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Obtained a Mythic Item RAW novel - Chapter 206
205화 진화의 제단
―파프니르 2세의 진화가 시작됩니다.
재현은 숨을 죽인 채 파피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파피가 낯선지 그를 따라 뒷걸음질 치려 했으나, 갑작스레 솟아오른 마법진의 벽에 가로막혔다.
“괜찮아. 파피.”
재현은 파피를 달래 주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제야 녀석은 조금 편안해진 표정으로 주저앉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화륵!
벽 면면에 걸린 횃불에 백색 불꽃이 피어오르며 이들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드래곤의 진화는 매우 까다롭다. 아직 파프니르 2세는 낮은 등급이니 큰 어려움이 없겠지만, 후에는 훨씬 더 까다로워질 거야.”
‘지켜보는 자’는 그렇게 말하며 재현에게 한 물건을 건넸다.
“이걸 쥐어라.”
그것은 룬어가 빼곡히 적힌, 양피지로 된 스크롤이었다.
“……이건 뭐지?”
“드래곤과 너의 영혼을 이을 수 있게 해주는 스크롤이다.”
재현은 곧바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이미 파피는 시스템에 의해 내 펫으로 등록돼 있잖아. 굳이 이런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는 이유가 뭐지?”
“펫이 낼 수 있는 화력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너와 파프니르 2세가 완전히 마력을 공유할 수 있게 된다면, 녀석은 몇 배는 더 강해지겠지.”
재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소환 계열 레이더 사이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있긴 했다. 소환한 마수와 더 깊은 유대로 연결될수록 강한 힘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개중에는 간혹 소환수의 등급이 오르는 경우가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었다.
“이해했다. 그럼 나는 뭘 하면 되는 거지?”
“너의 마력을 흘려 넣어라. 그렇게 하면 스크롤이 너를 인식하고 드래곤과 너의 의지를 이어줄 테니까.”
그렇게 말하며, ‘지켜보는 자’는 파피에게 룬어가 새겨진 목걸이를 건네주었다.
아무래도 저 룬어가 유대를 잇는 증표인 듯했다.
재현은 잠자코 스크롤에 마력을 주입한 뒤, 잠시 기다렸다.
“그럼 슬슬 시작하겠다.”
‘지켜보는 자’의 말과 함께.
진화의 제단 곳곳으로부터 강한 마력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지이잉…!!
과거 오딘의 잃어버린 눈을 얻을 때와 비슷한 감각이었다.
재현은 천연덕스러운 파피의 얼굴을 보며 깊은숨을 토해냈다.
그 순간, 손에 든 스크롤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스크롤 《유대의 문양》이 사용자를 인식합니다.
―마력 구조 업데이트 17퍼센트… 33퍼센트… 67퍼센트… 100퍼센트.
―소환수와의 연결이 완료되었습니다.
목소리와 함께 재현은 자신의 손등을 타고 올라오는 기이한 마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소매를 걷어 미약한 통증이 느껴지는 팔뚝을 바라보자, 그곳에는 전과 다른 새로운 변화가 새겨져 있었다.
‘이건… 문양인가?’
정확히는 룬어로 된 문양이었다.
조금 전 스크롤과 파피의 목걸이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모습.
‘지켜보는 자’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너와 파프니르 2세는 유대로 연결되었다. 한층 더 강한 힘을 낼 수 있게 된 거지.”
재현은 문양이 새겨진 후 곧바로 파피를 바라보았다.
녀석은 제 목에 걸린 목걸이가 불편한지 발톱으로 긁어내고 있었다.
“안 돼. 파피. 우리의 유대의 증표인데 그걸 끊어낼 셈이야?”
재현이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며 파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어 ‘지켜보는 자’가 입을 열었다.
“이제 각인도 모두 끝났으니, 본격적으로 진화를 시작하지.”
그의 말과 함께.
파피의 몸에 제단의 흰 불꽃이 옮겨붙기 시작했다.
재현이 놀라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짓……!”
“괜찮다. 생명을 태우는 불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지.”
“반대…라고?”
“녀석을 봐라.”
재현은 반신반의하면서도 파피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마력이 응축된 불을…….
“먹고 있어?”
파피는 하얀 불꽃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마치 그게 특별식(?)이라도 되는 듯.
재현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지켜보는 자’를 바라보았다.
그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백염(白炎)은 드래곤의 생명력을 높여주고 그 마력을 증폭시켜 준다. 귀한 것이기에 타 종족에게는 내어주지 않지만….
