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thought it was a half-way ring RAW novel - Chapter 163
163. 일종의 거래?
무림맹은 오랜만에 활기가 넘쳤다.
정파를 대표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창설되었으나, 이렇다 할 만한 활약은 오랫동안 거의 없다시피 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사도맹의 궤멸(潰滅).
무림맹의 힘이 부족해 수십 년 동안 대립해 오며 방치 해두었던 악의 축이 무너진 것이다.
녹림이 주축이었으나 무림맹은 한 줌밖에 안 되는 숫자였음에도 거의 동급으로 취급되어 찬사를 받았다.
무림맹에서 파견한 무인들이 천 명에 이르는 사도맹의 지원군을 물리치고, 최후의 전투에서 크게 활약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녹림이 사도맹을 궤멸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당했을지도 몰랐다.
녹림의 총표파자인 일도단산(一刀斷山) 왕귀상이 직접 나서서 공표한 내용이었으니 누구도 반박할 수 없었다.
“하하하! 좋은 아침입니다!”
무림맹주 송비응이 회의실에 모인 장로들에게 손을 흔들며 반가워했다.
그가 회의실에 모습을 드러내자, 자리에 앉아 있던 장로들이 일제히 일어나 반가운 미소로 맞이했다.
송비응은 요 며칠 하늘을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사도맹의 궤멸에 혁혁한 기여를 한 무림맹주.
세간(世間)의 평가였다.
그토록 바라 마지않았던 업적을 세운 것이다.
욕받이로서 자리를 보전하기에만 골몰하는 허수아비 무림맹주가 아니라, 당당히 강호사에 한 획을 그은 무림맹의 실세가 된 것이다.
“아미타불. 활기찬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맹주.”
“맹주, 회의하기 딱 좋은 날씨가 아닙니까. 무량수불….”
“오늘 좋은 차가 들어왔는데, 회의 끝나면 직접 대접하고 싶습니다.”
덩달아 명성을 얻게 된 소림과 무당 출신의 장로들을 필두로 덕담이 이어졌다.
칠 전대에 무당과 소림의 제자가 소속된 까닭에 일 장로와 팔 장로는 어깨로 하늘을 뚫어 버릴 기세였다.
그들에게 줄을 댄 장로들이 가세하니 절반 이상의 장로가 현 무림맹주를 지지하는 셈이었다.
그러니 송비응의 기분이 좋을 수밖에.
다만,
웃을 수 없는 두 사람이 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맹주.”
이 장로인 양문선은 목에서 턱턱 걸리는 인사를 애써 건넸다.
화산파의 기재들 위주로 구성된 별동대가 제 몫을 해내지 못하고 지리멸렬한 데다, 최후의 결전을 앞두고 목숨 구걸까지 했다고 전해졌다.
정사 중간에 위치한 녹림도와 사도맹 무인이 대치한 상황에서 그런 짓을 벌이는 바람에 천하의 웃음거리가 된 것이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밤사이 안녕하셨습니까, 맹주님.”
부맹주인 윤재혁이 슬슬 눈치를 보면서 포권지례를 올렸다.
장로들의 반대를 무시하고서 악착같이 사신단주의 자리에 공보중을 올린 까닭이었다.
돌격대랍시고 내내 몸을 사리다가 마지막 결전에 밥숟가락을 얹으려다 실패한 공보중.
본인은 물론, 사신단의 역량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무작정 난입한 대가로 사신단이 박살 났다.
만약 칠 전대가 혁혁한 공을 세우지 않았더라면, 무림맹은 또다시 해체하라는 압박에 시달렸을 터였다.
“자, 자! 모두 앉읍시다.”
송비응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는 손짓하며 자리에 앉았다.
모든 사람이 착석하기를 기다렸던 군사 제갈군성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안건은 조금 민감할 수 있습니다. 사신단이 무림맹의 품위를 훼손한 행위와 전력에 손실을 발생시킨 공보중과 관련한 내용입니다. 이번 일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해야 화산파를 비롯해 사신단에 무인을 파견한 문파들의 불만을 진정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갈군성은 얘기를 끝마치면서 윤재혁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저 자식의 앞뒤 안 가리는 인선과 무식함 때문에 얼마나 속이 터졌는지….’
감정을 숨기고 있지만, 사실 제갈군성은 막혔던 속이 뻥 뚫린 것 같았다.
사사건건 일 진행을 방해했던 윤재혁이다.
