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25
25화
수겸은 완벽하게 갑의 위치에서 말했다. 김만복과의 거래일은 앞으로 4일 뒤.
이제 약속한 물량을 뽑아낼 차례였다.
수겸은 천진자원의 이기백, 한방 약재상 박동현에게 각각 연락했다.
둘 모두 새로운 주소로 물건을 옮겨달라는 말에 별다른 말 없이 그러겠노라 답을 해왔다.
수겸은 통화를 끝내고 계산기를 꺼내 숫자를 누르기 시작했다.
“내가 만들 양은 350돈쯤이고, 시세는 32만원. 그러면 대충 1억 천이 나오고, 수수료 떼고 먹을 돈이 7천 8백만∙∙∙∙∙∙. 2주에, 아니 4일, 아니 실제로 작업에 걸리는 시간은 2일쯤일테니까. 2일에 7천만원을 버는 꼴이네. 허허.”
갑작스럽게 현실감각이 무너졌다.
친구 민환이 그런 거금이 있냐며 생난리를 치던 돈, 보증금 5천만원.
매월 내던 월세.
숨통을 조여오던 대출 이자.
밑에서 올려다보면 태산처럼 크게 느껴지던 것들이 상황이 달라지고, 시야가 높아지니 사소해졌다.
“이제는 아둥바둥 안살아도 되겠지.”
기쁜 일이지만 그 동안 한 고생이 생각나 왜인지 모르게 씁쓸하게 들리는 목소리였다.
“그나저나 이쯤되면 문제가 될 수도 있겠는데.”
수겸이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둔 명함을 집어 들었다.
‘일부러 말장난처럼 앞, 뒤가 똑같게 만든 명함인가?’
덩그러니 이름과 전화번호만 기재된 명함이었다.
주소도, 홈페이지도 없었다.
‘괜찮겠지?’
수겸은 전화번호까지만 부르고 통화 버튼은 누르지 못한 채 망설였다.
망설이다 통화 버튼을 누르니 신호음이 들렸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순금나라 사장님 소개로 전화드렸습니다.”
『혹시 명함 받으셨나요? 명함에 적힌 내용 한번 읽어주시겠어요?』
본인 명함을 읽어달라는 개소리에 조금 당황했지만, 일단은 시키는대로 했다.
“조태규 세무사 사무실. 대표 세무사 조태규. 이렇게 쓰여 있는데요?”
『네. 조태규 세무사 사무실. 대표 세무사 조태규입니다.』
“뭐하세요?”
말장난이 참을 수 있는 선을 넘어버렸다. 수겸은 망설이지 않고 통화 종료를 눌렀다.
아쉬움 없는 결정이었다.
“미친 놈인가?”
수겸이 채 뒤돌아서기도 전 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저장된 번호는 아니지만, 생각하지 않아도 ‘조태규 세무사 사무실’이었다.
마지막으로 금은방 사장님 얼굴을 봐서 전화를 받아보기로 했다.
“여보세요?”
『네. 조태규 세무, 아니. 조태규입니다. 전화 끊지말고, 말 한번만 들어주세요.』
“네. 말씀하세요.”
수겸은 단호한 말투로 일부러 짧게 대답했다.
『오해하지 마시라고 설명드리면, 제가 직업이 좀 많습니다. 그래서 소개 받으신 종목이 어떤건지를 몰라서 여쭤본거에요.』
“직업 얼마나 되시길래? 아니, 됐고. 세무사는 맞으신건가요?”
『네. 맞죠. 명함 보셨잖아요. 아까 순금나라라고 하셨죠? 그러면 김사장님 소개시겠네.』
“김만복 사장님이요? 맞아요. 요새 저랑 거래를 좀 하고 있는데 도움이 필요할거라면서 명함을 주시더군요.”
수겸은 전화를 받으면서도 명함을 만지막거렸다.
『그러면 대충은 알겠는데, 상담을 이렇게 전화로만 하기에는 신뢰 문제도 있는데. 한번 만나실까요?』
“네. 좋죠. 저도 그 편이 좋겠네요. 어디서 뵐까요? 제가 사무실로 찾아뵐게요.”
『제가 있는 곳이 좀 누추한데 괜찮으시겠어요?』
“네. 문제 없어요. 주소 불러주세요.”
수겸은 펜을 들어 여백이 많은 조태규의 명함 위에 주소를 받아적었다.
조태규와의 약속을 저녁으로 잡고 수겸은 서둘러 나갈 채비를 했다.
오늘은 수겸의 할머니가 에 입주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역시 돈이 좋긴 좋아. 안그래도 걱정이었는데 전원 과정도 전부 도와준다고 하는 걸 보니.’
민환의 시험이 이제는 정말 코앞이라서 불러내서 도와달라고 하기가 찝찝했는데, 시설에서 도와준다고 하니 걱정 하나가 절로 해결된 셈.
“그럼 가볼까.”
오늘 수겸의 발걸음은 더 없이 가벼웠다.
***
구름 한 점 없는 쨍쨍한 하늘.
