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moved to the SSS-class production industry RAW novel - Chapter 192
제192화
45. 발포 개시 (4)
탕, 탕! 연달아 날아간 두 발의 화살이 수레의 진로를 가로막았다. 모르긴 몰라도 제 품 안의 식구에겐 끔찍해 보이는 보스이니 인형들에게 맞지 않도록 조준에 신경을 썼다.
노린 것은 하나 더.
“무모한 짓도 정도껏 해야지!”
내 스킬은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을 텐데. 그럼에도 들으란 듯 말한 한재이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금속 촉에 스쳐 끊어진 손수건들이 그의 발치에 후드득 흩어졌다. 화살의 진로를 본 한재이가 곧바로 몸을 튼 덕분에 얻은 성공이었다.
순식간에 포로를 놓치게 된 인형들이 당황한 듯 풀쩍풀쩍 뛰었다. 그러더니 놈들의 수정이 일제히 빛났다. 방금과 같은 수를 쓰려는 것이다.
물론 한재이는 호락호락 넘어갈 이가 아니었다.
헛웃음을 내뱉은 그는 인형들의 스킬이 발동하기 전, 냉큼 거리를 벌렸다. 발목 근처에 바람이 이는 것이 버프를 사용한 듯했다.
이동하며 소환한 머스킷을 어깨에 얹은 한재이가 정면을 주시한 채 물었다.
“그래서, 이젠 어떻게 할 거예요?”
“뭐, 저놈들 상대하는 것밖에 더 있겠습니까?”
“……만용뿐인 파트너라니. 최악이야.”
인생 피곤하게 사는 인간들이랑은 엮이는 게 아니었다고 날 비난하면서도 그는 총구를 겨눴다. 가늠쇠가 가리키는 것은 무대. 무용수가 있는 방향이었다.
“성가시게 얼쩡대기만 해요!”
보스는 자기가 책임지겠다는 거겠지. 말은 저렇게 했지만, 실상은 나를 배려한 행동이었다. 내 쪽에서도 부탁하고 싶었던 일이기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스킬 구성상으로도 한재이가 보스를 상대하는 것이 적절했다. 같은 레인저지만 나와는 타입이 달랐으니까. 지형지물을 활용하여 쉴 새 없이 공격을 퍼붓는 나와 달리 그는 강력한 한 방을 꽂아 넣는 저격수였다.
“사격에 집중하실 수 있도록 엄호하겠습니다.”
“아, 맞다. 흩어지기 전에 그거 좀 해 봐요.”
“그거? 뭘 말씀하시는 건지…….”
“약점 파악하는 스킬 있다고 했잖아요. 그거요!”
그걸 기억하다니 기억력도 좋네. 포지션 문제로 한재이와는 같은 현장에서 일한 적이 적은 편이었다. 자연히 다른 길드원에 비해 서로의 전투 스타일에 대해 잘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내가 너무 무심했나 보다.
‘저쪽이 나한테 관심이 많을 린 없으니까,’
텅! 그새 총알 한 발을 발사한 한재이가 대답을 재촉했다.
“어서요!”
눈 쪽으로 마력을 집중해 보스를 훑었다. 총탄에 얻어맞고도 흠집 하나 없는 치맛단부터, 보석으로 만들어진 눈동자가 달린 얼굴까지. 그러나 그 어디에도 약점은 없었다.
‘……이 녀석은 또 왜.’
한 번 겪어 본 일이라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다. SS급도 꿰뚫어 본 눈이다. 이게 작동하지 않는 데는 그때처럼 분명 이유가 있을 거다. 하지만 이를 한재이에게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일단은 적당히 얼버무릴 수밖에 없을 듯했다.
“약점이 보이지 않습니다.”
“예?”
“등급 차 때문인 것 같은데……, 틈틈이 다시 시도해보겠습니다.”
“됐어요! 그런다고 C급이 A급 되나?”
실망 때문인지 한재이는 유독 날카롭게 응수했다. 익숙한 반응이었기에 개의치 않고 나도 나대로 할 일에 착수했다. 반쯤 사라졌지만, 아직 내 손은 시위를 당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천장을 향해 날아간 화살은 이내 마법진을 그리고, 뒤이어 비가 되었다. 쏟아지는 화살 비에 슬그머니 한재이의 뒤를 노리려던 인형들이 우왕좌왕 허둥댔다.
