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touch it, it'd all be profit RAW novel - Chapter (113)
그러나 잡생각도 잠시.
준비된 디저트들을 하나하나 맛볼 때마다 머릿속에 달콤상큼한 폭죽이 팡팡 터졌고.
“참, 사장님. 아니, 영화 이야기할 땐 투자자 님이나 대표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호호.”
임희주도 어느새 기운을 되찾은 듯했다.
“아! 저희 영화 같이 하신다는 소식 들었습니다. 진짜 영광이에요.”
“아뇨, 이렇게 좋은 작품 하게 돼서 제가 영광이죠. 대본도 사장님이 처음 보여줬었잖아요?”
그랬지. 그 오후 땡볕 촬영장에서 어떻게든 보여드리려고 했었지.
다 「행운의 편지」 덕분이었어.
“어떻게 연이 이렇게 닿나 몰라. 우리 수정이부터 해서 이렇게 작품도 같이 하게 되고. 아무래도 사장님이 행운을 몰고 다니나 봐요?”
마카롱을 입에 넣다가 잠시 멈칫했더니.
임희주가 호호, 하며 눈웃음 짓고 말했다.
“이번에 ‘수아’ 오디션 하는 거. 그것도 주변에서 관심이 엄청 뜨겁던데요?”
이건 처음 듣는 이야긴데.
“아, 그래요?”
“알음알음 듣고 묻는 사람들도 많고. 우리 회사에서는 오디션 잘해보겠다고 통대본 좀 빌려달라던 후배도 있었어요, 호호.”
“진짜요? 누군데요?”
“얼마 전에 학원 CF 찍었는데. 아시려나. 이소연이라고.”
“아, 알죠! 요즘 인기가 얼마나 많은데요.”
이소연이라면 아역 출신 삼인방 중 하나고.
한국 미녀 배우의 계보를 이을 거라며 커뮤니티 어딜 가든 인기글에 올라오는 배우였다.
“호호, 하긴. 회사에서도 제대로 키우려고 주조연은 하지 말자 했는데 본인이 하겠다대요?”
“왜요?”
“왜긴. 대본이 잘 빠졌으니까. 고유택 감독도 한국형 스릴러하면 지금 넘버원이고. 저도 바람 살짝······ 호호.”
임희주는 커피를 한모금 마시다가.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내 어깨를 톡 쳤다.
“사장님, 오해 안 하죠? 걔 꽂아달라고 말하는 거 아니에요?”
“그럼요. 저는 캐스팅에 일절 간섭 안 하기로 했어요.”
“그래, 사장님이라면 그럴 줄 알았어. 그냥, 그만큼 관심이 많다는 거죠. 내가 아끼는 후배이기도 하고. 참, 우리 아들네 회사에서도 하나 냈대요.”
아들?
아, 우리 주연 배우님, 킬방원!
“유시성 님 소속사 아이돌 중에요?”
“최종까지 갔다던데. 이름이 뭐더라, 어디 케이블 드라마에 나온 걸 봤는데. 요즘은 진짜 깜빡깜빡해. 생각이 안 나네.”
드라마에 나온 아이돌이면 뭐.
그래도 꽤 유명한 사람일 텐데.
“와······ 진짜 경쟁률이 어마어마하겠는데요?”
공개 오디션이라길래 아마츄어만 득실득실할 줄 알았더니. 무슨, 이미 프로거나 프로에 발을 걸치고 있는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내가 아는 것만 이 정도고 그 배역에 눈독 들이는 회사는 더 많을 거예요. 워낙 매력적인 캐릭터고. 나이 지긋한 엄마 밀어내고 이슈몰이하기 딱 좋은 역할이니까.”
“지긋하다뇨! 누가 오든 희주 님 미모가 압살할 텐데.”
“아유, 말은 잘해. 하여튼 재밌겠어요. 나도 궁금해 죽겠어. 누가 될지.”
크으, 그 경험 많은 임희주가 이렇게 말할 정도면 연기자들 사이에서는 >생존보험>이 어지간히 고평가 받는 모양.
‘천만? 진짜 간다!’
좋은 예감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그 순간.
“허허, 죄송합니다. 오래 기다리셨지요?”
최필수가 여느 때처럼 인자한 미소로.
양손에 두 접시를 받쳐들고 다가왔다.
그 모습이 너무 반갑고, 너무 좋았다.
‘결국 극복하셨구나.’
나는 반색하며 맞았고, 임희주도 마찬가지였다.
