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touch it, it'd all be profit RAW novel - Chapter (183)
스카웃 보수를 받는 것 정도?
아니나 다를까, 정기현은 근황을 나누다가 곧 메이슨과 레이첼 이야기를 꺼냈다.
“벌써 선행기술원에는 소문이 자자해. 그 두 사람이 오자마자 프레임을 확 바꿔놨다고.”
“능력은 확실한 분들이니까요.”
“맞아. 우리 HN 미래차에 방점을 찍어줄 사람들이야. 화룡점정이지. 아주 기대가 커.”
정기현은 흐뭇하게 웃더니.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흐린 하늘, 잿빛으로 넘실대는 한강.
“참······ 요즘 들어 감회가 남달라.”
정기현의 목소리도 스모그처럼 낮게 깔렸다.
“수십 년 인생을 바쳤더니 우리 HN차, 세계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까지 키웠어.”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고.
정기현은 한강을 한참 바라보다 다시 입을 열었다.
“그게 내 작은 자부심이야. 내 삶에 의미가 있다면 있는 거고.”
삶의 의미가 그런 거라면 결코 작지 않았다.
‘커도 너무 크지.’
내 삶의 의미는 뭘까, 잠시 고민하는데.
정기현이 내게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그런 나조차 꿈도 못 꾸던 일이 하나 있어. 죽었다 깨나도 절대 안 될 거라 여겼지. 그게 뭔지 알겠나?”
생전에 상상도 못해본 일?
>갓냥이> 무과금 원코인 클리어? 아니지.
“세계 최고······ 입니까?”
“크하하, 맞아. 나보다 훨씬 일찍부터 차를 연구하던 양반들이 많으니까. 내가 아무리 용을 써도 따라잡을 수 없는 절대적인 격차란 게 있었거든.”
그러자.
뒤에 나올 이야기가 대충 예상이 됐다.
“그런데 전기차 시대가 온 거군요.”
“클클······.”
정기현은 커피포트 같은 웃음소리로 답하더니.
내 손등에 손을 포갰다.
“어쩌면 생전에······ 세계 최고라는 거, 한 번쯤은 찍어볼지도 모르겠어.”
정기현은 돌려돌려 말했지만, 그 진의를 알 것 같았다.
그만큼이나 메이슨과 레이첼의 역할이 크다, 나한테 고맙다, 뭐 그런 거 아닌가?
“자네한테 고맙네. 내가 그 친구들 전후 사정을 나중에 들었거든. 자네가 없었으면 둘 다 놓쳤겠더구만. 뻔하지.”
틀린 말은 아니지.
나도 웃으며 답했다.
“저도 회장님 덕분에 미국 가서 좋은 투자처 많이 찾았습니다.”
“진짜 투자하고 온 건가? 푸하하, 윈윈이었구만. 아주 좋아.”
정기현은 푸근하게 웃더니 물었다.
“자네, >남산클럽>이라고 아나?”
“>남산클럽>이요?”
남산에도 클럽이 있어?
“클클, 금시초문인가보구만.”
“예, 처음 들어봅니다.”
“거, 김 실장. 거기 요즘 멤바십이 얼마쯤 하지?”
정기현은 몸을 앞으로 당기며 질문을 돌렸고.
김 실장은 재빨리 답했다.
“가입비 7500만 원입니다. 월 회비는 50만 원, 100만 원, 두 가지 있습니다.”
뭐?
방금 똑바로 들은 게 맞아?
가입비가 7500만 원이라고?
춤 한 번 추는 데 7500만 원이 필요해?
“물가가 많이 올랐구만.”
“회장님 가입일이 80년대 말이니까 그때에 비하면 엄청 올랐죠.”
80년대부터 클럽에서 노셨다고?
“하긴. 그땐 짜장면이 500원쯤 하던 시절이니. 헌데 거기 요즘도 정원 제한 있나?”
“네, 있습니다. 기존 회원이 탈퇴해야 신규 입회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아까 문의해봤는데 지금은 신규 자리가 없다고 합니다.”
“그으래?”
정기현은 김 실장과 알 수 없는 대화를 주고 받더니 갑자기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이내, 김치호의 목소리가 차 안에 울려퍼졌다.
[ 회장님, 받았습니다. ]“어, 자네. 물어볼 게 하나 있어. >남산클럽>에 지금 신규 TO가 없다던데. 이거 내가 떼써서 해달라고 하면 해줄 것 같나?”
