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ummoned a max level demon by myself RAW novel - Chapter 175
제174화
174화
전에도 언급하였지만 게임 시절의 사양대로라면 엔딩은 크게 두 가지 루트로 나뉜다.
첫 번째가 노멀 엔딩.
말 그대로 메인 시나리오대로만 달릴 경우에 맞게 되는 엔딩.
수많은 공적을 쌓아 주인공, 요컨대 그 캐릭터를 키우는 플레이어는 영웅으로 취급받고 앞으로도 세상을 위해, 그리고 사랑하는 이를 위해 싸울 것을 다짐하며 끝나는 평범한 마무리.
그리고 두 번째가 트루 엔딩.
조건을 갖추었을 경우 노멀 엔딩의 최종 전투 이후에 벌어지는 마지막 진 엔딩.
세계를 위협하는 흑막을 찾아내어 최종전을 클리어하게 되면 보는 결말.
‘우선 지향해야 하는 건 트루 엔딩이겠지.’
물론 맹신하지는 않고 있다.
최근 들어 몇 가지 의구심이 생기는 중이었으니까.
그렇지만 내버려 둘 수도 없는 노릇.
‘트루 엔딩으로 향하는 조건 중 하나가 각 시조의 유산을 클리어하는 것.’
청의 신전은 시기상 가장 먼저 도달하게 되는 곳이다. 게다가 숨겨진 장소도 아카데미 본관으로부터 들어갈 수 있기에 별다른 힌트 없이도 찾기 쉬운 편.
“전에도 최초의 흑마법사인가 하는 자가 남긴 것을 찾지 않았어?”
“맞아. ……뭐, 그쪽은 아직 진행 중이지만.”
이전에 찾아갔던 검은 시조의 묘소는 일종의 전반부 퀘스트.
그쪽을 추가 공략하는 건 나중의 일이다.
“하여튼 여기가 먼저야.”
조건이 수석을 달성하고 청의 밀실을 간파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까.
유일하게 아카데미 내에서 도달할 수 있는 곳.
‘사실 내가 직접 달성할 필요는 없었지만.’
묘한 점은 각 시조의 신전 방문 이벤트는 주인공 본인이 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아군 진형의 인물이 대신 조건을 충족해도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래도 직접 확인해 보는 게 낫겠지.”
만일을 위해서.
나는 시조의 유산에 손을 뻗기 전에 잠시 에밀리에게 일러두었다.
“일단은 지켜보고 있어 봐. 조금이라도 수상하다 싶으면 바로 간섭해서 끊어 버려.”
“상관은 없는데, 뭘 그렇게 경계하는 거니?”
“내가 알아채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것.”
에밀리에게 자세히 지켜보라고 지시해 두고 나는 시조의 유산.
그 부러진 완드에 손을 대었다.
그 안에 깃든 마나가 해방된다.
이것을 매개로 봉인해 놓은 모종의 의지.
이 부서진 완드의 주인.
시조 크셀페리드의 의지라고 할 수 있는 것.
‘크셀페리드. 제국의 건국에 일조한 이들 중 한 명이자…… 필로스 아카데미의 기틀을 세운 자였던가.’
가장 위대한 마법사이자 아카데미의 설립자로 후세에 이름이 알려진 사내.
그가 이런 방까지 준비하여 남긴 것.
물론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모니터로, 그리고 스피커와 연결된 헤드폰으로 들었던 내용에 지나지 않는다.
[나의…… 우리들의 유년 시절은 끔찍한 세상과 함께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노인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마 그 시조 본인의 것.
당황할 필요는 없었다.
[세상은 혼란스럽고, 각 나라의 군주라는 자들은 추악하고 잔인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 세상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고민하던 우리를 이끈 것은 경애해야 할 이의 말씀이었다.] [기틀을 만들라고.] [거대한 나라를 세워 세상을 유지할 질서를 확립하라고.] [그의 안배에 따라 나를 포함해 동지 다섯은 제국이라 불리게 될 거대한 나라의 틀을 세우는 데 온 힘을 바쳤다.]에타니올 제국의 건국에 관한 이야기겠지.
5인의 시조는 누군가의 이끌림에 따라 그 모든 힘과 재능을 다해서 지금의 제국이 될 나라의 기틀을 세우는 데 일조하였다.
그런 설정이었지?
