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16)
쫄튀
기연에 대해 듣고 싶나?
그럼 저들과의 싸움을 마무리 지을 때까지 기다려라!
그게 싫다면?
배 째라!
“…….”
내 당돌한 선포에 잠깐의 적막이 흘렀다.
강재호 일행은 어이없다는 듯 픽- 웃었고.
A급 암살자는 차가운 눈매로 날 바라볼 뿐이었다.
“저, 저기…… 어쩌시려고요?”
짐꾼 남매가 불안한 표정으로 내 옷깃을 잡았다.
난 슬며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암살자의 눈을 똑바로 직시했다.
“이해해 주십쇼. 제가 일종의 정신병이 있어서요. 아무리 목숨이 위태롭다 한들, 자존심 상하는 건 못 참는 정신병이요. 제 뒤통수를 친 저놈들은 꼭 내 손으로…….”
“혹시.”
툭.
암살자가 입을 연 것은 그때였다.
그의 표정은 아직도 굳어 있었다.
“혹시, 허튼수작을 부리는 건 아니겠지?”
“에이.”
내가 손사래 쳤다.
서릿발처럼 차가운 시선이 쏘아졌지만, 당당하려 애썼다.
“어차피 이곳은 던전 속입니다. 제가 그쪽 앞에서 도망칠 어떠한 경우의 수도 없는 상황이에요.”
“확실한가?”
“그렇습니다. 설령 제가 비수를 숨겼다 한들, 묘책을 부린다 한들. A급 헌터의 눈과 감각을 속일 수 있겠습니까?”
“그렇긴 하지.”
암살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눈을 감았다.
냉정하게 재보는 것일 터.
‘거의 다 넘어온 것 같은데?’
저들은 흉악한 집단의 범죄자다.
그런 그들이 소속감 따위가 있을 리 만무하다.
본인이 이득을 볼 수 있다면, 언제든 동료나 부하의 뒤통수를 내려칠 수 있는 자들.
그런 내가 ‘기연’을 말하지 않겠다 땡깡 부린다면?
‘기연’을 말하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한다면?
과연 그는 아랫사람들을 챙길 것인가!
아니면, ‘기연’을 듣고자 할 것인가!
“솔직히 말할게요.”
나는 다시 입을 열어 확실히 못을 박았다.
암살자 시선엔, 내가 잃을 게 없는 놈으로 보여야 한다.
“저 어차피 죽을 상황인 거 압니다. 그렇잖아요? 눈앞에 암영단이 떡하니 있는데 누가 감히 살아갈 생각을 하겠어요.”
“…….”
“근데 죽어도 저 새끼들 좋은 꼴은 못 보겠단 말이죠? 착한 표정으로 다가와서 등에 칼 꽂는 부류들. 그러니까 받아들이기 싫으면, 그냥 죽여주세요. 아니면, 내가 목숨을 끊을까요?”
“……잠깐, 기다려 봐라.”
내가 뼈일이의 칼을 목에 대며 말하자, 암살자의 표정에 다급함이 서렸다.
처음 등장에서 내 목에 단검을 날렸을 때와 같은 여유로움은 어느덧 사라져 있었다.
“혀, 형님? 무슨 고민을……? 저런 말도 안 되는 꼼수에 넘어갈 작정이십니까?”
강재호가 당황했고.
“호오, 제법 강단 있는 방법이로구나. 상대의 욕심을 이용하다니. 이런 것이 바로 약자들의 전략일까? 허허, 한 수 배웠도다.”
뒷짐 진 노인이 재밌다는 듯 지켜보고 있었다.
“형님?”
“닥쳐라.”
암살자의 싸늘한 목소리에 강재호의 동공이 커졌다.
그런 녀석을 무시한 채, 그가 나를 바라봤다.
“만약, 저들이 널 제압하면 어쩔 테냐?”
질문의 요지는 이렇다.
싸우게 해주는 건 좋다.
근데 내가 진다면?
“그때는 깔끔하게 승복해야지요.”
“승복?”
“네, 승패를 떠나 그 던전에서 얻었던 기연이 뭔지, 어떻게 그 쪽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숨기지 않고 다 털어놓겠습니다.”
