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540
제542화
물론.
특히 내가 더 좋아할 짓을 하기 위해서는 선행돼야 할 조건이 하나 있었다.
바로 저 새카만 불상처럼 변한 원을 제압하는 것이었다.
쉬운 일도 어려운 일도 아닌, 그저 그런 일이었다.
파삭, 파사삭….
놈이 변태하고 시답잖은 소리를 하는 동안, 열한 마리의 리치에게서 마족 에너지를 흡수하는 일이 끝났다.
동시에 진행하고 있던 정화 작업을 끝내야 할 차례였으나 당연하게도 원이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휙, 휙, 휙!
양손의 수인을 빠르게 바꾼다.
그러자 륜의 새카만 손가락들에서 뿜어지던 화염이 하나로 뭉치면서 커졌다.
곧 블랙 드래곤이 소환했던 ‘검은 태양’처럼 보이는 ‘들끓는 어둠의 화염구’가 완성됐다.
“절망이 나리리!”
원의 외침과 함께 그것이 나를 향해 사선을 그리며 떨어졌다.
마법을 캐스팅하는 대신 손짓으로 저것을 조종하는 모양이었다.
불심을 버린 주제에 왜 계속 승려처럼 구는 것인지 모르겠네.
그나저나….
원 저놈이 제어하는 것치곤 썩 훌륭한 공이었다.
“절망이라….”
오른손으로 아르카를 꽉 쥐고 자세를 취했다.
제대로 휘두르려면 양손으로 잡아야겠지만….
안타깝게도 왼팔은 한창 마족의 힘을 정화 중이어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열한 마리의 리치에게서 힘을 빼앗았던 탓일까.
엄청나게 부풀어 오른 상태였던 거다.
얼핏 눈대중으로 측정해도 반지름만 5m 정도는 돼 보였다.
느낌이 왔다.
저 크기라면 이번에야말로 우리 새싹이가 성장할 터였다.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끄덕입니다.] [관리인의 직감처럼 좋은 느낌이 든다고 전합니다.]새싹이도 그렇게 느끼지 않았나.
좋은 느낌.
성장하는 것 말고 새싹이가 그렇게 느낄 것은 없었다.
참 길고 긴 시간이었다.
기쁜 일이 벌어질 테니, 미리 축포를 터뜨린다고 해도 이상하진 않겠지.
휙…!
허리를 비튼다.
오른 어깨와 팔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그렇게, 날 향해 떨어진 화염구를 때렸다.
“절망은…!”
엄청난 압박감이 느껴졌다.
태천이가 펼친 중력장 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랄까?
하지만 비슷할 뿐이었다.
전력으로 펼쳐서 블랙 드래곤조차 붙들었던 중력장보다는 확실하게 약했다.
그렇기에, 나는 화염구를 쳐올릴 수 있었다.
도로 원이 있는 곳을 향해서.
“너나 가져라!”
“흐억…!”
원의 입에서 당황스러운 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설마 내가 저것을 쳐올려서 돌려보낼 거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한 것 같았다.
그렇다고 전혀 반응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놈은 수인을 빠르게 맺어 화염구의 제어권을 되찾았고, 그것은 다시 머리 위에서 들끓었다.
“이걸, 그분의 힘이 담긴 이 화염구를…! 감히 후려쳐?”
“그럼 안 돼? 난 커다란 공을 날리길래 야구라도 하자는 건 줄 알았지.”
“이 미친놈…!”
휙, 휙!
원이 수인을 빠르게 맺는다.
들끓는 어둠의 화염구가 갈라지더니 수십 개의 작은 화염구로 변했다.
“어디, 이것도 한 번 쳐봐라!”
“오. 도전하는 거야?”
“도전이 아니라…! 아니, 됐다. 내가 네놈과 무슨 말을 하겠느냐!”
“내가 뭐 어때서? 포기하지 마! 난 소통할 줄 아는 놈이라고. 심지어 너 같은 놈이랑도.”
“듣기 싫다!”
휙!
놈의 오른손 끝이 나를 향했다.
그와 동시에 화염구가 운석처럼 쏟아졌다.
통, 통….
아르카로 어깨를 두드리며 생각했다.
저걸 언제 다 일일이 치지?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으쓱입니다.] [한 번에 치면 될 일을 왜 사서 고생하려는 거냐고 질문합니다.]한 번에?
아…. 맞네.
내가 참 바보 같은 생각을 했는걸.
조금 전까지 500m에 달하는 마나 칼날을 뽑아냈었으면서.
화악!
다시 칼자루 형태로 변한 아르카에서 마나 칼날을 뽑아낸다.
아바돈의 결계를 베어낼 때처럼 길게 만들지는 않았다.
떨어지는 저 작은 화염구들을 한꺼번에 쳐올릴 수 있을 정도.
딱 그 정도 길이로 늘렸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원이 날고 있는 곳까지 닿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새싹이의 의견에 따라 원까지 한 번에 후려칠 생각이다.
부우웅!
푸른 마나 칼날이 큰 원을 그린다.
날 향해 날아오던 화염구가 아주 쉽게 방향을 바꿨다.
