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4
4화
외모가 젊어지자 왜인지 모르겠지만 목소리까지 젊어진 듯 했다.
리카르도는 감개가 무량한 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손을 쥐락펴락 하며 보기도 했고, 얼굴을 매만지며 본인의 변화를 확인하고 있는 듯 했다.
수겸은 그런 리카르도의 마음을 읽은 듯 휴대폰의 카메라 켜서 리카르도에게 건넸다.
리카르도가 잠시 망설이다가 휴대폰을 받아 들었다.
“고맙네. 무엇인지는 알지만, 이걸 만져보는 건 처음이야.”
“천천히 보세요. 시간은 많으니까요.”
눈가가 촉촉해진 리카르도를 보고 수겸은 의도적으로 말을 아꼈다.
리카르도는 휴대폰을 왼쪽, 오른쪽으로 옮겨가며 재차 모습을 확인했다.
“덕분에 진짜 내 모습을 되찾았네. 우리의 거래와는 별개로 감사의 인사를 하네.”
“뭘요. 저 좋으라고 한거니까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수겸은 고개를 연신 저으며 말했다.
“혹시 제가 자리를 좀 비켜드릴까요?”
“아니야. 괜찮네. 그럼 준비 됐나?”
“혹시 아픈건가요?”
“아, 내가 설명을 안했군. 통증이 있거나 하는 마법은 아닐세. 어지러울 순 있지만 그것도 금방 없어질게야.”
수겸은 리카르도의 눈을 쳐다 봤다.
“그런데 제가 기억력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 기억을 잘 할 수 있을 지 걱정이네요.”
“이건 기억의 개념보다는 각인이라 보면 되네. 절대로 잊혀지지 않지. 음∙∙∙∙∙∙. 정 그렇게 걱정이 된다면 말이지.”
리카르도는 먼가 고민하는 듯 말을 잇지 않았다.
“그래. 그렇게 하면 되겠군.”
그러면서 좀 전에 수겸이 리카르도에게 건넸던 휴대폰을 가르켰다.
“이거요? 휴대폰은 왜요?”
“이 곳에서 얻은 지식을 활용한다면 내가 없어도 쉽게 연금술을 익힐 수 있도록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러네. 잠깐만 기다리게.”
리카르도는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명상을 시작했다.
수겸은 하는 수 없이 기다리기로 했다.
자리에 앉아 휴대폰을 들고 자극적인 제목의 뉴스를 찾아보기도, 좋아하는 너튜브를 보기도 했다.
그러기를 2시간.
“언제 끝나시는거지.”
수겸은 양 팔을 들어올리며 기지개를 켰다.
“하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창 밖을 보기도, 둘 밖에 없는 학원 건물 안을 살펴보기도 했다.
다시 1시간.
마침내 리카르도가 눈을 떴다.
리카르도는 맞은 편 의자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수겸의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일어나보게. 그리도 지겨웠나?”
아직 잠이 덜 깬 수겸이 휴대폰 화면을 보더니 투정을 부리듯 말했다.
“아니, 3시간도 더 기다렸다고요. 중간에 설마 죽었나 생각도 했다니까요.”
“하하. 거 참 재밌는 친구구만.”
마나를 되찾아서 그런지 되도 않는 수겸의 농담에도 리카르도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이제 끝난거에요?”
“맞네. 바로 시작하지.”
수겸은 당황하며 소리쳤다.
“결과는 말해줘야 할 것 아니에요? 뭐가 좋아진 거고, 그 뒤는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일단 해보면 알게 될 걸세. 멀 그리 걱정해. 어디 내가 바로 떠난다던가? 일단 여기 앉게나.”
리카르도가 방금 전까지 자기가 앉아 있던 의자를 옆으로 밀어내고, 땅바닥을 가르켰다.
“알겠어요. 그러면 아저씨만 믿습니다.”
그러면서 수겸은 바닥에 털썩 앉아버리고는 눈을 감았다.
리카르도는 수겸의 뒤로 돌아가 양 손을 수겸의 관자놀이 위에 붙였다.
그들을 중심으로 바람이 일었다.
처음엔 옷 끝자락이 조금 흔들리는 정도였다가 점점 바람이 쎄지더니 펄럭이는 소리까지 날 정도가 되었다.
쿵!
리카르도가 한 발을 들어 힘껏 바닥을 찍었다.
그와 동시에 바닥에 예의 연금술을 펼쳤을 때와 비슷한 마법진이 절로 새겨졌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이번엔 훨씬 큰 사이즈라는 것.
번쩍
마법진에서 밝은 빛이 끊임없이 뿜어져 나왔다.
이제 빛의 기둥 안에 둘이 서 있는 모양새가 되었다.
“흐읍.”
나지막하게 리카르도의 목소리가 새어 나오고, 서서히 빛의 기둥이 사그라들었다.
털썩.
의식이 끝난 후 수겸은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리카르도 역시 몹시 지친 듯 했다.
5분쯤 지났을까?
수겸이 한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몸을 일으켰다.
“와씨. 안 아프다고 한 사람 누구에요. 나오세요. 아직도 골이 울리는구만.”
