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Obtained a Mythic Item RAW novel - Chapter 329
329화 트롤스카프(1)
“저기 혹시… ‘다시 걷는 자’들로부터 생존하신 분들인가요? 저흴 도와주세요. 제발…… 아내가 위험합니다.”
“당신, 조심해야 하잖아요! 저 사람들은 마을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에요… 위험할지도 모른다구요!”
남자의 말에, 여자가 급하게 입을 틀어막으며 말한다.
재현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겨우 참아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드라우그는 근처에 더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지금은 잠시 자리를 비운 모양이었다.
재현은 잠시 표정을 풀고 말했다.
“네. 저희도 생존자입니다. 상인인데, 이 마을에서 물건을 팔려고 왔다가 사건에 휘말려서….”
“그 아이는 촌장님의….”
“촌장님은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재현은 무거운 어투로 말했다. 물어온 남자가 고개를 푹 숙였다.
아무래도 촌장은 마을에서 꽤 인정이 있는 사람이었던 모양이었다.
재현은 일단 자리를 옮길 것을 제안한 뒤, 이들의 행색을 살폈다.
두 사람 모두 추레한 옷을 입었고, 남자 쪽은 곳곳에 굳은살이 박여 있는 것으로 보아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 같았다.
손에 낚싯바늘과 같은 날카로운 것에 베인 자국이 있었으니, 거의 확실하겠지.
여자 쪽은 배가 약간 불러 있었다. 임산부인 것 같은데, 다리 쪽에 붉은 피가 약간 흘러 있는 것으로 보아 하혈이 있는 듯하다.
확실히, 임산부에게 지금과 같은 상황이 긍정적일 리 없었다.
지금은 안정이 최선이다.
‘두 사람은 아무래도 부부인 모양이네.’
재현은 아직 이번 퀘스트의 클리어 조건이 정확히 무엇인지 아직 파악하지 못했으므로, 그들을 살려두기로 했다.
눈앞의 도움을 바라는 자들을 무시할 만큼 재현은 매정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걸음을 옮기며 물었다.
“혹시 이 근처에 마을창고가 있습니까?”
“공용 창고라면… 이 근처에 있어요. 우물 근처에.”
“저저저저―제가 다음 하이드 포인트가 있을 거라 생각하는 곳도 우―우물 근처입니다요!”
라타토스크 역시 그렇게 말했다.
물론 두 사람. 그러니까 남자와 여자는 라타토스크를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일단 그쪽으로 가자.”
그릉!
“…응. 알겠어.”
나머지도 금세 동의했다. 이들은 우선 우물이 있는 창고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최대한 발소리를 내지 않고, 드라우그의 움직임을 피해서.
* * *
재현이 이그드라실의 공략에 나선 직후.
세계 레이더 연합의 본부는 쑥대밭이 되었다.
수뇌부들이 한데 모여있는 회의실.
리처드의 표정은 완전히 굳어 있었다.
“그러니까… 민재현이 자네가 숨겨 둔 최고급 아이템을 모조리 털어갔다는 이야기인가?”
“……맞습니다. 믿지 않으실지 모르겠지만….”
앞의 레이더가 바싹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는 일전에 리처드가 고가 아이템을 재현에게 건네지 않기 위해, 아이템 등급의 조작을 의뢰했던 레이더였다.
크리스. 위조와 가품을 만들어내는 장인.
때문에 리처드는 처음 재현에게 백화점의 VVIP 층에서 세계 레이더 연합의 물건을 자유롭게 가져가도록 놔두었다.
어차피 그가 아이템을 알아볼 능력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나마 아이템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이는, 그가 알기로는 한국의 큐레이터의 길드 마스터. 백지연뿐이었다.
그런데 고작해야 열일곱의 어린아이들이 아이템을 홀라당 털어갔다고?
그것도 좋은 것만?
“도저히 믿기지 않는 소식인 건 사실이군. 그것도 나쁜 쪽으로.”
리처드는 그렇게 말하며 이마를 짚었다.
