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153)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153화
종합의 장
스슷!
뤼카는 테마5와 테마6가 동시 진행된다는 말만 하고 사라졌다.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고.
버티기 힘들 거라고.
“씨벌.”
블라디미르가 중얼거렸다.
“저 양반이 저렇게 말할 정도면 진짜 심각해 보이는데?”
“그러게 말이에요. 일단 다들 준비해요! 뭔가 벌어지려 하는 것 같으니까!”
“좋아, 좋게 생각하자고. 오래 걸리지 않는다는 말은 이거만 버티면 다 끝난다는 거잖아?”
“저기, 저길 봐요!”
드드드드!
일그러지는 공간 속에서 올레나가 허공을 가리켰다.
[테마5가 시작됩니다.] [공간을 재구성합니다.]쿠구궁!
땅이 갈라졌다.
그곳 사이로 다시 한번 마그마가 출렁였다.
“미친?”
“또 용암이라고요?”
“이건, 테마3 때 지겹게 했잖아!”
“설마, 그때 그 화살 쏘는 기계 같은 것도 나타나는 건 아니겠죠?!”
올레나의 외침에 블라디미르가 눈살을 찌푸렸다.
“어이, 말조심하라고. 그러다가 진짜로…….”
투두두두!
그 순간.
하늘에서 익숙한 기계 장치가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쿵! 쿵! 쿵! 쿵!
사방에, 하나둘.
쌓아 올려져서 벽을 이루기 시작했다.
“이런, 씨발?”
블라디미르가 욕을 내뱉었다.
“진짜잖아? 올레나 이 자식이!”
“으으아아아, 이 짓을 또 해야 한다고요? 맙소사…….”
그뿐만이 아니었다.
푸쉬이이이!
그 장치들 사이로 녹색 연기까지 뿜어져 나왔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저건 독.’
나야 뭐, 독술(毒術)로는 이미 상대할 자가 없는 경지에 이르러 괜찮다지만.
동료들은 아니다.
그들이 앞서 겪어야 했을 시련인 독무(毒霧)를 내가 혼자 다 먹었으니까.
“후우.”
나는 심호흡을 했다.
독무야.
저 정도 독이면, 다 흡수해서 네 거로 만들 수 있겠지?
스멀스멀.
내 몸에서도 녹빛의 안개가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내 제안에 구미가 당긴 것이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독무(毒霧)는 내 수하가 아니다.
그저 나를 편안한 안식처라 생각하고 있을 뿐, 더 좋은 몸뚱어리가 나타난다면 그쪽으로 바로 이동할 터.
스스스슷!
사방으로 뿜어져 나간 독무가 기계의 독들과 부딪혔다.
서로 융합하고 해독하며 이리저리 섞였다.
[공간이 재구성되었습니다.] [테마5는 지금껏 겪었던 모든 시련을 종합하여 난이도를 극대화해 놓은 ‘종합의 장’입니다.]“……종합의 장?”
“아니, 종합이고 나발이고. 깰 수는 있게 만들어 놓은 거겠지? 얘네들 난이도 설정하는 거 보면, 말도 안 나오던데.”
슈슛! 슈슈슝!
화살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드르르륵!
바닥도 상하좌우로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테마3 때 했던 것처럼, 중심을 잡으며 화살을 피해야 했다.
[단계는 총 5단계로 나누어집니다.] [1시간을 버티면 1단계 통과입니다.] [2시간을 버티면 2단계 통과입니다.] [3시간을 버티면 3단계 통과입니다.] [4시간을 버티면 4단계 통과입니다.] [5시간을 버티면 5단계 통과입니다.] [5단계를 통과하면 완벽한 합격.]아아.
도대체 얼마나 빡센 거면 5시간이 끝일까?
물론, 5시간이 짧은 시간은 아니지만.
지금까지의 시련과 비교해 봤을 때는 짧은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통과하거나 탈락하는 순간.] [시련의 창시자, 던전 메이커 델라일라를 조우할 수 있습니다.]“허.”
심판창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델라일라를 조우하는 게 테마6인가 보군.”
뤼카가 곧 끝난다고 한 이유가 있었다.
5시간만 버티면, 모조리 다 끝나는 거다.
“버티지 못한다 해도 델라일라를 만날 수 있는 거면, 그래도 부담은 좀 덜겠어.”
