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ve too many Talents RAW novel - chapter (111)
제116화
116화
‘난 죽었다.’
A등급 2명과 싸운 것?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필 사고 가속이 없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정현은 자신의 코앞에서 마법을 시전하는 지희를 멍하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하필 그는 지희와 그녀가 노린 정령 사이에 있었다.
죽기 전에 본다는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기억.
정현이 본 것은 다름 아닌 협회 측정실에서 지희가 사용하는 마법을 처음 보았던 장면이었다.
분명 그녀의 뒤에, 그것도 방호 창문까지 있었기에 피해를 입을 일이 없었음에도 전투 감각이 경종을 울려 대던 그 기억.
비록 이번 게이트에 들어와서 지희의 마법을 적지 않게 유도했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만전의 상태에서 철저하게 의도했다는 조건이 붙었다.
이처럼 무방비히게, 근거리에서 지희의 마법이 발동된다면 틀림없이 죽었다.
‘어머니, 아버지. 소자 욕심을 부리다 일찍 올라갑니다.’
오죽하면 돌아가신 부모님께 미리 인사까지 올리고 있겠나.
한편, 지희 역시 뒤늦게 자신이 무슨 짓을 벌인 것인지 눈치채곤 아연실색했다.
자신에게 위력을 행사하려던 두 사람과 싸우는 모습은 그야말로 놀라웠지만 그녀 역시 알고 있었다.
특성 억제제를 맞은 뒤 정현이 정상은 아님을.
어떻게 특성을 잃고도 그렇게 싸울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이전과 비하면 스피드나 판단 등등이 모두 떨어져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설사 그가 자신더러 마법을 사용하라 하더라도 더욱 조심해야 했건만, 오히려 정현의 면전에다 대고 마법을 갈겨 버리다니?
‘진짜, 넌 쓸모없는 인간이야, 최지희.’
이건 마치 처음 각성했을 때의 그 순간 같지 않은가.
결코 기억하기도 싫지만 영혼 깊숙이에 남아 버린 그 순간.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마나를 모으고, 그것이 실제 마법으로 발현되기까지의 짧은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지희는 수만 번을 절망했다.
그러나 그 절망의 마지막에 문득 고개를 드는 의문.
‘나······ 어떻게 마법을 쓰고 있지?’
분명 조금 전에 자신의 특성은 마비되었다.
그래서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사용하고 있는 마법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그 의문을 인식하고 나서야 비로소 지희는 모든 것을 관조할 수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지희의 시각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그녀의 내부와 외부.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리게 흘러가는 순간들에서 그야말로 모든 것들이 오롯이 느껴졌다.
분노한 정령들과 고통스러워하는 윤호와 정준이 있다.
쓰러져 있는 승연과 우식, 자신을 둘러싼 채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는 마나들이 있다.
어느새 몸속에서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는, 하지만 그럼에도 어느 때보다 고요한 불꽃이 있다.
그리고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자신을 바라보며 놀라고 있는 한정현이 있다.
지희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렇게 모든 것을 보고 난 뒤에야 그녀는 자신이 누군지 알게 되었다.
‘이 사람을 살려!’
– 지배자는 명령할 따름.
지희가 명령하자,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이 그녀의 뜻대로 돌아가는 듯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랬다.
알 수 없는 포근한 목소리가 지희의 몸 안에서 휘돌다 사라진다.
불꽃에서 불티 하나가 발갛게 튀어 오르다 이내 사라지는 것처럼.
이전과 마찬가지로 한곳에 덕지덕지 뭉쳐 그대로 폭발할 것 같던 마나에 변화가 생겼다.
‘뭐야?’
정현 역시 몸을 움직이진 못하고 있었지만 머리로는 인식했다.
봉오리 하나가 수만 개의 꽃잎으로 이루어진 꽃으로 피어나듯 거대한 마나가 조각조각으로 비산했다.
그럼에도 지희와 정현을 절묘하게 비껴 갔다.
정령들의 알 수 없는 법칙으로 돌아가던 정령계가 지금은 지희의 마나로 이루어진 세상처럼 느껴졌다.
정현의 눈과 감각에 걸리는 모든 것이 그녀의 마나였으니까.
화라락-
금방이라도 두 시람을 공격하기 위해 덤벼들 것만 같았던 정령들 역시 이번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는지 멈칫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에 모든 것이 끝났다.
“이게 무슨······.”
정현이 얼떨떨하게 말끝을 흐렸다.
