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ached the ending with a death route character RAW novel - Chapter 180
제180화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말았다.
‘이자벨도 키우긴 해야 하는데. 하지만 진짜 드래곤을 상대할 일이 있으면 모를까…’
새로운 날의 전투는 지속될수록 이상했다.
갈수록 몰려오는 몬스터의 숫자가 줄어들어 늦은 오후가 되니 아침에 비해 반의반도 되지 않았다.
이런 식이라면 내일 아침엔 한 마리도 오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확인은 필요하지.’
세 아내와 세 아들을 놔두고 밍구를 탄 채로 하늘로 날아올라 동쪽으로 날아갔다.
가다보니 확실히 어제랑은 달랐다.
조직적인 면도 없었고, 통제를 잃고 우왕좌왕 하는 게 뚜렷했다.
‘오늘은 관성처럼 공격한 거였어. 하지만 내일은 아니겠어. 몬스터 웨이브는 끝난 거야.’
만일 인간이었다면 오늘의 공격도 없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블랙 드래곤의 위협적인 지시에 의해 이성을 잃고 떼로 몰려온 몬스터들이었기에 최고 우두머리를 잃고도 공격을 이어간 거였다.
안심하고 돌아가려는데 문득 저 멀리서 느껴지는 이질감.
눈에 힘을 주고 바라보는데 아주 작은 까만 점이 보였다.
아라의 환상 이야기가 떠오르며 몸이 떨려오는데 전에 본 메시지가 다시 나타났다.
[생사의 분기블랙 드래곤 타우젠트로부터 살아나시오.
하인리히가 선두에서 싸우게 한다(선택, 난이도 하락)
엘프의 왕국에서 벗어나시오(선택, 난이도 하락)]
싸워서 이기라는 것도 아니고 벗어나라는 거였다.
그러니까 마주치지 말라는 것!
선택이지만 1도 고민하지 않았다.
아라가 환상을 말해주었을 때에 난 그 순간이 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튀리라 이미 마음먹고 있었다.
잽싸게 밍구의 목을 두드리며 방향을 엘프 왕국으로 향하게 했다.
“밍구야! 전속력으로! 전속력으로!”
귓가를 스치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간간이 고개를 돌려 까만 점이 얼마나 커지는지 확인했다.
점은 점점 커져서 주먹정도가 되었을 때에 왕국에 도착했는데 세 아내와 세 아들을 얼른 불러서 태웠다.
이 와중에 하인리히와 떨어지지 않으려는 틸리가 있어서 그녀까지 태웠다.
“무슨 일인데 급하게 이래요?”
내가 설명도 없이 무조건 타라고 하니 일단 타긴 탔지만 하늘에 올라와선 궁금함을 못 참고 아나이스가 대표로 물었다.
“드래곤이 오고 있어. 피해야 해!”
“드, 드래곤이요?”
다들 당황하는데 틸리가 급하게 내 어깨를 잡아당겼다.
“엘프들이 위험해요!”
“아니. 드래곤은 엘프를 싫어하지 않아. 그러니 죽이진 않을 거다. 하지만 인간은 위험하지.”
타우젠트가 잔인하긴 하지만 엘프 종에 대해선 우호적인 편이었다.
타우젠트만 아니라 드래곤 종족 전체가 엘프 종족에 대해 우호적이었는데 자연을 사랑하는 것, 긴 수명, 정령에 친화적인 것, 아름다운 외모 등이 이유였다.
“그렇긴 하지만 어떤 드래곤이야에 따라 달라지는데…”
“블랙 드래곤 타우젠트.”
“아!”
바로 반응이 왔다.
“그 드래곤이라면… 엘프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딱히 좋아하지도…”
“그래. 딱 중간이겠지. 하지만 인간은 무척이나 싫어해. 그러니 피해야지.”
끄덕끄덕.
“…그렇겠네요. 하인리히는 위험해요.”
틸리는 하인리히를 바라본 후에 더 이상 반대하지 않았다.
하늘을 날아 급히 서쪽으로 날아가는 중인데 예상 못한 메시지가 보였다.
[세계수의 가지가 행운을 가져옵니다(1/5)](1/5)은 5번 중에 1번이 사용되었다는 얘기.
‘뭐지? 왜 이 상황에?’
이때 뒤에서 끈적이는 눈길이 온몸을 옥죄는 느낌이었다.
의문을 품은 채로 한참을 날았고, 옥죄는 느낌은 시간이 흐르니 서서히 사라졌다.
한참을 날아 겨우 엘프 왕국에서 벗어났나 싶을 때에야 고개를 뒤로 돌렸다.