[하지만 그것으로 부족하리라.] [제국의 기틀이 세워진 뒤 동지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붉은 자는 권력을 거머쥐고.] [녹색의 신선은 방랑을 떠났다.] [검은 친우는 거짓된 묘를 세우고 그 자취를 지웠다.] [순백으로 빛나는 맹자는…… 언급을 금하겠다.] [비록 길은 갈라졌지만 우리들의 일생을 바치는 곳은 하나.] [경애하는 이를 위한 소망을 위해.]‘여기까지는 딱히 신경 쓰이는 건 없어…….’
목소리가 말하는 것은 다른 시조의 신전에 대한 모호한 힌트 정도뿐이다.
어차피 해답은 알고 있으니 대충 흘려들어도 상관없나?
[나는 배움의 터를 세우고자 하였다.] [언젠가 대륙의 모든 인재가 모여들도록 그 터전을 가꾸겠다.] [학교를 세우고, 그곳을 후손들이 더욱 넓혀 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합당한 재능을 증명한 이가 이곳에 도달하기를.] [도달한 후예에게 내가 일구었던 길의 흔적을 남기니.] [그것을 통해 더욱 자신의 길을 정진하기를 바라며.] [그 결과가 바라던 소망이 되기를 믿으며.]목소리는 끊겼다.
부러진 완드에서 발하는 마나도 멎었다.
“……별다른 이상은 없나.”
내가 알고 있는 게임의 이벤트 그대로였다.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저 부러진 완드.
《파손된 블루 스틱》
《먼 과거, 마법의 선구자가 사용했던 완드입니다.》
쓸 수 있는 물건은 아니다.
이것을 복구 혹은 어떤 방식으로든 이용하는 것이 이것을 가져가는 자가 해야 할 숙제.
이걸 이용하면 유용한 장비 중 하나를 만들 수 있다.
유산이라지만 사실상 숙제에 가까운 것.
“참 귀찮은 걸 남겨 주시는구먼.”
이죽거리며 부러진 완드를 챙겨서 가방에 넣어 두었다.
덤으로 수정구도 파편 하나 남기지 않고 챙겨 두고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셀리나는 이제 없군.”
“그 목소리가 들릴 때 사라졌단다.”
“하긴, 이걸 받은 시점에서 여길 지킬 이유가 없으니까.”
더는 여기에 볼일이 없다.
“하나는 확인했고. ……남은 건 네 개인가.”
단서 찾기 놀음은 하지 않아도 어딨는지 알고 있다.
시기가 되어야 찾아갈 수 있으니 조급해할 필요가 없지.
“돌아가서 쉬자. ……젠장, 아직도 서클에 위화감이 있어.”
“역시 그것부터 해결하는 게 좋지 않을까?”
“작정하고 요양하든가. ……아니면 제대로 훈련이라도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에밀리와 떠들면서 청의 신전을 뒤로하려던 때였다.
“……읏?!”
“시안? 또 위화감이 있니?”
“그게 아니야.”
미약한 두통.
갑자기 머릿속에 꽂히는 어떤 목소리 때문이다.
조금 전과 똑같은 현상.
하지만 뭔가 급히 서두르듯 마나의 파장이 거칠다.
[나의…… 숨이 끊어지기 전, ……다시 이곳에서 목소리를 남긴다…….]크셀페리드의 목소리다.
하지만 위화감이 들었다.
이 목소리는 조금 전의 것과는 달랐다.
기력이 없고, 다 죽어가는 느낌의 목소리.
아마 이것은 훨씬 뒤에 남긴 사념일 것이다.
‘혹은 죽기 전?’
어째서인지 그 목소리에 죽음이라는 그림자가 막연하게나마 풍겼으니까.
신경이 쓰이는 건 단지 그 목소리의 불길한 느낌 때문만은 아니었다.
“……뭐야?”
당황한 이유는 이 소리를 들을 것이라고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게임에서도 들은 적이 없었다.
애초에 이 이벤트는 부러진 완드를 손에 넣은 시점에서 종료.
그 뒤에 무언가가 더 일어난 적이 없었다.
분명히 그랬을 터.
[……많은 것을 남길 수 없다. ……나 또한 진정한 진실이 무엇인지 모른다.] [이 부질없는 명이 끊어질 때가 되어서야 나는 기만을 깨닫게 되었다.] [제국을 세워서는 안 되었다.] [배움의 터를 만들어서도 안 되었다.] [무엇보다.] [……그녀의 말을 들어서는 안 되었다.]무슨 뜻이지?
