 유사한 점이 많은 입이라면, 무엇을 뜻하겠는가?
당연히 제멋대로 움직인다는 뜻이었다.
“어휴. 그게 자랑이야?”
내가 말하고자 한 바를 단박에 알아차린 재이가 투덜거렸다.
순수하게 사실만을 전달한 거야.
평소라면 반사적으로 그리 대꾸했을 입이 가만히 있었다.
아무렇게나 마구 움직이는데 일가견이 있는 놈이 얌전하게 굴고 있다는 걸, 과연 재이는 알까.
“난 괜찮으니까 너라도 가서 놀아.”
“하, 하, 하.”
그녀가 스타카토로 웃었다.
하긴….
그러고 보면 재이도 저런 데 끼어서 신나게 놀 성격은 못됐다.
내가 없었다거나 홍수정이 함께 오지 않았다면 초대받았다고 한들 참가하지 않았겠지.
아까 재이가 했던 말을 그대로 따라 했다.
“친구인 수정 씨를 좀 본받는 게 어때?”
이자벨 성녀와의 대화가 벌써 끝난 것인지 홍수정은 임페일과 둘이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임페일의 술잔에 담긴 술이 새빨간 것을 보니, 아무래도 적맥을 들고 온 모양이다.
무기도 함께 있었으면 좋았겠는걸.
“…그런데 무기 씨는 괜찮은 거 맞지?”
재이는 자연스럽게 말을 돌렸다.
마침 나와 같은 생각을 했던 모양인지, 무기에 관해 물었다.
현재 무기는 어느 호텔 옥상에서 블랙 드래곤을 죽이고 얻은 순수하고 완전한 마나를 여의주에 열심히 담고 있었다.
“다친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다행이다. 뉴스에서 쉬쉬하길래 좀 걱정했었어.”
“그냥, 이따금 제어하지 못한 마나가 벼락으로 뿜어져 나와서 함께할 수가 없을 뿐이야.”
“…뭐라구?”
“그러니까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어.”
“…….”
재이가 눈을 살짝 찌푸렸다.
내 말을 듣고 나니 더욱더 걱정을 안 할 수 없게 된 것 같다.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말했다.
“…그럼, 백운천 옥상에 있는 ‘아스트라페’ 옆에 데려다주는 게 좋지 않아?”
“원래는 그러려고 했었지.”
“그런데 왜 안 그랬어?”
왜 그랬냐고?
그야….
“그런데…. 블랙 드래곤의 마나를 전부 흡수해서 받아들이고 있는 거라면, 폭주할 가능성도 있는 거 아니에요?”
-라는, 도희의 말에 바로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 말대로 폭주할 가능성이 있는 무기를 서울 한복판에 데려다 놓을 수는 없었다.
아스트라페가 있으니 별문제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것보다는 나와 함께 있는 편이 확실하게 안전했고 말이다.
하지만 에둘러 대답했다.
“…앨릭스 협회장이 무기한테 좋은 선물을 줬거든.”
사실대로 말해서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던 탓이다.
무기가 드래곤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게 하고 싶지도 않았고.
재이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검고 긴 머리가 어깨를 타고 흘러내렸다.
“선물?”
“방석 줬어. 그런데, 번개를 흡수하는 성질이 있는.”
“헤에….”
재이가 눈을 빛냈다.
누가 대장장이 아니랄까 봐.
흥미가 당기는 모양이다.
“방석이라…. 재미있는 사람이네. 왜 그런 걸 갖고 다니는… 앗.”
그녀는 깨달았는지 “앗” 소리를 냈다.
번개를 흡수하는 방석….
앨릭스 협회장이 그런 걸 갖고 다니는 이유는 사실 뻔했다.
말하던 도중 깨달을 만큼.
“…구경해볼래?”
“어?”
“방석 말이야.”
“그러고 싶기는 한데…. 괜찮아? 당신 여기 있어야 하는 거 아냐?”
그러면서 재이는 새싹이를 가리켰다.
소환한 세계수와 함께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는 거다.