[ 아······ 회장님이 해달라면 해주겠지요. 그런데 거기가 규정이 워낙 빡빡해서······. ]그런데.
통화하면서도 힐끗힐끗 날 바라보는 정기현.
눈치를 보아하니, 정기현이 진짜 몰라서 묻는 게 아니라 나한테 과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거 정말 값비싼 보수라고.
‘실장님한테 물어본 것도 다 의도된 거였나? 근데 무슨 클럽이길래······.’
정기현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아니, 내가 거기 몇 십 년째 회원인데 그럼 수영장 하나 정도는 내 돈으로 지은 거 아니야? 한 명쯤 넣어달라고 하면 넣어줘야지, 안 그래?”
수영장? 풀파티?
“누구긴 누구야, 우리 신 대표지!”
[ 아아! 신 대표는 무조건 해줘야죠!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인데! ]뭐야, 이 대화 흐름은······.
“그치? 자네 생각에도 그렇지? 알았어. 내가 떼써보고 안되면, 자네한테 토스할 테니까 자네가 어떻게든 되게 해봐.”
[ 알겠습니다. 제 회원권이라도 빼서 자리 만들어 보겠습니다. ]그렇게 이상한 통화가 끝이 났고.
나는 벙찐 채로 듣고만 있다가 물었다.
“지금 저희······ >남산클럽> 가는 건가요?”
“그래. 내가 자네한테 헤드헌팅 보수는 짭짤하게 챙겨주기로 했잖나.”
“아······.”
그게 >남산클럽> 멤바십이야?
“우리끼리 돈만 오고가면 섭하니까 내가 따로 준비 한 번 해봤어. 자네가 나한테 사람을 구해줬으니 나도 사람들을 좀 구해다줄까 해서.”
도대체 >남산클럽> 사람들이 누군데?
그야말로 의문만 가득한 상황.
그때, 남산 순환도로를 오르던 차가 한쪽으로 머리를 꺾었다.
“아, 다 왔네. 내려서 보면 알 거야.”
남산타워가 코앞에 보이는 거대한 부지.
꽤 널찍한 주차장.
그런데 >남산클럽> 표지판이 붙어있는 건물은 막 으리으리하진 않았다. 한 3층 높이에 적당히 넓은 크기.
“여기 멤바십 가입하려면 회원 2명 추천이 필요하거든?”
“아······ 그렇습니까?”
“나랑 김치호, 그럼 2명 됐지. 그런데 신규 TO가 없는 게 문젠데. 일단 같이 들어가지.”
“아, 예.”
차에서 내려 정기현과 같이 걸어가는데.
기분이 묘했다.
‘어디서 많이 겪어본 상황인데······.’
아, 기억났다.
RPG 게임에서 내 레벨로는 아직 입장할 수 없는 던전에 들어가는 기분.
“정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에 뵙습니다!”
“어어, 최 팀장. 잘 지냈나? 그, 아들 이름이 승호였나?”
“잘 지냈죠. 승호도 벌써 중학교 들어갑니다.”
“아이구, 그렇게 됐어? 아, 여긴 인사해. 우리 신 대표.”
그래, 만렙 친구한테 쩔 받는 기분.
“안녕하세요, 신유원입니다.”
“신 대표님, 처음 뵙겠습니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딱 그거였다.
이 정도면 보수로 충분한가?
>남산클럽>.
한국 정재계 인사와 전현직 고위 관료로 구성된, 100년 전통의 프라이빗 클럽.
최신식 초호화 호텔에 비하면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는 시설에 식음료 퀄리티도 명성에 비하면 아쉬웠다.
그런데 그게 중요할까.
클럽의 설립자가 고종 황제인 마당에.
초호화 호텔에 1년 내내 묵을 수 있는 재력가조차도 여기엔 함부로 발을 들일 수 없었다.
명예와 전통.
한국 그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최상류층만을 위한 폐쇄적인 네트워크.
그게 바로 >남산클럽>의 존재 의의였고.
>KJ푸드홈> 일가가 이곳을 자주 찾는 이유이기도 했다.
구명진 대표, 김목정 여사, 구도혁, 구지현.
오늘도 온 가족이 총출동한 티타임.
“여기 참 좋아, 안 그래요? 느긋하고, 무슨 냄새 안 나고.”
