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act, it's a different world RAW novel - Chapter 97
097화
“아가씨, 어디 계세요! 루나 아가씨!”
“나 여기 있어. 앤.”
성연이 주인공 앤 역할을 맡은 는 동명의 해외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뮤지컬로, 한국을 포함해 열 몇 개국에 번역되어 공연 중일 정도로 인기 있는 극이었다.
“아이참, 오늘도 또 파티야?”
“아가씨는 파티가 그렇게 싫으세요?”
“정말 지겹다니까!”
“치, 저는 파티에 참석해 보는 게 소원인데!”
그 탓인지 소품 하나, 의상 하나에도 공을 들인 티가 나는 것은 물론, 비중이 적은 등장인물조차도 무엇 하나 어색한 느낌 없이 넓은 무대를 꽉 채웠다.
“하지만 아가씨, 파란색 드레스를 입으면 위건 부인이 싫어하실 텐데요?”
“위건 부인은 분홍색, 하얀색, 노란색 빼고는 전부 싫어하잖아. 나도 가끔은 내가 좋아하는 색을 입고 싶다고! 어서 파란 드레스를 입혀줘!”
귀족 집안에서 귀히 자란 철부지 아가씨 루나와 어릴 때부터 그녀를 보필하며 함께 커온 하녀 앤.
“세상에, 루나 아가씨! 이런 끔찍한 드레스라니. 이봐, 앤! 내가 분명 이번 파티에는 연분홍색 드레스를 입혀드리라고 했을 텐데?”
“하지만 위건 부인….”
“됐어! 내가 입고 싶다고 했는걸?”
루나는 파티가 있는 날이 아니면 저택 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자신과 달리 자유로이 밖을 드나들며 생활하는 앤을 부러워하고, 앤은 조금 갑갑할지언정 그 어떤 노동도 하지 않아도 되는 루나를 부러워한다.
“매일 매일 똑같은 구두와 옷, 똑같은 파티에 똑같은 웃음. 오르골 속 인형이 된 것 같아! 저택 밖으로 나가고 싶어.”
“매일매일 빨래와 시중. 칙칙한 하녀복도 너무 지겨워. 새하얀 원피스를 사면 뭐해 하루 만에 더러워지는걸. 그 옷을 빠는 건 또 내 몫이겠지!”
는 그런 두 사람이 저택에 들린 한 이국 상인에게 구매한 수면 향을 통해 일정 시간 동안 서로의 몸을 바꿔 생활할 수 있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뮤지컬이었다.
“상인이 왔다고?”
“예. 아가씨. 하지만 오늘은 위건 부인도, 백작님도 안 계시고…. 그냥 돌려보내는 게 좋지 않을까요?”
“됐어! 들어오라고 해! 허락받는 건 지긋지긋해!”
현장에서 마이크를 통해 바로 귀에 꽂히는 음성에는 녹음 후 스피커로 전해지는 영화, 드라마와의 목소리와는 다른 힘이 있었다.
“이 수면 향으로 말할 것 같으면 아주 신비한 힘을 가진 귀한 수면 향입니다. 이제는 세상에 없는 한 조향사가 죽기 전 자신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만든 수면 향인데, 아가씨께서 원하신다면 제가 특별히! 싸게 모시도록 하죠!”
“너무 수상해요! 사지 마세요. 아가씨! 혹시 독이라도 들어있으면 어떡해요?”
“독이라뇨! 이 제페토, 30년 상인 인생을 걸고 절대로 위해가 되는 물건은 판매하지 않습니다!”
편집을 통해 몇 번이고 재촬영할 수 있는 영화, 드라마와는 다르게 단 한 번의 실수도 그대로 드러나는 라이브임에도 배우들의 대사는 막힘없이 쭉쭉 이어졌다.
그가 앉은 초대석은 무대와 가까워 배우들의 표정까지도 생생히 감상할 수 있었지만, 설령 자리가 멀어 표정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감정이 그대로 실려있는 대사 덕에 그 표정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세상에! 내가 아가씨가 되다니.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앤, 앤!”