거리가 멀어지면 새싹이의 소환이 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괜한 걱정을 다 하는군.
“그리고 당신은 승리의 주역이잖아.”
“뭐, 얼굴 한 번 보였으면 됐지.”
승리의 주역이라고 해봤자….
같은 공간에 있기만 할 뿐, 함께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었다.
앞서 말한 대로 얼굴 한 번 보였으니 됐다.
파티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방해만 될 테고.
또 성격상 더 있고 싶지도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재이랑 단둘이 있는 편이 더….
흠, 흠!
“갈까? 구경하러.”
자리에서 일어난 뒤 재이에게 손을 뻗었다.
그녀는 내 손을 붙잡는 대신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왜 그래?”
“…아무것도 아냐.”
그리 대답하며, 재이는 내 손을 잡고 일어났다.
그런데 기분 탓인가?
어쩐지 일어난 재이의 귓가가 살짝 붉어진 듯했다.
뭐, 아마….
내 귓가도 별반 다르지 않겠지.
***
끼익….
호텔 옥상으로 나오니, 난간을 짚고 선 앨릭스 협회장이 보였다.
문소리를 들었기 때문일까.
내가 올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
하늘에 떠다니는 블랙 드래곤의 사체를 올려다보던 그가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음. 씻고 나오는 길인가?”
“…….”
“후후후….”
“여기까지는 왜 온 겁니까?”
능글맞은 웃음소리를 못 들은 척 무시하고 물었다.
그 옆에 서서 내려다보니, 파티는 한창 진행 중이었다.
새싹이도 여전히 푸른빛을 마구 발산하며 즐거워하고 있었고.
“파티나 더 즐기시지.”
“하하. 저런 데 껴서 환영받을 나이는 한참 지났거든.”
“하긴. 그렇겠네요.”
“…….”
앨릭스 협회장이 시무룩해져서는 고개를 떨군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양반이 어울리지 않게 왜 저래.
그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런 건 좀 부정해주게….”
“부정한다고 현실이 달라집니까?”
“큭….”
웃음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가 입에서 흘러나왔다.
아무 반응도 하지 않고 잠자코 바라보자, 이내 쑥스러운 듯 그가 헛기침한 후 말을 이었다.
“어흠! 흠! 사실, 말해 줄 것이 있어 찾아왔네.”
“뭔데요?”
별일 아니기만 해봐.
깨끗이 씻었는데 밖으로 나오게 한 대가를 치러줄 테다.
앨릭스 협회장이 두꺼운 팔로 팔짱을 끼며 말했다.
현재 본인이 진지하다는 걸 나타내고 싶었던 것 같은데….
근육으로 꽉 들어찬 두 팔로 팔짱을 낀 모습은 곧 터질 것 같아서 웃겼다.
“크라우드에 관해서네.”
“걔넨 왜요?”
“원이라고 했던가…. 그놈이 불꽃을 뿜어내는 륜을 소환했었잖나.”
“그랬죠.”
내 기대를 박살 낸 나쁜 놈.
나중에 꼭 그 륜에 매달아 몸까지 돌아가게 만들어줘야지.
“그 륜을, 난 예전에 본 적이 있다네.”
“어라? 예전에 그놈과 싸운 적이 있다는 소립니까?”
“그건 아니네.”
“……?”
“으음….”
왜인지 앨릭스 협회장은 말하기를 꺼렸다.
말하고 싶지 않은 사실을 말해야 하는 사람 같아 보인달까.
대체 그 륜을 어디서 봤길래 저러는 걸까.
“그 륜은….”
“륜은?”
“입적하신 ‘제바달다(提婆達多)’ 선사께서 다루시던 걸세.”
“제바달다…?”
“살아생전에 ‘생불’이라고 더 불리셨지.”
아…!
생불이라고 하니 알겠다.
한 20년 전쯤이었던가?
던전을 소멸시키려고 삼천 배를 한 적이 있는, 티벳 고승의 이름이다.
그런데….
그 스님이 다루던 륜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