그런데 구도혁의 말에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나머지는 전부 똥 씹은 얼굴.
바로 뉴틸레이트 주가 조작 사건에 연루된 장남 구도훈 때문이었다.
“하······ 우리 도훈이, 진짜 어떻게 안 돼요?”
김목정의 물음에 구명진은 고개를 내저었다.
“HN에서도 한 놈 붙잡혔잖아? 그런데 거긴 빼줄 생각이 없나 봐. 거기가 못 나오니까 줄줄이 다 엮이는 거지.”
김목정은 인상을 팍 쓰며 목소리를 낮췄다.
“아니, 그 할방탱이가 노망이 났나. 지 손자가 잡혀갔는데 빼줄 생각이 없다고요?”
구명진은 화들짝 놀랐다.
주변에 앉아있는 사람들도 여기저기 발을 걸친 사람들인데 괜히 누구 귀에 잘못 들어가면 큰일날라. 바로 김목정을 나무랐다.
“허, 거참 여편네, 입 조심해.”
“내가 속상해서 그러죠, 속상해서.”
김목정은 쓰읍 커피를 홀짝이며 구지현에게 눈을 돌렸다.
폰만 뚫어지라 바라보고 있는 구지현.
화면 속에서는 고양이가 뿅뿅 거리면서 날아다니고 있었다.
“지현아, 네 오빠가 감옥살이하게 생겼다는데 게임이 눈에 들어오니?”
“아, 몰라. 죄를 지었으면 감옥살이하는 게 당연하지, 왜 나한테 그래.”
구지현은 톡 쏘아붙이고는 다시 폰만 봤고.
차남 구도혁도 어디 어리고 예쁜 뉴페이스 없나, 은근한 눈길로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엄마, 됐어요. 여기 와서 왜 자꾸 기분 잡치는 얘기만 해요.”
“여기 검사분들도 있고 하니까. 어떻게 안 되나 싶어서 그러지.”
재벌가의 생리.
장남의 화(禍)는 차남의 복(福).
“아버지께서 어련히 알아서 하시겠죠.”
굳이 복을 걷어찰 이유가 없는 구도혁은 쌀쌀맞게 답하고는 구지현에게 말했다.
“야, 구지. 겜만 하지 말고 어디 괜찮은 남자 없나 찾아봐. 너 그러다 곧 서른되고 노처녀된다?”
“아, 씨ㅂ······.”
구지현은 표독스럽게 째려봤지만.
구도혁은 비릿하게 웃을 뿐.
“왜, 그 구지현도 서른은 꼽냐?”
“그만해라.”
“맨날 서민들 중에서 찾지 말고, 여기서 찾으라니까? 오빠로서 조언하는 거야.”
“아, 됐다고.”
그렇게 아웅다웅하며 시선을 흘기던 와중.
누군가를 발견한 구도혁.
“어? 야.”
“왜.”
“저 새끼가······ 왜 또 여기 있냐?”
일순간 서늘해진 구도혁의 목소리에.
구지현은 무슨 일인가 하며 시선을 훔쳤다.
그리고 바로 딱 발견했다.
코트를 벗어 한 손에 받쳐들고 막 들어선 신유원을.
군계일학, 워낙 크고 훤칠해서 못 알아볼래도 못 알아볼 수가 없는 남자였다.
“뭐지······?”
그들의 세계관에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설정 붕괴.
구지현은 충격에 빠졌고.
구도혁은 성수동 건물을 목전에서 빼앗겼던 기억을 떠올렸다.
“진짜 미친 새낀가?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와.”
그간 뭔 짓을 하고 다녔는지는 몰라도.
거지새끼가 어떻게 운이 좋아서 큰돈을 손에 쥔 건 알겠다.
그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여기 얼굴을 내미는 건 아니지.
돈 좀 있다고 다 받아주는 곳이 아니었으니까.
구도혁은 잠깐 고민하다가 결론을 내렸다.
이건 선을 넘었다.
“잠깐 기다려 봐.”
“아, 뭐하려고!”
구지현이 급히 손을 뻗었지만.
구도혁은 이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걸음을 옮긴 뒤.
“신 대리, 여기서 뭐하냐?”
금세 신유원의 앞을 가로막았다.
“······?”
신유원도 놀란 건 매한가지.
왜 여기서 이 인간이 튀어나오나, 잠시 바라보다가 답했다.