극장은 내게 제법 괜찮은 전장이었다. 샹들리에와 박스석, 심지어는 벽에 걸린 장식물까지. 세로축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소재들이 가득했으니까. 인형들과 거리를 벌리고, 이곳저곳을 오가며 마수들의 정신을 쏙 빼놓았다.
– 큐!
“그래, 너도 잘했어.”
내 작은 키메라도 기꺼이 나섰다. 여기가 뷔페처럼 느껴질 고래는 종횡무진 헤엄치며 인형들을 해치웠다.
녀석이 세 번째 먹잇감을 찾아 몸을 낮췄을 무렵, 여태 별반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던 보스가 움직였다.
상대적으로 무대에 가까이 있던 한재이가 먼저 이상을 알아챘다. 그는 망설임 없이 뒤로 크게 뛰어 안전을 확보했다. 그 직후, 녹슨 철문을 열 듯 소름 끼치는 금속음이 났다.
끽, 끼릭-. 일자로 서 있던 무용수가 팔을 한데 모은 채 허리를 숙였다. 마치 인사라도 하듯.
“긴장해요. 여기서부터가 진짜인 것 같으니까.”
“예, 주의하죠.”
거미 같은 팔들을 마구잡이로 휘두를까? 어쩌면 커다란 몸으로 우릴 짓누를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라면 무대 아래로 폴짝 뛰어내릴지도. 여러 유형의 공격을 상상하며 몸을 낮췄다.
그러나 무용수는 모든 예상을 빗나가는 행동을 했으니. 기도하듯이 손을 모은 채 빙글빙글 도는 보스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영문을 모르는 나와 한재이와는 달리, 인형들은 익숙한 듯 무대 위로 옹기종기 모여 무용수와 함께 춤을 췄다. 어디에선지 노래까지 흘러나오니. 눈치 없이 연회를 방해하는 불청객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라리라, 이것은 꿈속의 카니발. 내 이름을 불러 주오.]의미심장한 구석이 있는 가사였다. 실로폰처럼 맑은 소리로 연주되는 배경음과 섞이니 어딘가 동화적인 느낌까지 들고. 한재이는 흘려듣는 눈치였으나, 나는 구절들을 머릿속에 잘 넣어 두었다.
‘뭐가 실마리가 될지 모르니까.’
방심한 틈을 타 공격을 퍼부을 수도 있었지만, 무대를 기준으로 투명한 방벽 같은 것이 생겨 그 너머로 접근할 수 없었다.
설마 큰 기술의 징조인가도 싶어 긴장을 풀지 않았지만, 춤곡이 흐르는 동안 극장 내에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보스 레이드치곤 믿기지 않는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그렇다고 그냥 가만히 있을 순 없는 노릇. 잠깐의 여유를 이용해 주변을 살폈다. 대체로 필드와 보스는 연관성이 있기 마련이니까. 아, 물론 보스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여기도 별 특별한 건 없고. 역시 저 무대 위가…….”
이곳저곳을 뒤지는 사이, 노래는 점차 클라이맥스로 치달았다. 혀를 차며 마지막으로 남은 구석의 박스석에 올라탔다. 그러나 그곳에도 역시 낡아빠진 가구와 장난감 따위밖에 없었다.
실망스러운 마음을 감추며 박스석을 나서려던 그때, 무용수와 눈이 마주쳤다. 새파란 보석에서는 그 어떤 온기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왜인지 그가 나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라리라, 우리는 언제고 기다리나. 찾아올 나의 그대를.]무용수는 ‘그대’라는 가사가 지나가는 순간 내게서 고개를 돌렸다. 착각일지 모르겠으나, 무언가에 대단히 실망한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
‘이 노래의 화자가 무용수인 건가.’
그렇다면 이해가 갔다. 기다리는 이가 올 때까지 이어지는 외로운 공연. 말이 좋아 카니발이지, 비참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짧은 연민은 곧 거두어졌다. 노래가 끝남과 동시에 무용수가 태도를 달리했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를 관망했던 것이 거짓말처럼 거센 공격을 퍼부었다. 기이한 각도로 휘둘러지는 다리를 피해 샹들리에 위로 뛰어올랐다.
