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ve too many Talents RAW novel - chapter (179)
제186화
186화
게이트 안에서는 일상처럼 전투가 벌어진다.
헌터는 몬스터를 향해, 몬스터는 헌터를 향해 각자 자신이 갖고 있는 최강의 무기를 내뻗는 것이다.
그러나 몬스터가 몬스터와 싸우는 장면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물론 게이트 내부도 일종의 생태계였기에 포식자와 피식자의 먹이사슬이 존재하긴 하지만 적어도 동종 간의 격렬한 전투가 일어난다는 것은 쉽사리 상상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장면이, 지금 정현과 예린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저게 지금······ 뭐죠?”
“세상에······.”
두 사람은 서로 제대로 된 의사 교환도 하지 못한 채 경악하고 있었다.
이미 소리로 짐작했던 것처럼 그곳에는 두 패의 켄타우로스들이 서로 얽혀 격렬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단순히 놈들이 싸우는 장면 단 하나만으로 놀란 것이 아니었다.
“키효오!”
이미 서로가 서로의 진형 속으로 깊숙이 파고든 난전이었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한쪽의 수가 월등히 많았다.
‘대충 50% 정도? 아니, 지금도 이렇게 보인다면 배 정도는 더 많겠지.’
정현이 대충 가늠하기에는 대략 50 대 90이 조금 넘는 정도의 싸움인 듯했다.
그것만으로도 좀처럼 찾기 힘든 대규모의 병력이었으나 문제는 수가 적은 쪽이 오히려 많은 쪽을 압도적으로 몰아붙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예린은 어지러운 전장에서 눈에 딱 띌 수밖에 없는 특이점에 시선을 두며 물었다.
화르륵-
“저놈 저거······ 지금 마법을 쓰고 있는 겁니까?”
“제 눈이 틀리지 않았다면요.”
수가 적은 쪽에서 난전에 휘말리지 않고 안전한 뒤에 자리 잡고 있는 한 마리의 켄타우로스.
놈은 놀랍게도 초보적인 화염 마법을 쓰고 있었다.
파이어볼트, 기껏해야 파이어 스트라이크 정도의 마법이었으나 애초에 마법은 이런 상황에서 비대칭 전력이었다.
고등급 화염 마법에 비하면 초라하다 할지라도 결코 위력을 무시할 수 없었다.
“게다가 적은 쪽의 움직임이······ 남다르네요.”
이번에는 정현의 분석이었다.
예린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히 마법의 존재만으로는 압도적인 수의 차이까지 극복할 수 없었으리라.
그런 일이 가능했던 건 구성원 하나하나의 실력이 큰 폭으로 차이가 났기 때문.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단순한 기량의 차이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으나, 헌터가 본다면 한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건 특성이 개입된 결과물이라고.
“창이 아니라 도끼랑 칼을 쓰는 걸 보면 특성이 아니라고 할 수가 없네요. 움직임 자체도 완전히 다르고요.”
켄타우로스는 태생부터 기병이라는 특성에 걸맞게 주로 활과 창을 사용한다.
수가 많은 쪽은 분명 그런 정석적인 병기 운용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러나 수가 적은 쪽은 창과 활뿐만 아니라 다양한 무기를 활용했다.
저런 무기를 어디서 구했는지는 둘째 치고 그것들을 다루는 실력이 수준급이었다.
켄타우로스들이 훈련 교관을 두고 병사를 양성하는 것도 아닐 테니 저런 움직임은 특성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게다가 각종 무기술 특성뿐만 아니라 괴력을 내는 놈들, 잽싸게 전장을 누비는 놈들 등.
“이건······ 재앙이야.”
예린의 조그만 혼잣말이 들려왔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이제까지 헌터가 나약한 인간의 몸으로 몬스터들에 맞서 싸울 수 있었던 근간이 무엇인가.
바로 시스템에서 비롯되는 특성이었다.
그런데 몬스터가, 그것도 한 개체가 아닌 한 무리가 통째로 특성을 가졌다면 재앙이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말도 안 되는 난이도의 임무형 게이트를 헤쳐 나오며 특성을 가진 몬스터도 간혹 보아 왔던 정현 역시 이런 상황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일반 몬스터에 특성이라니, 이게 무슨······.’
우선 첫째로는 저 켄타우로스들이 특정 보스 몬스터가 아니라 게이트에서 흔히 만나는 일반 몬스터라는 것.
보스 몬스터야 워낙 독특한 놈들이고 간혹 변이 개체가 보고되기도 하니 특성, 혹은 그 비슷한 이능력을 가지고 있다 한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일반 몬스터가 특성을 가진다는 건 전혀 다른 얘기였다.
만약 고블린이 암기술이나 암행 특성을 가진다면?