“흐음, 좋다.”
암살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본인의 손목시계를 두들겼다.
“시간은 딱 30분 주지. 단, 도중에 허튼수작 부리다 적발된다면…… 평생 죽지도 못한 채 고통 속에서 살아갈 거다. 나에겐 그럴 능력이 있어.”
“아무렴요, 감사합니다.”
내가 고개를 꾸벅 숙이자.
스윽!
암살자가 단검을 허리춤에 넣으며 물러났다.
내 제안을 깔끔하게 받아들이는 행동.
“너…….”
강재호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그런다고 네가 날 이길 수 있을 듯싶으냐?”
“글쎄.”
나는 씩 웃었다.
동시에 스켈레톤들을 정비했다.
“그건 해보기 전까지 모르지.”
삐그덕! 딱딱!
무기를 든 뼈다귀들이 딱딱거렸다.
언제든.
명령만 내리면 뛰쳐나가겠다는 의미.
지켜보던 노인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판을 깔아 놨으니. 나도 어울려 줘야겠지. 그럼 이번 훈련은 실전 훈수로 대체하자꾸나. 자, 저기 기다리는 암살자 놈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어찌해야겠느냐?”
‘최대한 힘을 아껴둬야 합니다.’
“그렇지, 적은 힘으로 큰 효과를 얻어내는 것. 지금부터 상대방의 힘을 역이용하는 묘수를 알려주도록 하겠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나는 눈을 번뜩였다.
노인의 조언과 함께라면, 강재호 일행 정도는 충분히 제압 가능할 터.
살짝 당황하는 강재호 일행들의 표정을 즐기며, 나는.
“쓸어버려.”
뼈다귀들에게 명했다.
그렇게 격돌이 시작됐다.
* * *
‘흐음…….’
사막 던전 속.
두건 쓴 남자가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그는 암영단(暗影斷)의 A급 암살자, 고재영.
‘깔끔한 움직임이군.’
고재영은 눈앞에서 강재호와 싸우는 한 사내의 움직임을 자세히 살폈다.
다섯 구의 스켈레톤을 제 몸처럼 컨트롤하는 네크로맨서.
‘확실히 초짜답진 않아.’
그뿐만이 아니었다.
싸우는 방법 또한 신묘했다.
스켈레톤 한 구, 한 구가 굳건한 것처럼 보이지만 부드러웠다.
마치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기라도 하듯, 흐물흐물하게 움직였다.
뼈다귀 주제에 말이다.
고재영은 확신했다.
‘강재호의 말이 맞군. 기연을 얻긴 얻었어.’
기연이 어떤 형태인지는 모른다.
아이템일 수도 있고, 스킬북일 수도 있다.
어쩌면 새로운 고유 능력의 각성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강재호가 분명 자신에게 말했었다.
그 던전의 보상은 기소율을 압도했던 어떤 괴노인의 가르침일 거라고.
정황상 그럴 수밖에 없을 거라고.
‘깜짝 놀랐었지.’
기소율이 어떤 인물이던가!
헌터들.
특히, 암살 관련 능력을 갖춘 헌터들의 로망이자 롤모델 아니던가!
처음엔 믿지 않았다.
그녀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던전 보스라니.
그런 던전 보스가 제자를 구한다니.
‘하지만.’
강재호가 작성한 파랑의 ‘비밀 유지 서약’을 보고 확신을 가졌다.
평소 시크하기로 유명한 기소율이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계약을 한다고?
굳이 귀찮게 생존자들의 입을 막는다고?
‘어쩌면, 진짜일 수도 있겠어.’
희망이 생겼다.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꿈을 이뤄낼 희망.
‘그녀의 목을 벨 수만 있다면……!’
부르르.
고재영이 흥분한 듯, 한차례 몸을 떨었다.
암살자로서 제왕이라 불리는 기소율을 암살하고 암제(暗帝)라는 이명을 빼앗는 것.
고재영이 품에 가지고 있는 최종 목표이자 꿈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기회가 왔다.
기소율이 숨기고 있는 ‘기연’을 가진 사내.
저 사내의 ‘기연’을 뺏어야 한다.