“제기랄, 화풀이인가?”
그나마 다행인 점은 무용수의 전투 스타일이 투박하다는 것이다. 온갖 부품들을 엮어 만든 듯한 저 팔은 제대로 사용한다면 위협적인 무기일 텐데. 무용수의 움직임은 뻣뻣하고 어색했다.
시선을 돌려 한재이를 확인했다. 그는 타고난 민첩 수치를 이용해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모양이었다. 와중에 틈을 엿보며 사격까지 하니. 그의 승부욕을 알 만했다.
“전부 불발탄 신세가 됐지만.”
대체 무엇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아름다운 외관에서 연상되는 것과 달리, 무용수는 쓸데없이 튼튼했다.
일점에 집중된 만큼 공격력만큼은 A급에 뒤지지 않는 공격이거늘. 스킬로 강화된 한재이의 총탄도 그의 껍데기를 꿰뚫지 못했다. 단순한 등급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아무래도 본체가 따로 있는 것 같은데.”
생각이 뻗어가려는 찰나, 다음 공격이 쇄도했다. 그네를 타듯 발을 세게 굴러 샹들리에를 흔들었다. 무용수의 팔이 아슬아슬하게 뒤통수를 스쳐 지나갔다. 그대로 나는 미끄러지듯 뛰어내려 착지했다.
“그래, 이게 전부일 리가 없지.”
저보다 훨씬 약한 놈이 쥐새끼처럼 피해 다니는 게 성미를 거슬렀던 것일까. 작전을 바꾼 보스가 팔을 해체했다. 마디마디 엉망으로 얽혀 있던 골동품들이 와르르 쏟아졌다.
뒤이어 무용수는 둘 뿐인 도자기 팔로 치마의 수정들을 떼어 내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희미한 멜로디가 들리고, 골동품들이 마법처럼 수정을 중심으로 모였다. 심상찮은 기색을 느낀 나와 한재이가 스킬 발동을 저지하려 했으나, 이미 시작된 결속을 멈출 순 없었다.
[라리라, 이것은 꿈속의 카니발. 내 이름을 불러 주오.]골동품을 잡아먹은 수정에서 낭만적인 가사와 어울리지 않는 기괴한 마수들이 툭툭 탄생했다. 팔 대신 스푼을 단 놈부터 초침 소리를 내는 놈까지. 전부 제각각이었으나 하나같이 몸뚱이 어딘가에 수정을 달고 있었다.
스물다섯까지 숫자를 헤아리다 포기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을 본 듯 한재이가 신랄하게 쏘아붙였다.
“역량이 안 되니 인해전술이라. 가호 씨보단 머리를 쓸 줄 아나 보네요. 저것도 혼자 감당할 생각? 아님 가호 씨가 보스를 맡을래요?”
“어느 쪽도 무리란 거 아시잖습니까.”
“그럼 어쩔 수 없죠. 여기서 둘 다 죽는 수밖에.”
잘 훈련된 병정처럼 열 맞추어 선 마수들. 보스에는 흠집조차 낼 수 없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나도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갈피가 서지 않았다.
“본체가 있는 게 맞는지도 이젠 모르겠어.”
“아직도 그 소리예요? 그냥 우리 등급이 부족해서 그런 거래도!”
차마 반박하지 못했다. 어디에도 답이 없다는 탈력감 때문인지 반복되는 멜로디마저도 짜증스러웠다. 한재이도 같은 생각인지 대놓고 투덜거렸다.
“저 노래 좀 어떻게…….”
그때, 귀 끝에 익숙한 소리가 걸렸다. 한재이의 입을 틀어막고 소리에 집중했다. 이건…….
“피리?”
“그건 또 무슨 헛소리에요? 쟤네 노래밖에 안 들리는데.”
환청인가. 하지만 최권영의 것임이 틀림없는 피리 소리는 점점 커졌다. 그리고 그런 내게 확답을 주듯 총탄 자국을 만졌던 손끝에 차가운 감촉이 퍼졌다.
최권영의 마력이었다.
그리고 잇달아 한 줄의 문구가 눈앞에 떠올랐다.
[플레이어 최권영이 플레이어 윤가호를 대상자로 지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