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ached the ending with a death route character RAW novel - Chapter 72
제72화
“그런가?”
“미친놈이랑은 이성적인 이야기가 안 되니까요.”
미친놈이란 유제프.
하긴 상식적으로 보아도 이런 판단이 정상이긴 했다.
“굳이 협상을 하려 하신다면…….”
“한다면?”
“유제프 황자님이 아니라 황제 폐하와 하시든가, 아니면 황태자 전하와 하시든가…….”
“끄응, 결국 안 된다는 얘기네.”
황제와 황태자와 협상을 못할 건 아니지만 전제 조건이 있었다.
증거!
그냥 증거가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날 거란 확실한 증거!
그런데 나한테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지.
현재로선 아라의 말이 전부였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게오르가 제국을 떠나는 걸 취소할 수도 없었다.
황제에게 말을 했고, 정예병까지 얻은 상태인데 어떻게 뒤로 무르겠나.
“흠흠, 필승의 전략이 필요하겠네요?”
“그렇지!”
난 피스토를 향해 환호했다.
사실 회의를 연 이유는 피스토 때문이었다.
“지금은 아주 기발한 한 수가 필요하다. 있겠나?”
“으음… 정예의 수준도, 숫자도, 더구나 기병의 차이까지. 솔직히 이 정도면 이길 수가 없죠.”
“그래, 그건 나도 안다. 그래도 방법이 없겠나?”
“으음, 그런데 아라라는 소녀가 본 미래 말입니다. 그거 확실한 거죠?”
“그럼! 내 모든 걸 걸고 말할 수 있다.”
끄덕끄덕.
“믿겠습니다.”
피스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가볍게 웃었다.
“후후, 그 소녀가 본 게 확실하다면 저희는 이길 수 있습니다.”
“저, 정말인가? 전력 차가 너무 나는데도?”
자신 있어 하는 피스토의 표정에 오히려 당황한 건 나였다.
“전력 차는 많이 나지만 저희에겐 미래를 안다는 장점이 있죠. 전략을 짤 때 어려운 게 뭘까요?”
“응?”
“전투가 벌어질 위치, 그리고 시간, 날씨와 같은 주위 환경. 이런 게 모호하다는 거 아닐까요?”
“그렇지.”
“하지만 그 소녀로 인해 저희는 위치도, 시간도, 날씨도 알 수 있잖습니까. 그 소녀에게 바람이 우리 쪽으로 부는지, 적진으로 부는지. 이것도 확인이 되겠죠? 미래를 생생하게 봤다면요.”
“아!”
순간 망치에 얻어맞은 것처럼 피스토의 말이 이해가 되었다.
‘그래! 위치와 시간, 주위 환경을 다 알고 시작하는 거잖아.’
자신감이 마구 솟구쳤다.
“으음, 열세의 환경에서 적을 이기는 방법이 여러 개인데. 전투가 벌어진 시간이 낮이었습니까? 혹시 밤이었다면 매복을 해도 될 것 같습니다만.”
“자, 잠시만.”
얼른 사람을 시켜 아라를 데리고 오게 했다. 그리고 아라의 도움을 받으며 전략을 세웠다.
***
기다리던 게오르로부터 연락이 왔다.
황제에게서 허락을 받았고, 체르니아 왕국에 제국의 뜻을 전달하여 게오르가 왕위를 이어받게 되었다는 것.
그뿐만 아니라 나에게 사람들을 모아 체르니아 왕국으로 가는 길에서 만나자고 했다.
‘병사가 고작 천 명이라는 말은 안 하네?’
본인이 생각해도 부끄러워서?
솔직히 황제가 너무하긴 했다. 고작 천 명이라니.
내가 모은 영지병 2천 명 중에 그나마 제일 낫다고 생각되는 천 명을 뽑았다.
그 후에 전투가 벌어질 장소로 보냈다.
아라가 보았다는 그 미래의 장소 말이다.
이들이 가서 할 일은 나와 피스토가 세운 계획에 따라 전장을 꾸미는 것.
성벽도 세우고, 화공을 위한 곳에 기름도 뿌리고, 철질려도 깔고, 기타 등등.
그런데 이들이 가야 할 길이 꽤 멀기도 하거니와 대규모 병력 이동은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적에게 정보 노출이 되는 것도 문제고.
그 때문에 천 명은 세 무리로 나눠서 이동했다.
첫 무리는 피스토, 이드로, 아시모프, 레이몬드가 이끌며 상단으로 위장했다.
둘째 무리는 몽크, 페온, 한스가 이끌며 용병으로 위장했다.
셋째 무리는 바렛, 사이나가 이끌며 떠돌이 유민으로 위장했다.
