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51
제51화
유재이에게 부탁해 반지 하나를 제작했다.
세계수 마나가 담긴 돌멩이를 가공한 것으로, 급하게 만드느라 성능은 그리 좋지 않다.
마법을 공격하는 원래 성질과 힘을 조금 올려 주는 정도다.
그녀는 다른 성능을 더 추가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내가 그 정도면 족하다고 말했다.
반지를 제작한 건 신체 능력을 향상하는 패시브를 유지하는 게 목적이었다.
그 후 밤까지 남은 시간을 허투루 보내기 싫어 수정 공방을 찾았다.
차에서 내리고 초록색 철문을 바로 두드렸다.
철문 옆에 초인종이 있었지만 누르지 않았다.
저번의 경험을 살리자면 초인종은 눌러봤자 쓸모없는 짓이었다.
“홍수정 씨, 홍수정 씨!”
“…다!”
이름까지 부르며 두드린 후에야 홍수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더니 저번과 똑같은 상황이 펼쳐졌다.
우당탕 책더미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왔고, “아이, 귀찮게!” 신경질 부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청소하지 않은 건 본인이다.
책더미에 신경질 내 봤자 달라지는 건 없을 텐데….
철문 뒤쪽에서 들려오던 부스럭 소리가 가장 커졌을 때 철문이 열렸다.
나를 본 홍수정이 놀란 듯 입을 둥글게 오므렸다. 동시에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다.
“어, 안녕하세요! 웬일이에요? 아직 검사 다 안 끝났는데!”
“그것 말고, 또 부탁할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다른 일이요?”
“네. 들어가서 얘기해도 될까요?”
“아, 네! 그럼요!”
그러면서 홍수정은 건물 안쪽으로 들어갔다.
따라 들어가니 저번에 봤던 똑같은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복도는 온갖 종류의 책들과 포션 제작 도구들로 어수선했다.
거기에 저번에 쓰러뜨렸던 책더미와 이번에 쓰러뜨린 책더미가 바닥에 깔렸다.
홍수정은 통행에 방해되는 그것들을 대충 위에 쌓은 뒤 지나쳤다.
한 번 왔던 곳이라고 익숙해졌는지 능숙하게 지나 저번처럼 책을 떨어뜨리거나 하지 않았다.
“청소할 생각은 없는 겁니까?”
“에헤헤, 치우긴 해야 하는데요. 그게….”
그녀는 말끝을 흐렸다.
청소하기 귀찮다는 거겠지.
이해한다. 나도 청소하는 걸 아주 귀찮아했으니까.
나는 청소를 몇 주일에 한 번 날 잡아서 하는 타입이었다.
홍수정은 그마저도 아닌 것 같았지만.
저번에 제작대 앞에 만들어 놓았던 책더미 의자가 보였다.
“이것도 그대로군요.”
“아, 아하하.”
거기에 앉자 홍수정이 어색하게 웃음을 흘렸다.
두꺼운 렌즈 때문에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고개가 살짝 옆으로 기운 것을 보니 내 시선을 피하는 것 같다.
홍수정은 의자에 가 앉고는 본론을 물었다.
“무슨 일이세요? 그쪽이 의뢰한 것 때문에 바쁜데.”
그러면서 그녀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나를 탓하려고 한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말이었다.
“세계수 나뭇잎을 또 구해서요.”
“헐, 정말요?”
“네.”
온 이유를 말하자 그녀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다 두 손을 내 쪽으로 내민다.
세계수 나뭇잎을 달라고 공손히 재촉하는 것이다.
난 건네주기 위해 우편함에 있는 그것을 클릭하고 받기 버튼을 눌렀다.
스마트폰 화면에서 천천히 세계수 나뭇잎이 나왔다.
그런데,
“어?”
“……!”
화면에서 나온 건 침엽수가 아니었다.
[전대 세계수의 나뭇잎(ver.활엽수)]손을 쫙 펼친 것 같이 넓은 형태의 활엽수였다.
전체 크기는 손바닥이 아니라 파라솔만 했지만.
당황해서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이게 뭔 일이래?”