마음은 열두 번도 더 돌려서 뒤를 보고 싶었지만 혹시나 타우젠트가 날 의식해서 따라올까 겁이 나서 뒤도 보지 않았다.
주먹 이상으로 크기가 커져 있었던 타우젠트는 이젠 점으로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엘프 왕국으로 내려간 듯 했다.
‘다행이다.’
그래도 여기서 멈추지는 않았다.
안심할 수 없으니 한 시간은 더 서쪽으로 이동한 후에야 땅으로 내려왔다.
여기까지 오면서 세계수 가지가 왜 사용된 걸까 의문을 품었다.
생사의 분기가 경고했을 때에 바로 출발했으니 타우젠트에게 걸린 건 아닐 텐데.
‘아니야. 걸렸던 거 아닐까? 그러니까 옥죄는 느낌이 들었지.’
외죄는 게 그냥 생길 수는 없으니까.
‘그러면 왜 타우젠트가 우리를 놓아줬을까?’
의문이 가시지 않는데 문득 틸리가 맨 뒤에 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설마 틸리 때문에 우리도 엘프라고 여겼나?’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하여튼 세계수 가지는 사용되었다.
‘그래. 세계수 가지는 거짓말을 안 하지.’
여하튼 죽다 살아난 건 부인할 수 없었다.
“아버지. 이렇게까지 멀리 와야 해요?”
에이츠가 물었다.
다른 이들을 보니 얼굴이 살짝 질린 표정이었다.
에이츠만 뭘 모르고 질문하는 걸 보면 얘만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한 거 같았다.
‘에이츠만 감응력이 C여서?’
딱히 다른 이유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 기회를 봐서 감응력도 올려주긴 해야겠지.’
내 목표는 세 아들과 아리아의 스탯을 최소 A까지 전부 올려주는 것.
사브리나와 쥬리는…
그냥 평범한 여자의 삶을 살게 할 생각이었다.
둘은 NPC 각성도 시켰지만 수준이 너무 떨어졌다.
둘의 성향도 검이나 마법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냥 파티나 즐기는 공주가 딱이었다.
‘둘의 남편은 누가 될까?’
그런데 사실 둘보다 더 걱정되는 건 아리아였다.
‘이자벨이 평범한 이를 사위로 맞이하려 할 리도 없고.’
밍구의 등에서 내린 장소는 숲이었다.
엘프 왕국으로부터 수백 킬로미터는 떨어진 곳이지만 여전히 숲일 정도로 이 땅은 인간으로부터 먼 곳이었다.
게르를 치고 안에 들어와서야 겨우 휴식할 수 있었는데 이때까지 틸리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틸리? 엘프들이 걱정되니? 왜 한 마디도 안 하니?”
“걱정은… 안 하려고요.”
대답이 좀 묘했다.
걱정은 되지만 안 하려고 노력한다는 의미 같았다.
‘그래. 안 된다는 건 거짓말이지.’
“저희는 여기서 얼마나 있어야 해요?”
질문한 건 틸리가 아니라 하인리히였다.
“정한 건 없지만 일주일 정도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나 오래요?”
“네 생각에는 아빠가 대단하게 여겨질지 모르지만 현재 상태에서 드래곤은 절대 못 이긴다. 이게 현실이야.”
“…..”
일단 현실인식부터 시키고.
“더군다나 나 혼자가 아니라 너희까지 있잖니.”
주변도 살피게 하고.
“마음은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틸리도 돌아가야 하고, 너도 가겠다고 할 테니 일주일로 잡은 거다.”
일주일이나 있어야 하지만 딱히 불안하거나 그러진 않았다.
말도 없이 도망친 걸 두고 엘프들이 뭐라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저들도 이해하리라 여겼다.
‘타우젠트가 인간을 싫어하는 건 나보다 긴 수명을 사는 엘프들이 더 잘 알 테지.’
하루를 푹 쉬고, 다음날부터는 할 일이 없어 전처럼 게임을 했지만 흥이 나질 않았다.
나만 아니라 다들.
바로 얼마 전까지 수십만의 몬스터를 상대로 며칠이나 전투를 했고, 도망치듯 전장을 빠져나왔는데 기분이 좋을 리가 있나.
동료는 아니지만 한 편으로 싸운 엘프들을 뒤에 뒤고 나왔으니 마음은 찝찝한 상태였다.
특히나 곁에 틸리도 있었고.