형태가 어떻든, 어떠한 방법이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직속 수하인 강재호를 버려야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콰아앙! 쾅!
“크윽, 이 버러지가!”
“제기랄! 스켈레톤이 요상해! 원래 이랬나? 내 공격을 다 흘리잖아!”
“파티장님! 여기, 뚫려요! 지원 좀!”
전투의 양상은 빠르게 꺾였다.
강재호 일행이 숨을 헐떡이며 난리를 떠는 반면.
뼈다귀를 조종하는 사내의 표정은 한층 여유로웠다.
‘호오, 결국 이기나?’
수하가 당하는데도, 고재영은 움직이지 않았다.
걱정은 없었다.
사내가 아무리 날고 긴다 해도, A급인 자신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
‘녀석은 약속을 지켜야 할 거야.’
그렇게 섬뜩한 표정으로 전투를 응시할 찰나였다.
‘음?’
고재영이 눈썹을 치켜떴다.
사막 던전 입구 쪽에서 동료의 기척이 느껴졌기 때문.
던전 밖에서 망을 보던 암영단의 또 다른 A급 헌터였다.
‘녀석이 왜 입장했지?’
그의 눈이 살짝 떨렸다.
* * *
“으읏!”
힘 빠진 강재호가 다급하게 칼을 들어 올렸다.
그런 그를 마무리 짓기 위해서, 뼈일이가 힘차게 검을 휘둘렀다.
쐐애애액!
공기를 찢어발기는 소리와 함께.
쨍그랑! 그의 칼이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갈라졌다.
“제기랄!”
욕설을 내뱉으며 내빼는 강재호를 뼈일이가 전력으로 걷어찼다.
“으아악!”
나동그라진 녀석이 온몸에 모래를 묻혔다.
그렇게 무력화된 것은 강재호뿐만이 아니었다.
[‘뼈다귀5’가 스킬, 파이어 볼(Lv.1)을 사용합니다.]화르르륵!
“마, 막아!”
“끄악! 뜨거워!”
“반칙이야! 마법 쓰는 스켈레톤이 어딨어!”
뼈오의 화염 공세.
[‘뼈다귀3’이 스킬, 하급 연사(Lv.2)를 사용합니다.]“또 화살이야!”
“쳐내! 실드!”
뼈삼이의 화살 세례.
“막지만 말고 역공해! 어차피 뼈다귀들이라 방어력은……!”
[‘뼈다귀4’가 스킬, 하급 막기(Lv.1)를 사용합니다.]“제기라아아알!”
스켈레톤들이 하나하나 헌터들을 제압해 나갔다.
그들의 몸은 생채기로 가득했고.
움직임에서는 피로의 기색이 완연했다.
“허허, 좋구나.”
노인이 웃었다.
“실전 경험이라 하기엔 너무 약한 녀석들이지만, 처음치고는 잘했다.”
‘진짜 실전 경험은 저 암살자 놈으로 하면 되겠지요.’
“예끼! 자만하지 말거라. 지금 네 수준으로 저놈을 상대하려면 네 모든 걸 걸어야 할 거다.”
‘목숨은 아까부터 걸었습니다, 어르신.’
노인과 대화를 나누며, 나는 천천히 강재호를 향해 걸어 나갔다.
“이, 이런. 오지 마! 살려줘!”
자빠진 채로 뒷걸음질 치는 녀석의 꼴이 우습다.
전형적인 강약약강의 태도인가?
아까 짐꾼들에게 하던 태도와는 전혀 다르다.
‘싸움이 끝났으니.’
이제 마무리 지어야겠지.
스릉!
내 신호에 맞춰 뼈일이가 검을 높게 쳐들었다.
사막에 내리쬐는 태양 빛이 칼날을 섬광처럼 비췄다.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으려 했으면, 본인도 죽을 각오를 했어야지.’
단호한 마음으로 칼을 내려칠 찰나.
“음?”
감각에 무언가 서늘한 기척이 잡혔다.
분명 엄청난 기운을 가진 자가 엄청난 속도로 접근하고 있었다.
“에휴, 이놈아.”
