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Obtained a Mythic Item RAW novel - Chapter 196
195화 잔혹 동화(1)
과거 어린 시절.
재현은 한 각성자를 동경해 레이더가 되기로 결심했다.
주원.
최초의 각성자이자, 인류의 영웅이었다.
당시, 주원을 본 어린 재현은 눈을 반짝이며 생각했다.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어!’
그것은 순수한 동경이었다.
재현이 생각하는 주원은 강했고, 선량했다.
사람들을 구하기 위한 영웅.
그게 재현이 생각하던 주원이라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는 거짓이었다.
주원은 영웅이 아니었다.
그저 오딘의 마수에 놀아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
어린 생도들을 실험 대상으로 가지고 논 추악한 쓰레기.
그게 주원의 본모습이었다.
―액티브 스킬 《마도구의 형상화》를 발동합니다.
―《용살검 발뭉(S)》을 제작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재현은 검을 꽉 쥔 채, 앞의 소년을 향해 뻗었다.
지금부터 그는 과거 동경했던 대상을 죽여야 한다.
재현은 그 사실을 가슴 깊이 상기했다.
* * *
지하 3층.
마지막 층은 농익은 어둠과 핏자국이 한데 뒤엉켜 있는 연구실이었다.
채 정리하지 못한 실험의 흔적과 살점이 바닥에 죽 깔려 있다.
타일 틈에 널브러진 주사기와 끈적한 피가 흘러내리는 유리관.
주변을 메우는 풍경들은 온통 피폐한 것투성이였다.
그 가운데에는 두 남녀가 서 있다.
매혹적인 미소를 지닌 익숙한 얼굴의 여자 채지윤과 최초의 각성자 주원.
두 존재는 재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에게로 향하는 네 개의 눈동자는 소스라칠 정도로 감정이 없었다.
재현은 물러서지 않고 그 동공을 마주했다.
그렇게, 세 존재가 서로를 바라보며 신경전을 벌이던 그때.
“재현 군! 괜찮은 거예요?!”
불시에 뒤편에서 들려온 헬라의 목소리.
재현이 빠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다행이야. 둘 다 무사했구나.’
그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다행히 파피와 헬라는 큰 부상이 없어 보였다.
아무래도 자신이 테마 던전에 있는 동안 외부의 시간이 흐르지 않은 듯했다.
그리 이상하지는 않은 일이었다.
던전 안팎의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경우는 꽤 흔하니까.
생각을 정리한 재현이 다시 앞을 보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그것 보다 헬라, 한 가지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부탁이요?”
헬라가 눈가를 좁히며 얼굴을 들었다. 재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주원과 싸우는 동안 채지윤을 상대해 주세요.”
“채지윤이라면…… 최초의 각성자 옆에 있는 저 여자를 말하는 겁니까?”
“네. 아무래도 혼자 둘 다 상대하는 건 어려울 것 같거든요.”
재현은 주원을 향한 검을 거두지 않은 채, 그렇게 말했다.
헬라는 손을 뻗어 재현과 대치하고 있는 주원과 채지윤의 마력을 잠시 가늠해 보았다.
‘확실히 재현 군의 말대로 두 존재의 마력은 상상 이상이야. 아무리 그가 신격을 갖고 있다고 해도 이들은 위험한 적.
지금은 재현 군의 말대로 자리를 피해 주는 게 나아.’
판단은 빨랐다.
헬라는 채지윤을 데리고 이 자리를 벗어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그때, 채지윤이 끼어들며 조소했다.
“누가 그렇게 해 준대? 나는 따로따로 찢어져서 싸워 줄 생각이 없…….”
“아니, 대적자가 하자는 대로 해 줘.”
“네?”
대답이 돌아온 것은 바로 옆이었다.
채지윤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허나 주원은 완고했다.
“대적자와 제대로 싸워보고 싶어. 그러니까 자리를 비켜주지 않을래?”
“하지만 그랬다가는 후긴과 오딘에게 꾸지람을 듣게 될…….”
“내 싸움에 끼어들지 마.”
순간, 대답하는 주원의 입으로부터 소스라치게 차가운 음성이 쏟아졌다.
시종일관 웃던 그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웃음이 지워졌다.
채지윤은 깨달았다.
지금 그에게 대들었다가는 당장이라도 짓이겨질 수 있다는 것을.
아무리 자신이 강하다 해도 오딘의 까마귀인 그와 비교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 알았다구요. 그럼 뒷말 안 나오게 확실히 처리해 주세요.”
채지윤은 그렇게 말한 뒤, 헬라를 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럼 우리는 자리를 피할까요?”
