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touch it, it'd all be profit RAW novel - Chapter (186)
“초, 초보운전 붙였지?”
나는 백미러를 확인했고, 다행히 귀여운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걱정하지 마요, 나 학원 강사님한테도 운전 엄청 잘한다고 칭찬 받았어.”
“그, 그래?”
“나 마사회 기승능력인증 1등급 가진 사람이야. 달리는 건 다 자신있어!”
······채연아, 말이랑 차랑은 좀 많이 달라.
그래도 누구나 처음은 있으니까.
그 처음을 같이 하는 사람이 나인 것도 다 추억이겠지.
‘그래, 좋게 생각하자······.’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싱긋 웃었다.
“알았어, 그럼 채연이 믿고 간다?”
“응. 의자도 뒤로 좀 젖히고 편하게 있어요, 대표님. 그런데 오빠네 부모님은 어떤 분들이세요?”
“좋은 분들이시지, 너무너무.”
“그럴 것 같아요, 오빠만 봐도. 빨리 뵙고 싶다······.”
“어, 안 돼! 1분 빨리 가려다 10년 먼저 가!”
“에이, 날 뭘로 보고.”
그렇게 시작된 귀향길.
내게는 아주 익숙한 길이고, 풍경이었지만.
“운전······ 잘하네?”
“그렇다니까요, 나 배우면 다 잘할 수 있어.”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아니면 기분좋은 향기가 나서 그런지.
색다른 기분이었다.
“이따 휴게소 갈래요?”
“좋아. 내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알감자버터구이 사줄게.”
“오오오, 어느 휴게소 가면 돼요?”
“뭐, 아무데나.”
“아무데나? 뭐야······.”
채연아, 그런 게 있어.
‘그치, 얘들아?’
창밖에서 날아다니며 따라오는 탐코코도.
잔뜩 신이 난 눈치였다.
*
대전.
정겨운 아파트 앞.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부모님을 기다렸다.
“나 너무 떨려, 오빠······.”
채연이가 조심스레 손을 포개왔다.
운전은 기똥차게 하더니 막상 부모님을 뵐 순간이 오니 엄청 긴장한 것 같았다.
“괜찮아, 좋은 분들이야.”
“그래도······.”
“노력할 것도 없어. 평소처럼만 해도 엄청 좋아하실 거야. 힘든 상황 생기면 내가 도와줄게.”
“응, 오빠······.”
그리고 그때.
1층 정문으로 나오는 엄마아빠가 보였다.
아니, 그런데······ 왜 그렇게 힘을 주셨어요.
아들 여자친구가 대전까지 왔다니, 우리 부모님도 꽤나 부담되었던 모양.
“저분들이세요?”
“응, 맞아.”
“내려요!”
채연이는 얼른 문을 열고 나서더니.
내가 소개하기도 전에 꾸벅, 허리를 숙였다.
“어머님, 아버님, 안녕하세요!”
“아아······ 그쪽이?”
“네, 유원 오빠 만나고 있는 민채연이라고 해요. 처음 인사드려요.”
적당히 밝고, 단아하고, 예의바른 첫 인사.
‘맞다, 얘 배우였지······.’
내심 걱정했던 내가 우스워졌다.
부모님도 오랜만에 내려온 아들을 내팽개치고, 채연이랑 이야기하기 바빴다.
“어머어머, 채연 씨? 너무 곱고 예쁘다······ 우리 유원이 성공했네.”
“아니에요, 제가 오빠 만나서 성공했죠.”
“어머······ 암튼 반가워요. 나는 유원이 엄마고 이쪽은 아빠.”
“아, 안녕하세요! 예전부터 뵙고 싶었는데 제가 인사가 너무 늦었죠, 아버님?”
“늦긴요, 정말 잘 왔어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구요, 히.”
그런데.
저······ 아들도 왔는데요······.
“엄마······.”
“그래, 아들! 오느라 고생했어! 어머, 그런데 채연 씨 정말 너무 예쁘다······.”
