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ummoned a max level demon by myself RAW novel - Chapter 265
제264화
264화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냐? 키르실?”
“……무엇이 이상하단 거죠?”
“우리가 왜 지금의 처지가 되었는지 말이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당시엔 달리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스스로 동의한 일이었을 텐데요.”
닐버스와 키르실을 비롯한 다크 엘프의 탄생은 스스로 선택한 일이었지만, 뭐 딱히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고는 말할 순 없었다.
금악룡. 빌키오레닐.
그 괴물이 여러 나라를 파괴하고 지금의 다크 엘프가 된 그들이 살던 곳까지 큰 피해를 입혔으니까.
“그래, 동의했지. 다 죽어 가던 꼴이었지만! 그게 아니면 부질없이 뒈졌을 테니!”
“그것이 부당하다는 것입니까?”
“아니, 틀려. 우리의 각오와 결정은 당연했다. 후회? 할 리가 없지!”
키르실의 낫의 끝이 흔들렸다.
이 사내의 주장은 뭔가 이상했다.
단순히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핑계? 적어도 그럴 인물이 아니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궤변이라 하기에는 마치 무언가 확신을 품고 있는 듯한 느낌.
“모든 것은 유도되었다.”
“유도라니…….”
“우리들은 모르고 있었지. ……나 역시 우습게도 얼마 전에야 알게 되었지만.”
과거의 금악룡이 출현한 사건.
그것에 대해 어느 누구도 의문을 품은 적이 없었다.
그런 시대였다.
느닷없이 출현한 괴물이 나라 하나를 불태우는 일이 흔하지는 않더라도 일어나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던 시대.
“정말로 재수가 없어서 저딴 괴물이 나타났다고 생각하나?”
“누군가의 사주라고 말하고 싶은 겁니까? 하물며 인제 와서?”
키르실은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뭐, 그럴 수는 있겠지.
하지만 너무도 긴 시간이 흘렀다. 이제 와서 그것을 캐 봐야 대체 누구에게 잘못을 추궁할 수 있단 말인가?
하물며 이런 사건을 일으킬 만한 논리도 되지 못한다.
“그 흉계가 끝나지 않았다면 말이지.”
“……예?”
“원하는 것은 저 괴물이 날뛰는 게 아니야. 저것을 핑계로 만들어 낼 무언가.”
“그게 무슨 뜻입니까?”
그녀의 머릿속에 안 좋은 가정이 생겨났다.
“금악룡의 출현은 처음부터 우리 같은 놈들을 만들고 싶은 핑계였다더군.”
목적은 다크 엘프의 탄생.
정확히는 혼의 이관술의 실험.
“그 괴물을 풀어놓아 실험동물로 삼을 이들을 얻기를 원했던 거지. 그리고 걸려든 게 우리였다.”
“그런 일 따윈 있을 수 없습니다.”
믿지 못하는 키르실에게 닐버스는 고개를 저으며 덧붙였다.
“그자는 우리라는 시행착오를 거쳐 무언가를 완성할 모양이었더군.”
“설마 그자가 검은 시조, 그자를 말하는 겁니까?”
“틀려. ……틀림없이 우리를 만든 건 그 자식이지만. 그 뒤에서 바랐던 놈이 있다.”
닐버스의 분노는 그보다 훨씬 뒤에 있는 존재에게 향한다.
“잘 들어라, 키르실. 흑서를……. 특히나 흑마법사 놈에게 넘겨주어서는 안 된다. 아카데미의 애송이들에게는 더더욱 안 되고.”
“…….”
“믿지 못하겠냐? 이해해. 나도 처음 그것을 들었을 때는 그 자식의 면상을 뚫어 버리려 했으니까.”
하지만 설득되었다.
증거를 보여 주고, 무엇보다 그 역시 오래전부터 의심하고 있었으니.
“복수라는 것입니까. ……이용당한 것에 대한?”
“부정은 하지 않겠어. 하지만 내가 바란 것은 더욱 중요한 일이지.”
