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moved to the SSS-class production industry RAW novel - Chapter 211
제211화
49. 실루엣 (4)
– 큐우!
거리가 제법 있었지만, 다행히 해랑은 그림자가 들고 있던 무기의 냄새를 기억하고 있었다. 누굴 닮아 이렇게 단순한 건지. 신이 나서 쌩 헤엄치는 고래를 따라 지붕을 넘었다.
‘원래는 밤에 마도구를 탐지해 보라고 할 생각이었는데.’
시야에 들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탐색자의 눈’과 달리 해랑은 감지 범위 내라면 어디에서든 대상을 찾을 수 있었다. npc와 헌터를 잘 구분하지 못하는 등의 문제가 있긴 했으나, 그건 내가 도와주면 되는 거고.
내 작은 길잡이는 사건 현장을 지나, 도시 중앙의 시계탑 광장과 인접한 골목을 향해 내달렸다. 자연히 점점 사람이 많아지니 어쩔 수 없이 거리로 내려왔다. 로브를 입은 괴한이 보인 것은 그때쯤이었다.
“쉿.”
목표물을 발견하고 방방 뛰려는 해랑을 막아 세웠다. 입막음용으로 마력 화살을 물려 준 뒤, 낌새를 살폈다.
괴한은 아직 우리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하지만 극도로 주변을 경계하고 있어, 이보다 더 가까이 다가가긴 어려웠다. 한 블록 정도의 거리를 유지한 채 기척을 죽였다.
‘이 근처가 목적지인가.’
왜 움직이지 않는 거지? 생각하기 무섭게 괴한이 근처의 한 주택으로 들어갔다. 연녹색으로 칠해진 건물은 조금 낡은 듯했으나, 외관이 아름답고 잘 관리되어 있어 주택가에서도 단연 눈에 띄었다.
동시에 이 도시에 초행인 나도 익히 잘 아는 곳이었다.
‘새미기픈의 하우스!’
하우스. 바다사람 계층에서 우리가 머물렀던 곳처럼 플레이어 소유의 건물을 일컫는 말이었다. 퀘스트 보상을 통해 받을 수 있는데 그게 처음 밝혀진 게…….
“바로 여기, 발트하임이지.”
도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새미기픈을 위해 데런의 왕은 막대한 보상을 내렸다. 명성 높은 예술가의 소유였다는 저 집은 그 일부였고.
브리핑에서 한차현이 기억해 두라며 일러 주지 않았다면 몰랐을 사실들이었다. 그의 선견지명에 심심한 감사를 보내며 잠입할 만한 통로가 있는지 가늠했다.
‘아무래도 대문은 무리고, 굴뚝도 기각. 그렇다면.’
역시 만만한 게 창문이었다. 근래 이상하게 남의 집 창틀을 많이 넘는 듯한 건 착각이겠지. 미묘하게 죄책감이 들었으나 무시해버렸다.
세로로 긴 창문 중 어떤 게 좋을까 고민하던 그때, 해랑이 먼저 움직였다. 주변을 빙빙 돌더니만, 뭘 발견이라도 한 것일까. 녀석은 망설임도 없이 일직선으로 돌진했다.
얼결에 해랑을 따라 도착한 곳은 주택의 후면. 규모는 작으나, 키 작은 관목과 화초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정원이 있는 곳이었다.
– 큐우, 큐!
조용히 하란 말을 기억하는 건지 뻐끔거린 해랑이 내게 빨간 꽃 한 송이를 따다 주었다. 이걸 주려고 한 거야? 칭찬을 기다리는 고래의 이마를 문질러 주었다.
“고마워.”
– 큣!
“자, 이제 그럼 다시…….”
때마침 저택의 뒤편에 몸을 통과시킬 만한 창문이 있었다. 인기척도 안 느껴지고. 창틀의 잠금쇠를 부수려는데 해랑이 다가와 붕붕 고개를 흔들었다.
“그게 아니라고?”
– 큐우우!
녀석은 쏜살같이 어딘가를 향해 헤엄쳤다. 정원을 향해 난 작은 나무 문이었다. 저걸 소리 없이 부수긴 힘든데, 라고 생각한 순간 해랑이 문 아래쪽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리고 사라졌다.