꼼짝없이 죽는 줄만 알았다.
코앞에서 지희의 마법이 펼쳐졌으니까.
그런데 살았다.
살았을 뿐이랴.
방금 본 장면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다.
어느새 원래처럼 고요해진 주변을 둘러보던 정현의 시선이 지희의 그것과 마주쳤다.
지희 역시 자신이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스스로도 모르는 듯 멍한 표정이었다.
정현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두 단어가 흘러나왔다.
“「불의 지배자」?”
처음에는 조금 독특하고 요란스러운 특성 이름이라고 생각했건만.
지금의 그녀를 표현하는 데에 이것보다 적당한 말이 있을까.
이제까지 언제나 자신만만하고 당당한 정현의 모습만 보아 와서인지,
정현이 얼빠진 표정으로 자신의 특성을 부르는 소리를 듣자 지희가 풋 웃었다.
“어떻게 된거예요?”
“어······ 저도 모르겠어요.”
지희가 어깨를 으쓱했다.
정말 잘 모르겠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뭔가를 했던 것 같긴 한데 워낙 창졸간에 지나간 일이라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설마?’
그때, 정현의 머릿속에 번뜩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황당하긴 하지만 이 정도 변화를 끌어낼 변수라면 딱 하나밖에 없지 않은가.
‘특성 억제제?’
사실 아까부터 이상하다 했다.
매사에 불안해하고 겁이 많던 지희가 특성 억제제에 당하고 난 뒤에는 묘하게 안정된 느낌이었으니까.
물론 정준과 윤호에게 위협당할 때야 패닉에 빠져 있었다지만 그건 어쩔 수 없었던 상황이라고 가정해 보자.
자신이 정리한 뒤에는 이상하리만치 사람이 달라지지 않았던가.
“지희 씨, 마법 한번 써 보세요.”
“네? 갑자기 무슨······.”
“자, 심호흡하시고. 빨리요.”
당황한 표정이면서도 정현이 재촉하자 순순히 따르는 지희.
‘어쩐지 마음이 편해.’
지희 역시 이즈음 자신이 평소와 다르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마법을 사용하려 치면 불안정한 마음과 맞물려 미친 듯이 날뛰던 불씨가 지금은 얌전했으니까.
‘혹시······?’
심호흡을 하면서 슬쩍 정현을 보던 지희의 얼굴이 이내 확 붉어지며 그녀가 황급히 시선을 틀었다.
물론 그녀만의 착각일 뿐이었다.
혹시고 뭐고 특성 억제제와 지희의 특성 생각밖에 없는 정현이 말을 이었다.
“자, 이제 저쪽 보시고······.”
그러다 문득, 말을 멈췄다.
‘뭐라고 해야 하지?’
사실 지희에게 무슨 마법을 사용하라고 해야 할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마법은 정해진 공식이 있다.
볼트니 배쉬, 스트라이크, 웨이브 등 각 등급 수준에 맞는 대표적인 마법이 있는 이유였다.
마나를 정해진 공식으로 배치하고 규칙에 맞춰 배열한 뒤 성질을 부여해 발현한다.
그런데 지희의 경우에 그런 통상적인 마법 사용법을 활용하지 않는 것 같았다.
‘문제 속에 답이 있는 법이지.’
지희의 특성은 「불의 지배자」.
만약 그것이 단순 수식어가 아니라면 어떨까.
어차피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다치는 것도 아니다.
되면 좋고 안 되면 그만.
정현이 두 손을 모아 적당한 크기의 공간을 만든 다음 말했다.
“공식은 신경 쓰지 마시고 그냥 이 정도 되는 불덩이를 날린다고 생각해 보시죠.”
“어······.”
정현의 말에 지희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말이 좋아 날린다고 생각해 보라는 것이지 마법이 어디 그리 쉽게 되는가.
정현 역시 마나 감응 특성을 가졌으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지희는 그것이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헌터의 속 편한 조언 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어쩐지 마냥 헛소리로 치부하긴 싫었다.
기대를 저버리긴 싫었으니까.
잠시 고민하던 지희가 마나를 불러 모았다.
‘어차피 안 될 거지만.’
비관적이었다.
지희도 자신의 마법이 너무 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마나를 모으는 단계에서 협회의 마법사들이 알려 주는 공식을 사용하려고 하면 번번이 컨트롤이 폭주하기에 어쩔 수 없이 과도한 마법이 나갔다.
공식이 괜히 공식이겠는가.