“참 잘했어요······ 내가 도장 찍어줄게.”
“허허, 뭘 이런 걸로요. 제 업인데.”
“그래도. 너무 잘했어요.”
아······ 저 두 사람이 이야기 나누는 걸 보고 있는데 왜 내가 기분이 이상해지는지.
그런데 다행히.
금방 웃음이 났다.
“드셔보세요, 다들, 흑. 딘짜 맛있어요.”
도와주러 갔다가 울음보가 터졌는지.
두 눈이 퉁퉁 부은 채로 디저트를 가리키는 임수정이 짠하면서도 귀여웠다.
“네, 수정 님도 고생하셨습니다!”
“아유, 우리 딸 고생했어. 이리 온.”
나이가 들어도 딸은 딸인지.
임희주의 품속에 쏙 안기는 임수정.
“맛이 괜찮을런가 모르겠지만······ 다들 조금씩 드셔보시지요.”
최필수는 테이블에 접시를 내려놓았고.
나는 거기에 담긴 디저트를 훑어보았다.
‘생긴 건 시루떡 같네.’
바삭한 페이스트리, 바닐라 크림, 산딸기와 블루베리가 층층이 번갈아 쌓인 녀석이었다.
후렌치파이 과자가 100배 계왕권을 쓰면 이렇게 될 것 같은 느낌.
“한 번 먹어보겠습니다.”
들어서 한 입 먹어보았다.
바삭─
처음 느껴지는 바삭바삭함도 좋았지만, 이내 입 안에서 사르르 녹아버리는 식감이 일품이었다.
‘역시······.’
그래, 크로와상 장인이 페이스트리를 못 만들면 말이 안 되지.
“이거······ 미쳤는데요?”
상큼한 산딸기도 너무 신선했고.
특히 바닐라 크림이 예술이었다.
부드럽고, 고소하고, 달콤하고, 쫀쫀하고.
평소에 먹어본 크림과는 차원이 달랐다.
바닐라 향에 마성이 있다고 해야 하나.
한 번 맛보면 절대 날 잊지 못할 거야, 날 반드시 찾아올 거야, 내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진짜 마약 넣었나?’
한 입만 먹자, 한 입만 더 먹자, 하다가.
어느새 무한으로 즐기고 있는 못난 나 새끼.
바삭─
바사삭─
그렇게 단숨에 해치웠다.
실시간으로 살이 찌는 느낌이었지만, 이런 거 먹으려고 평소에 아침마다 뛴 거 아니겠어?
거기에다가 시원한 커피를 딱!
“크으······.”
여름이었다.
행복이었다.
“좀 어떠신지.”
사뭇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는 최필수.
걱정을 왜 해!
왜 못 만들겠다고 난리를 쳐!
이렇게 잘 만들면서!
“완벽합니다. 요 근래 먹어본 디저트 중에 최고였어요, 정말로.”
“정말입니까?”
“어떤 호텔, 외국 어떤 유명한 카페에 가도 이런 건 못 먹을 것 같아요. 제가 윤듀레는 안 가봐서 모르겠지만.”
“허허, 다행이네요.”
“이거 이름이 뭐예요?”
“밀푀유입니다.”
아!
이름을 듣자마자 완벽히 이해되었다.
예전 같으면 ‘밀푀유 나베? 그거 배추랑 고기 겹쳐서 나오는 전골 아님?’ 이라고 했을 텐데.
‘이제 나도 프랑스어 능력자라고.’
최필수의 원어민 발음을 듣자마자 ‘천 겹의 잎사귀’라는 의미가 바로 떠올랐다.
밀푀유 나베도, 이 밀푀유 디저트도.
겹겹이, 층층이 쌓은 비주얼이라 같은 이름을 쓰는 것이겠지.
‘이런 음식이 또 되게 섬세하지. 한 입에 여러 맛을 느끼게 해주니까. 그만큼 만들기도 어렵고.’
우리 카페의 시그니쳐 메뉴로 손색이 없었다.
맛도, 비주얼도, 완벽했으니까.
그런데 같이 시식하던 모녀는 웃고, 울고, 난리가 나 있었다.
“흑흑, 엄마······ 맛있지?”
“응, 엄청 맛있네······.”
나는 얼른 티슈를 뽑아 둘에게 건넸다.
“왜 이렇게 귀한 걸 드시면서 우세요.”
“그게······ 필수 님이······ 흐엉······.”
