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205)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205화
엘로이즈 아린 (2)
엘로이즈 아린.
명가(名家) 엘로이즈 가문의 막내이자, 초췌한 몰골의 소녀.
‘……나는.’
그녀의 팔다리는 마치 기아처럼 앙상했다.
걸어 다니는 게 신기할 정도?
‘언젠가 마탑을 지울 거야. 다 태워버릴 거야.’
누가 알면 경악할 법한 속마음을 중얼거린 소녀가.
터벅, 터벅.
천천히 마탑 18층의 광장을 걸었다.
햇볕을 쬐는 게 오랜만인지.
그녀의 피부는 굉장히 새하얬다.
또한, 씻지 않아 부스스한 머리칼에도 눈부신 외모를 감출 수 없었다.
“히야, 저 애 봐. 왜 이렇게 말랐어?”
“어디서 굶기는 거 아니야? 그래도 생긴 건 나름 귀티나게 생긴 것 같은…… 헉, 잠깐! 저 패는……?”
“불꽃을 상징하는 엘로이즈 가문의 패네. 아…… 그럼 그 지박령인가?”
“지박령?”
“응, 서고에 박혀서 나오지 않는다는 그 애 있잖아.”
“아, 걔였구나.”
술렁이는 사람들.
몇몇은 자신을 알아보는 자들도 있었지만 아린은 개의치 않았다.
익숙한 일이니까.
어렸을 적부터 자신에게 거는 기대가 많았다.
걸음마를 뗄 때도.
말을 배울 때도.
‘고대 마법’이 남긴 언어를 배울 때도.
– 너는 장차 엘로이즈 가문을 책임져야 할 운명이란다.
– 모든 가문 위에 우뚝 선 마탑주가 될 거야.
– 그러니, 열심히 해야 한다. 아니, 열심히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 잘해야 한다. 이곳은 잘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야.
부담.
모든 것이 부담이었다.
하지만 어쩌랴.
자신은 부담을 받는 세상에 태어났고.
그저 생존하기 위해, 그 기대에 부응하려고 노력했다.
– 음?
– 고작 그것밖에 못 하는 게냐?
– 허어, 어찌 엘로이즈 가문에 이런 둔재가…….
아린을 가르쳤던 첫 스승이 꺼낸 말.
소녀는 왜인지 그 말이 사망 선고처럼 들려왔다.
앞으로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대략이나마 느꼈달까?
스승은 계속해서 바뀌었다.
은퇴한 노교수부터 장로급 교수까지.
마법계 내로라하는 권위자들이 방문했지만.
– 허어,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소.
– 미안한 말이지만, 마탑 졸업은커녕 입탑은 할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 저는 이만. 여기까지만 가르치겠습니다.
– 이 아이의 행복은 다른 곳에서 찾는 게 어떻겠습니까?
하나같이 소녀를 포기했다.
천하의 둔재(鈍才).
모든 마법사가 아린을 두고 칭한 말이었다.
– ……못난 년.
– 가문의 수치.
– 마탑에 가거라. 가서 졸업할 때까지 다시는 이 어미를 찾지 말거라.
세상이 무서웠다.
자신은 그저 남들보다 재능이 살짝 부족할 뿐일진대.
어찌 이렇게 모질게 군단 말이던가.
마탑에 들어선 후에도 똑같았다.
– 야야야, 쟤가 엘로이즈 가문의 머저리래.
– 쯧쯧, 금을 물고 태어났으면 뭐 하나. 실력이 저 모양인데.
– 노력도 안 한다지?
– 그래도 노력은 하는 것 같던데?
– 에이, 안 할 거야. 생각해 봐. 설마 진짜 재능이 없겠냐? 그 유명한 엘로이즈의 피가? 그냥 수저 물고 태어났다고 방만하게 있다가 저런 꼴 난 거지. 누굴 탓해?
소녀를 바라보는 동급생들의 눈빛은 싸늘했으며.
– 너, 아는 체하지 말아라.
– 쪽팔리게 하지 말고, 그냥 죽은 듯 살아. 나는 너 같은 막내 둔 적 없으니까.
가문의 남매들도 그녀에게서 등을 돌렸다.
또한.
으드득!
걸음을 지속하던 아린의 이가 갈렸다.
‘앤드루 패트릭.’
그 재수 없는 놈.
아무런 이유 없이 집요하게 괴롭히는 데다가.
일부러 자신이 있는 F 클래스까지 강등당해 괴롭힘을 지속하는 놈.
‘사실.’
서고의 지박령이 된 것도 다 그놈 때문이었다.