옆에 있던 노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왜 그러긴? 저 암살자 놈이랑 비슷한 놈이 하나 더 붙었다.”
‘……?!’
“이젠 나도 모른다. 에잉! 네놈은 다 좋은데, 대책이 없는 게 문제야.”
“아…….”
황당했다.
계획대로 착착 이루어지고 있는데.
또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인정하기 싫어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무슨 자신감으로 홀로 이 던전을 따라왔단 말인가!
조금 더 의심하고.
조금 더 조심해야 했다.
아직 나는 ‘약자’이니까.
“크, 크흐흐. 크하하하!”
내 상황을 눈치챘는지.
강재호가 폭소했다.
“암영단 선배가 한 명만 있는 줄 알았냐? 키킥, 새끼. 꼴 좋다.”
얄밉게 비웃는 녀석과 함께.
스으윽!
또 다른 A급 헌터가 허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두건에 새겨진 것은 분명 거미 모양의 암영단 표식.
“……?”
한데, 그의 표정이 뭔가 이상했다.
여유로운 게 아닌 굉장히 다급한 표정.
그가 동료를 향해 외쳤다.
“야, 토껴! 기소율 떴어!”
“……?”
기소율?
랭커, 기소율이 이 던전에?
내가 눈을 깜빡였다.
암살자 역시 무슨 말을 하느냐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A급 헌터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두들겼다.
“일단 생각하지 말고 피해! 괜히 꼬리 잡히면 우리도 죽는다고!”
“……아무리 랭커라 해도.”
“닥쳐! 너도 알잖아! 랭커는 달라! S급 중에서 최상위들만 올라가는 괴물을 무슨 수로 상대해!”
“그렇긴 하지……. 하, 좋다. 그럼 쟤들은?”
암살자가 강재호 일행을 가리켰다.
그러자 A급 헌터가 무슨 소리 하냐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언제 저런 찌끄레기들 신경 썼다고 그래?”
“혀, 형님?”
신나게 웃던 강재호가 당황했다.
하지만, 현실은 차디찼다.
스스슷!
그런 그를 내버려 두고 그림자처럼 사라지는 암영단의 헌터들.
“…….”
한창 시끄러웠던 주변이 조용해졌다.
보스 스테이지에는 원래 있던 나와 강재호 일행, 그리고 짐꾼들만이 남았다.
“……뭐냐, 이 상황은?”
나는 어이없다는 듯, 숨을 깊게 내뱉었다.
동시에 느꼈다.
‘이런 게 랭커의 힘인가?’
심장이 저릿할 정도로 강했던 헌터 둘이.
고작 기소율이란 이름 하나에 쫄아서 튀다니.
확실히 대단하긴 했다.
“이, 이런. 젠장!”
강재호가 절망적인 목소리로 외쳤다.
나 하나한테도 발렸는데.
기소율까지 나타났다고 하니, 그럴 만도 하지.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저벅, 저벅.
나는 녀석에게 걸어 나갔다.
기소율은 기소율이고.
이 녀석은 내 것.
“우리 아직 할 얘기가 남아 있지?”
내 정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 *
그 시각.
한 C급 던전 앞에서.
한 여성이 턱을 잡고 고민하고 있었다.
‘흠, 내가 오바하는 건가?’
허리춤에 황금빛 명패를 달고 있는 그녀는 바로 랭커, 기소율이었다.
“여기까지 따라가는 건…… 너무 스토킹 같은데.”
주동훈에 대한 궁금증으로 밤을 지새우다가.
결국, ‘파랑’의 정보력으로 이곳 던전까지 찾아온 그녀였다.
그녀는 대략 10분 동안.
던전 앞에서 입장을 고민했다.
그리고 결론은.
“역시 아니야.”
그는 분명 말했었다.
바로 대답하기 힘들 것 같다고.
조금만 시간을 주면, 정리해서 말해주겠다 약속했다.
자신이 받아들인 이상, 이렇게 던전까지 찾아오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게다가.
꼭 자신이 매달리는 것 같지 않은가?
‘아무래도 나중에. 나오면 찾아가야겠어.’
잠깐 고민하던 기소율은.
결국, 등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