그게 끝인가요······.
“어머님도 피부가 어쩜 그렇게 고우세요?”
“호호호, 그래요? 지난 주에 하와이 갔다와서 이게 좀 탄 건데.”
“아, 햇빛을 좀 받으셔서 그런지 더 건강해 보이세요!”
나 왜 이렇게 찬밥 신세지······.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
잠자리 안경을 쓴 불청객이 등장했다.
“뭐야, 신유원······ 진짜였어?”
뒤늦게 내려온 신유진은 깜짝 놀라며 눈만 굴렸고, 채연이는 얼른 다가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동생 분?”
“네, 안녕하세요! 신유원 동생 신유진입니다.”
나한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면서.
인사는 또 싹싹하게 하는 신유진.
그런데······ 너 서울에 있는 거 아니었니?
“바쁘시다고 들었는데 대전에 계셨나 봐요.”
“네, 잠깐 내려왔어요. 그런데 혹시······ 몇 살이세요?”
“아, 저 스물다섯이에요.”
“헐, 저보다 어린 줄. 언니라고 불러도 돼요?”
“당연하죠!”
“예이, 나도 언니 생겼다! 저한테 말 편하게 놔요, 언니.”
신유진은 채연이한테 덥석 팔짱을 끼더니 나한테 보란 듯이 눈을 흘겼다.
뭐, 어쩌라고······ 내 여자친구야!
대전에 오면 홈그라운드일 줄 알았는데.
사방이 적인 상황.
‘탐코코······ 우리끼리 놀러 갈까?’
나는 두 여우를 바라보며 쓴입을 다셨다.
그런데 그런 내 맘을 눈치챘는지.
채연이가 내 옆에 바짝 붙어서며 말했다.
“유원 오빠가 저희 집 어른분들한테 엄청 잘해주셨거든요.”
“그랬어요? 우리 아들이?”
“네, 얼마나 잘하는데요. 그래서 오늘은 제가 식사 대접해드리고 싶은데, 다들 괜찮으세요?”
“어머, 너무 좋죠? 그럼 저녁은 내가 힘 좀 쓸게요.”
“아니에요. 무리하시지 마세요, 어머님. 아, 그리고.”
채연이는 나를 힐끗 올려다보며 웃더니.
나긋하게 말했다.
“점심까지 시간이 좀 많이 남아요. 그래서 생각한 건데, 저희 쇼핑 가실래요?”
음? 나도 들은 바 없던 이야긴데.
“쇼핑? 너무 좋아! 쇼핑 너무 좋아!”
그런데 신유진은 바로 지랄발광을 했고.
부모님도 시선을 주고받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럼.”
“네, 대전에 >HN프리미엄아울렛> 있더라구요? 거기로 모실게요.”
아, >HN백화점>에서 운영하는 아울렛?
채연이는 채연이 나름대로 홈그라운드를 찾고 있었구나.
“그래, 가서 채연 씨 옷 한 벌 해줘야겠다.”
“아니에요, 제가 선물드리고 싶어서 가는 거죠. 이제 겨울인데 이것저것 장만하셔야죠.”
“언니! 언니가 손님인데 우리가 대접해야죠! 이렇게 나오면 섭해요?”
“내가 오빠한테 받은 게 너무 많아서 그래요.”
무슨 원래 가족이었던 것처럼.
하하호호, 짹짹거리며 걸음을 옮기는 그들.
‘이 정도면 첫인상은 합격인가?’
그 뒷모습에.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
1층 로비에 세워진 커다란 트리부터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HN프리미엄아울렛>.
우리는 명품 매장부터 들어왔다.
채연이가 졸라서 부모님도 마지못해 구경이나 해보기로 한 것.
다른 가족들은 슥슥 옷을 둘러봤고.
채연이는 내 귀에 대고 허튼 소리를 속삭였다.
“오빠, 동생분 너무 귀여운데?”
“지금 거리가 딱 좋아. 더 가까워지지 마.”