크기가 작아졌기 때문인지 압박감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원의 눈이 커진다.
그저 놀란 탓일까?
변태한 몸에 대단한 자신이 있어서였을까.
아르카의 칼날이 놈의 몸을 갈랐다.
그런데….
“얼씨구?”
놈의 몸이 멀쩡했다.
분명 허리를 반으로 벤 것을 내가 봤는데 말이다.
***
“아. 앨릭스 문자다.”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화면엔 [세계수 키우기]가 떠올라 있었다.
앨릭스 협회장의 연락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뜻이다.
도희가 힐끔 스마트폰을 보며 말했다.
다행히 각도가 각도인지라 화면을 들여다볼 수는 없었다.
“벌써요? 생각보다 빠르네요.”
“그러게. 아무튼…. 처리하고 올게.”
“같이 갈까요?”
“됐어. 내가 애야? 금방 끝날 일인데, 뭐.”
“애는 귀엽기라도 하죠….”
도희가 한숨을 푹 내쉬며 대꾸했다.
그 대꾸에 어깨를 으쓱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어 침대에 앉아 있는 재이를 바라봤다.
“다녀올게.”
“응.”
“…….”
싱긋.
한 번 웃어준 후 의무실을 나왔다.
그런데, 한 사람이 따라 나왔다.
팔과 다리에 깁스한 서인철이었다.
얜 갑자기 왜 따라 나와?
하필 백운천 놈 중 가장 껄끄러운 놈이….
“뭐?”
“신경 꺼. 난 화장실 가는 거니까.”
“믿으라고?”
“믿기 싫으면 말든가. 내가 알게 뭐냐?”
그러면서 서인철은 날 지나쳐서 걸어갔다.
진짜 화장실 가려고 했던 거라고?
타이밍이 쓸데없이 공교로운 거 아닌가….
“아, 참.”
앞서 걸어가던 서인철이 멈춰 섰다.
문득 뭐가 생각났다는 듯이 날 돌아본다.
그럼 그렇지.
화장실은 역시 핑계였다.
타이밍이 그렇게 공교로울 리 없었다.
“스카. 원한테 안 통하더라.”
“뭐?”
“세계수의 마나가 가득 담긴 스카를 심장에 찔러 넣었는데, 데미지를 입지 않았다고.”
“그게 말이 돼? 새싹이의 마나는 마족 권속의 약점인데?”
“상식적으로는 말이 안 되지. 근데 그런 일이 일어났어.”
서인철이 어깨를 으쓱였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던 것일까.
짐작조차 전혀 하지 못하는 얼굴을 보고 있으니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뭐, 그건 이제 네가 알아내야겠지?”
아니. 듯한 게 아니었다.
녀석은 정말로 표정 그대로의 말을 전해왔다.
자기 일 아니라는 듯이 말하는 게 왠지 모르게 고까운걸.
뭐, 따지고 보면 정말로 서인철 저 녀석의 손을 떠난 일이기는 했다.
그때, 녀석이 자기가 추측한 것을 말했다.
“아마 아르카도 통하지 않을걸.”
“뭐?”
“크기 빼면, 스카나 아르카나 다를 거 없잖아.”
“…….”
굳이 구별하자면 다르기는 하다.
스카는 새싹이 나뭇가지로 만들었고, 아르카는 전대 세계수의 나뭇가지로 만들었으니까.
하지만 둘 다 세계수의 나뭇가지로 제작했다는 점에서는 녀석의 말처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끄덕입니다.] [서인철의 말처럼 크기만 다를 뿐.] [충분히 같은 성능을 보일 것이라고 전합니다.]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물론, 아르카엔 스카와 달리 다른 재료들도 추가돼 있었다.
완전히 같다고 볼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크게 다를 것 같지도 않았다.
분명 별 차이를 보이지 않을 터.
그렇다면… 서인철의 추측대로 아르카가 통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흐음….”
“뭐 예상 가는 거라도 있냐?”
“전혀. 영문을 모르겠는데?”
“새싹이도?”
“새싹이도.”
“그렇군….”
뚜벅뚜벅….
서인철이 다시 발을 내디뎠다.
녀석의 발끝은 의무실로 향하지 않았다.
“근데, 서인철. 너 왜 그 말을 지금 하냐?”
“응?”
“왜 도희랑 한재임 앞에서 안 했냐고.”
“알 필요 없는 일이니까.”
“……?”
서인철의 대답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알 필요가 없는 일이라고?
도희와 한재임이라면, 이 정보로 다른 정보를 추론해낼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걸 모를 놈이 아닌데, 왜 저런 말을 하는 걸까….
“아르카가 통하지 않는다…. 그게 네가 오늘 원을 죽이는 데 문제가 되냐?”
“……!”
“어차피 죽을 놈을 뭐 하러 신경 쓰게 하지?”
서인철은 나를 돌아봤다.
그러면서도 앞으로 걸어 나가는 녀석의 발은 멈추지 않았다.
이놈 보게?
“어떻게 알았냐? 내가 지금 그럴 생각이라는 거.”
“애들이 그러더라. 나랑 네가 닮았다고.”
“어떤 미친 새끼들이 그런 개 같은 소릴….”