마치 목숨이라도 걸 듯 그는 이를 갈며 애타게 말했다.
“우리도 흑마법사도 전부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해. 그렇게 한다면 최소 이 세상은 무사할 거다.”
흑서를 완성하여 흑마법사도 다크 엘프도 전부 없애고 흑서 자체도 완전히 불태워 버려야 한다.
“그렇게만 하면 비극은 다시 일어나지 않을 거다.”
“이해할 수 없군요. 왜 흑마법사와 저희를?”
“다른 것이라도 상관없어. 마법이든 정령술이든 그 외의 것이든?”
“……?”
“멸망시키는 것은 어느 하나의 지식이든 상관없다는 뜻이지.”
더욱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키르실이 눈가를 찌푸렸다.
상관없다니. 마치 그는 어떤 하나의 지식을 골라 깡그리 없애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무엇보다 그것이 세상을 지키는 방법이라니.
“무엇이든 좋으니 완전히 멸망시킬 수 있다면 우리를 만들어 내도록 꾀한 놈은 울상을 짓겠지. ……하지만 없앨 방법이 없거든.”
어떻게 지식을 전부 없애겠는가?
권력자들을 끌어들여서 탄압이라도 해야 하나? 불가능하다. 무슨 짓을 해도 그 불씨는 남는다.
하지만 흑마법은 다르다.
“그 검은 놈이 무슨 약이라도 처먹은 건지……. 자신의 지식을 이어받은 후예들을 깡그리 몰살할 방법을 만들었더군.”
흑서의 존재를 알았기에 닐버스는 확신했다.
이것을 사용하는 것은 그 악의에 놀아난 다크 엘프인 자신의 의무라고.
“저 용을 이용한 것은 덤이었다. 혹여 우리 같은 것들을 만들 생각을 하지 않도록. 그 원인이 된 흑마법을 경계할 전례가 필요했다.”
“미쳤군요. 그저 궤변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해하지 못하겠냐? ……너 역시 다르지 않을 텐데. 복수를 위해 그놈의 비술을 허락한 거 아니냐.”
“그만하시길. 닐버스.”
“그 용이 가장 먼저 불태운 건 네가 있었던 고향이 아니냐. 커헉!”
“……!!”
키르실은 감정적으로 그를 걷어찼다.
“커헉! 역시 그놈의 성질머리는 죽지 않았군.”
“더는 들을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추궁할 것이 있다는 것은 이해했으니, 이대로 끌고 가도록 하죠.”
“크윽……. 말해 봐야 넘어오지 않는 건가.”
그러나 닐버스는 어쩐지 체념한 낌새를 보이지 않는다.
“왜 그것을 이제 말했는지 궁금하냐?”
“……조용히 하시길.”
“하나는 설득을 위해. 그리고 당연하지만.”
닐버스를 완전히 제압하기 위해 키르실이 손을 뻗으려 하다가 뒤로 뛰어올랐다.
“시간을 끌기 위해서지.”
콰아아아앙!
닐버스의 모습과 목소리가 돌연 일어난 폭발에 휩쓸린다.
“마법?! 대체 누가?!”
황급히 그 낌새가 시작된 곳을 살펴보자, 키르실의 시선이 그 범인을 찾아내었다.
금발의 마법사.
마탑의 문양이 새겨진 로브를 걸친 사내.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나 인상착의를 들었기에 키르실은 그자의 정체를 눈치챘다.
“마탑주?!”
“당신의 주인에게 들은 겁니까? 뭐, 숨길 생각은 아니니 인사드려야겠군요. ……다크 엘프 키르실이여, 불쌍한 과거의 영웅이자 실험 쥐.”
마탑주. 제올루인 미켈드.
정중한 말투 속에 섞인 모욕적인 언사에 키르실은 대꾸 대신 낫을 휘둘러 검은 오러를 다듬은 참격을 날렸다.
“살의 한번 매섭군요.”