이제는 아예 대놓고 서럽게 우는 임수정.
나도 아까 대충은 들었지만.
정확하게는 몰라 최필수를 넌지시 바라봤고.
“······밀푀유가 저에겐 각별한 메뉴라서.”
최필수는 어렵사리 운을 뗐다.
“먼저 떠난 사람이 제일 아끼고, 제일 솜씨 좋게 잘 만들던 디저트가 이 녀석입니다. 허허.”
역시······ 그랬구나.
“그 사람이 만들던 밀푀유에 비하면, 저는 그걸 흉내낸 것에 불과하고요.”
으으, 이래서 아까 백룸에서······.
“그런데 그렇게 먼저 보내고 난 후로는······ 한 번도 안 만들었습니다. 만들 생각도 안 해봤고요. 이 밀푀유만 봐도 그 사람 생각이 나서.”
최필수는 물끄러미 창밖을 응시했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무해한 웃음을 내걸고, 말했다.
“그런데 제 스스로 묻게 되더라고요. 이제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제는 괜찮지 않을까.”
그 말에 얼마나 많은 기억과 감정과 의미가 담겨있을지 내가 완전히 이해할 순 없겠지만.
“그래서 처음으로 만든 게 이 녀석이군요.”
“맞습니다, 허허.”
가슴 한쪽이 따뜻하게 아려왔다.
“그런데 이 녀석이 점점 형태를 갖출수록 자꾸 생각이 나는 겁니다······.”
“흐으으으······.”
“끅.”
임희주와 임수정이 왜 저러는지도 알 것 같았다.
그들도 같은 아픔을 겪고.
그동안 서로가 서로를 다독이며 지내왔을 테니.
“그래도 이제 해내셨잖아요.”
“그쵸. 어떻게······ 됐네요.”
“필수 님도 드셔보세요. 진짜 최고예요.”
“예에. 보자, 잘 됐나, 이 녀석.”
느지막이 손을 내뻗어 밀푀유를 입으로 가져가는 최필수.
바삭, 하는 소리와 함께.
주름진 눈가가 파르르 떨리는데.
“······.”
차마 계속 지켜볼 수가 없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조금 뒤.
최필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맛있습니다. 정말 맛있네요.”
밀푀유는 천 겹의 잎사귀.
떨어진 낙엽이 있으면, 새로 돋는 어린잎도 있기 마련이다.
‘우리 카페에서는 좋은 일만 있으셨으면.’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최필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밀푀유, 저희 시그니쳐 메뉴로 가시죠. 맛도 좋고, 의미도 깊고. 팝업스토어부터 바로 이걸로 밀고 나가시죠.”
“예, 좋습니다. 그런데······.”
최필수는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이 크림에 들어가는 재료 중에 수급이 어려운 제품이 있습니다. 매장에서 팔게 되면 크림은 다운그레이드 된다는 점은 고려해 주십쇼.”
어쩐지.
크림이 마성이 넘치더라.
“아닙니다. 이대로 만들어주세요.”
“그러면······ 한정 판매로?”
“아뇨, 그 재료, 제가 구해드릴게요.”
마트에 널린 게 식재료고.
《상점》에 널린 게 「럭키 스트라이크」 쿠폰이다.
“구하기 어려우실 텐데. 저도 겨우 구한 거라.”
“아유, 저만 믿으세요.”
“뭐, 사장님이 그런 거라면 그렇겠지요. 알겠습니다. 그럼 마저 드시죠, 허허.”
“저흰 다 먹어봤죠. 두 분도 드셔보세요. 수정 님, 그만 울고요!”
그렇게 오랜만에 카페 창립 멤버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이어졌고.
“진짜 프랑스어 왤케 잘하세요? 사장님?”
“음, 독학의 힘?”
“뭐야, 그럼 이제 나 빼고 다 불어하시네!”
“그럼 수정 님도 프랑스 유학 가실래요? 제가 학비 지원해드릴게요.”
“예? 진짜요?”
“그럼요. 쌉가능.”
“에이, 됐어요. 저 없으면 카페 돌아가지도 않는데.”
“그건 맞죠, 크큭.”
······너무 마음이 편안했다.
이것저것 하느라 빠릿빠릿 돌아다녔던 요즘.
전부 내가 즐겁고, 재밌어서 하는 일들이긴 했지만.
‘엄마가 친정에 가면 이런 느낌이었을까.’
주황빛 조명 아래.