“응? 착하고 예쁜데 왜 그래요.”
그래, 사람마다 관점이 다르니까······.
그런데 그건 차치하고.
아까부터 걱정이 됐다.
우리 부모님은 이제 알짜배기 부자.
대전 노른자 땅에 6층짜리 건물도 가지고, 하와이 콘도도 보유한 분들이었다.
그런데 겉을 꾸미는 데는 별 관심이 없어서 행색만 보면 이 명품관과 어울리지 않았던 것.
‘내가 너무 가전만 사드렸나······.’
직원들한테 무시당하고, 박대 당할까 봐 괜히 부모님이 가는 길을 따라다녔다.
그런데 이게 무슨 조화일까.
직원들이 우리 부모님에게 너무 친절했다.
“안녕하세요! 뭐 찾으세요, 고객님?”
“아, 조금 둘러보고 있습니다.”
“그러시군요, 그럼 정말 편하게 둘러보세요. 그리고 지금 손님이 별로 없는 시간이라 원하시면 매장 셔터 잠시 닫아드릴 수도 있습니다.”
“예? 그, 그렇게까진 안 하셔도 됩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가 자리 잠시 비켜드릴게요. 편하게 보세요.”
“예, 예······.”
아버지가 당황할 정도로 극진한 대우였다.
‘뭐지?’
더 웃긴 건.
아웅다웅 귀여운 실랑이 끝에 채연이가 우리 가족에게 명품 패딩, 구두, 가방 등을 선물했는데.
“그럼 세 분, 저희 >HN백화점> 퍼플스카이 VIP카드 발급 도와드리겠습니다. 여기 아울렛에서도 사용 가능하구요.”
우리 가족 셋한테 대뜸 VIP카드를 발급해준다는 것 아닌가.
내가 「핫 핸드」 써먹겠다고 온갖 가전, 가구를 다 지르고 나서야 발급됐던 게 퍼플스카이 VIP카드인데.
심지어 짜잔- 블랙카드를 내밀며 구매한 사람은 민채연인데 우리 가족이 VIP가 된다고?
“여기 기입하고, 여기 서명해주시면 됩니다.”
우리 가족들은 그런가보다, 하며 쓱쓱 써내려갔고. 나는 채연이를 스윽 당겨와서 물었다.
“네가 부탁한 거야?”
채연이는 그저 사랑스럽게 웃으며 답했다.
“있어요, 그런 게. 조용히 하고 있어요.”
무슨 생각일까.
‘뭐, 이렇게 처음부터 잘 보이면 좋지.’
그렇게 우리 가족들은 명품 로고가 박힌 종이가방을 하나둘 든 채로 아울렛을 나섰다.
“아이구, 채연 씨 돈 많이 써서 어떡해······.”
“그러니까 말이야. 어째저째 사긴 샀는데······.”
부모님은 이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고 채연이는 또다시 매크로 답변을 내놓았다.
“어머님, 아버님. 유원 오빠가 저희 가족한테 베푼 게 이것보다 훨씬 크고 많아요. 제 마음의 표현이니까 괘념치 마세요.”
아들이 그러고 다닌다니······ 부모님은 입술을 질끈 물며 넘어갔다.
그래도 차에서 말씀하시는 걸 계속 들어보면.
엄청 좋아하시는 눈치였다.
“여보, 이 가방 예쁘지 않아?”
“이뻐. 잘 어울려.”
“여보 코트도 너무 잘 어울리더라. 세상에, 주윤발인 줄 알았잖아.”
“하하하, 과장이 너무 심하네.”
“그런가? 호호.”
그리고 이어진 식사자리.
부모님이 가장 좋아하는 한식당.
한껏 들뜬 기분으로 같이 대화를 나누는데.
슬슬 K-호구조사가 시작되었다.
엄마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근데 실례가 안 되면······ 채연 씨는 하는 일이 뭐예요? 좀 그러면 말 안 해도 돼요.”
대답 대신, 나를 바라보는 채연이.