이제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가장 마나를 안전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찾은 것이 바로 공식이었다.
그런 공식으로도 폭주하는 마나를 그냥 불덩이를 날린다는 생각으로 다룰 수 있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았다.
아마 자신올 지도하던 마법사들이 협회에서 이런 제안을 들었다면 펄쩍 뛰었을 것이다.
건물 다 부숴 먹을 일 있냐고.
‘그래도 실망시키고 싶진 않아.’
지희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정현이 보여 주었던 크기의 불덩어리를 떠올렸다.
‘날아가!’
지희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정현은 더 이상 그녀를 보고 있지 않았다.
대신 저만치 정령계 특유의 지물에 꼭 축구공만 한 크기로 뚫린 구멍을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한 거야?’
지희 역시 그 구멍을 똑똑히 보았으나 믿지 않았다.
사실 정현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뚫어 놓고 놀란 척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정현이 다급하게 지면에 쓰러져 있는 정준과 윤호에게로 달려갔다.
“너희들, 특성 억제제 가진 거 있으면 다 내놔!”
***
아직도 창대에 맞은 관자놀이가 아픈지 손바닥으로 그곳을 꾹꾹 누르던 승연이 투덜거렸다.
“걔네들 꼭 데려가야 해요? 파티장님 힘드실 텐데.”
“어쩔 수 없죠. 협회에 갖다 주면 뭐가 더 나올지도 모르니까.”
당연히 그녀가 말하는 것은 정현의 양쪽 손에 발목이 하나씩 잡혀 질질 끌려가는 정준과 윤호였다.
정현도 어차피 힘줄을 다 끊어 놓은 차에 정령들에게 죽으라고 던져둘까 싶었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여 참기로 했다.
나름 정성스럽게(?) 정보를 캐냈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전문가가 보기에는 또 다를 수도 있을 테니까.
특성 억제제를 뺏으며 괜히 또 울컥하는 바람에 몇 번 사랑으로 어루만져 줬더니 두 사람은 아예 눈을 까뒤집은 채 일어나질 못했다.
그렇다고 승연에게 치유를 부탁할 수도 없어서 일단은 이렇게 질질 끌고 가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진짜 파티장님이 이 두 사람 다 잡은 거예요? 어떻게요?”
“뭐······ 고생 좀 했죠. 방심하고 있어서 다행이었어요.”
“나쁜 X끼들······.”
승연과 우식이 깨어난 것은 모든 일이 마무리되고 난 뒤.
그들로서는 눈을 감았다 떠 보니 정준과 윤호가 만신창이가 되어 쓰러져 있었을 따름이었다.
당연히 그 둘에게는 정현이 두 사람을 쓰러뜨린 것 이외에는 전부 거짓말로 둘러댄 싱태였다.
사실 지희가 협회에서 비밀리에 키우고 있는 S등급인데 그녀를 노리고 중국에서 특성 억제제를 지닌 A등급 2명을 투입했으며 자신은 그들을 뛰어넘는 EX등급이라 가뿐하게 이길 수 있었다.
이런 얘기를 어떻게 하겠는가.
‘세상에는 몰라도 되는 이야기가 있는 법이지. 응.’
게이트 밖으로 나가서도 지희가 몰래 남식이 준 버튼을 누르고 정현은 협회에 신고 전화를 하는 것으로 말을 맞춰 두었다.
그래야 협회에서 출동을 하더라도 두 사람이 의심하지 않을 테니까.
그러잖아도 빌런 못 잡는다고 욕을 먹는 협회인데 신고도 없이 대뜸 게이트에 얼굴을 들이밀면 이상하지 않겠나.
“와, 근데 저 빌런 진짜 처음 만나 봐요. 맨날 말만 들었지······.”
그러다 문득, 옆에서 승연이 투덜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던 정현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아니면 한번 더 기절시켜?’
그래도 뒷배가 중국인데 덜렁 이 둘만 투입시키지는 않았을 터.
게이트 바깥에도 이미 만약을 대비한 팀이 배치되어 있을 것이다.
버튼만 누르고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 버리면 저들이 뭐 어쩌겠는가.
협회에서 지원이 올 때까지 느긋이 앉아서 쉬다 다시 나오면 되지 않을까.
물론 그렇게 하지는 못하겠지만 정말 상황이 급해진다면 나쁘지 않은 계획 같았다.
어쨌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게이트 입구.
정현은 지희에게 눈짓을 한 번 주고는 앞장서서 게이트를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