리카르도가 수겸에게 한 손을 내밀며 말했다.
“엄살은. 자, 일어나게. 좀 걷는 게 도움이 될 테니.”
수겸이 리카르도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좋죠. 가시죠.”
어느새 밤이었다.
둘은 철거촌을 아예 벗어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아무것도 안 먹었네요. 식사나 하시죠.”
리카르도는 뒷짐을 쥐었다.
“좋네. 이제 얼추 정리가 되었을 테니 걸으면서 물어보게나.”
리카르도의 말대로 일어난 직후 뒤죽박죽이던 머리가 이제서야 정리가 된 느낌이었다.
수겸은 속으로 연금술을 떠올렸다.
그러자 눈 앞에 작은 스크린이 떠오르고 그 위에 내용이 주르륵 써지기 시작했다.
[연금술]– 마나를 이용해 원자구조를 재구성하는 학문으로, 물질 조합에 따라 새로운 성질이 나타나기도 한다.
– 세부적으로 , , 등으로 나뉜다.
수겸은 화들짝 놀라 눈을 비볐다.
“이, 이게 뭐에요? 왜 눈에 이런게 보이는거죠?”
리카르도는 깜짝 놀란 수겸의 반응을 보며 뿌듯한 듯 미소를 지었다.
“내가 이 곳에서 1년이 넘게 살면서 느낀 건 여기 사람들은 무언가를 쳐다보고 읽으며 정보 습득을 하더군. 특히 자네 주머니에도 들어있는 휴대폰을 이용해서 말이야. 한번에 모든 것을 떠올리기 힘들 것 같아서 나도 그와 비슷하게 마법을 만들어 봤지. 번역까지 되니까 필요한 재료들 역시 이곳에서 불리는 이름으로 읽어질 것이네.”
“헐∙∙∙∙∙∙.”
수겸은 할 말을 잃었다.
리카르도는 본인의 업적이 맘에 들었는지 신이 나서 입을 멈추지 않았다.
“내가 말한대로 연금술에 대한 지식은 자네의 두뇌 깊숙히 박아 넣었어. 그렇지만 그걸 익히고 실제로 사용하는 건 또 다른 영역인거지.”
수겸은 리카르도의 말을 이렇게 이해했다.
학창시절 주입식 교육이란 이름 하에 얻어 맞아가며 머리 속에 지식을 우겨 넣었지만, 문제를 풀 때 필요한 이론을 추론하고 응용하는 건 별개인 것과 마찬가지라고.
“거기다 마나를 다루기 시작하면 조금씩 물질이 지니고 있는 본연의 마나가 눈에 보일걸세.”
“∙∙∙∙∙∙.”
수겸이 대답도 안했는데 리카르도는 멈추지 않고 말했다.
“내가 전수해 준 지식에 한해서지만 자네가 떠올리는 지식이 방금 전처럼 눈에 자연스럽게 보일걸세. 원리는 간단해. 빛계열의 마법과 환영마법을 섞고, 마인드 컨트롤을 조금 응용한다면∙∙∙∙∙∙.”
리카르도가 주저리 떠들었지만, 수겸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금을 만들어 낸 건 물질 변환일거고, 시약은 뭐고 생명 창조는 뭐지?’
그러자 곧바로 반응이 나타났다.
[시약 제조]–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 약품을 제조하는 것으로 독은 물론 치료제와 그 외의 마법 물약 등을 만들 수 있다. 경지가 완숙해질수록 효과가 커지며 치료제의 경우 잘린 신체까지 붙일 수 있게 된다.
[생명 창조]– 고도의 연금술 실력을 가진 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영역으로 지능을 가진 생명체 를 창조한다. 실패 시 연금술사에게도 치명적인 반동이 있는 만큼 신중을 기해 시도해야 한다.
간단명료한 정의였다.
그 중에 수겸의 눈길을 끈 것은 시약 제조였다.
‘어쩌면 할머니를 낫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어쩌면∙∙∙정말 어쩌면 내 다리도∙∙∙.’
수겸의 인생이 꼬인 첫번째 이유가 그의 왼쪽 다리였다.
어릴 때 생긴 사고로 절게 된 다리는 의도치 않아도 모두의 시선을 잡아 끌었다.
“야. 이 새끼 다리 봐라. 절뚝 절뚝. 하하.”
“절뚝이가 쳐다 본다. 빨리 튀어. 아 참! 빨리 안가도 못 잡지?”
“너희 그 이야기 들었냐? 얘 다리 병신 되니까 엄마, 아빠가 버렸다잖아. 저 새끼 할머니랑 살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악마들의 목소리였다.
학창시절 내내 괴롭힘은 이어졌고, 수겸에게 남은 선택지는 자퇴뿐이었다.
‘자퇴 후에 검정고시를 준비할 때가 그나마 행복했지.’
성인이 되어 보육시설을 나오면서 겪은 사회는 수겸에겐 또 다른 지옥이었다.
“고졸인데다 장애까지. 저희는 좀 힘들겠는데요. 학생 미안해요.”
면접을 보는 족족 같은 이야기.
힘겹게 구한 것이 편의점 아르바이트 자리였다.