마탑주가 가볍게 손가락을 흔들자, 푸른 마력의 칼날이 허공에서 튀어나와 참격을 막아 내었다.
저 실력은 틀림없이 마탑주 본인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다만 그는 적극적으로 싸울 마음은 없는지 키르실의 공격을 막기만 하고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그가 손짓하자 이번에는 푸른빛과 함께 폭발에 휩쓸렸던 닐버스가 나타났다.
“……나라도 네놈의 모가지부터 날렸을 거다.”
“구해 준 자에게 무슨 망발입니까, 닐버스.”
“날려 버려 놓고 구해 주긴 개뿔. ……그러지 않으면 성가시니 그런 것이겠지.”
“정답이군요.”
“간섭할 마음이 없다는 건 역시 거짓말이었나?”
“반은 진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당신이 실패하는 것은 역시 아깝더군요.”
“개소리를…….”
닐버스는 빈정거리며 자신의 몸을 회복시킨다. 충분히 시간을 벌었기에 도망칠 정도의 회복은 이루어졌으리라.
“놓칠 거 같습니까!”
키르실은 그를 놓치지 않기 위해 달려들었다.
마탑주가 공범이라는 말은 이미 시안에게 들었기에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그 사실을 확인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유감스럽지만, 놔주셔야겠습니다. 다크 엘프.”
키르실의 추격을 방해한 것은 마탑주가 쏘아 낸 마법.
마치 숨이라도 쉬듯 손쉽게 영창한 것으로 수십 개의 마법이 그녀를 중심으로 휘몰아치며 연쇄적으로 터져 나간다.
누가 뭐라고 해도 마법사의 정점.
“……무슨 마력이.”
마탑의 최고봉. 8서클에 이른 대마법사.
하지만 키르실이 당황한 것은 그의 뛰어난 능력 때문이 아니었다.
마탑주의 실력을 모를 리 없었다.
그녀가 당황한 것은 단순한 8서클 마법사의 저력으로 보기에는 뭔가 묘한 위화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
“덤비지 않는 겁니까? 감이 좋군요. ……아니면 그 소년이 준 힘과 지식 덕인가.”
“당신은 뭡니까? ……정말로 마탑의 마법사입니까?”
두 눈을 의심했다.
조금 전 마법이 쏟아지는 순간, 그 여파에 그의 모습이 가려져서 한순간에 봤을 뿐이지만.
그의 모습이 인간이 아닌 무언가와 겹쳐진 것을 본 것 같은 섬뜩함.
“그 이상 접근하지 않도록 권하겠습니다. ……죽지 않는 몸이라고 해도 그 힘이 무한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
키르실은 쉽사리 덤벼들지 못했다.
저 사내의 말을 순순히 들을 마음은 없었지만, 무턱대고 덤볐을 때의 결과를 예측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승산이 없었다.
“하지만 마탑주, 당신이 개입한다면.”
만약 그가 이대로 다크 엘프의 무덤이나 금악룡이 있는 곳.
혹은 그들을 방해하는 중심인물인 시안에게로 향한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막을 수밖에 없다고 키르실이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안심하길. 저는 이 이상 개입할 마음이 없으니.”
“…….”
“믿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제 쪽도 꽤 무리하고 있어서 말이죠.”
키득거리며 마탑주가 다음 마법을 사용하려는지 손을 들어 올리려는 순간.
파앙!
갑자기 그의 어깨 아래의 팔이 파열되며 터져 나갔다.
“……어, 어떻게?”
“이런, 역시 수행이 부족했나 보군요. ……다루기가 쉽지 않군.”
더욱 기이한 것은 고깃덩이나 다름없이 너덜너덜해진 그의 팔이 원래대로 돌아온 것이다.
마치 다크 엘프들의 재생 능력처럼.
아니, 그것과는 달랐다. 그 이상으로 섬뜩한 무언가가 느껴진다.
“보셨다시피, 이래서는 아직 그 소년과 대면하기 불안하니 말이죠. 그러니 여기서 실례하도록 하겠습니다.”