장웨이가 창 자루에 힘을 주었다.
그의 팔뚝에 불끈불끈 솟아난 근육은 마치 대륙을 상징하는 것처럼 거대했다.
“친우들이여.”
“…….”
심판창이 나를 포함한 모두에게 ‘친우’라는 호칭을 썼다.
“사필시종(事必始終)이라 했으니, 이제 정말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까지 잘 버텨왔던 것만큼, 어떤 시련이 오더라도 끝까지 버텨라……!”
팀원들이 움직였다.
흐르는 땀과 피.
찢어진 피부와 근육.
누적된 피로.
긴 시간 동안 제대로 된 휴식도 없이 달려온 팀원들은 마지막 관문을 긍정적으로 맞이했다.
“좋아.”
“좋은 말이네요.”
땀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카푸와 묘이 하나.
“다들 끝나고 모여 맥주 한잔 조지면서 오늘의 이 순간을 추억 삼을 날을 기대하자고!”
쾌남, 블라디미르 로디긴.
“크, 듣기만 해도 군침이 싹 도는데요?”
빙긋 웃는 올레나.
“맥주는 우리 독일이 유명하지. 내 나중에 한번 싹 초대하겠네. 수백 년 전통 소시지와 함께 곁들이면, 크으으! 맥주 맛이 그냥 끝내주게 살아난다고.”
뇌명(雷鳴) 플로아와 같은 독일 출신인 중년, 막시밀리언까지.
“…….”
하지만.
나는 말을 하지 않았다.
무언가 불안했다.
‘종합의 장’인 테마5가 고작 독 뿌리고 화살 쏘고 땅 움직이는 게 전부라고?
그럼 용아병은?
암습의 대가인 섀도우 셰퍼드들은?
아니, 그걸 떠나서.
지금까지의 난이도를 생각했을 때, 테마5의 지금 이 난이도는 말이 안 된다.
무조건 더 쏟아져야 했다.
“다들 긴장해요!”
내 가슴에 서늘함이 다 가시기도 전에.
[띠링!] [여러분은 ‘테마1’ 때 음식을 찾아 시련 포인트를 쌓았습니다.] [또한, 미각을 통해 독을 판별할 줄 알아야 생존할 수 있었었죠.] [미각은 중요한 감각입니다.] [맛을 느끼는 것뿐만 아니라, 위험성을 감지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죠.] [지금부터 여러분의 미각(味覺)이 사라집니다.]“……!”
혀에서 느껴지는 짠맛이 완전히 사라졌다.
입가에 맴도는 혈향도, 단내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게 뭔가!”
“역시, 더 있었던 거죠?”
“그럼 그렇지! 예상하고 있었다고.”
“근데 미각을 왜? 미각이 없어지면 뭐 있는가?”
동료들이 당황하기도 전에, 메시지가 계속 떠올랐다.
[띠링!] [여러분은 ‘테마2’ 때 보물을 찾아 시련 포인트를 쌓았습니다.] [협동심을 기르는 훈련이었지만, 사실 탐험 능력을 위해서는 후각의 중요성 또한 못지않습니다.] [때로는 미각보다 훨씬 넓은 범위의 위험성을 감지하기도 하거든요.] [지금부터 여러분의 후각(嗅覺)이 사라집니다.]미각과 후각이 전부 사라지니까.
안면 전체에 이질적인 감각이 들었다.
‘뭐, 그래도.’
지금까지는 별문제가 없다.
하지만 내 등골이 계속해서 서늘해지는 이유는.
‘이거 설마.’
[띠링!] [여러분은 ‘테마3’ 때 회피 능력을 수련하며, 반응 속도를 끌어올렸습니다.] [반응 속도는 촉각과 밀접한 관련이 있죠.] [압각, 통각, 냉각, 온각 등의 통증을 전달해, 직접적인 위험으로부터 여러분을 지켜줍니다.] [지금부터 여러분의 촉각(觸覺)이 사라집니다.]“으아, 으아악!”
“자, 잠깐! 느낌이 이상해요. 아무것도 안 느껴지고, 아무 냄새도 안 나!”
“으음, 확실히 느낌이 싸하군.”
촉각부터는 팀원들의 반응이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도약할 때의 감각.
착지할 때의 감각.