“아가씨?”
특히, 노래와 춤이 동반되는 구간에서는 정말 라이브가 맞나 싶을 정도로 흔들림 없는 발성이 탄성을 자아냈다.
“와….”
이정이 저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자 옆에 앉은 주린이 웃음을 참으며 작게 물었다.
“뮤지컬 처음 봐요?”
“아뇨, 그건 아닌데….”
지원, 민혁과 함께 종종 보러 다니기도 했고, 서른이 넘어서는 민혁이 뮤지컬 활동을 시작해 같은 극을 수십 차례 보기도 했지만, 연기를 시작한 후로는 처음이라서 그런지 모든 게 새로웠다.
“그냥 뭐랄까, 새로워서요.”
“아아, 촬영 현장이랑은 좀 다른 맛이 있지. 확실히.”
특히, 관객들의 반응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크게 다가왔다.
‘촬영장에서도 스태프들의 반응을 볼 수 있긴 하지만….’
관계자가 아닌 순수한 시청자의 반응이 아닌 데다 이정은 트라우마 탓에 그마저도 제대로 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성연 언니!”
“주린아아!”
뮤지컬이 끝나고, 대기실에 들어가자 성연과 주린이 마치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연인처럼 서로를 껴안았다.
“첫 주연 축하해 언니!”
“와줘서 고마워!”
“첫 공연 보러 못 와서 미안하구.”
“너도 바쁜데 뭐 어때. 곧 패션위크 시즌이라며?”
곧이어 주린의 매니저가 성연만 한 꽃다발을 그녀에게 건넸다.
“와, 뭔 놈의 꽃다발이 저렇게 커?”
“요즘은 저런 게 유행인가 봐요.”
“어휴, 이정아 우리는 꽃다발 안 줘도 되겠다. 갖다 버리자.”
“앗! 왜요! 다 내 껀데!”
이정과 주석이 준비한 평범한 꽃다발이 빈약한 꽃 한 송이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이정 씨도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어요. 선배님?”
종방 이후 얼굴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던 이정과 성연도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나야 뭐. 이정 씨도 요즘 꽤 바쁘다며? 영화 촬영하는 건 어때? 삼촌이 자꾸 술 마시자고 괴롭히면 나한테 말해요. 내가 진상짓 못하게 꼭 막아줄게.”
“진상짓이라니.”
“술 강요가 진상짓이죠 그럼!”
주석과 성연은 꽤 오랫동안 보지 못했음에도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시끄럽고, 이쪽은 우리 영화 같이 찍는 송 감독, 그리고 주훈진 배우.”
난데없는 성연의 타박을 툴툴거리며 넘긴 주석이 송 감독과 훈진을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우성연입니다.”
“송계나입니다.”
“안녕하세요. 주훈진입니다.”
초면인 세 사람이 가볍게 인사를 나눴지만, 그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촬영 내내 이정을 챙기던 성격 좋은 성연도 두 사람의 차가운 낯은 감당하기 힘든듯했다.
“이정 씨, 뮤지컬 어땠어요?”
“엄청 좋았어요.”
“그게 끝?”
결국, 대화의 화살이 이정을 향했다.
“음, 예전에도 가끔 뮤지컬을 보긴 했는데, 연기 시작한 이후로는 처음이라서 그런지 드라마나 영화랑은 다른 부분이 눈에 보여서 더 즐거웠어요.”
“오, 그래요? 어떤 점이?”
이정이 뮤지컬을 보며 느낀 점에 대해 설명하자 성연을 비롯한 일행 전부가 그를 빤히 쳐다보며 집중했다. 짐짓 부담스러운 눈빛에 이정이 순간 말을 멈췄다.
“왜 그렇게 집중해서 들으세요. 부담스럽게.”
“그냥. 뮤지컬 하나 보면서도 되게 분석하면서 보는구나 싶어서. 그래서 이정 씨가 공부를 잘했나?”
“분석이라고 할 것까지야….”