그곳에 숨겨둔 물건.
물론 이는 잘 다루기 힘든 것이었다.
마법사 전용 아이템인 주제에 사용하기 워낙 까다로운 S+급 아이템.
리처드는 이를 사용할 수 있는 존재가 이후 새로이 등장할 거라 생각했다.
어디까지나 미국에서 말이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애석하게도 재현과 같은 인재가 나오지 않았다. 이는 세계로 그 범위를 확대해도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어느 레이더가 캐스팅 없이 마법을 자유롭게 사용하며, 전위에서 공격을 맞아도 체력이 거의 깎이지 않는단 말인가?
그런 자가 있었다면, 시그룬과의 전투에서도 미국이 지원군을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게 가능한 인간은 오로지 전 세계에 재현뿐이었다.
“어찌 보면 들어갈 사람의 손에 들어간 셈이긴 하지만….”
리처드는 S+급 아이템의 주인이 미국인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또한, 재현이 자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뛰어난 안목을 지니고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그와의 협상에서는 조금 더 주의하리라.
그는 그렇게 되뇌며, 수조 원 이상의 가치를 지닌 아이템을 빼앗긴 것을 애써 잊으려 노력했다.
“다음 안건입니다.”
아이템에 관한 이야기가 모두 정리된 뒤, 의장에서는 계속 회의가 이어졌다.
“최근 상위 등급의 레이더들이 공략 중에 사망하는 사고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처음 파장을 감지했을 때는 고작해야 A급에 불과했던 게이트가 어느새 S급, 혹은 그 이상으로 갑작스레 등급이 상승했다는군요.”
“안 그래도 소식 들었습니다. 이건 어떻게 생각해도 가볍게 여길 문제가 아니에요.”
최근 세계적으로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게 바로 그것이었다.
레드 게이트 때만큼 심각한 것은 물론 아니지만, 최근에 던전의 등급이 계속해 높아지고 있고. 등급의 측정에도 오류가 생겨 하위 던전에서 상위 마수가 등장하는 사건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덕분에 최근에는 다수의 상위 레이더들이 모아둔 자산으로 길드를 탈퇴하고, 연이어 은퇴 선언을 하고 있을 정도.
리처드로서는 골머리를 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가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대안은?”
“민재현… 그라면 안정적으로 던전의 클리어가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허나, 연화에 연락을 취한바. 지금은 일이 있어서 한동안은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라고….”
비서의 말에 리처드의 표정이 더욱 구겨졌다.
지금 최상위 등급의 게이트를 안정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이들은 재현과 그 파티원들. 그리고 새롭게 성장할 레이더들뿐이다.
리처드의 근심은 그렇게 더욱 깊어져만 갔다.
회의실에 모여 있는 이들은 말은 않지만 모두 한 생각만을 하고 있다.
‘라그나로크… 대체 그게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거지? 대체 던전과 마수… 필드의 배후에는 어떤 것이 존재하는 거야.’
정작 이를 제대로 알고 있는 재현은 현재 미드가르드에 없었지만.
* * *
우물가는 생각보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우물은 옷장 때와 마찬가지로, 옅은 녹빛을 띠고 있었다. 아마 라타토스크가 예상했던 하이드 포인트도 이 우물인 듯했다.
우물 내부는 이미 말라 있어 물은 딱히 없었다.
숨기 최적화된 지형이란 의미.
다만 이 역시 매우 좁았기에, 여차하면 또 아까와 비슷한 자세로 숨어야 했다.
서이나는 조금 전 옷장에서의 상황을 생각하며 잠시 얼굴을 붉혔다.
그때 자신의 심장 소리가 재현에게 들리지 않았길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잠시 주변을 살핀 결과. 재현은 그 근처에서 낡았지만, 정비가 자주 된 듯한 창고 하나를 찾을 수 있었다.
그 안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재현은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금세 찾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상황이 조금이나마 나아질 모양이었다.
“…재현아, 이건….”
“그래.”
