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87
제87화
문을 열고 들어가자 네 사람이 보였다.
이태천, 백도희, 한진환, 최희석.
그들이 동시에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오. 드디어 왔네요.”
네 사람 중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상석에 앉은 태천이었다.
그는 한진환과 최희석을 제치고 상석에 앉아 있었다.
이곳은 백운천 본사고, 태천이 마스터였으니 상석에 앉는 건 당연했다.
그래도 1위와 20년 베테랑이 아니라 태천이 앉아 있는 걸 보니 기분이 참 묘했다.
감개무량함이 느껴진달까?
“좀 늦었습니다.”
그러면서 도희 옆으로 걸어갔다.
도희는 옆에 앉으려는 나를 막더니 거기에 자기가 앉았다.
“……?”
“여기 앉아요.”
자기가 원래 앉아 있던 자리를 가리킨다.
그 자리는 태천의 바로 옆자리로 상석에 가까운 자리였다.
동시에 한진환의 맞은편 자리이기도 했다.
즉, 도희는 내게 바로 상석에 가까운 자리를 넘긴 것이었다.
굳이 안 그래도 됐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보고 있자 싱긋 미소를 짓는다.
양보한 자리를 톡톡 두드린다.
비즈니스용 미소는 오랜만에 보는걸?
눈도 입도 웃고 있지만, 진심으로 웃는 웃음이 아니었다.
당연히 날 향한 건 아니다.
맞은편에 앉은 사람들 때문에 지은 거였다.
도희의 생각에 따라 자리에 앉자 최희석이 오른손을 내밀며 인사를 건넸다.
“또 보는군.”
“반갑습니다.”
“그날 이후로 별일 없었나?”
그날은 이틀 전을 뜻하는 것이다.
버섯 브로치를 단 크라우드 놈이 이정근과 함께 쳐들어왔던 날.
이후로 별일 없었느냐고?
“별일이라….”
당연히 있었다.
홍수정에게 부탁해 제작한 포션 2종이 맛이 신기하다는 이유로 협회 방송을 탔다.
포션을 공급했다는 걸 설파하기 위해서였겠지만, 그보다 맛이 더 큰 이슈가 돼 버렸다.
두 맛의 파괴력은 내 상상을 초월했다.
방송을 탄 이후 실시간 검색어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현재 왓쳐 캐스트를 하는 A급 헌터들의 주 방송 콘텐츠가 게이트 공략이 아니라 포션 시음으로 바뀌었을 정도다.
또 오늘 일대 그룹에 솔방울을 판매했다.
하루 만에 끝난 쿨거래 덕분에 1530억짜리 건물주가 됐다.
백운천이 6층 건물에서 21층 빌딩으로 이사할 때가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류 최초로 차원을 이동했고 엘프를 만났다.
육식주의 엘프들은 현재 스마트폰 속에서 열심히 세계수를 가꾸고 있었다.
“덕분에 별일 없었습니다.”
“덕분은 무슨.”
짧게 악수를 한 후 한진환을 돌아봤다.
오늘은 가면을 쓰고 있지 않았다.
맨얼굴의 한진환은 처진 두 눈으로 날 쳐다봤다.
눈꼬리가 처져 있어서 그런가?
지금 졸린 상태인 건지 원래 그런 건지 알 수가 없다.
“한진환이다.”
자신을 소개하며 손을 내민다.
그날처럼 대놓고 변조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원래 목소리는 부드러운 미성이었다.
들어 본 적은 없지만, 왠지 노래를 잘 부를 것 같다.
“백도운입니다.”
바로 손을 맞잡아 살짝 흔들었다.
[세계수 어린나무가 순수한 번개의 마나를 느꼈습니다.] [번개의 마나 소유자에게 감탄을 보냅니다.]새싹이가 번개의 마나를 느끼고 감탄했다.
우리 새싹이가 감탄할 정도라면 대체 얼마나 순수한 마나인 걸까.
“갑자기 백운천에 찾아온 이유가 뭡니까?”
“……!”
처진 눈이 살짝 커진다.