“좋죠. 여기서 싸우다 괜히 휘말리고 싶진 않으니까.”
헬라는 그렇게 말하며, 파피와 함께 그녀를 따라 사라졌다.
헬라는 떠나기 직전, 마지막으로 재현에게 한 마디를 남겼다.
“전에 말했던 대로, 까마귀는 ‘바다의 정수’를 지니고 있을 겁니다.
조심해야 해요. 파훼법을 미리 생각하지 않으면 당할 테니까.”
“걱정 마세요. 저도 다 생각이 있으니까.”
재현은 그렇게 말했다.
오래 지나지 않아 헬라와 채지윤, 파피가 자리를 벗어났다.
재현은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힌 뒤 앞을 보았다.
주원이 자신을 보며 다시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좋아. 이제야 둘만 있게 됐구나. 대적자, 우선 축하해 줄게. 지금 네가 여기 있다는 건 2층의 테마 던전을 클리어했다는 거니까.”
“역겨운 소리 하지 마라.”
재현은 그렇게 말한 뒤, 검에 힘을 실어 재빨리 도약했다.
카앙!
수직으로 내려찍듯 휘둘러오는 검. 주원 역시 어느새 꺼낸 레이피어로 그의 공격에 호응했다.
티르빙. 주원이 후긴에게 건네받은 아티팩트였다.
‘틀림없이 티르빙은 신화급 아티팩트다.’
카아앙!
검과 검이 부딪히며 소음이 쏟아진다. 서로의 목을 노리던 검이 빗겨나며 땅에 부딪혔다가, 다시 튀어 오른다.
“자자, 그렇게 급하게 가지 말자고. 싸우기 전에 한 가지 묻고 싶은 것도 있고.”
“묻고 싶은 것?”
“그래.”
주원이 웃으며 이었다.
“지하 2층에서 본 소설, 어때? 재미있었어?”
재현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 이야기가 재미있었냐고?
재현은 이를 악문 채 말했다.
“그딴 이야기가 재미있었을 리 없잖아.”
“아쉽네. 나는 그 소년의, 아니 내 이야기가 재미있었으면 했거든.”
재현의 눈가가 좁혀졌다.
주원이 레이피어를 재현에게 겨눈 채 이었다.
“나는 주인공이 되고 싶었어. 동화에 등장하는 영웅이 되어 모두에게 인정받고 싶었지.”
“지금 그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뭐지?”
“네게 한 가지 부탁을 하려고.”
부탁?
갑작스레 꺼낸 말에 재현이 표정을 구겼다.
그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주원의 입가가 매력적인 호를 그린다.
이윽고 이어진 말. 재현은 이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를 죽여주지 않을래?”
* * *
아스가르드의 궁전, 중앙 연회장.
에시르 신좌들이 간만에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 토르가 호탕하게 웃으며 한 신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불퉁한 표정의 헤임달이 앉아 있었다.
“하하하! 그래서. 그 대적자인가 나발인가 하는 놈한테 신격을 빼앗겼다고?!”
티르가 혀를 차며 토르의 말을 받았다.
“헤임달…… 비프로스트에 앉아서 지나다니는 신들 뒤꽁무니나 쫓을 때부터 알아봤다. 한심하기 그지없군.”
“그건 오딘께서 직접 지시하셨던 일이다! 불만이 있다면 가서 직접 따…….”
“닥치고 앉아라. 잘한 것도 없는 주제에.”
프레이야마저 혀를 차며 그렇게 말했다.
재현을 직접 겪지 않은 이들로서는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제약이 있다고는 해도, 채 영글지도 않은 대적자에게 신이 패배했다고?
그것도 아스가르드의 파수꾼이?
“조용.”
그때. 상석에 앉아 있던 오딘이 말을 끊으며 끼어들었다.
그가 둘러앉은 이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헤임달의 실패에 관한 이야기는 거기쯤하고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지. 후긴.”
“네.”
오딘의 옆을 보좌하던 후긴이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예언의 대적자가 《오딘의 잃어버린 눈》을 갖고 있습니다.”
“뭐…… 뭐라고?!”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
“무슨……!”
“사실입니다.”
터져 나오는 신들의 격한 반응에도, 후긴은 전혀 당황하지 않은 채 이었다.
“미미르. 지혜의 거인이 대적자에게 시스템과 함께 눈을 전해준 것으로 보입니다. 심지어 그는 이미 로키의 힘까지 개화했다고 합니다.
아마 처음부터 그가 성장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설계한 것 같습니다.”
“로키의 힘까지? 허…….”
티르가 한숨을 쉬며 몸을 뒤로 젖혔다. 그가 중얼거리며 덧붙였다.