아예 패트릭이 찾을 수 없을 만큼 깊은 곳에 밀실을 만들게 된 계기였지.
“…….”
아린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마치 전생의 원수라도 되듯 행하는 앤드루의 괴롭힘은.
교수도, 가문도.
막아줄 수 없었다.
아니, 막지 않았다는 말이 맞겠다.
애초에 몇 년 전부터.
세상은 자신에 관심을 돌렸으니까.
때문에 아린은.
밥을 굶고.
밤낮을 설쳐가며 서적을 읽었다.
마탑의 서고란 태초부터 존재하던 ‘고대 마법’이라는 존재의 지식 보관소라 들었다.
마탑주인 구스펠하임조차 여기 존재하는 서고의 1%를 다 정복하지 못했다고 했으니.
‘분명.’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줄 방법이 있을 거라 믿었다.
‘……나는.’
저벅, 저벅.
걷던 소녀가 주먹을 꽉 쥐었다.
‘실력을 꼭 올려서.’
얼마나 강하게 쥐었는지, 그 여린 손바닥에 핏방울이 맺혔다.
‘탑을 지워낼 거야.’
오직 재능만이 전부인 세상.
능력이 없으면, 행복도 찾을 수 없는 세상.
아린은 그런 세상이 만들어진 이유를 저 드높은 탑으로 보았다.
‘내 불행이…… 아니면, 나와 같은 자들의 불행이 탑에서 오는 거라면…….’
그런 탑 따위.
차라리 없어지는 게 나았다.
* * *
엘로이즈 가문의 정기 행사는 1년에 한 번 이루어진다.
행사 목적은 단합.
가주가 주최하며, 1년간 고생했던 가문의 학우들이 모여 술을 마시고 춤을 춘다.
‘진짜, 가기 싫다…….’
아린은 이 행사가 끔찍이도 싫었다.
치가 떨렸다.
모든 참여자가 자신을 깔보고 업신여기는데,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그런데도.
그녀가 행사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갱신된 패와 용돈을 지급하니까.’
이는 엘로이즈만의 특징이었다.
1년간 성적에 차등을 두어 용돈을 지급하고.
엘로이즈를 상징하는 패를 가주의 마법으로 갱신시킨다.
돈으로는 마법 실험 재료를 사야 하며.
패를 갱신시켜야, 4대 가문의 특권인 서고 22층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아이고, 이게 누구야. 우리 막내 아린이 아냐?”
“뭘 아는 체하고 그래? 설마 아직도 쟤를 우리랑 같은 피라 생각하는 건 아니지?”
“에이, 설마. 그냥, 신기해서. 그 실력으로 행사는 어쩜 저렇게 꼬박꼬박 참여하는지.”
“그런 거지? 어여 들어가자. 괜히 같이 있다 재수 옴 붙을라.”
“무슨 재수?”
“뭐긴 뭐야. 재능이 사라지는 재수지. 크크큭.”
지금도.
지나갈 때마다 아린을 발견한 가문의 혈육들이 무시한다.
“…….”
저벅저벅.
그런데도 아린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이미.
저런 꼽에는 도가 튼 상태였다.
말 그대로 ‘무시 면역’ 마스터.
‘그래.’
작년이랑 똑같이 하면 돼.
축제 따위 스킵하고.
패랑 돈만 받아서 자리를 뜬다.
‘돈도 쥐뿔만큼 주겠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소녀는 여느 때처럼 귀와 마음을 닫았다.
예전에는 이 상황이 슬퍼 울었다면.
이제는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면역이 된 걸까?
아니면 이미 마음이 넝마처럼 찢겨서 더 찢길 곳이 없는 걸까?
이상하게 슬프지 않았다.
– 곧이어, 엘로이즈 가문의 대행사가 시작됩니다.
– 귀빈 여러분들은 자리에 착석하여 주십시오.
어느덧.
고용한 사회자의 목소리와 함께 행사가 시작되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아린은 가장 끝쪽 테이블 끝자리에 숨죽여 앉았다.
행사 의식은 단순했다.
가주가 등장해서 가볍게 인사하고.
열심히 하라는 등의 훈화 말씀을 해주신 후.
각자 순위를 매겨, 패와 돈을 수여한다.
– 다음은 이번에 S클래스로 승급한 엘로이즈 엘리나! 나와주세요!
짝짝짝짝!
지겨운 박수 소리와 가주의 직접 수여.
엘로이즈 가문은 4대 가문답게 돈이 많다.
그렇기에 그 자제들도 남들이 혀를 내두를 만큼의 용돈을 받는다.
하지만.
– 자, 마지막으로.