예언의 대적자라면 아깝지 않지.”
―파프니르 2세의 등급이 1 성장합니다.
―현재 등급은 C입니다.
―파프니르 2세가 새로운 스킬을 습득합니다.
―액티브 스킬 《거대화》와 《드래곤 피어》를 습득하셨습니다.
―《드래곤 브레스》의 등급이 1단계 올랐습니다.
―드래곤이 유아기에서 성장기로 접어들었습니다.
재현은 연이어 떠오르는 메시지에 뿌듯함을 느꼈다.
굳이 일본까지 수학여행의 목적지를 바꿔 온 보람이 있는 순간이었다.
“뭐, 일단 스킬은 나중에 차차 확인하는 거로 하고. 우선은.”
재현은 애써 올라간 입꼬리를 원위치시키며 물었다.
“‘지켜보는 자’라고 했나?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
재현의 흉흉한 눈이 드래곤의 거체를 정확히 올려보았다.
곧이어 ‘지켜보는 자’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재현이 덤덤한 목소리로 이었다.
“용의 골짜기. 이곳은 대체 뭐지?”
처음 이곳에 왔을 때부터 재현이 품었던 의문이었다.
파프니르를 처음 얻었을 당시. 시스템은 재현에게 알려주었다.
[드래곤은 사망 시 ‘용의 골짜기’로 전송됩니다.대기 시간이 지난 뒤 펫의 부활이 가능합니다.]
이러한 문구로 인해 재현은 이 장소 자체에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용의 골짜기.
죽은 드래곤조차 다시 부활시키는 장소의 진짜 의미.
재현은 이를 묻고 있는 것이었다.
한참이나 정적이 흐른 뒤.
‘지켜보는 자’가 굳게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용의 골짜기는…….”
* * *
셋째 날 아침.
수학여행의 자율 일정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서이나와 김유정을 비롯한 서클 나인의 멤버들은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재현은 전날 빠지기로 했기에 따로 같이 모이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는 파피의 성장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물론 이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그렇게. 평화로운 분위기의 서클 견학이 이어지던 와중.
갑자기 이재상이 민감한 주제의 화두를 던졌다.
“어어어, 어제 두 사람 재, 재밌었어?”
서이나를 향한 질문.
이재상은 어제 그녀가 재현과 함께 수족관에 놀러 갔던 일에 관해 묻고 있었다.
허나, 이는 다른 눈치 빠른 이들에게는 재앙과 같은 상황이었다.
‘저 미친……!’
권소율이 가장 먼저 양손을 모아 기도했다.
아무리 눈치가 없기로서니.
서이나의 얼굴에 남은 눈물 자국과 부은 얼굴이 보이지 않는 건가?
안호연과 김유정 역시 표정은 좋지 않았다.
‘제발… 어떻게든 넘어가 줘라…!’
안호연 역시 권소율을 따라 함께 손을 모았다.
하지만 서이나로부터 예상했던 싸늘한 대꾸는커녕, 밝은 목소리가 돌아왔다.
“……네. 재밌었어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옅은 미소까지 보였다.
안호연과 권소율은 잠시 서로를 마주 본 뒤 침을 꼴깍 삼켰다.
“아, 그… 뭐냐. 우리가 캐묻는 건 아니고 그냥 수족관이 재밌었냐고 묻는 거야. 얘도 다른 의미는 없을…….”
횡설수설했지만, 권소율은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하려 노력했다.
김유정은 그녀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그런데 그때였다.
“……사실 다 알고 있으셨잖아요. 제가 재현이 좋아하는 거.”
“쿠흡! 컥! 뭐, 뭐?”
안호연이 사레가 들렸는지 기침하며 서이나를 바라보았다.
권소율 역시 같은 반응. 이재상은 눈을 크게 뜬 채 동료들을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저저저, 전혀 모, 몰랐어…….”
“내가 볼 때 너는 평생 연애 불가능이야.”
권소율이 쏘아붙이자, 이재상은 금세 침울한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가장 놀란 것은 김유정이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말할 줄은 몰랐는데…….’
평소 낯을 많이 가리고, 말수가 적은 서이나였다.
그런데 그녀가 이렇게 당당하게 재현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고백할 줄은 몰랐다.
어렴풋이나마 짐작은 하고 있었으나, 직접 전해 듣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그렇게 세 사람이 당황하던 때, 이재상이 입을 열었다.