새파란 하늘을 보고 있노라니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날이었다.
“할머니. 이제 더 좋은 곳으로 가요. 여기보다 훨씬 편안하시거에요.”
수겸이 할머니를 휠체어에 태우고 뒤에서 밀며 말했다.
다리를 절뚝이며 가는 모습을 보면 누구든 도와드릴게요 소리가 나오는 상황.
해피니스 300에서 나온 직원이 도와주겠다는 말을 했지만, 수겸은 한사코 거절했다.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이렇게 좋은 날 할머니는 직접 모시고 싶어서요. 이렇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수겸이 고개만 끄덕여 감사인사를 전했다.
“저희 일인걸요. 짐은 전부 다 실었고, 할머님과 보호자분만 타시면 출발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할머니, 다시 갈게요.”
“근데 청년은 누구시오? 날 어디로 데려가려고 그러오?
할머니는 호기심보다 두려운 감정이 더 많이 실린 목소리로 물었다.
“할머니. 저 손자 수겸이에요. 여기보다 더 좋은 곳에 모셔가려고 해요.”
“우리 손주? 우리 손주는 이제 초등학생인데 무슨 말이누. 좋은 곳이면∙∙∙∙∙∙ 아이고. 저승사자시구나. 저승사자님. 안됩니다. 제가 가면 우리 손주는 누가 돌봅니까. 아이고. 아이고.”
할머니가 두서없는 넋두리를 했다.
수겸은 휠체어를 밀다 말고 할머니 앞으로 가 한쪽 무릎을 꿇고 할머니의 손을 포근하게 감싸 쥐었다.
“할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저승사자도 아니고, 할머니 손주가 맞아요. 이 팔찌 좀 보세요. 이거 할머니가 차고 다니면 복 받을거라고 주신 팔찌잖아요.”
항상 손목에 차고 있던 팔찌를 할머니 눈높이에 맞춰 들어 보였다.
“∙∙∙∙∙∙.”
할머니는 팔찌를 들여다보더니 말이 없었다.
“가시죠.”
수겸은 다시 뒤로 와 휠체어를 밀며 인솔직원에게 말했다.
할머니를 차에 태우고 수겸은 차에 올라타기 전 뒤를 돌아 목련 요양원을 봤다.
“잘 있다 갑니다. 감사합니다.”
듣고 있는 이, 보고 있는 이 하나 없지만 수겸은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읖조렸다.
***
서울 명동
서울에서 땅 값 비싸기로 손꼽히는 동네에 누가 임대를 내면서 가게를 열지 했는데 그게 바로 이 사람인가보다.
요즘 핫하다고 하는 마라탕집이 1층에 있는 건물.
2층으로 올라와서 바로 오른쪽 모퉁이를 돌면 보이는 첫번째 철제 문.
“있긴 있네.”
수겸은 혹시나 안에 들릴까 싶어 혼잣말로 조용히 말했다.
똑똑.
철제 문 특유의 딱딱하지만 속이 텅 빈 것 같은 소리가 울렸다.
“누구세요?”
“오늘 만나뵙기로 한 사람인데요.”
“아아!”
문이 열리고 조태규가 수겸을 맞이했다.
많이 쳐줘도 수겸보다 5살쯤 많을 것 같은 남자였다.
키는 165센치는 될까 말까? 회색 정장에 어울리지도 않는 노란 넥타이.
패션 센스는 영 꽝인 듯 했다.
“조태규씨?”
“네. 제가 조태규입니다. 아시다시피 세무사죠.”
조태규가 자기 소개를 하며 내민 손을 맞잡으며 악수를 했다.
“들어오시죠. 누추하지만 들어오시죠. 커피는 사놨습니다. 하하.”
안내 받은 사무실 내부는 정말로 누추했다.
수겸은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소파에 앉았다.
“좋네요. 푹신하고. 근데 생각보다 마라탕 냄새가 많이 올라오네요?”
수겸은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농담조로 말을 던졌다.
“그쵸? 아오. 왜 이렇게들 마라탕을 처먹는지. 저건 민원도 안먹혀요. 음식점에서 음식 만들면서 냄새가 나는데. 그걸 머라고 말할거야.”
조태규는 평소에 쌓인 것이 많았는지, 속에 있던 불만을 우르르 쏟아냈다.
“그러게요. 마라탕을 좋아해도 이건 좀 힘들겠어요.”
“그래서 제가 이제 마라탕의 마 자도 싫어합니다. 그나저나 도움이 필요하시다고?”
조태규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아마도 그럴 것 같아서요. 근데 본론을 말씀드기 전에 제가 못 믿어서 그런 건 아니고, 금은방 사장님이랑은 어떤 관계이신지?”
“아, 이해합니다. 저희는 동업 관계죠. 서로 같이 일을 하기도 하고 손님 소개를 시켜주기도 하구요. 벌써 같이 일한 지 6년? 7년은 됐을거에요.”
조태규는 으레 있는 일인지 수겸의 질문에 답했다.
“그러면 혹시 저에 대해서 들으신건?”