만약 오크가 도끼술이나 근력 강화, 맷집 특성을 가진다면?
원래도 각 레벨에 맞는 헌터가 쉽게 상대할 수 없었던 몬스터들이 상성 좋은 특성을 가지게 된다면 그 파급력은 끔찍할 것이다.
‘게다가 여기는 일반형 게이트라고!’
두 번째는 이곳이 임무형 게이트가 아닌 일반형 게이트라는 것.
임무형 게이트는 각 길드에서 인정받는 베테랑들이 선별되어 들어가기에 어느 정도 대처가 가능하다지만 일반형 게이트는 공개된 곳이었다.
두 사람의 머릿속에 상상하기도 싫은 상황이 동시에 떠오른 것은 바로 그 점 때문이었다.
‘만약 이런 일이 모든 게이트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면?’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서로 시선을 한 차례 교환한 두 사람은 조용히, 하지만 신속하게 파티가 기다리는 곳으로 뛰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나가서 설명드리겠습니다! 지금은 우선 전속력으로 게이트 이탈합니다!”
“네?”
두 사람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영훈이 사정을 물으려고 했지만 예린은 그의 말을 끊어 가며 파티원들을 재촉했다.
평소 그녀가 이렇게까지 급하게 구는 경우는 긴급 출동이 아니면 없었기에 의아해진 영훈.
다른 파티원들 역시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이번에는 정현에게로 시선을 주는 찰나,
“빨리빨리! 움직여요!”
그 정현마저도 예린보다 다급하면 다급했지 절대 덜하지 않은 태도로 파티원들을 다그쳤다.
파티의 구심점이라고 할 수 있는 두 사람이 그런 상황이다 보니 네 사람은 제대로 상황을 알지 못하는 와중에도 신속히 게이트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에요?”
정신없이 게이트가 있는 방향으로 달리며, 지희가 정현에게 물었다.
예린과 함께 연신 뒤를 돌아보던 정현이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특성을 가진 몬스터들이 나타났습니다.”
“네?”
정현도 별로 기대하지 않았지만 지희는 단박에 알아듣지 못한 눈치였다.
애초에 누가 쉽사리 믿겠는가.
들은 것을 그대로 믿기보다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편이 더 쉬운 정보였으니까.
하지만 정현은 그녀의 물음에도 달리 부연하지 않았다.
이내, 지희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어 갔다.
***
여느 때처럼 수사국의 살인적인 업무에 시달리고 있던 수사국장 고민석.
그런 그의 핸드폰에 별안간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또 누가······.”
물론 협회 간부의 지위상 업무 시간에 전화가 오는 것은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었지만, 발신인을 확인한 민석은 조금 의외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 차예린 과장
전화를 건 사람은 다름 아니라 오늘 휴가를 나간 예린이었으니까.
“여보세요?”
– 국장님, 3과장입니다.
“예, 3과장님. 오늘 휴가 아니십니까? 어쩐 일로?”
– 비상 상황입니다. 지금 당장 ‘켄타우로스의 초원’으로 가용 가능한 S등급 투입을 부탁드립니다.
“뭐라고요?”
뜬금없는 예린의 제안에 민석이 황당한 목소리로 물었다.
S등급 헌터 두 명과 휴가를 이용해 사냥 간다더니 현실 감각이 이상해지기라도 한 것일까?
“혹시 범죄라도 일어난 겁니까?”
민석은 재차 물으면서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애초 이번에 파티 인원은 모두 검증된 협회의 인원이거나 협회에 우호적인 정현뿐이었다.
게다가 S등급의 지원이 필요하다면 그에 준하는 위협이 있어야 한다는 뜻.
그렇다면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곧바로 생각나는 경우의 수는 하나뿐이었다.
‘설마 한정현 헌터가?’
가면 2인조를 잡았을 때부터 수사국의 눈에 띄기 시작해서 경이로운 속도로 성장하는 것을 통해 S등급으로 인정받은 정현이었다.
게다가 그 뒤로는 경이를 뛰어넘어 초월적인 행보를 보였다.
5레벨 게이트 수준에 올라서자마자 곧바로 임무형 게이트에 뛰어드나 싶더니 이제는 일주일에 하나꼴로 해치우고 있었으니까.
그 정도 속도는 같은 S등급이라고 해도 유례가 없었다.
그런 헌터가 갑자기 빌런으로 돌변했다면?
– 그게 아닙니다.
다행히 예린의 대답에 민석은 안심할 수 있었다.
하긴, 같은 파티에 소속된 정현이 돌변했다면 지금 이렇게 전화를 걸 새도 없었으리라.