커져도 눈은 처져 있어서 여전히 졸려 보였다.
아무래도 내가 바로 본론을 물어볼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뭐, 1시간 가까이 나 없는 사이 이런저런 얘기 다 떠들어 댔을 거다.
나까지 와서 또 서론을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도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태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둘 다 예상했다는 듯 미소를 짓고 있었다.
“협회 퀘스트를 제안하러 왔네. 줄 것도 있고.”
대답한 건 최희석이다.
맞은편에 앉은 한진환은 손으로 아랫입술을 살살 문댔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는 걸 보니 지금 상황이 즐거운 것 같다.
뭔가, 재미있는 걸 구경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협회 퀘스트? 줄 것…?”
“우선 줄 것부터 주고 얘기할까.”
최희석은 품에서 흰 봉투를 꺼냈다.
탁자 위에 놓인 봉투가 내 쪽으로 밀어졌다.
오른손으로 집어 든 봉투는 가벼웠다.
종이 한두 장 정도 들어 있는 감촉이었다.
“이게 뭡니까?”
“보상이지.”
보상?
후.
입김을 불어 봉투 입구를 살짝 벌렸다.
안의 내용물은 예상대로 종이 한두 장이었다.
옆에 앉은 도희가 얼굴을 가까이 갖다 댔다.
봉투 속에 담긴 내용물이 무엇인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협회 인증서] [본 헌터가 현상 수배범 이정근을 붙잡았음을….]“아.”
“오.”
우리 남매는 동시에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어 인증서 뒤에 있던 종이를 확인했다.
종이엔 29억이라는 금액과 큼지막한 QR코드가 새겨져 있었다.
웬 QR코드?
“QR코드 찍으면 바로 입금될 거네.”
“어, 요즘엔 이런 식으로 현상금을 지급해 줍니까?”
“아니, 그건 아니야.”
내 의문에 대답한 건 태천이다.
아마 자기가 아는 이야기가 나와서 끼어든 것 같다.
“계좌로 보내 주는 게 원칙. 이렇게 주다가 잃어버리면 큰일 나잖아?”
“그건 그렇네. 그럼 이번엔… 아.”
바보 같은 질문을 할 뻔했다.
태천이도 씩 웃으며 내 맞은편 사람들을 바라봤다.
이걸 갖다 준 사람은 최희석이었다.
그것도 한진환과 함께 있는 최희석.
저 둘을 상대로 이 봉투를 빼앗는다?
세계에 4명밖에 없다는 S급 헌터들도 어려울 거다.
절대로 안전하니까 모양새에 신경 쓴 게 확실했다.
우웅.
스마트폰을 꺼내 QR코드 찍어 바로 현상금을 받았다.
곧이어 29억이 입금되어 은행 어플 알림이 떠올랐다.
그러는 동안 도희와 태천이의 얼굴에서는 호기심을 찾아볼 수 없었다.
내가 이정근을 붙잡았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거다.
당연히 재욱과 상철에게 보고받았으리라.
그래도 모르는 척은 해야겠지?
“아 참! 그게 말이야.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나중에 설명해 줘.”
“맞아요. 지금은 손님 맞이부터 해야죠.”
“아, 맞네.”
태천이와 도희가 설명하려는 걸 끓고 빠르게 말했다.
손님 맞이부터 해야 한다고?
이미 알고 있는 사실 또 설명 듣기 싫어서 그러는 걸 내 모를 줄 알고?
뭐, 애초에 내가 하려던 건 모르는 척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입금 확인했나?”
“네. 기다려 줘서 고맙습니다.”
“고맙기는. 그것도 이곳에 온 이유 중 하나였는데 당연한 거지.”
“그럼….”
“그래. 이제 다른 이유를 이야기해 볼까.”
“그러시죠.”
다른 이유.
협회 퀘스트를 제안하고 싶다고 했지.
예상한 대로 브이피에 관해 제안하려나?
“자넬 찾아온 건 ‘두 손가락 프로젝트’를 제안하기 위해서야.”
“뭔 프로젝트요?”