이번에도 침엽수 나뭇잎이 나올 줄 알았다.
솔방울까지 나왔었으니까.
전대 세계수는 완전히 침엽수일 거로 여겼었다.
그런데 활엽수 나뭇잎이 나올 줄이야.
전대 세계수 씨, 당신 극지방 출신 아니었어?
“우와아…!”
당황하느라 나뭇잎을 건네지 않자 홍수정은 내 앞까지 나왔다.
내 손에 들린 나뭇잎에 얼굴을 처박고는 처음 그것을 접했을 때처럼 냄새를 맡고 핥아 본다.
그때도 생각했던 거지만, 홍수정의 물건 감정 방법은 굉장히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세계수 잎이네.”
“거짓말일 줄 알았어요?”
“아니요! 그런 건 아니고요. 어째서 활엽수인 거예요?”
그러게나 말이다.
그거에 대해서는 나도 놀라고 있다.
전대 세계수 씨를 직접 본 적이 없으니 짐작할 뿐이다.
침엽수 활엽수 2종류의 나뭇잎을 전부 준 것을 보면, 아마 세계수는 자기 마음대로 형태를 바꿀 수 있는 게 아닐까.
“저번에 가져온 건 침엽수였잖아요.”
“그랬죠.”
“설마, 세계수를 두 그루나…!”
홍수정은 말을 잇지 못했다.
두 눈을 크게 뜬 채로 날 바라본다.
뭔가 오해한 거 같은데, 그렇지 않다고 해명하기도 좀 그랬다.
어떻게 2종류의 나뭇잎을 가져왔는지 설명해 줘야 할 테니까.
그래서 그냥 대충 얼버무리기로 했다.
“대답하기 좀 그러네요.”
“아, 그, 그렇죠! 맞아요!”
홍수정은 눈에 띄게 당황하며 내 말에 동의했다.
내가 이대로 그것을 들고 돌아갈까 노심초사하는 듯 보였다.
이미 의뢰를 부탁했으니 가지고 나갈 생각 같은 건 없었는데.
“…….”
“에헤헤….”
홍수정은 어색한 웃음을 흘리고는 세계수 나뭇잎을 작업대에 내려놓고 감정했다.
그녀가 노심초사하는 것도 이해는 된다.
세계수 나뭇잎을 갖고 온 이상 나는 그녀 같은 포션 메이커들에게 갑의 위치에 선 사람이다.
그것을 직접 사용해 봤다는 것만으로 포션 메이커로서 한층 격이 올라가고 진기한 재료를 사용한 경험도 쌓을 수 있을 테니까.
뭐, 홍수정은 포션 메이커의 격이고 경력이고 상관없이 그것 자체에 관심을 가진 듯 보이기는 했지만.
몇 분 후 감정을 끝낸 그녀가 말했다.
“침엽수와는 비슷하지만 확실한 차이가 있었어요.”
“확실한 차이요?”
“네. 저번에 가져오셨던 세계수잎은 체력을 회복하는 효과가 있었잖아요? 그래서 힐링 포션을 만들라고 제안했던 거고.”
“그랬죠.”
“근데, 이번에 가져온 세계수잎은 체력이 아니라 마나를 회복하는데 더 탁월해 보여요.”
침엽수는 힐링 포션, 활엽수는 마나 포션인 건가?
그렇다면 이 나뭇잎으로는 마나 포션을 만드는 게 맞겠다.
화장품이 아니라 포션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요즘 포션 시장 상황이 어떻습니까?”
“여전해요. 상급 포션 종류가 나오지 않고 있어요. 한국만 그런 줄 알았는데, 일본도 좋지 않아 보이더라고요.”
“미국이랑 중국은요?”
“영향이 좀 있긴 한데, 한국처럼 심하지는 않아요.”
그러니까, 힐링 포션 시장 문제가 한국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는 소리다.
전 세계가 알게 모르게 힐링 포션으로 골치를 썩이고 있었다.
힐링 포션에 혈안이 된 나라가 얼마나 많은데, 그럴 수가 있나?
그보다 그런 얘기들이 왜 뉴스에 나오지 않는 거지?