하지만 이어진 예린의 설명을 들은 민석은 자신이 잘못 생각해도 한참을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차라리 한정현이 빌런으로 변했다는 쪽이 더 현실적이었으니까.
– 특성을 가진 켄타우로스가 다량 발생했습니다. 현 시간부로 협회로 긴급 복귀하겠습니다.
“뭐라고요?”
민석은 예린이 S등급 헌터들을 지원해 달라고 했을 때와 똑같은 질문을, 훨씬 더 커다란 목소리로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전화는 그대로 끊어졌다.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아니면, 예린이 그녀답지 않게 장난을 친 건가?
둘 다 말이 안 되는 소리였고 그 말인즉슨 방금 그녀에게 전해 들은 소식이 사실이라는 뜻이었다.
“이런 미친!”
민석은 핸드폰을 집어 던지다시피 내려놓곤 책상 위에 놓인 내선 전화를 집어 들었다.
***
“이제 어떡하면 되는 거죠?”
예린의 지시에 따라 협회로 이동하는 길.
정현은 자신과 함께 원호의 차를 탄 예린에게 물었다.
언뜻 보면 평소와 다를 바 없지만 미묘하게 빨라진 말투가 그녀의 내면을 짐작게 했다.
“우선 우리는 곧바로 게이트 관리부로 갈 겁니다.”
“그럼 게이트는요?”
“S등급으로 이뤄진 팀이 일대를 샅샅이 조사할 겁니다. 게이트는 봉쇄될 거고요.”
“그럼 저희도······.”
“지금은 상황을 알리는 게 더 중요하니까요.”
정현은 예린의 뜻을 완전히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더 입을 열지는 않았다.
차 안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뒤따라오고 있는 영훈의 차 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몬스터가 특성을 쓴다니 이게 무슨······.”
한편, 운전을 하고 있던 원호가 침묵을 깨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잠시 정차를 했을 때도 연신 검지를 가만두지 못하는 것을 보면 그 역시 적잖이 마음이 심란한 모양이었다.
“혹시 등급이 어느 정도인지도 대충 보였습니까?”
이어진 질문에 정현이 쉽게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고민했다.
마법의 수준은 그리 높지 않았다지만 그건 어쩌면 몬스터인 탓에 제대로 된 사용법을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육체에 관련된 특성 같은 경우엔 몬스터의 기본 스펙 자체가 인간과는 차원이 달랐기 때문에 특정하기가 난감했고.
“등급 자체는 낮습니다. 잘 쳐줘야 D를 넘지 않겠더군요.”
“어떻게 아시는 겁니까?”
“그게 일이니까요.”
조금 놀랐다는 듯이 정현이 묻자 예린이 담담하게 답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빌런은 저등급 저레벨부터 고등급 고레벨까지 다양하게 분포한다.
그들을 상대하는 역할을 하다 보니 각 등급마다 보이는 특성이 대략적으로나마 눈에 익었던 것.
한편, 원호는 룸미러로 뒷좌석을 흘끔 보며 물었다.
“그럼 그나마 다행일까요?”
“그렇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좀 더 조사를 해 봐야 알겠죠.”
지금 당장 본 것은 그렇지만 만약 이런 현상이 정말 ‘켄타우로스의 초원’뿐 아니라 다른 게이트에까지 벌어지고 있다면 장담할 수 없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간신히 브레이크만 방지하는 수준에서 운용해야 할지도 몰라.’
어디까지나 최악의 경우이긴 했지만 충분히 가능한 전망이었다.
지금처럼 파티장이 예약을 잡고, 자유롭게 헌터들끼리 파티를 결성해서 들어가는 대신 훨씬 엄격한 기준이 적용될 것이다.
거기다 인원 제한 역시 훨씬 강화될 것이고.
헌터의 수는 한정되어 있는데 한 번의 사냥에 요구되는 양과 질이 늘어난다?
당연히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여유로운 수준에서 브레이크를 관리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도착했네요.”
그리고 이런저런 예측을 하는 사이 어느새 차는 협회 부지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겉보기에는 별다름 없어 보였지만 중요 부서가 모여 있는 지하의 상황은 조금 달랐다.
몇몇 사람들이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는 것은 물론, 게이트 관리부가 있다는 지하 6층에 도착하자 정현도 이미 본 적 있는 거대한 덩치의 남자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사국장 고민석이었다.
그는 정현 옆에 서 있는 예린을 무거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요청한 대로 조치해 주긴 했지만, 만약 허위 보고였다면 마땅한 처분을 각오해야 할 겁니다.”
평소 민석의 성격이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협박성 어조였지만 사안이 사안인지라 이상하게 들리지 않았다.
한편, 예린은 살벌한 기세의 민석을 앞에 두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 대답했다.
“헌터증, 걸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