“응?”
내 목소리를 들은 해랑이 다시 안쪽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절반은 저택 안에, 나머지 반은 바깥에 걸쳐진 괴상한 형태였지만. 육안에 보이지 않는 장치가 있는 듯했다.
스킬을 발동하니, 어떻게 된 일인지 단번에 파악되었다. 나무 문 아래쪽에 환영 마법으로 숨겨진 구멍이 있었다. 작은 짐승이 드나들 정도의 크기인 걸 보니 반려동물을 위해 낸 듯한데. 마력에 민감한 해랑이 이를 꿰뚫어 본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 집의 주인, 예술가라고 했지.’
그리고 이 계층에서 그는 즉, 높은 확률로 마법과 연관되어 있다는 뜻이다.
뭐, 확률을 운운할 것도 없지. 탐색자의 눈을 켜니 선명하게 느껴졌다. 이 저택 곳곳을 타고 흐르는 오래된 흐름이. 칼로스의 집에서 느끼곤 했던 감각이었다.
“집주인이 보통내기가 아니었나 본데.”
딸깍-! 해랑이 재주 좋게 안쪽에서 잠금장치를 풀어냈다. 심지어는 문고리까지 돌려 나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저택에 잠입하게 됐으니.
“이걸 기뻐해야 하나.”
멋대로 탈출할까 싶어서 이런 건 일부러 안 알려 줬는데. 소용없는 일이었나 보다. 내 생각보다 영리한 고래가 기특하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당당하게 칭찬을 요구하는 해랑을 보며 실소를 흘렸다.
이렇게 된 거 가릴 거 있나. 더 적극적으로 도움을 받아야지. 신주에게 떠맡다시피 받은 은신 아이템을 둘러쓰며 물었다.
“해랑아, 아까 그 사람 어디에 있어?”
– ……큐!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던 해랑이 어딘가로 날 안내했다. 누군가를 마주치지 않게 조심하며 그 뒤를 따랐다.
그러나 채 1분도 되지 않아 멈춰 서게 되었으니.
“그거 먹으면 안 돼!”
그림에 코를 박으려는 해랑을 간발의 차이로 막았다. 완전히 홀린 해랑은 내 손이 있는 줄도 모르고 앙앙 입질해댔다.
“이거 말고 아까 본 그거, 그거 준다니까?”
– 우우, 큐!
해랑이 허공에 꼬리를 팡팡 내리쳤다. 반찬 투정하는 애도 아니고. 아니, 애는 맞나……. 난리의 원인인 그림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집주인의 실력이 너무 빼어난 게 문제였다. 얌전히 나를 돕던 해랑은 그림이 줄줄이 걸린 방을 발견한 이후, 완전히 홀려 헤어나오지 못했다. 덕분에 나까지 발목이 잡혀 버렸고.
결국 나는 가지고 있던 아이템을 하나 내어 주고, 해랑을 들여보낼 수밖에 없었다.
“별다른 의도를 가지고 그린 그림들도 아닌 것 같은데.”
방에 걸린 것들은 대부분 고양이 그림이었는데, 말 그대로 그냥 그림이었다. 심지어는 대부분이 슥슥 연필만으로 편하게 그린 것이다. 화가의 역량이 너무 뛰어난 나머지 마력이 실려 버린 게 문제라면 문제였지.
돌발행동이 잦은 녀석을 데리고 다니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네, 정말. 차라리 혼자 다니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문고리에 손을 얹던 순간.
‘누구야?’
갑자기 뒤편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이어 흡,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들렸다.
짧은 순간, 여러 생각이 스쳤다. 이 문을 제외하면 사방이 막힌 구조였는데 어디서 나타난 거지? 새미기픈의 일원이겠지? 저쪽도 날 보고 놀란 것 같은데. 허를 찌르면 제압할 수 있으려나?
그 순간에도 상대는 서서히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일단 제압하고 생각하자.’
결정을 내리니 오히려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상대를 눈치채지 못한 척, 문고리를 돌리는 시늉을 하며 타이밍을 쟀다. 충분히 가까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거다.
……셋, 둘, 하나!