“상급 힐링 포션은 원래 소량 판매되고 있었어요.”
의문을 물어보자 그녀는 바로 대답해 주었다.
“그동안 저처럼 종사자나 A급 헌터들 말고는 영향을 직접 느끼지도 못했을 거예요.”
“아….”
그녀의 말이 맞는 거 같다.
종사자가 아닌 나는 지금까지 전혀 모르고 있었으니까.
또 도희의 존재도 그 사실을 파악하지 못하게 하는데 한몫했으리라.
백운천은 도희에게 반해 가입한 힐러들이 많다.
힐러들이 많으니 힐링 포션을 구매할 필요도 없고, 그 때문에 백운천에 있어서 포션은 생각할 필요가 없는 항목이었다.
“A급 헌터 얘기 나와서 하는 말인데, 요즘 중급 힐링 포션 들고 게이트 들어가는 거 알아요?”
“그 정도로 심각해요?”
“네, 아마 슬슬 뉴스에 나올 것 같아요. A급 헌터들이 중급 포션 사재기한다는 식으로.”
“어, 방향이 잘못된 거 아닙니까?”
“자극적이잖아요.”
“…….”
너무나 타당한 말이라서 할 말이 없어졌다.
사람들이 자극적인 주제를 좋아한다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는 일이다.
홍수정이 분위기를 환기할 요량인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아, 맞다. 혹시 시음해 볼 생각 있어요?”
“시음이요?”
“네, 세계수 나뭇잎으로 만든 힐링 포션이요.”
“그게 벌써 만들어졌어요?”
의뢰를 맡긴 지 이제 겨우 하루가 지났다.
벌써 힐링 포션을 만들었다는 걸까?
홍수정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완성했다는 소리는 아니고요.”
“그럼요?”
“가이드라인? 같은 걸 세웠거든요.”
시제품이란 소리다.
물론, 그것도 대단한 건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하루 만에 쓸 수 있는 포션을 만들어 냈다는 거니까.
세계수 나뭇잎으로 만든 힐링 포션이라.
기대되는걸?
“좋아요. 맛 궁금하네요.”
“네, 잠시만요. 컵 좀 가져올게요.”
그러고는 홍수정은 작업실을 빠져나갔다.
컵을 갖고 온다는 말을 들었을 뿐인데 왜 불안감이 엄습해 오는 걸까.
작업실은 돌아본다.
내 팔뚝보다 두꺼운 책들과 잡다한 작업 도구로 얽히고 뒤섞여 마구 헝클어졌다.
설거지… 제대로 했겠지?
다행히 작업실로 돌아온 그녀의 손에는 종이컵 2개가 들려 있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러세요?”
“아, 아뇨. 어떤 맛일지 긴장돼서요.”
“무슨 맛 때문에 긴장을 해요?”
홍수정은 작업대에 컵을 내려놓고 아이스박스로 걸어갔다.
그녀는 아이스박스에 손을 집어넣어 투명한 유리병 하나를 꺼낸다.
힐링 포션은 대개 빨간색인데, 병 속에 들어 있는 액체는 투명했다.
시제품이라서 그런가?
“저도 마셔 봐도 되죠?”
“그러세요.”
홍수정이 뚜껑을 열자 바로 냉기가 올라왔다.
그녀는 그것을 종이컵에 조르륵 따랐다.
투명한 포션을 반 정도 따른 종이컵을 내게 건넨다.
“여기요.”
건네받은 종이컵을 통해 손에 시원한 기운이 전해진다.
그녀는 자기가 마실 것도 종이컵에 반 정도 따랐다.
포션이 3분의 2가량 남은 유리병은 도로 아이스박스에 들어갔다.
그 동작이 매끄럽게 척척 진행돼서 마치 공장의 기계 같이 보였다.
나는 그녀에게 종이컵을 쥔 손을 내밀었다.
“응? 아! 건배하자는 거예요?”
“네.”
“누가 보면 술인 줄 알겠네요. 짠!”
그녀는 종이컵을 부딪치고는 포션을 마셨다.
나도 바로 포션을 입속에 다 털어 넣었다.