이번에 터트린 대형 사고로 인하여, 윤재혁은 최소한 수뇌부에서 제외될 것이 확실시되었다.
‘저 인간도 사라져 주었으면 좋겠지만, 거기까지 바랄 수는 없겠지.’
제갈군성은 슬쩍 곁눈질로 이 장로인 양문선을 바라보았다.
얼굴이 잔뜩 굳어 있는 모습을 보니, 그렇게 통쾌할 수가 없었다.
별동대라니!
무림맹에서 파견하는 무인의 숫자가 몇이나 된다고 별동대 운운한단 말인가!
말도 안 된다고 그렇게 만류했건만, 부맹주인 윤재혁과 죽이 맞아서 기어이 별동대를 운용하게 한 인간이다.
윤재혁과 같이 책임을 지고서 물러나야겠지만, 별동대의 절반 이상을 이루었던 화산파가 제일 큰 피해를 입은 탓에 징치하기도 곤란해졌다.
“아미타불, 빈승이 한마디 해도 되겠습니까?”
“말씀하십시오, 일 장로님.”
제갈군성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부맹주가 사사로운 인연을 이유로 공보중을 사신단주에 앉힌 것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
시무룩해 있던 윤재혁은 일 장로의 얘기에 생기가 돌았다.
자신의 편을 들어 줄처럼 얘기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무림맹의 지원 규모가 작은 것을 알면서도 별동대를 운용하자고 주장한 것은 문제가 큽니다. 그 때문에 젊은 기재들이 아무것도 못 하고 불명예스러운 죽임을 당했습니다. 아미타불….”
일 장로인 각명 대사가 사신단의 피해를 떠올리곤 불호를 외웠다.
잠시 괴로운 표정을 하던 그는 이어서 말하기 시작했다.
“하여, 부맹주의 직위를 해제하고 평무사로 두어 삼 년간 복무하는 것으로 죄를 탕감하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다만, 평무사와 무력의 차이가 있으니 감시를 두어야 할 것입니다.”
말을 마친 일 장로가 자리에 앉았다.
그런 일 장로를 부맹주인 윤재혁이 잡아먹을 듯 눈을 부라렸다.
“아미타불… 아직도 윤재혁 시주는 자신의 잘못을 모르시는 모양이구려. 용조수로 눈알을 파버리기 전에 시선을 거두는 것이 좋을 것이오.”
각명 대사가 싸늘한 어조로 경고하고는 오른손을 갈고리 형태로 만들었다.
말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일종의 무력시위였다.
“크흑!”
윤재혁은 감히 경고를 무시하지 못하고 얌전히 고개를 숙였다.
다른 장로는 몰라도 일 장로인 각명 대사는 소림의 고승으로, 일신에 지닌 무위를 무시할 수 없었다.
“다른 분들은 좋은 의견이 없으십니까? 없으시다면 일 장로님의 제안을 수렴하여 시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송비응이 장로들을 둘러보며 느긋한 어조로 말했다.
‘좋군. 이게 진짜 맹주인 것이지.’
기분이 더 좋아졌다.
장로들의 눈빛이 호의적이었으며, ‘뜻대로 하시지요’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물론 딱 한 사람, 이 장로 양문선은 제외였지만.
***
초무성은 아버지와 형에게 천년화리의 내단을 먹이고 돌아가는 중이었다.
어쩌다 보니 밤을 새우게 되었다.
내단을 흡수하게 돕느라 시간이 필요했고, 비무 대회의 개최를 놓고 몇 가지 의견을 나누느라…
아니,
일방적으로 초무성이 부탁했다고 보는 게 맞겠다.
비무 대회에 내걸 상품이나 상금은 알아서 하겠다고 했으니 문제가 없었다.
초무성이 부탁한 것은 무인들이 대결할 비무대를 만드는 것.
한두 개의 비무대로는 어림없었다.
차례를 기다리다가 한세월 보내게 될 테니까.
적당한 수준의 예선도 거쳐야 한다.
개나 소나 다 참가시켰다간 싱거운 비무를 보게 될 테니까.
비무 대회를 여는 것에 자금이 들어가지만, 일정 수준의 수익도 기대할 수 있다.
비무 대회를 보러 오는 사람이나 참가하는 사람이나, 사람인 이상은 먹고 자야 할 것이 아닌가.