“그그그, 고, 고백한 거야?”
“……비슷해요.”
서이나는 홀가분한 표정으로 그렇게 답했다.
이재상은 권소율의 팔꿈치에 맞아 으억, 하는 볼품없는 신음을 내며 허리를 굽혔다.
그때, 김유정이 장난스럽게 서이나의 팔을 붙잡으며 물었다.
“너무 상심하지 마. 더 좋은 남자 널렸…….”
“……곧 들을 거야.”
그 순간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시종일관 밝던 김유정의 눈이 처음으로 파르르 떨리며 입가에 미소가 지워졌다.
서이나는 약간 힘을 주어 이었다.
“…대답. 아직 못 들은 것뿐이니까.”
서이나의 표정에서 결연함이 돋보였다.
한편, 그녀의 당찬 선언에 권소율이 저도 모르게 이마를 짚었다.
‘하, 얘들 아직도 뭐가 더 남았어?’
* * *
“용의 골짜기. 이곳은 쉽게 말하자면, 드래곤의 무덤이다.”
“드래곤의 무덤?”
재현의 반문에 ‘지켜보는 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곳에 있는 이들 중 정말 살아있는 용은 아무도 존재하지 않지. 그저 마법에 의해 삶을 반복하고 있을 뿐.”
“마법에 의해 삶을 되풀이한다……? 그런 게 가능한 건가?”
그러고 보면 파프니르 역시 마지막 순간에 알로 변해 다시 태어났다.
이것과 연관이 있는 걸까?
재현의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을 즈음, ‘지켜보는 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홉 세계의 종족 중 오직 용만이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 존재한다. 《환생》. 이는 죽음을 겪을 때, 그 기억을 전승해 다시 알로 태어나는 마법을 말한다.”
“다시… 태어난다?”
“그래. 네가 데리고 있는 파프니르 2세 역시 마찬가지지.”
재현은 곧바로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이 녀석은 어째서 과거의 기억이 없는 거지?”
“그건 오딘의 저주로 인해 페널티를 받았기 때문이다.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 파프니르는 자신의 기억을 희생했지.”
기억을 희생했다라.
재현은 그 문구를 되짚으며 잠시 고민에 잠겼다.
‘기억을 희생하면서까지 녀석이 나를 도우려 하는 이유는 뭐지? 역시 복수인가.’
명확한 답이 나오는 질문은 아니었다.
고민하는데, 별안간 다시 그가 입을 열었다.
“이곳은 거대한 무덤이자, 요람이다. 용의 골짜기. 시스템은 그렇게 부르지.
우리는 여기서 역소환 된 드래곤들을 다시 회복시켜 돌려보내는 일을 한다.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우리 동족을 함부로 전장에 내몰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말이야.”
재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뭔가 제대로 알게 된 느낌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내친김에 한 가지 더 물어보기로 했다.
“아까 이런 걸 얻었는데. 어떻게 조리해야 하는지 알고 있나?”
재현이 건넨 것은 다름 아닌 야마타노 오로치의 꼬리였다.
펫에게 먹이면 성장 속도를 보정하는 아이템이었으나, 재현은 이의 조리 방법을 전혀 몰랐다.
“하하, 물론이지. 나는 용의 골짜기를 지키는 자다. 그 정도 요리는 우습지. 이왕 알려주는 거 드래곤의 요리를 대접해 주겠다. 용들은 모두 미식가거든.”
그럼 보고 배워라.
그렇게 말한 ‘지켜보는 자’가 거대한 발톱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가리킨 곳은 식당이었다.
그곳에는 놀라울 만큼 커다란 접시가 놓인 식탁과 금으로 된 식기가 놓여 있었다.
재현은 주방으로 들어가는 ‘지켜보는 자’를 황당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안 어울리게 저 덩치로 요리를 한다고? 뭔가 좀 깨는데… 드래곤 맞아?’
그는 그렇게 생각했으나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마침 전투로 피곤해진 참이었다. 요리를 대접해 주겠다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재현은 한껏 기대하는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잠시 기다렸다.
그렇게 약 30분 뒤.
재현은 드래곤이 건네는 요리를 먹은 뒤, 구토를 하고 말았다.
그것은 익숙한 지옥의 맛이었다.
그 순간 재현의 머릿속에 한 인물이 선명히 떠올랐다.
“……김유정?”
신화급 귀속 아이템을 손에 넣었다 [독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