“딱히 없어요. 그냥 손님 한 명 소개했는데 전화할지도 모르겠다. 이정도? 다른 이야기는 프라이버시니까 직접 들으라고 하던데요.”
“음∙∙∙∙∙∙. 그러면 이야기가 길겠네요.”
“전부 말씀 해주셔야 서로 일하기 편하니까 저를 믿으시고 말씀해주시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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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겸은 조태규에게 연금술에 대한 것만 제외하고는 전부 설명을 했다.
모종의 방법으로 확보한 금이 있는데, 그걸 처분하는 이가 김만복. 지금 필요한 건 현금을 문제없이 수겸이 소화하는 일이라는 점.
물론 모종의 방법이란 건 영업 비밀이라 말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둘러댔다.
“그러니까 수겸씨가 어찌 저찌 해서 금을 확보하고, 그걸 김 사장님한테 파는데. 액수가 2주에 1억쯤 되신다고요?”
조태규가 처음보다 고조된 목소리로 물었다.
“수수료 떼기 전 1억. 떼면 7, 8천쯤?”
수겸은 덤덤하게 답했다.
“이거 골때리는 손님을 보냈네. 아, 미안합니다. 좀 당혹스러워서.”
멋쩍은 지 조태규가 머리를 긁적였다.
“왜요? 이정도는 약과 아닌가요??”
수겸은 실제로는 만나보지도 않은, 만나볼 일도 없는 마피아 같은 조직 범죄를 떠올리며 물었다.
“그거는 최상위권이고. 저나 김 사장님은 잔잔바리니까요. 음∙∙∙∙∙∙.”
“힘드십니까? 그러면 괜히 일 저질러서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마시고, 여기서 접죠.”
태연한 척 하지만 이미 패가 다 까발린 수겸의 손은 땀으로 축축해진 상태.
“에이. 비밀도 많은 양반이 성격도 급하시네. 잠깐 앉아서 커피 드세요. 누가 안된다고 합니까?”
그러면서 조태규는 바로 답이 나오지는 않는지 연신 턱을 문지르며 고민했다.
“일단 수겸씨가 부자가 되어야겠죠. 대내외적으로 모두.”
수겸은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조태규를 바라만 봤다. 계속 설명해보란 뜻이었다.
“요새는 SNS니 뭐니 해서 누가 갑자기 부자가 됐다고 하면 금새 동네방네 소문이 다 나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누가 봐도 씹망한 편의점 사장이 외제차 끌고, 좋은 아파트 살면 어떻게 되겠어요?”
“금방 소문이 나겠죠?”
“그렇죠. 어디 소문만 납니까? 까딱했다가는 되도 않는 소문까지 퍼지겠죠. 근데 수겸씨가 먼 짓을 하는진 몰라도 지금 당당해요? 아니잖아요. 당당했으면 이런 마라탕 냄새나 나는 사무실에 오지 않았겠죠.”
“∙∙∙∙∙∙.”
‘내가 당당했으면 그냥 너튜브 영상이나 찍었지. 길다가 뒷골목에서 비명횡사할 일 있나.’
수겸은 속으로 궁시렁거리며 조태규의 말을 들었다.
“중요한 건 스토리입니다. 왜 갑자기 수겸씨가 부자가 됐나. 여기에서 적당한 명분만 있으면 오히려 사람들은 질투, 시기가 아닌 부러움의 시선으로 수겸씨를 쳐다볼거에요. 성공한 자산가로요.”
“아까 돈 1억이 별로 안큰 것 아니냐 하셨죠?”
“그렇죠?”
“1억이요. 남들은 평생 모아도 못 모으는 돈일 수 있어요. 그러니까 든든한 뒷배경부터 만들고 시작하자구요. 방금 말한 그 돈이 전부에요? 아니잖아요.”
조태규는 궁금증을 해결해보려 수겸을 떠봤다. 아마도, 얼마나 있는지가 궁금한 모양이었다.
“그쵸. 지금 거래가 마지막이 아니니까요. 이제 시작 단계인데.”
수겸은 조태규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그러니까요! 지금부터 성을 잘 쌓아야죠. 금으로, 아니 돈으로 쌓은 황금색 성 말입니다!”
조태규가 흥분해서는 벌떡 일어나면서 말했다. 거의 외침에 가까운 소리였다.
“그러니까 요는 대외적으로 누가 봐도 ‘아, 저 사람은 왜 돈이 많을까’ 라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이제 뜬 구름 그만 잡고 해결책을 말해주세요.”
수겸은 나무라는 투로 조태규에게 정답을 요구했다.
“지금 말한 건 전부 왜? 에 대한 답이고, 어떻게? 에 대한 건 없는 것 같네요.”
수겸이 주먹으로 명치를 후려치듯 노골적으로 지적하자 조태규는 다시 얌전히 소파에 앉았다.
아무래도 일단 손님 확보부터 하자는 심정으로 기대감을 잔뜩 올려놓는 영업전략인 듯 했다.
아주 잠시 침묵의 시간이 지나가고 조태규가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