인상을 와락 구기고 말하다가 도중에 멈췄다.
그러고 보니, 태천이가 예전에 저런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내가 서인철이 불편한 이유가 닮아서 그런 것 아니냐고 했었지, 아마…?
“흠….”
다른 놈들 말만이라면 모를까.
태천이의 말이면 다르다.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어딘가 나와 저놈이 닮은 구석이 있긴 하다는 뜻이다.
그게 뭔지는 도통 모르겠다만.
“그래서. 갑자기 그런 불쾌한 얘길 꺼낸 이유가 뭐야?”
“네가 물어봤잖아, 새끼야. 어떻게 알았냐며.”
“뭐?”
그걸 물어보기는 했다.
근데 저게 왜 대답이 되는지는 모르겠다.
서인철이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나라면 그럴 거라서.”
“……!”
“나라면, 사랑하는 여자를 해코지한 놈을 계속 숨 쉬게 내버려 두지 않아.”
“…….”
“사랑하는 여자가 위험한 상태라면 모르겠지만, 안전이 보장된 상황이라면… 당연히 그 빌어 처먹을 새끼를 치워버리러 가야지.”
“쯧…!”
혀를 세게 찼다.
서인철의 말을 듣고 나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혀를 차버렸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건만, 태천이가 왜 그런 말을 했었는지 알 것 같다.
방금 저놈이 한 말은 내가 하고 있던 생각과 정확히 일치했다.
“도희한테는-”
“말 안 해. 앞으로 넌 엄청나게 미친 짓을 벌일 거고, 도희는 그걸 말릴 게 뻔하고. 뭐하러 말하지?”
“쯧…!”
“아, 근데 이 새끼는 아까부터 왜 자꾸 혀를 차고 지랄이야.”
“내 마음이다. 이 자식아.”
생각이 일치해서 그렇다는 말을 어떻게 하겠나.
계속해서 혀를 차대자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서인철이 가운뎃손가락을 내밀었다.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절레절레 가로젓습니다.] [하는 짓이 어리석은 게 참 비슷하다고 전합니다.]그만해.
나랑 저 카사노바 놈이 닮았다고 하지 말라고….
그때였다.
복도 끝에서 앨릭스 협회장이 나타났다.
“엇? 여기 있었군, 도운.”
“앨릭스?”
“그렇지 않아도 자넬 보러 가는 중이었는데.”
“나를요? 왜요?”
“자네들 백운천이 생포한 권속들이 모두 도착했거든. 배수현 국장도 그곳에서 보기로 했네.”
“아. 마침 잘됐네요. 일 끝내고 갈 수 있겠어.”
“응?”
앨릭스 협회장이 고개를 갸웃한다.
갈 수 있겠다는 말에 의문을 느낀 것이다.
휙, 휙.
손을 대충 휘저으며 말했다.
“별거 아니니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별거 아닌 일…이 아닐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기분 탓이에요.”
“으음….”
“자. 놈들 모아뒀다는 곳으로 안내나 해주시죠.”
“…알겠네. 그런데, 두 사람 대화 중이었던 거 아닌가? 내가 끼어든 느낌이었는데….”
앨릭스 협회장이 서인철을 돌아봤다.
서인철은 발걸음을 옮기면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전 화장실 가던 중이었습니다.”
“아. 그랬나?”
그놈의 화장실….
쟨 핑계 댈 게 저것뿐인가.
“아, 참.”
서인철이 또다시 문득 뭔가 떠올랐다는 듯이 멈춰 섰다.
“그러고 보니, 나 칼자루 잃어버렸어.”
“뭐? 갑자기 무슨…!”
대꾸하던 도중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인지 깨달았다.
서인철이 말한 칼자루는 분명 스카를 뜻하는 것일 터였다.
아무래도 원과 싸울 때 빼앗긴 모양이다.
어쩐지 스카가 아니라 예전에 쓰던 단검을 쥐고 있더라니….
스카를 잃어버려서였군.
“가는 김에 겸사겸사 그것도 좀 갖고 와.”
“너 지금 나한테 심부름시키는 거냐? 미쳤어?”
“싫어? 그럼 바로 도희한테 일러바치러 가고.”
“…….”
“…….”
서인철을 빤히 바라보길 수 초.
이내 녀석이 씩 웃어댔다.
승자의 미소였다.
“내가 말했었지. 복수하겠다고.”
“…….”
그래. 그랬었다.
미국 떠나는 날, 백운천 지하에서.
“잘 갖고 와라. 백도운.”
휙, 휙.
서인철이 깁스한 오른손을 흔들며 떠났다.
그런데 걸어가는 방향은 의무실 쪽이 아니었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저쪽엔 분명 화장실이 있을 터였다.
“쯧…!”
저 새끼 정말 화장실 가려고 나온 거였네.
***
“쯧…!”
머릿속에 서인철의 얼굴이 떠오른 탓일까?
입이 제멋대로 혀를 찼다.
그 소리를 듣고, 하늘에 새카만 불상처럼 있는 원이 즐거워했다.
아무래도 내가 지 때문에 곤란함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착각도 유분수지,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