– 크큼, 엘로이즈 아린! 나와주세요!
정적.
그 누구 하나 손뼉조차 치지 않는다.
소녀는 그게 신기했다.
그 누구 하나는 동정심에 칠 법도 한데…….
하지만, 이게 귀족이었고, 이게 엘로이즈였다.
무재능(無才能)에는 그 누구보다 가혹한 족속들.
“…….”
입술을 꾹 깨문 아린이 단상 위에 올라섰다.
가주의 싸늘한 눈빛이 느껴졌다.
“그래, 요즘은 마탑 서고에 박혀 살고 있다지?”
“……그렇습니다, 가주님.”
소녀가 고개를 숙였다.
“가주라…….”
조용히 중얼거리는 가주의 목소리에는 호의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착각하지 말거라, 아린.”
“……예, 알고 있습니다.”
“무엇을 말이냐.”
“작년에도, 가문의 사람을 매정하게 내쳤다는 소리를 듣지 않고 싶다 하셨지요. 그렇기에 패와 용돈을 주는 거라고. 저는…….”
깨문 입술에 피가 맺혔다.
“엘로이즈의 사람이 아닙니다.”
피는 엘로이즈지만.
실력은 엘로이즈가 아니다.
그렇다면, 그녀는.
명백하게 엘로이즈가 아닌 것.
그것이 가주의 신조였다.
“잘 알고 있으니, 되었다.”
“…….”
가주가 건네는 용돈은 놀랍게도 금화 1개.
은화 10개 치 분량으로.
고작 한 달 살이 하기도 빠듯한 액수였다.
“서고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으니, 이거로 충분하겠지?”
다른 학생들은 최소 200개에서 최대 500개까지 줘놓고.
자신에게는 금화 1개가 전부.
“……그렇습니다.”
아린은 그것을 냉큼 받아 들었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금화가 아닌, 갱신된 패였으니까.
“지금처럼 조용하게. 죽은 듯이 살거라.”
“예, 명심하겠습니다.”
거지처럼.
그것을 받아 내려오는 발길이.
아린은 너무도 무거웠다.
* * *
“…….”
당연한 말이지만, 축제는 스킵했다.
패 하나와 금화 하나.
앙상한 손에 그것을 고이 들고나온 아린이 다시 광장을 걸었다.
오늘 받은 금화는.
비상식량 몇 개와 마법 실험 물품을 사는 데 다 쓰일 예정이었다.
‘가자.’
빨리 가서.
다시 서적을 읽자.
괜히 복잡하게 생각해 봐야 마음만 우울해진다.
서고에 파묻혀, 책을 읽어야만 이 잡다한 생각이 사라진다.
‘……절대 포기하지 말자.’
그녀의 유일한 목표는.
탑을 없애는 것.
또한 자신을 무시했던 엘로이즈와.
4대 가문을 멸망시키는 것.
탁, 탁, 탁! 타다닥!
점점 그녀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요동치는 심장을 숨기고 싶다는 듯, 바닥을 보며 빠르게 걷는 순간.
투욱!
누군가와 부딪혔다.
“끕!”
그동안 밥을 먹지 않아서일까?
가벼운 충격이었음에도, 숨이 턱 막힘을 느낌과 동시에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누구.”
아린이 하늘을 올려다보자.
어떤 검은 머리 사내가 보였다.
‘뭐지?’
부딪혔으면 사과를 하든, 화를 내든.
무언갈 해야 하는데.
사내는 그저 넋 놓고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어떠한 꿈에 빠져든 느낌?
‘뭐야?’
이상한 사람.
미간을 찌푸린 아린이 다시 일어섰다.
“후.”
화낼 힘도 없었다.
원래 엘로이즈 가문의 다른 자제였다면, 크게 경을 칠 만한 일이겠지만.
자신에겐 그럴 힘도.
그럴 기분도 없었다.
“됐어요. 그냥 가셔도 돼요.”
다시 걸음을 지속할 찰나.
“잠깐.”
사내가 자신의 팔목을 잡았다.
그 힘이 얼마나 강한지, 걸음을 강행할 수 없었다.
뭐야, 저 사람.
정신 차린 거야?
“엘로이즈 아린. 너와 할 말이 있다.”
“저를 아세요?”
아, 하긴.
오히려 마탑에서 자신을 모르는 이가 더 드물지 않을까?
소녀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과 할 말 없어요. 그러니, 이 팔 놔주세요.”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라.”
사내가 싱긋 웃었다.
“나는 네 담당 교수다. 들어봤지? 이번에 취임한 신임 교수. 우리 면담 좀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