몸을 틀어 상대의 얼굴을 향해 다리를 휘둘렀다. 퍽! 방어하기 위해 상대가 올린 팔과 다리가 세게 부딪혔다. 근력이 강한 타입은 아닌지 그는 얼굴을 가린 채 그대로 뒤로 밀렸다. 내겐 희소식이었다.
제 시야를 스스로 틀어막은 틈을 놓칠 리가. 나는 곧바로 아래팔로 상대의 목을 짓누른 채 그를 벽으로 밀어붙였다. 남은 손으로는 벨트에 달아 둔 단검을 꺼내 그의 복부에 가져다 댔다.
전부 눈 한 번 깜박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내가 익히 알던 얼굴을 미처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가호 씨. 저예요, 저!”
“……?”
잠깐만. 이 목소리는…….
“한차현 헌터가 왜 여기에 있습니까?”
얼굴을 가리던 팔뚝이 천천히 내려가고, 많이 보아 온 갈색 눈동자가 둥글게 휘었다. 코가 닿을 듯한 가까운 거리였지만, 상상치도 못한 정체에 굳어 눈만 껌벅였다.
꽤 우스운 모양새였나 보지. 낮은 웃음소리를 흘린 한차현이 단검을 쥔 쪽의 손목에 제 손을 얹었다.
“일단 위험하니까 이것부터 좀 치워 주시겠어요?”
“아, 네. 그래야죠.”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믿기지 않아 다시 보았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왜, 한차현이 여기에 나타난 거야?
한차현은 저 역시도 놀랐다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나만큼은 아닐 것이다. 연락은 왜 받지 않았으며, 나타났으면 왜 빨리 말하지 않았냐고 타박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내가 있는 힘껏 짓누른 그의 목이 벌겋게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 신경 쓰지 마세요. 저인 줄 모르고 그러신 거잖아요.”
“…그래도 죄송합니다.”
“반응 속도 정말 빠르시던데요. 근접전도 이렇게 잘하시는 줄은 처음 알았어요. 역시 레인저, 라고 해야 할까요?”
한차현은 송구스러워하는 날 달래려 일부러 유쾌하게 대꾸했다. 그럼에도 미안함이 가시지 않아, 포션을 내밀었지만 그는 그것마저도 극구 사양했다.
“제가 그렇게 연약해 보이나요? 자꾸 이러시면 좀 자존심 상하는데.”
“그렇다는 게 아니라…….”
“농담입니다. 가호 씨가 이런 표정 짓는 건 처음 봐서 그만. 마음 상하셨다면 죄송해요.”
“됐습니다.”
어딜 다녀온 것인지 한차현은 상당히 기분이 좋아 보였다. 평소엔 하지도 않던 장난까지 치고……. 얄미운 마음에 그를 흘겨보았으나, 별 타격감은 없는 듯했다.
한차현이 은근슬쩍 또 날 놀리려 들기 전에 얼른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연락 한 통 없으시다가 왜 여기 뚝 떨어지신 겁니까?”
“우연히요. 다 우연히 일어난 일이에요.”
그는 특유의 차분한 말투로 제게 있었던 일들을 설명했다. 박물관에서 고양이를 만났다는 알지 못할 이야기는 곧 이 저택의 정체로 이어졌다.
“이곳이 그 화가의 집이라고요?”
“아, 제가 거기까진 미처 설명해 드리지 못했군요.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새미기픈의 하우스는 본디 줄리엣 루가 머물던 곳입니다.”
전쟁 도중, 줄리엣 루는 실종되었다. 말이 좋아 실종이지 죽었다고 보아야 맞을 것이다. 이후 그의 재산과 작품들은 예술에 대한 열등감이 심한 데런 왕실이 강탈하다시피 하며 가져갔다고. 개중 가치가 낮은 작품들과 저택이 새미기픈에게로 이관된 것이다.
마법의 어떤 부분이 잘못되었는지, 한차현은 본래 있던 박물관에서 내가 있는 이곳으로 떨어졌다. 우연찮은 우연이었다.
“이렇게 되었으니 제 작전에 협조해 주셔야겠습니다.”
“기꺼이.”
내게 장난스레 뻗어진 손을 잡고 흔들었다. 홀로 미행을 시작한 직후, 은근히 어깨를 누르던 불안은 어느새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