다른 발성, 표정 연기, 현장감 등 누구나 알 수 있을 법한 차이를 나열했던 것뿐이었던 이정은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당황했다.
‘무슨 막내가 기특한 말 했을 때 같이…. 아, 나 막내 맞구나.’
이정은 새삼 자신이 과거로 돌아와 이제 겨우 스물두 살밖에 되지 않았음을 자각했다.
― 똑똑
“성연아, 들어가도 돼?”
“넵. 들어오세요!”
“실례하겠습니다~”
“실례합니다.”
위건 부인 역의 문숙이 옷을 갈아입은 가벼운 차림으로 대기실에 들어섰다.
“아직 옷 안 갈아입었어?”
“오자마자 인사하기 바빠서. 말 나온 김에 옷 좀 갈아입고 올게요. 얘기하고 있어요!”
말하진 않아도 치렁치렁한 옷이 꽤 불편했는지 성연이 냉큼 자리를 비웠다.
“성연이 손님들 온다길래 지난번처럼 한 선생님이랑 주린 씨만 올 줄 알았는데 오늘은 많이 오셨네요. 손님맞이용 대기실 빼 준 보람이 있어요.”
“웬일로 단체 대기실이 아닌가 했더니, 손님맞이용이었어?”
“대기실에 손님 오면 정신없어서 우리끼리 손님 오는 날에는 작은 방 내주기로 합의 봤지. 다른 분들도 안녕하세요.”
그녀는 주석, 주린과 이미 안면이 있는지 스스럼없이 인사를 나눴다.
“안녕하세요. 이이정입니다. 뮤지컬 정말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어머, 의 이이정 배우네? 저기 이정 씨, 노래는 좀 해요? 춤은? 뮤지컬 할 생각 없나? 연극은?”
“방송 쪽 애들은 싫다고 할 땐 언제고 다짜고짜 공수표를 날려? 탐내지 마. 귀한 인재라 영화 찍기도 바빠.”
이정을 본 문숙이 다짜고짜 그에게 캐스팅을 시도했다. 당연히 가벼운 장난이었지만 주석은 칼같이 문숙을 쳐냈다.
“얼굴이 안 흔하잖아. 게다가 한 선생님이 귀한 인재라고 하니까 더 탐나는데? 왜? 어떤데?”
“이정아, 저 꼬드김에 넘어가지 마라. 성연이도 저 사람 때문에 여러 번 울었을 정도로 독한 배우야. 잘못하다 큰일 난다.”
“하하….”
영화계 쪽에서 인정받는 주석과 달리 방송 출연은 적지만 뮤지컬계의 대모로 불리는 문숙은 방송계 출신 배우들을 혹독하게 굴리는 것으로 유명했다.
“으아, 옷 갈아입으니까 날아갈 거 같네. 무슨 얘기하고 있었어요?”
난처하게 웃는 이정을 사이에 두고 주석과 문숙의 대화가 이어졌다. 옷을 갈아입고 나온 성연이 그 상황을 보고 이정을 제 등 뒤로 숨겼다.
“애 좀 괴롭히지 마세요. 나이도 드실 만큼 드신 분들이 어린애 두고 뭐 하는 거람.”
“왜. 재미있잖아.”
“난 말렸다. 악취미인 건 저쪽이야.”
비록 이정이 머리 하나는 더 큰 탓에 전혀 숨겨지지 않았지만 일단 성연의 의도는 명확하게 전해졌다.
‘여기서 내가 중간은 되는데….’
나이만 어릴 뿐 실제론 전혀 어리지 않은 이정은 낯선 막내 취급에 눈알만 굴렸다.
“그러고 보니까 이정 씨 노래하는 건 본 적 없네요. 후반부에 넣어야 하는데.”
문득, 가만히 있던 송 감독이 말을 꺼냈다.
“아, 그런 장면이 있었지.”
의 후반부, 수한이 노래를 흥얼거리는 부분이 있긴 했지만 그다지 중요한 부분은 아니라 캐스팅을 진행한 주석도 신경 쓰지 않은 부분이었다.
“그러게, 이정 씨 노래 좀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