누구의 말을?
[세계의 운명을 알고 있다고 하였다.] [내가 눈을 감은 뒤 적지 않은 해가 흐른 뒤의 세상. ……그곳에 무엇이 일어날지 들었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이 무엇을 할지도.] [모든 것은 세계의 운명을 위해서, 라고 하였다.] [그 말을 믿었다. 그리고 그녀의 뜻을 경애하였다.]마치 후회하는 듯한 말.
“……뭐?”
절박한 목소리는 거기서 딱 끊겼다.
뭔가 툭 끊어지는 잡음과 함께 더는 들리지 않았다.
아마 끝이 난 거겠지. 이것을 남긴 자의 시간이.
“…….”
“시안, 아무래도 골치 아픈 것도 받은 모양이네.”
“나도 그렇게 생각하던 참이야.”
혀를 차며, 나는 조금 전의 경고를 생각했다.
운명에 속지 마라.
지금 내가 타고 있는 흐름은 잘못되었다?
‘뭘 두려워한 거지? 뭘 이해한 거지?’
안타깝게도 알 수가 없었다.
죽은 지 오래된 노인, 게다가 그 혼조차 어딘가로 사라져 뜻을 더듬을 수도 없게 되었으니.
‘운명. ……그러고 보니 비슷한 소리를 지껄인 녀석이 최근에 있었는데.’
그 다색의 안개 인간.
게임 당시 설정만 존재하던 DLC 보스.
‘……뭔가 안 좋은 예감이 드는데.’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시조의 유산》
《목표 : 퀘스트를 수주 받은 ‘시안’이 각 시조의 유산을 클리어하십시오.》
《단, ‘시안’ 외의 다른 누군가가 도달하면 해당 퀘스트는 실패로 판정 납니다.》
《실패 시의 페널티는…… 세계의 끝》
《당신을 포함해 모든 생명체의 사망입니다.》
이상하다.
마치 이 퀘스트는 어떤 것을 경고하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이 시조의 유산을 클리어해서는 안 된다?
나 이외의? 대체 누가?
‘기존의 엔딩에 내가 아닌 누군가가 개입하면 안 된다는 뜻인가?’
그럼 만약에 내가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본래의 의도대로 다른 녀석을 유도해서 오게 하였다면?
“아무래도 이 세상은 내가 아는 것보다 더 막장이었나 봐.”
결국은 해야 할 일이 더 늘었다는 뜻이겠지.
트루 엔딩이 세계의 종말이라니.
그런 게임은 안 팔린다고요. 젠장.
* * *
황궁.
에타니올 제국의 중심이자 단 한 명의 지배자가 기거하는 그곳.
황제의 침실.
그곳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황제는 홀로 있어 누구도 듣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말을 건넸다.
“……도달한 것은 그 애송이인가.”
마치 무언가를 보고 있는 것처럼.
이 황궁을 나가지 않아도 제국의 모든 일을 꿰뚫어 보고 있는 듯.
황제는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시조 크셀페리드는 말년에 급작스러운 최후를 맞이하였다.”
그가 말하는 것은 역사에 새겨지지 않은 한 사내의 최후에 관한 것.
“그는 자신이 만든 밀실에서 공포에 질린 얼굴을 한 채 숨을 거두었다지.”
당연히 이를 기록에 남길 순 없었다.
제국의 위인이자 가장 위대한 마법사가 그렇게 안쓰러운 최후를 맞이했다고.
어찌 남기겠는가.
“그는 황실에…… 당대의 황제에게 편지를 보냈다. 적힌 것은 두서없는 요구뿐.”
역사에 남지 않은 유언.
“아카데미를 부수어라.”
자신이 일군 위업을 스스로가 무너트려야 한다고 주장한 꼴.
“당연히 받아들여지지 않았지. ……아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비웃음을 머금으며.
“황제 역시 운명을 두려워했으니. ……그것이 빗나갈 경우를 감당할 도량이 없었으니.”
그렇기에 크셀페리드의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바꾸지 않았다.
내버려 두었다.
“어쩌겠느냐. 애송아. 얌전히 운명의 끝을 받아들이겠느냐. ……아니면.”
황제는 마치 무언가를 기대하듯 말했다.
“네가 모든 것을 마주하고 끝내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