“…두 손가락 프로젝트.”
“……그게 뭡니까?”
두 손가락 프로젝트라니.
뭔 놈의 퀘스트 이름이 그따위야?
진지하게 궁금해하던 게 창피해질 정도다.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최희석을 제외한 세 사람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이름이 우스운 거다.
그 모습에 최희석은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이 아저씨도 고생이 참 많구만.
“정부는 현재 국내의 마약 중개업자 놈들을 싹쓸이할 계획이야.”
“마약이라면…?”
역시.
예상한 게 맞았다.
“브이피 유통을 막으려는 겁니까?”
“바로 맞췄네.”
“어라. 설마 브이피라서 두 손가락인 건 아니죠?”
“…그건 너무 위험한 물건이야.”
최희석이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넘겼다.
브이피라서 두 손가락인 거 맞네.
대체 이름 지은 놈 누구야?
센스하고는….
“정부도 협회도 어서 빨리 뿌리 뽑아야 한다고 의견을 일치했네. 그래서 진환에게 이 일을 맡겼지.”
그리 말하면서 엄지로 옆에 있는 한진환을 가리켰다.
그는 시선이 모이자 손을 살짝 들어 보였다.
헌터 랭킹 1위 한진환.
그에게 맡긴 걸 보니, 최희석 말대로 정부와 협회는 한국에서 브이피를 완전히 말소시키고 싶은 모양이다.
당연한 일이다.
브이피는 인간을 몬스터화 하는 약물이다.
그런 게 사회에 버젓이 돌아다니는 꼴을 두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함께하지 않겠나? 우린 자네의 힘이 필요해.”
브이피의 뿌리를 뽑고 싶다는 생각에 동감한다.
내 힘이 필요하다는 말도 알 거 같다.
지상욱, 이정근.
나는 몬스터화 된 이들을 다시 인간으로 되돌릴 수 있었다.
분명 브이피나 바바를 과다복용해 몬스터화 된 놈들이 또 있을 터.
그런 놈들 때문에라도 나는 이 일에 꼭 필요한 인물 중 하나다.
“혹시 보수 때문에 그러나?”
“네?”
“걱정하지 마.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협회 퀘스트라고 해도 보수는 심심치 않게 챙겨 줄 거야.”
“아아.”
음. 바로 대답하지 않아서 착각한 것 같다.
보수가 충분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처럼 보였나 보다.
그런 건 아니었지만, 알아서 심심치 않게 챙겨 준다고 하니 가만히 있어야겠다.
“제안 받아들이겠습니다.”
“오. 정말인가?”
“네.”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이 퀘스트는 한진환과 함께 일을 하게 될 거다.
A+급 헌터의 실력을 눈앞에서 확인할 좋은 기회다.
또 브이피 유통을 막는다는 건 곧 크라우드에게 엿을 먹이는 일이기도 했다.
나로서는 일석이조의 좋은 일이었다.
“그럼 다음 이야기까지 진행할 수 있겠군.”
“다음 이야기?”
“이번 프로젝트는 브이피를 말소하는 것과 동시에 다른 목적이 있거든.”
“……?”
“바로 ‘유혜주’를 생포하는 것.”
유혜주?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나와 태천이는 자연스럽게 도희를 쳐다봤다.
“아이템 메이커예요.”
“유명해?”
“조금요. 아이템 제작에 있어선 천재거든요.”
“우린 전혀 몰랐는데.”
“완전히 유명해지기 전에 사라졌어요. 지금 얘기하는 걸 들어보니, 아무래도 뒤쪽으로 넘어갔었나 보네요.”
그런 사람을 생포하는 게 목적이다?
“혹시…?”
“그래. 그녀가 현재 바바와 브이피의 제작자로 추정되고 있네.”
유혜주가 그것들을 제작한 사람이라고?
그렇다면… 그녀는 크라우드일지도 모른다.
일석이조의 좋은 일?
아니, 유혜주가 정말 크라우드라면 그렇지 않다.
퀘스트를 깰 기회니까.
그뿐인가?