시안에게 안부라도 전해 주길, 하고 조롱하듯 말하고, 마탑주는 흙먼지를 섞은 돌풍을 일으키더니 자신과 닐버스의 모습을 가렸다.
“어딜!”
마탑주는 그렇다고 치고 닐버스까지 놓쳐서는 안 된다. 키르실은 낫을 휘둘러 억지로 돌풍을 가르고 뛰어들었으나.
“……놓쳤나요.”
이미 둘의 모습은 사라진 뒤였다. 키르실의 눈을 가리고 그사이에 텔레포트를 사용하여 빠져나간 것이리라.
* * *
“무슨 꿍꿍이냐, 마탑주?”
“계속 섭섭한 말이나 하깁니까? 닐버스. 곤란하던 차가 아니었습니까?”
“……칫. 네놈을 상대로는 감사할 마음도 들지 않더군.”
“의심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유를 말해 두자면 그렇군요. ……제 목적을 위해서라고 해 두겠습니다. 아니면, 호의라고 해두면 되겠습니까?”
“호의는 개뿔…….”
닐버스는 신뢰할 수 없다는 듯 침을 뱉었다.
“그런 모습치고는 제 이야기를 믿어 주신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당신께 그 과거의 진상을 알려 드린 이가 제가 아닙니까.”
믿었기 때문에 이런 결론에 이른 것이 아니냐. 마치 놀리듯 마탑주는 말한다.
“그래, 네놈의 정보와 조력이었지. 지금 이 짓을 저지른 이유가 말이다. ……그래서 묻고 싶었으니, 이 기회에 물어보마. ……그럼 너는 그 사실을 어떻게 안 거지?”
“어떨까요? 의심하는 자에게 쓸데없는 말을 둘러대는 취미는 없습니다만.”
마탑주가 준 정보를 믿고 있지만, 그렇다고 닐버스가 진정으로 저 사내를 신뢰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적으로 여기고 있다.
“결과적으로 흑마법사가 사라지기만 한다면, 저는 그것으로 만족할 뿐입니다만. ……말해 두지만 이건 재 개인의 소망을 위한 독단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꺼져라.”
“필요하다면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그 소년이 버겁지 않습니까?”
“꺼지라고 했다.”
닐버스가 창을 꺼내 휘두른다. 그것이 마탑주의 목에 정확히 닿았지만.
그러나 마치 철에 부딪히기라도 한 것처럼 그의 피부조차 베어 내지 못했다.
“그렇게까지 거절하신다면 서운하지만 물러나야죠.”
“그래, 이왕 꺼지는 김에 그것도 내놔라.”
“그것? ……뭐, 좋습니다.”
탑주는 기꺼이 웃으며 닐버스의 손에 마법으로 어떤 표식을 새겨 넣는다.
금악룡을 이용하는데 필요한 술식은 전부 넘겼다.
“이거라면 당신도 쓸 수 있겠지만 무엇을 위해?”
“필요하거든. ……이대로는 못 이겨.”
단순히 저 괴물을 날뛰게 하는 것만으로는 목적을 이룰 수 없었다.
무엇을 꾀하는지 알아챈 마탑주가 어이가 없다는 듯 혀를 찼다.
“그것은 추천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말하긴 뭣하지만, 그건 자살만도 못하니.”
“흥, 지금의 저 괴물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으니 이렇게라도 해야겠지.”
“그럼 원하시는 바람을 이루시길. 허무한 인생을 살아온 다크 엘프.”
이제야 완전히 사라진 마탑주. 그가 말한 대로 이제 간섭하지 않으리라.
성공하든 실패하든.
“이제야 역겨운 놈이 사라져서 조용해졌군.”
놈을 추궁하는 것은 나중이다.
닐버스는 남은 흑서의 반을 꺼내고는 조금 전 마탑주에게 받은 술식이 새겨진 표식을 확인하며 중얼거렸다.
“시작하도록 할까. ……시안 네가 옳은 것은 인정하지만 져줄 수는 없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