“초대 받았습니다.”
이미 악연으로 얽힐 대로 얽힌 집안.
더 이상 잡음을 만들고 싶진 않았다.
그것도 정기현이 초대해준 자리에서.
“초대? 누구 초대?”
“정 회장님 초대 받았습니다.”
“정 회장님?”
구도혁은 파박, 머리를 굴렸다.
정 회장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이나 되나. 그리고 그런 사람이 신유원을 여기 초대할 확률은 얼마나 되나.
정 회장?
별 그지깽깽이 같은 소리였다.
“아무 회장님이나 갖다붙이면 되는 줄 아시나. 여기 돈 좀 벌었다고 들어올 수 있는 곳 아니니까 괜히 시끄러워지기 전에 조용히 나가지?”
턱을 치켜들며 거드름을 피우는 구도혁.
신유원은 피식 웃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누가 봐도 무시하는 모양새.
구도혁은 인상을 찌푸리며 신유원의 어깨를 잡아챘다.
“······아니, 여기 아무나 들어오는 데 아니라고. 그렇게 발붙이고 싶으면, 하던 대로 카운터에서 커피 주문이라도 받든가!”
높아진 언성에 주변에 앉아있던 사람들도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그때, 그들에게 다가온 한 사람.
“자네, 누군가?”
정기현이었다.
구도혁도 모를 수가 없는 얼굴, 반사적으로 꼬리를 내렸다.
“아······ 저는 KJ 구도혁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정기현은 답도 없이 되물었다.
“그런데?”
“······그런데? 아, 여기 웬─”
구도혁은 말을 멈췄다.
정 회장 초대를 받았다는 게 진짜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같이 나타날 리가 없지 않나?
그러나 상대는 신유원이었다.
빌빌거리면서 제 앞가림 하기 바쁘던 필부였다.
돈 좀 벌었다고 HN그룹 회장과 인연이 생겨?
말도 안 되지.
차라리 잘 됐다.
구도훈도 같이 연루된 HN 3세 때문에 못 나온다는데, 잘 보일 찬스다.
구도혁은 재빨리 판단을 마쳤다.
“웬 사기꾼 같은 놈이 회장님 존함을 함부로 빌려 쓰길래 한소리 하고 있었습니다.”
“그으래? 누가?”
누군지 한 번 보시라, 구도혁은 신유원을 거칠게 붙잡아 당겼다.
“이놈입니다. 회장님도 처음 보시죠?”
“이놈······?”
정기현은 신유원을 무덤덤히 일별했고.
그 얼굴을 훔쳐본 구도혁은 속으로 쾌재를 질렀다.
됐다, 그럼 그렇지.
너 딱 걸렸다.
“이놈이 겁도 없이 회장님 이름에 먹칠을 하고 있더라고요. 참, 세상 무서운 줄도 모르고······.”
“······.”
이마, 미간, 콧잔등 가릴 것 없이.
온 얼굴이 노기로 가득해진 정기현.
구도혁에게는 청신호.
그는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답했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따라나와, 임마.”
그렇게 신유원의 멱살을 붙잡는데.
천둥벼락처럼 터진 노호성.
“구 대표!”
구도혁은 감전된 생쥐처럼 온몸을 떨었다.
“······네?”
고함소리에 화들짝 놀란 게 첫째 이유였고.
느닷없이 본인 아버지가 호명된 게 둘째였다.
“구명진 대표! 이리 와보게!”
구명진이라고 느긋하게 지켜볼 수 있을까.
부리나케 쫓아와 두 손을 모으고 섰다.
“예, 정 회장님······.”
정기현은 시뻘개진 얼굴로 물었다.
“자네 자식 교육 똑바로 안 시키나?”
“죄송합니다. 회장님.”
“뭐가 죄송한데?”
“······.”
구명진과 구도혁은 시선을 주고받았지만.
뭐가 죄송한지, 자기네들이 알 도리는 없었다.
“그게······.”
“우리 신 대표가 누군 줄 알고, 놈놈 거리면서 사기꾼으로 몰고 있는 건가?”
“예?”
우리 신 대표?
정말로 둘이 아는 사이였다고? 어떻게?
구도혁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니, 회장님 조금 착각하신 것 같은데─”
“착각은 무슨! 귓방맹이가 날아가봐야 정신을 차리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