마족의 권속들은 하나같이 변태를 해 댔다.
세계수의 뿌리로 에너지를 빼앗을 수 있을 터.
빼앗은 에너지양만 많다면 첫 번째 결실을 달성할 수 있을지도….
이 협회 퀘스트는 일석이조가 아니라 일석사조의 일이었다.
복이 넝쿨째로 들어왔다는 게 이런 거겠지.
“그럼 인원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게….”
최희석이 말끝을 흐렸다.
갑자기 왜 이래?
한진환이 대신 대답했다.
“나랑 너.”
“둘이 하는 겁니까?”
“응.”
“잠깐만요. 다른 사람들은요?”
도희가 걱정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태천이도 묻고 싶은 듯 입을 벌리고 있었다.
도희가 앞서 묻지 않았더라면 태천이가 물었을 거다.
한진환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없어.”
“없다니! 그게 지금 무슨 말이에요!”
“할 수 없어. 다른 놈들은 주변에 있는 것만으로도 날 못 버텨서.”
“못 버틴다니 그게…! 아.”
도희가 뭔가를 깨달은 것처럼 우뚝 멈췄다.
나도 방금 떠오른 게 있었다.
한진환이 사용하는 스킬은 전부 번개 속성이다.
내 스킬에 세계수의 마나가 깃들어 있는 것처럼.
세계수의 마나가 그 존재만으로 부정한 것들을 정화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진환의 번개의 마나도 주변에 영향을 끼친다.
단지, 나처럼 부정한 것들에 한해서만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닐 뿐.
한진환은 힘을 내뿜는 것만으로도 주변에 피해를 주고 만다.
강력한 화염 마법을 쓰면 주변이 그을리게 되듯이.
수준 높은 빙결 마법을 쓰면 주변 온도가 낮아지듯이.
“내가 괜히 파티나 길드 없이 혼자 지내겠어?”
“진환은 강하지만, 혼자일 수밖에 없어. 동료들에게 마저 공격하게 되니까. 하지만….”
최희석이 말끝을 흐리며 날 쳐다본다.
뭘까?
나도 공격받는 건 마찬가지일 텐데?
한진환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너 전명환 공격에도 멀쩡했다며? B급 헌터의 검기도 막아내는 실드도 쓸 줄 알고. 그럼 내 주변에 있을 수 있겠지.”
전명환….
그 이름이 여기에서 나올 줄이야.
B급 헌터의 검기라면, 아마 김정철을 의미하는 걸 거다.
아무래도 한진환 이 양반, 나를 제법 열심히 조사한 것 같다.
뿌득.
뼈 소리가 마스터실에 울렸다.
갑자기 웬 뼈 소리?
“태천…?”
소리를 낸 건 태천이었다.
태천은 거칠게 손목을 한 번 돌렸다.
아무래도 내 몸을 신경 쓰지 않는 한진환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도희도 태천이와 비슷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진환은 여유롭게 웃었다.
도희와 태천이 앞에서 저렇게 느긋하게 있는 사람을 얼마 만에 보는 거지?
김무연도 감히 저러지 못했었다.
“후흐흐….”
웃으면서 두 손을 뻗었다.
각각 도희와 태천의 무릎을 짚는다.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다.
두 사람이 나 대신 화를 내 줘서 그런 것 같다.
“전 좋습니다.”
“시원시원해서 좋네.”
“다만.”
“응?”
“조건이 있습니다. 하루에 한 시간? 자유 시간을 주십시오. 들러야 할 곳이 있어서요.”
그 말에 한진환이 눈을 찌푸렸다.
옆에 있는 최희석도 마찬가지다.
내가 말한 조건이 이해가 가지 않는 듯하다.
최희석이 숨을 후 내쉬고는 말했다.
“이 일에 집중해 주지 않겠나?”
“저도 그러고 싶긴 한데요. 절대 뺄 수 없는 일이라서요.”
“절대…? 대체 뭔데 그러나?”
“밥 챙겨 줘야 해요.”
우리 육식주의 엘프들.
맛있는 고기 사 줘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