방산 대부분의 사업이 초씨세가의 것이니, 잘하면 오히려 흑자를 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장사를 해서는 곤란하다.
초씨세가의 확실한 전력이 되어 줄 무인을 얻기 위한 행사니까.
‘무인들은 비급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인간들이니 적당한 선에서 준비하면 되겠고, 초씨세가의 무인들이 사용하지 않는 병기 중에서 고르면 되겠군.’
초무성은 대륙전장 정주지부의 첫 번째 금고를 떠올리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신투가 평생을 수집(?)한 물건 중에는 무공비급도 있다.
자신과는 상성이 좋지 않아서 굳이 익히려 하지 않았던 비급이었다.
그중에는 거대 문파의 무공은 아니지만 누구나 탐을 낼 만한 무공도 있었다.
‘이번 기회에 외인들을 위한 무공비급도 가져와야겠어.’
비무 대회를 통해서 유입될 무인들을 위해서 준비해 두어야 할 것 같았다.
이번에 초무성이 준비하는 초씨세가의 비무 대회는, 이전에 강호에서 열렸던 비무 대회와는 차별화가 될 것이다.
최고의 실력자를 가린다는 목적은 같지만, 그에 따른 결과는 완전히 다르다.
기존의 비무 대회처럼 우승자를 비롯한 상위 몇몇만 혜택을 받는 수준의 대회가 아니다.
인재를 보충하여 초씨세가의 규모를 확장시키기 위한 비무 대회니까.
파격적인 상금은 기본이고, 인성만 제대로 박혀 있다면 세가의 사람으로 받아들여 정예 무인으로 키울 생각이었다.
부족한 무공은 초씨세가의 무공을 가르칠 테고, 내공이 부족하면 돈질로 채우면 그뿐이다.
대륙전장 지분의 사 할을 움켜쥔 초무성이기에 가능한 미친 짓이었다.
‘돈도 살아남았을 때나 쓰는 거지, 못 쓰고 죽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어.’
대략적으로 생각을 정리한 초무성이 한시름 덜었다는 얼굴을 하고서 자신의 거처로 이동했다.
전날 그렇게 술을 마시고서도 아직 술판이 끝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쩌면 다시 술판을 벌이는 것일 수도 있고.
조금 시끄럽기는 해도, 사람들로 북적이는 상황이 나쁘지 않았다.
아버지인 초규원이 평생을 염원하던 일이 아니던가!
강호의 이름난 고수들이 수시로 드나들었고, 한 수 배워 보겠다며 비무를 청하는 무인들로 북적거렸던 그 시절로 되돌아가는 것.
지금의 상황은 마치 이야기로만 듣던 초씨세가의 전성기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어지간히들 술을 좋아하는군.’
떠들썩한 것이 좋기는 했으나, 세가의 식구들이 저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고생할 것을 생각하니 안쓰럽기도 했다.
“……?”
자신의 거처로 걸어가던 초무성이 얼굴을 굳혔다.
누군가 있다.
한영중 부부는 현재 진주언가의 사람들과 어울리느라 집을 비운 상태다.
그런데 인기척이 느껴진다?
초씨세가의 본관과는 한참 떨어져 있어서 길을 잘못 들었을 수도 없는 위치인 이곳에?
‘고수!’
자신의 거처에서 흘러나오는 기의 파장만으로도 피부에 소름이 오소소 돋는다.
자신보다 강자라서?
아니,
그런 게 아니다.
무위는 분명 초무성 자신보다 손색이 있다는 건 확신할 수 있다.
문제는 관자놀이가 간질간질할 정도로 뭔가 기묘한 느낌의 기세라고 할까?
활짝 열어 둔 대문이 지옥의 입구처럼 느껴졌다.
‘이만한 수준의 고수가 어째서 내 거처에 있는 것이지?’
초무성은 긴장한 채로 활짝 열린 대문을 넘어섰다.
“어느 방면의 고인이신지 모르겠으나, 이곳은 제가 지내는 거처입니다. 불순한 목적으로 찾아오신 게 아니라면 모습을 보이시지요.”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경고하고서 명혼도의 칼자루에 손을 얹었다.
자신의 집에서 꿇리고 들어갈 수는 없는 거니까.
“제법이군.”
카랑카랑한 음성이 초무성의 방에서 들려오고, 이내 방문이 열렸다.
드르륵!
“……!”
긴장했던 초무성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아니, 왜 내 방에서 당신들이 나오는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