맛있는 음식들과 듣기 좋은 음악들.
좋아하는 사람들과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이 시간은 어디에 가서도 얻기 힘들었다.
나중에 점포도 더 많아지고.
어뮤즈가 유명한 프랜차이즈가 되고.
카페가 아닌 더 크고 대단한 사업들을 벌여도.
이곳, 17평짜리 신촌점은.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남을 듯했다.
“어뮤즈 만세!”
“팝업 대박나라!”
“싸장님 만세!”
그렇게 우리는 밤 늦은 시간까지 시음회를 가졌다. 물론 세계 주류와 안주들로 메뉴가 바뀐 지는 오래였다.
‘알딸딸하다아······ 기분 좋다아!’
그날 밤, 어뮤즈에는.
늘 그랬듯 순풍만이 불었다.
*
며칠 뒤.
>HN 여의도> 5층, 어뮤즈 팝업스토어.
“모든 준비 끝났습니다!”
임수정의 우렁찬 경례로, 대망의 오픈 준비가 완료되었다.
“좋습니다. 사람이 예상보다 훨씬 많이 올 수도 있어요. 다들 바빠도 여유 잃지 마시고, 카페에서 하던 대로만 하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옙!”
첫날은 나도 붙어서 일할 생각이었다.
요즘 SNS에서 의외로 내 개인 계정 반응이 좋은 탓에 홍보에 도움이 될까 싶기도 했고.
그런데.
[ 민채연: 오빠, 팝업스토어 오픈까지 얼마나 남았어요? 1시간 정도 남았죠? ]일말의 전조도 없이 날아온 메시지.
‘응? 채연이가 어떻게 알았지?’
팝업스토어를 준비하고 있단 얘기는 했다.
그치만 어디서, 언제 여는지 알려준 적은 없었다. 아무리 기억을 뒤져봐도 그런 적이 없었다.
‘······뭐지?’
혹시 임수정이 알려줬나.
둘이 꽤 친하게 지낸다더니.
“수정 님.”
“네?”
“채연이한테 여기 오픈 날짜 알려줬어요?”
“아뇨? 팝업 얘기한 적은 없는데요?”
여기도 아니고.
일단 답장을 했다.
[ 신유원: 응 1시간 남았어 준비는 다 끝났고. 그런데 무슨 일이야? ]그러자 채연이는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 민채연: 그럼 오빠 잠깐만 시간내줄래요? 거기 1층 분수대 앞에 있을게요. 잠깐이면 돼요. ]지금 여기 와 있다고?
[ 민채연: 제가 오늘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요,,,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1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재벌가 여식들이 좋아할 상인가!
>HN 여의도> 1층 광장.
오전 햇살이 딱 기분 좋은 밝기로 정원수들을 비추는 곳.
쏴아아아아아──
시원하게 떨어지는 폭포수를 뒤로하고.
하얀 모자를 푹 눌러쓴 민채연이 서있었다.
얼굴 절반을 가려도 감춰지지 않는 자태에 행인들의 시선이 향하곤 했지만.
‘어디서부터 말해야 하지······.’
민채연은 깊은 고민에 잠겨 그를 의식하지도 못했다.
어젯밤, 집에서 정우희에게 들은 이야기.
평소처럼 일 이야기를 하는 줄 알았다.
요즘 들어서는 아무리 늦은 시간이어도 엄마와 미주알고주알 떠들며 하루를 마무리하곤 했으니까. 그런데.
[ 거기 사장이 누구게? ]마스크 팩을 하고 짓궂게 웃는 정우희를 보자마자 민채연은 알아차리고 말았다.
[ ······아니죠? ] [ 뭐가 아니야? ] [ 엄마! ]그렇게 뒤늦게 알게 된 일들.
신유원이 팝업스토어를 연다는 이야기는 민채연도 이미 들었다.
그런데 그게 하필이면 HN.
그것도 엄마가 자주 들락날락하며 꼼꼼하게 관리하는 여의도점일 줄이야.
그러다 둘이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자신이 그동안 간신히 숨기고 있던 것들을 신유원이 모두 알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럴 거면 내가 말하는 게 낫잖아······.’
그래서 오늘에야 고백하겠다 마음먹고.
오픈 준비가 끝날 즈음에 맞춰 여기에 온 것.
‘혹시 맘 상하진 않을까? 아냐, 잘 이야기할 수 있어. 그리고 내가 아는 오빠라면······.’
민채연은 격하게 고개를 내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