아무리 무리를 나눴고 위장을 다르게 했다 하더라도 같은 경로로 이동하면 이목을 끌기에 두 개의 길에 시간 차를 두고 이동하게 했다.
저들을 보내고 열흘 정도 지나서 내가 남은 영지병 천 명과 만여 명이 넘는 영지민들을 이끌고 출발했다.
꽤나 대규모 인원이라 가지고 가는 물자도 상당했다.
전에 상단에서 사 둔 마차와 말을 다 써야 했고, 추가로 구입도 많이 해야 해서 영지 재정이 휘청거릴 정도였으며, 황제에게 받은 10만 골드 중에서 3만 골드를 써야 했다.
영지에는 실버훈, 말콤, 윈터, 어텀, 섬머가 남았다.
아기를 가진 이자벨에겐 가는 길이 위험할 수 있으니 내가 체르니아 왕국에 가서 자리를 잡은 후에 부르면 어떻겠냐고 물었으나 그녀는 단칼에 거절했다.
한편으론 이런 그녀의 모습이 좋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걱정되고 싫기도 했다.
좋은 이유는 날 떠나기 싫어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평생 여자가 나에게 매달리는 경험을 해 보지 못했었기에 마치 대리 만족? 뭐 이런 비슷한 감정이었다.
걱정되는 건 내 아기가 위험해지는 것 때문이었고.
싫은 건 이자벨의 눈빛이 너무 무서워서였다.
‘젠장, 결혼까지 하고 애도 가졌는데도 여전히 무섭네.’
가야 할 인원이 꽤 되기에 타 영지를 지나갈 때 경계를 받을 게 뻔했고, 실제로 그랬다.
해당 지역의 영주가 보낸 이에게 병사들을 이끌고 가는 이유도 설명해야 했고.
어찌어찌 한 달이 지나 약속 장소에 도착했고, 며칠이 지나 게오르가 황제에게 받은 천 명의 정예병과 이들의 가족을 이끌고 나타났다.
내가 이끄는 무리와 저들까지 합쳐서 2만 여 명이 넘는 대인원이 되었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미래는 바뀐 것.
2만여 명이 먹고 쓰기 위한 보급 물자도 꽤나 많기에 따라온 마차도 100여 대가 넘을 정도였다.
“흠흠, 병사를… 이거밖에 받지 못했다.”
재회하는 순간에 내 앞으로 온 게오르는 무척이나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이게 가장 중요한 문제이긴 했다.
“폐하께선 조금 더 주려고 하셨지만 황후께서…….”
“괜찮습니다.”
이미 상황을 알고 있었기에 담담히 대답했다.
“그, 그래? 하지만 정말 괜찮을까? 과연 이 병력으로 체르니아 왕국의 왕이 될 수 있을까?”
“저희는 체르니아 왕국을 정복하려고 가는 게 아니잖습니까.”
갸우뚱.
“아니라고?”
“그럼요. 저희는 침략자가 아닙니다. 페하의 명에 따라 체르니아 왕국은 황자님을 왕으로 세우기로 했잖습니까?”
“아! 그렇지. 그래도 날 반대하는 이들도 있을 텐데…….”
“그렇죠. 병사는 반대파 제거를 위한 병력이죠. 황자님이 이끌고 오신 병사들에 제가 이끄는 병사들. 이 정도면 반대파는 누르겠죠.”
“정말?”
“흠흠, 반대파가 뭐 되면 얼마나 되겠습니다. 제국을 거스르면 왕국은 멸망할 게 뻔한데요.”
끄덕끄덕.
“그렇겠지?”
“그리고 그곳에 가면 황자님을 지지하는 세력도 있을 겁니다.”
일단 게오르를 안심시키려고 이렇게 말했지만, 사실 게오르의 지지파라 하더라도 그들의 숫자는 소수일 게 뻔했다.
또 그들은 게오르를 허수아비 왕으로 만들고 자신들이 실권을 쥐려는 것뿐이었다.
‘그러니까 진정한 게오르의 편은 없다고 봐야겠지?’
하지만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은 존재인 게오르에게 진심으로 충성하는 자가 있길 바라는 것도 무리인 건 사실이지.
“여기까지 오시느라 힘드셨을 테니 일단 쉬시죠.”
“그러자.”
바로 야영 준비에 들어갔다.
얼마 후, 지휘 막사에서 회의를 열었다.
여기서 게오르에게 선발대로 천 명의 병력을 보낸 사실을 말해 주었다.
“선발대? 그런 게 필요한가?”
“네. 혹시라는 게 있으니 준비는 해야죠.”
“혹시?”