재현이 서이나의 알았다는 듯한 말투에, 고개를 끄덕이며 내부 깊숙한 곳의 포대 자루 하나에 손을 얹었다.
그곳으로부터는 약간 짠 냄새가 났다.
그랬다. 그 물건은 소금이었다.
재현은 처음 러셀과 만났을 때를 잠시 생각했다.
그는 마을의 외부에 목책을 두르고 그 위에 소금을 뿌려두었다고 한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이 소금에 약하기 때문.
거기다 재현은 조금 전, 러셀의 딸을 소금으로 구하지 않았던가?
침대 아래서 숨죽이고 있던 그녀의 냄새를 맡지 못하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소금의 효과였다.
재현은 남은 소금 포대 네 개를 모두 가져와 우물가 근처에 옷가지로 엮은 천막을 펴고, 그 위와 근처에 잔뜩 뿌렸다.
이걸로 최대한 숨을 만한 곳은 마련되었을 것이다.
지금은 비도 완벽히 그쳤다. 소금이 제 역할을 한다면, 드라우그가 이곳을 침범하지 못할 것이다.
‘또 트롤스카프를 사용해서 비를 내리게 한다면 방법이 없지만… 날씨를 조종하는 대규모 마법은 그리 자주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적어도 반나절 이상은 쿨타임이 있을 거야.’
여기서 밤을 보내고 그들의 급습의 기미가 보인다면, 근처 우물에 들어가 숨으면 된다. 최소한의 안전책은 마련한 셈이었다.
“으으… 배가 아파….”
그때, 함께 온 여자가 신음하며 말했다. 남자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그러니까 조금만 더 견뎌….”
“…아내분이신가요?”
서이나의 물음.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제 욕심 때문에 이런 위험한 시기에 아이를 가져서… 이런 상황이 돼 버렸네요. 정말… 답답한 심정입니다.”
두 사람은 역시 예상했던 대로 부부였다.
물론, 재현은 그 와중에도 그들을 완전히 믿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들을 해할 정도의 힘을 갖고 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무리 재현이 공격 스킬을 사용할 수 없다고 해도, 인간 둘을 제압하는 게 그리 어려울 리 없었다.
재현은 일단,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막은 모두 두 개를 만들어 두었습니다. 소금을 쳐 두어서 드라우그가 쉽게 오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조심해주세요. 저는 불침번을 서겠습니다.”
“아… 그래 주신다면 감사하지만, 너무 죄송해서….”
“아내나 잘 보살펴주세요.”
“저, 그런데 한 가지 여쭤봐도 괜찮겠습니까?”
남자는 불시에 고개를 돌리며 물어왔다.
재현이 흔쾌히 끄덕이자, 그가 안심했다는 듯한 얼굴로 이었다.
“제가 알기로 소금은 드라우그의 침입을 막을 뿐, 냄새를 지워주는 효과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정말 소금의 효과를 보셨습니까?
사람의 몸에 바르는 것도 그리 효과가 없어 자주 사용하지는 않고, 목책에만 사용하는 방식이라 들었거든요.”
“조금 전에 그걸로 러셀 씨의 딸 아이를 지켰으니, 아마 틀림없을 겁니다. 앞은 제가 경계를 하고 있을 테니 그리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재현은 무뚝뚝하게 말했다. 기본적으로 마수의 습성은 자신이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도 전문 사냥꾼이 아닌 두 부부가 알고 있는 마수에 관한 정보라면, 어디까지나 토막에 불과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신이 본 것을 믿으면 된다.
재현은 조금 전 러셀의 딸을 구했고, 그게 그가 가장 확신할 수 있는 한 가지였다.
잠시 후. 재현은 경계를 서며 자신이 현재 사용 가능한 스킬을 점검해 보았다.
우선 가벼운 플래시, 그리고 공격을 제외한 방어력을 상승시켜주는 아이템들 정도.
문제는 후자의 경우는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 필드에서 다섯 대를 맞으면 반드시 사망한다.