“역시 미미르 그 녀석은 죽였어야 했다. 더러운 거인 새끼들이 기어코.”
“로키의 힘이라면, 설마 《신성 찬탈》을 말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프레이야의 물음에 후긴이 고개를 끄덕였다.
삽시간에 신들의 표정이 싸늘히 굳었다.
예언의 대적자.
그가 꽤 강해졌으리라는 생각은 했다.
아무리 방심했다 해도, 헤임달이 패배했다는 것은 그가 꽤 성장했다는 뜻.
이미 신격을 갖추기 시작했다는 것도 미리 전해 들어 알고 있던 부분이었다.
하지만 오딘의 잃어버린 눈.
뿐만 아니라 로키의 스킬을 갖고 있다는 소식은 아무래도 흘려듣기 어려웠다.
“아스가르드의 반역자의 스킬을 갖고 있다는 건, 확실히 심각한 문제군요.
하지만 저희 손으로 직접 죽일 수도 없는 노릇이니…….”
티르가 고심하던 찰나, 오딘이 다시 입을 열었다.
“프레이야.”
“무슨 일입니까?”
프레이야가 날이 선 말투로 답했다.
오딘이 제 오른편의 눈을 빛내며 그녀를 보았다.
그가 엄중한 목소리로 이었다.
“발키리들을 준비해라.”
“……예?”
다시 한번 당황한 신들의 목소리로 연회장이 가득 찼다.
* * *
“죽여달라니. 그게 무슨 소리지?”
재현은 어이가 없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허나, 주원의 표정은 진지하기 그지없었다.
“말 그대로야. 나를 죽여줘.”
재현이 당황해 말을 잇지 못하자, 주원이 웃으며 말했다.
“아까 네가 말했잖아. 내 이야기가 재미없다고. 재미없는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읽히지 않거든. 그리고 읽히지 않는 이야기는 거기서 멈춰야 하니까.”
“……너는 미쳤어.”
“하하, 자주 듣는 이야기야.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죽어줄 순 없지.”
주원이 검을 한 바퀴 빙글 돌리며 이었다.
“난 오딘의 명에 따를 수밖에 없는 꼭두각시. 도구거든. 그래서 내가 죽고 싶을 때 죽을 수 없어.
그러니까, 네가 날 죽여줘.”
그 말을 듣는데 어째서일까.
조금 전 테마 던전에서 보았던 소년이 생각났다.
재현이 발뭉을 움켜쥐며 답했다.
“웃기지 마라. 나는 분명 널 죽일 거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의지다. 네 부탁 때문이 아니라, 내가 개같아서 죽이는 거라고.”
“하핫! 그거면 충분해! 자, 그럼…… 시작해 볼까?”
탓!
주원이 어느새 도약해 재현과의 거리를 좁혀왔다.
재현이 검을 세워 공격을 막으려 했으나, 그의 공격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재현이 입술을 물며 마력을 개방했다.
‘속도로 밀린다면 마법으로 커버한다!’
재현이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필드를 향해 응축된 마력을 쏘아냈다.
―액티브 스킬 《전격의 사슬》을 발동합니다.
촤르르르!
채앵!
빠르게 날아들어 자신의 검을 쳐내는 사슬에, 주원이 흥미를 보였다.
“재미있네. 하지만 아직 힘을 숨기고 있구나?”
아직 신격은 개방하지 않았기에 재현의 공격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
그는 신격을 갖추긴 했으나, 아직 해방 1단계에 불과하다.
개방 상태를 오래 유지할 수 없기에, 찰나의 틈을 만들어 단번에 전투를 끝내는 게 가장 좋았다.
지금은 적의 움직임을 읽고, 그 호흡과 전투 방식을 읽어내는 게 우선이었다.
챙!
재현이 어느새 근접해 찔러 들어오는 검을 쳐내며 중얼거렸다.
“네 검…… 거슬려.”
“하핫! 너 레이피어는 상대해 본 적 없구나?”
주원은 그렇게 말한 뒤 한 걸음 내디뎠다.
그가 이었다.
“더 재미있게 해 보자. 너도 마음에 들지?”
그 순간이었다.
콰콰콰콰콰!
그가 내디딘 왼발이 땅에 닿는 것과 함께 주변의 풍경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이건…… 대체……!’
정신을 차린 재현이 마주한 것은 아주 거대한 시계와 흰 토끼.
그 아래에 깔린 붉고 깊은 호수였다.
동시에 들려온 시스템 음.
―오딘의 까마귀가 신격을 개방합니다.
―필드 마법이 발동합니다.
―필드 《잔혹 동화》가 펼쳐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