“황태자 전하나 유제프 황자님이나…….”
“전에는 그대가 날 막는 일은 없을 거라고 했었는데?”
“그랬죠. 하지만 저라고 항상 맞는 것도 아니니까요. 준비는 철저한 게 좋죠.”
“그건 그렇지.”
게오르를 만난 장소에서 체르니아 왕국 쪽으로 계속 이동하여 어느새 국경 지역에 도착했다.
‘내일이면 전장에 도착이구나.’
어떻게 아냐고?
선발대 외에 정찰병도 돌리고 있었는데, 하루 앞에 선발대가 있다는 보고를 해 왔다.
“아라야, 새로 본 건 없니?”
“네.”
“시간이 꽤 많이 지났는데 그때 이후로 본 게 아무것도 없어?”
“네.”
“그래. 어쩔 수 없지.”
아라의 특성은 발동되는 것도 특별했다.
패시브도, 액티브도 아니다.
그냥 발동이 되면 되는 것일 뿐.
진짜 신탁처럼 말이다.
이걸 알기에 재촉해 봤자 소용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묻게 되는 건 혹시나 아라가 숨기는 건 아닌지 하는 의문과 새로운 정보에 대한 갈증 때문이었다.
지휘관들을 불러 지시를 내렸다.
“오늘은 남은 식량을 다 푸는 한이 있더라도 실컷 먹이고, 일찍 재우도록 해라.”
“병사들만요?”
“아니, 전부 다. 고기고, 술이고 아끼지 말고 다 풀어라!”
내일 전투가 벌어질 거니 아낄 이유가 없었다.
승리한다면 적의 보급품을 얻을 테니 먹을 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이른 초저녁부터 시작된 식사는 파티라 불러야 할 정도였다.
“정말 이렇게 먹고 마셔도 되겠나?”
게오르가 걱정하며 물었다.
“내일이면 제국 땅을 떠납니다. 마지막 날이니 한 번 정도는 이렇게 먹고 마시게 해서 피로를 풀어 주어야 합니다.”
“의도는 알겠지만, 가는 길에 식량은 부족하지 않겠나?”
“곧 마을이 나옵니다. 거기서 보충하면 됩니다.”
“흠흠, 돈은 부족하지 않고?”
“네.”
만일 황제에게 받은 돈이 없었다면 크게 문제가 될 뻔했다.
2만여 명에 달하는 대인원을 이끌고 가는데 들어가는 돈이 한두 푼이겠나?
솔직히 내일 전투에서 이기지 못한다면 돈 때문에라도 모래성처럼 부서질 터였다.
‘이겨서 전리품을 얻으면 큰돈이 생길 거다.’
***
다음 날.
밤새 달렸기에 늦은 아침을 먹고 점심때가 되어서야 출발했다.
그리고 결전의 장소에 도착한 건 오후 시간.
“영주님! 드디어 오셨군요.”
날 반기는 건 선발대로 미리 와서 거의 두어 달에 가깝게 준비를 하고 있던 이들.
보아하니 북쪽으로는 절벽이 있고, 이걸 등지고 진을 설치했는데 동쪽과 서쪽으로는 성벽을 쌓아 놨다.
이렇게 하니 입구는 오로지 남쪽뿐.
“함정은 다 설치했나?”
“그렇습니다.”
대답하는 건 선발대의 총지휘를 맡은 몽크였다.
“그런데 영주님, 땅에선 아직도 기름 냄새가 납니다. 그런데도 적들이 속을까요?”
“안 속겠지.”
“네? 안 속는다면…….”
“우리가 땅 전체에 기름을 뿌린 건 아니잖나. 적들은 기름이 없는 곳으로 이동할 거야. 바로 저곳!”
쓰윽.
난 손을 들어 앞을 가리켰다.
전면이 확 트여 있고 아무것도 없는 진의 남쪽이었다.
“그런데 왜 기름은 좌우편에만 뿌리라고 하셨습니까? 저 멀리 뒤편에도 뿌려야 적들이 도망치지 못할 텐데요?”
“흐흐, 도망갈 곳을 아예 막아 버리면 어떻게 되겠나? 도망치던 적들도 등을 돌려 죽을 때까지 기를 쓰고 덤비겠지? 나는 승리를 원하지, 적의 전멸을 원하는 게 아니다.”
“그건 압니다만, 후퇴한 적들이 재정비한 후에 공격해 올 수도 있을 텐데…….”
피식.
“과연 그럴까? 전투에서 대부분 죽거나 다칠 테고, 살아서 도망친 놈들도 제정신은 아닐 텐데? 또 우리가 무슨 함정을 파고 기다리는지도 모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