이미 한 대는 맞은 시점. 그렇다면 재현에게 이제 남은 코인은 넷이라는 의미가 된다. 서이나도 마찬가지고.
‘방어보다는 다른 쪽에 쓸 만한 스킬이 조금 있으면 좋을 텐데….’
하지만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역시 쓸만한 것은 거의 없었다.
재현이 한숨을 내쉬며 스킬 창을 보고 있을 때였다.
바스락.
‘이런…!’
어딘가로부터 소리 없이 접근해온 무언가가 자신의 팔을 콱 무는 것이 느껴졌다.
다시 걷는 자.
드라우그가 나타난 것이다.
“당장 모두 일어나!”
재현은 자신의 체력이 또 한 번 1/5 줄어드는 것을 느끼며 소리쳤다.
내부에서 쉬고 있던 서이나와 그녀가 데리고 온 여자아이, 그리고 파피와 숨어 있던 라타토스크가 천막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사이 재현은 주먹을 꽉 쥐며 드라우그를 근력으로 내팽개쳤다.
그러나 그때, 전혀 생각지도 못한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
재현이 밀어낸 드라우그가 우물에 정확히 떨어져, 재현과 서이나가 하이드 포인트를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재현이 한눈에 팔린 순간, 뒤편에서 튀어나온 드라우그의 공격이 그의 어깨를 다시금 물어뜯었다. 조금 전 상대했던 놈과 다른 녀석이었다.
재현의 눈이 차분히 내려앉았다.
‘이걸로 남은 체력은 모두 2/5.’
두 대.
한 차례의 실수만으로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서이나 역시 재현의 체력을 보며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이나야! 지금!”
앞의 두 마리의 드라우그. 그때, 서이나는 재현이 지시했던 대로 천막 안에 숨겨두었던 소금 포대를 그들을 향해 던졌다.
이어.
재현이 바닥에서 주운 커다란 돌을 던져 포대를 정확히 맞추었고, 펑 하는 짧은소리와 함께 포대가 터지며 안의 내용물을 쏟아냈다.
그아아아아!
드라우그의 절규에 가까운 비명이 들려온다.
그것은 도저히 듣고 있기 힘들 정도로 처연한 것이었다.
두 마리의 마수는 잠시 움찔거리다가 계속 소금이 자신의 몸을 파고 들어오자, 이내 몸을 축 늘어뜨렸다.
재현은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으나 최대한 내색하지 않고, 깊은 한숨만을 내뱉었다.
서이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어왔다.
“…재현아, 괜찮아?”
“어. 걱정 안 해도… 아니다. 이건 걱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구나.”
재현은 그 상황에서도 장난을 치며 그렇게 말했지만, 서이나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때, 라타토스크가 기겁하며 한쪽을 가리켰다.
“저저저―저기를 보십쇼! 다다다다―다른 사람이 들어갔던 천막이 부서졌습니다요!”
그 말에 재현과 서이나의 시선이 순간 한쪽으로 향한다.
두 부부가 있던 천막. 그곳이 완전히 무너져내려 있었고, 그 틈으로부터 피를 흘리며 쓰러진 두 사람의 손이 보였다.
결혼반지를 끼고 있는 약지에 붉은 액체가 맺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재현은 머리가 싸늘히 굳는 것을 느꼈다.
무기력하다.
재현은 지독한 허무를 느끼며 서이나의 손목을, 그리고 러셀의 딸아이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한 곳으로 향했다.
“이제 알았어.”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술래를 알았거든. 그러니까… 이 빌어먹을 술래잡기를 끝내러 가자고.”
* * *
재현과 두 젊은 부부의 집이 급습당하던 그 순간, 촌장의 집으로부터 알 수 없는 마력이 감지되었다.
그것은 허공에 떠 있다가, 서서히 뭉치며 한쪽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윽고.
드드드득!
뼈가 짜 맞춰지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아주 익숙한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아아아…!
촌장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중얼거렸다.
“죽이겠다… 절대… 용서하지 않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