움직일 때마다 피부에 닿는 공기.
호흡.
등등.
익숙하던 것들이 사라지자, 불편해진 탓이다.
“…….”
나 역시 눈살을 찌푸렸다.
테마5의 목적을 곧바로 파악해 버렸기 때문.
아마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팀원이 지금쯤 눈치챘을 거다.
‘오감을 제한하는 거겠네.’
미각, 후각, 촉각을 제한했는데.
다음 테마4가 섀도우 셰퍼드다.
그럼 뭐겠는가?
[띠링!] [여러분은 ‘테마4’ 때 섀도우 셰퍼드라는 그림자 족을 만났습니다.] [그림자 족의 기술은 시각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또한 섀도우 셰퍼드가 추구하는 ‘무음’(無音)의 경지는 청각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여러분의 시각(視覺)이 사라집니다.] [지금부터 여러분의 청각(聽覺)이 사라집니다.]‘역시.’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찌푸렸지만, 찌푸렸다는 감각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떠올랐던 메시지도 완전히 사라졌다.
‘과연.’
델라일라의 시련은 악독했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각을 빼앗아 놓고, 이런 지옥에서 다섯 시간을 버텨라?
그게 가능하긴 한 걸까?
“……!”
“……!”
주변 팀원들의 상황을 보고 싶어도.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 냄새도, 아무 맛도, 아무 감각도 들지 않는다.
무(無).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다.
마치 우주에 떠도는 먼지가 감정이 있다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동료들뿐만이 아니었다.
당장 내가 용암에 빠졌는지.
화살에 맞았는지.
아니면, 넘어졌는지.
피는 나는지.
이런 것들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건…….’
아니었다.
말이 안 됐다.
새로운 종류의 공포감이 정신을 잠식했다.
‘나는.’
나는 장담할 수 있었다.
여태 이 시련을 맞이했던 모든 랭커들이 1단계를 버티지 못했을 거라는 걸.
이런 걸 깰 수 있는 존재가 있을 리 없었다.
그렇다면 델라일라는 왜 굳이 이런 시련을 넣었을까?
난이도를 극악으로 올려, 혹여 모를 합격자를 뽑아내기 위해서?
아니면.
감각의 중요성을 설파하기 위해서?
우주의 일부분을 보여주고 싶어서?
무력함을 보여주려고?
‘몰라.’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뭐라도 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소원을 들어주는 주문서.’
떠오는 게 그것밖에 없었다.
[아이템 : 소원을 들어주는 주문서] [등급 : S] [종류 : 주문서] [설명 : 위기의 순간 사용하라. 그대에게 가장 필요한 무언가가 등장할 것이다.] [효과1 : 위기의 순간. 고대 마법이 당신을 돕는다.]지금이 위기의 순간이 아니면, 언제가 위기의 순간일까?
어차피 시련이 끝나기 전에, 마지막 하나 남은 거 쓰고 가려고 했었다.
‘해보자.’
하지만, 그 과정이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
저게 있다 해도 찢을 방법이 없지 않은가.
감각이 있어야, 저걸 꺼내서 찢을 텐데.
“…….”
나는 어둑한 공간에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내 몸뚱어리를 그리고, 내 주머니 속에 넣어둔 주문서를 상상했다.
그리고 그걸 꺼내는 상상을 했고.
찌익!
뜯는 상상까지 했다.
내가 실제로 그렇게 움직였는지는 알 수 없다.
지금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상황이니까.
하지만.
‘제발.’
나는 계속해서 상상했다.
주문서를 뜯으려고 노력했다.
이미 용암 속에 풍덩 빠졌을 수도 있다.
아니면, 찢으려다가 미끄러져 놓쳤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다.
나는 포기하기 싫었다.
‘지지 않는다.’
혹여, 지더라도 끝까지 하려고 한다면.
그건 지는 게 아니라 이기는 것인데.
‘졌다고 생각하고 포기하는 순간이, 진짜 지는 순간이야.’
즉.
할 수 있는 데까지 움직인다.
닿는 데까지 노력한다.
‘흐아아압!’
마음속 기합과 함께, 다시 한번 주문서를 시원하게 찢었다.
간절하게 찢고 또 찢어발겼다.
그 순간.
……됐다!
나는 속으로 지화자를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