처음 마시는 것이 분명한 그것에서는 낯익은 맛이 났다.
아마 그 맛을 처음 느낀 건 대체 복무를 했을 때였을 거다.
훈련을 끝내고 쉬는데, 그 음료수가 나와 마신 적이 있다.
소나무 송진 냄새를 연상시키는 향이 특징인 음료수….
그렇다.
힐링 포션에서는,
“이건, 그러니까, ‘솔x눈’?”
솔x눈 맛이 났다.
흠, 이거 호불호 좀 갈리겠는데?
물끄러미 홍수정을 바라봤다.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맛이 없다기보다는 처음 느껴 보는 맛에 당황한 것 같다.
나도 처음 마셨을 땐 딱 저랬다.
시원하고 상쾌한 느낌이 들어 싫어하지는 않았었지만.
홍수정이 종이컵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음, 맛을, 바꾸는 게 낫겠죠?”
“글쎄요. 굳이 바꿀 필요 없지 않을까요?”
“…그래요?”
“네.”
“…그래요.”
홍수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뭘까?
날 바라보는 시선에서 호의가 조금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은.
“아무튼. 이 잎으로는 마나 포션 만들게요?”
“네, 부탁합니다.”
“네!”
그녀는 활달하게 대답하고는 나를 빤히 바라봤다.
후, 이 사이 좋은 친구를 어쩜 좋을까.
“아직 볼 일 남았어요.”
“아, 그래요?”
나는 작업대에서 몇 걸음 물러나 공간을 만들었다.
왼손을 내밀며 솔방울을 중얼거렸다.
손바닥에서부터 내 몸보다도 큰 솔방울이 소환됐다.
“꺄악!”
“뭐, 뭡니까?”
깜짝 놀라서 그녀를 쳐다봤다.
그녀는 비명을 지른 모습 그대로 두 손을 떨어 댔다.
무서워하는 건 아니다.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것 같다.
“세계수! 이것도 세계수죠!”
“네, 그런데요.”
“당신, 당신 대체 정체가 뭐예요!”
그녀는 싱글벙글 웃으며 작업대 앞으로 도도 달려 나왔다.
그러고는 솔방울을 중심으로 한 바퀴 돌며 살펴봤다.
“살펴봐도…?”
“네, 그러려고 갖고 온 건데요.”
“고마워요!”
내 허락이 떨어지자 홍수정은 솔방울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코를 처박고 킁킁 냄새를 맡은 건 기본이다.
두 손으로 문지르고 두드리고, 귀를 갖다 대고 솔방울 내부의 소리를 들어 보기까지 했다.
행복한 웃음을 짓는 그녀가 말했다.
“감정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
“그래요?”
“네. 외피가 귀수산 등껍질처럼 단단해서 안쪽까지 살펴보려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해요.”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으음. 짧으면 사흘, 길면 나흘 정도 걸릴 거예요.”
그럼 안 되겠군.
솔방울은 지금 당장 필요하다.
“다음에 다시 가져오겠습니다.”
“네에? 아니, 왜요!”
홍수정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자신의 목소리가 너무 컸음을 깨닫곤 입을 다급히 막는다.
“아, 아니, 그게, 죄송해요. 화를 내려던 건 아니구요….”
“걱정하지 마요. 다른 데 가져가려는 거 아니니까.”
“아….”
속마음을 들켰다고 생각했는지 그녀는 얼굴을 살짝 붉혔다.
붉게 물든 얼굴을 식힐 요량인지 손바닥을 휘휘 젓는다.
“그럼 왜 가져가려는 거예요?”
“써먹을 곳이 있어서요.”
“네? 써먹는다니, 이걸요? 감정도 안 했는데?”
당황하는 홍수정에게 빙긋 웃어 주었다.
감정도 안 했는데 써먹겠다고 하니 이해가 가지 않는 거겠지.
그녀는 내가 원하는 정보 하나를 정확히 말해 주었다.
“외피가 귀수산 등껍질처럼 단단해서”라고.
“던질 겁니다.”
“던진다고요?”
“네.”
“……??”
아주 빠르게, 회전까지 넣어서.
우리 새싹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