때문에 각자 근처로 나가 사냥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하인리히와 틸리는 한 순간도 떨어지지 않고 함께 다녔는데 전에는 관심도 없던 틸리를 주의 있게 보게 되었다.
‘NPC 각성을 해줄까?’
앞으로 며느리가 될 아이니까.
게이지는 보였지만 상태창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야. 확실하게 며느리가 되면 그때 각성해주자.“
솔직히 빨리 해줘야 할 이유도 없고.
안 해준다고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아니고.
일주일이란 시간은 무료하게 지나갔다.
드디어 일주일째가 되었을 때에 밍구를 타고 돌아갔다.
돌아온 엘프 왕국은…
‘깨끗하네. 그새 다 치웠나?’
죽은 엘프는 물론이고, 죽은 몬스터들조차 보이지 않았다.
불과 일주일인데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처음에 엘프 왕국을 왔을 때의 모습이었다.
‘마법사가 수천 명이잖아. 수준도 높고. 그러니 마법으로 청소했겠지.’
아니면 정령을 소환해서 시켰거나.
정령도 한둘이 아니라 수천이나 될 테고, 종류도 바람만 아니라 땅의 정령도 있지 않나.
땅의 정령을 시키면 손에 흙 하나 묻히지 않고 구덩이를 파서 사체를 묻을 수 있었을 거다.
‘불의 정령은… 에이, 안 불렀겠지. 나무 상한다고 화약도 못 쓰게 했잖아.’
땅에 묻으면 불의 정령을 불러 사체를 태울 필요도 없고.
오우거 사체까지 사라진 건 좀 아깝긴 했다.
‘어디에 묻었는지 물어라도 볼까? 파내서 가져도 되냐고 물으면 변태처럼 보려나?’
엘프 왕을 만났다.
돌아온 틸리가 달려가 눈물의 재회가 있기는 했는데 왜 마음대로 떠났냐며 혼을 내지는 않았다.
“돌아왔군요.”
꾸벅.
“말도 없이 전장을 떠나서 죄송합니다. 드래곤이 나타나는 걸 보고 급히 도망쳤습니다.”
“잘했습니다. 이곳에 온 드래곤은 타우젠트라는 블랙 드래곤인데 인간을 싫어하지요. 그대가 있었다면 위험했을 겁니다.”
쓰윽.
뒤에 있던 틸리가 앞으로 나왔다.
“급히 떠나야 하는데 따님이 같이 떠나겠다고 했습니다. 1초가 급박하기에 말릴 시간조차 아까워 그냥 함께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긴요. 내가 미안합니다.”
엘프 왕은 손을 저으며 오히려 나에게 사과했다.
“타우젠트는 이곳에 왜 온 거였습니까?”
“긴 잠을 깼더니 레어 주변에 몬스터들이 많아서 떠나라고 했다더군요. 그런데 몰려간 놈들이 어떻게 하고 있나 관심이 생겨서 보려고 왔다고 하네요.”
“아! 그래요? 그냥 보기만 하려는 거였다면 몬스터는 어디로 간 건가요?”
“내가 부탁을 드렸습니다. 견디기 힘드니 물러가게 해달라고요.”
“그랬더니 들어줬습니까?”
“황금을 드렸더니 승낙했습니다.”
“아!”
황금…
얼마나 줬는지 모르겠지만 드래곤에게 황금은 치트키나 다름이 없는 거였다.
“몬스터 웨이브는 끝났습니다. 앞으로 못해도 수백 년은 이런 일이 없을 겁니다.”
“타우젠트가 약속했습니까?”
장담하는 걸 보니 타우젠트가 약속한 거 같았다.
“맞습니다.”
“그럼 믿어도 되겠네요.”
드래곤이 빈 말은 안 하니까.
거짓말도 안 하고.
“그대의 도움이 컸습니다. 어떻게 보답을 해야 할까요?”
“이미 받았습니다. 따님과 제 아들의 결혼을 허락하셨잖습니까.”
“사랑은 사랑이고, 목숨 걸고 도와준 건 별개지요.”
“인간에 대한 경계를 조금은 풀어주시면 됩니다. 나쁜 인간도 많기는 하지만 좋은 인간도 있으니까요.”
“으음. 알았습니다.”
엘프 왕과의 대화 후에 며칠을 머물렀는데 이 짧은 시간에 하인리히와 틸리의 결혼식이 있었다.
겉으로는 정리가 되었지만 몬스터와의 전투로 수천의 엘프가 죽거나 다쳐서 속내는 결코 밝을 수 없는 분위기였지만 은인의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엘프 왕의 강력한 주장으로 결혼식이 결정되고 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