그리고 10년을 거쳐 지금의 자리까지 온 수겸이었다.
“저∙∙∙ 혹시 제 다리도 고칠 수 있을까요?”
리카르도가 수겸을 쳐다봤다.
“음∙∙∙. 자네 다리는 말이야∙∙∙∙∙∙.”
수겸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고칠 수 있고 말고.”
“와! 진짜죠? 정말로 제 다리 고칠 수 있는거죠?”
금은방에서 금을 팔 때도 이보다 기쁘지 않았다.
“하하. 자네가 웃는 걸 보니 나까지도 행복해지는구만. 사실 재료만 충분하다면 내가 직접 물약을 만들고 싶다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니어서 못해주었네.”
“어쩔 수 없죠. 재료가 많이 구하기 힘든가 보죠?”
수겸은 낯빛이 어두워졌다.
“아무래도 그렇지. 문제는 내가 있던 곳과 여기는 환경이 달라서 식물만 하더라도 완전히 같은 종은 찾기 힘들다는 점이지. 같은 성질을 지닌 무언가를 찾는 것부터가 고난일게야.”
“그래도 할 수 있겠죠?”
“해야만 하지. 자네가 남들과 똑같은 다리를 가지고 싶다면 말이야.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걸세. 실패도 많이 할거야. 그렇지만 포기하지 말게나. 실패를 겪지 않은 자는 결코 성공할 수가 없네. 이 말을 명심해야 해.”
“알겠습니다. 역시 쉽지가 않네요.”
수겸은 대로변으로 나와서 보이는 첫번째 식당으로 들어가 식사를 마쳤다.
식당 문을 열고 나온 후 수겸이 리카르도에게 물었다.
“혹시 오늘 떠나실건가요?”
리카르도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자네에게 몇 가지라도 더 알려주고 떠날까 하네. 오늘 밤 일을 마치면 다시 한번 만나는 걸로 하지.”
“네. 여러모로 고맙습니다.”
“나야 말로 다시 한번 고맙네. 그럼 조금 있다가 보세.”
리카르도와 헤어진 후 수겸은 집으로 곧장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오늘 밤에도 역시나 밤새워 편의점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잠에 들 때까지도 연금술을 생각한 수겸은 한가지 결심을 굳혔다.
‘내가 연금술로 성공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편의점은 때려친다.’
***
또 다시 편의점.
최영지가 현금 출납기에서 시제금을 맞추며 물었다.
“사장님. 낮에 잠 못 주무셨죠?”
“어. 한 한시간 잤나? 티가 나니?”
“엄청요. 지금 낯빛이 까매요. 그냥 흑색. 오늘은 바로 가서 주무세요.”
“그래. 그래야겠어. 이러다 죽는 거 아닌가 몰라.”
최영지가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어휴. 가실 땐 가더라도 제 알바비는 입금 꼭 해주시고 가셔야 해요!”
“와. 인성 봐. 너 내일 월급날이라고 그러는거지? 걱정마시지? 내가 언제 월급 밀린 적 있었니.”
“농담이죠. 무슨 정색을. 어서 들어가세요.”
최영지가 카운터에서 나와 수겸의 등을 밀어 문 밖으로 내쫓았다.
“안녕히 가세요.”
“오냐. 나 간다. 수고해.”
띠링-
편의점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수겸은 영지와의 대화가 무색하게 집 말고 리카르도에게 강의를 받으러 학원으로 향했다.
사흘 연속 찾은 학원 건물을 올려다 보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왔는가. 어서 올라가지. 할 이야기가 있네.”
리카르도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수겸이 뒤를 돌아봤다.
“깜짝이야. 불안하게 왜 그러세요. 아, 일단 올라가서 이야기 하시죠.”
범죄 작당을 하는 것도 아닌데 수겸은 왜인지 누가 볼까 두려웠다.
다시 또 강의실.
특별한 인상이라곤 없는 지극히도 평범한 남자와 긴 흑발이 인상적인 남자가 책상 하나를 두고 서로를 마주보고 앉았다.
흑발의 남자, 리카르도가 품에서 스크롤을 꺼내서 책상 위에 펼쳤다.
“이 종이는 마나를 품고 있는 나무 수액을 바르고, 말리기를 4번 반복해서 만든 양피지네. 연금술을 사용할 때 안정성을 더해주기 때문에 힘들더라도 만들어서 쓰는 것이 좋아. 아, 물론 지금의 자네처럼 연습만 하는 정도라면 그냥 아무 종이에 해도 무방하지.”
수겸은 어느새 그의 눈 앞에 나타난 연금술용 양피지 제작법을 읽으면서 리카르도의 설명을 들었다.
그런 수겸의 모습을 리카르도는 자기가 한 실수를 깨달았다.
“자네, 어딜 보는게야. 여길 봐야지.”
타인의 입장에서 수겸을 쳐다보면
수겸은 허공을 쳐다보면서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리는 모양새였다.
거기다 집중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벌어진 입까지 더해서 완벽하게 미친 놈이었다.
리카르도는 수겸에게 미안한 감정을 느끼며 수겸의 시선을 돌렸다.
“크흠. 그럼 이제 한번 실습을 해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