오는 길에 이미 입을 맞췄던 내용을 재차 확인하는 눈빛이었다.
[ 나중에 나에 대해서 여쭤보시면 어디까지 얘기하길 바래, 오빠는? ] [ 숨길 이유는 없지 않아? 다 말씀드려도 돼. 채연이 편한 만큼 말해도 되고. ] [ 그래? 그런데 저번 약혼 있잖아······. ] [ 아······. ]채연이가 내 지난 과거를 완전히는 몰라도.
일이 대충 어떻게 흘러갔는지는 알고 있었다.
[ 우리 집, 부담스러워 하시진 않으실까? ] [ 그럴 수도 있지. ]나라고 부모님 속을 어떻게 다 알 수 있을까.
잠시 고민에 잠겨있는데 채연이가 물었다.
[ 나는 다 오픈하고 싶어요. 그래도 돼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도, 지금도.
“저······ 연기자예요.”
“연기자? 배우?”
“네, 헤헤······ 일 시작한 지는 얼마 안 됐지만요.”
우리 가족들은 전부 입이 떡 벌어졌다.
“언니, 배우라고요? 와······.”
엄마는 막 박수를 쳤다.
“아, 어쩐지! 처음에 딱 보자마자 너무 참하고 곱고 이뻐서······ 아들! 아들 정말 성공했어?”
“에이, 엄마. 배우 만난다고 성공이야? 그냥 채연이가 좋아서 만나는 거야.”
“그래두! 채연 씨, 너무 멋지고 대단하네!”
저렇게 좋아하시니 성공한 것 같기도 하고.
‘히히.’
그렇게 영화가 어쩌고, 드라마가 어쩌고, 이야기 꽃을 피우던 중.
마침내 우리가 기다리던 그 질문도 나왔다.
“그럼 채연 씨 부모님은 어떤 일 하시나요?”
우리는 다시 눈빛을 나눴고.
채연이는 천천히 숨을 고르더니 답했다.
“아버지는 검찰청에서 일하시구요, 어머니는 >HN백화점> 경영하세요.”
최대한 부드럽게 돌려말한 셈이었지만.
부모님이 거기에 담긴 뜻을 못 알아들으실 분들은 아니었다.
“>HN백화점> 경영하신다면······.”
“그, 그 대표님이신가?”
잔뜩 굳은 얼굴.
“예, 맞아요. 저희 외할아버지가 >HN그룹> 회장님이세요.”
“아, 아이고······ 회, 회장님이라고······.”
“어마······.”
역시나 내 못난 과거가 부모님 가슴에 대못처럼 박혀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민채연과 구지현은 완전히 다른 사람.
HN일가와 KJ일가도 완전히 다른 집안이었다.
내가 아는 정기현과 이연수, 민대건과 정우희라면······ 우리 부모님을 무시하기는커녕 오히려 환대를 아끼지 않을 분들이었다.
내가 나설 차례였다.
“엄마, 아빠. 예전 일 때문에 걱정하시는 마음, 이해해요. 그런데 그럴 일 없어요. 제가 다 만나봤는데 정말 다 좋으신 분들이었어요.”
“그렇겠지, 그러시겠지······.”
부모님은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여전히 지난 기억과 상처를 잊지 못하는 눈치였다.
어떤 말씀을 더 드려야 할까, 잠시 고민하는데.
“어머님, 아버님.”
채연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오늘 아울렛에서 뭔가 이상하지 않으셨어요?”
엄마아빠는 고개를 갸웃하며 답했다
“음, 좀 이상했지.”
“맞아, 직원들이며 안내데스크며 다들 너무 친절하게 안내해주고. 우리가 결제한 것도 아닌데 VIP카드도 바로 만들어주고······.”
그러자 민채연이 말했다.
티 하나 없이 깨끗한 미소를 띠고.
“그거, 저희 어머니 부탁이었어요. 어머니 본인을 대하듯 유원 오빠 부모님을 대하라고.”
나도 몰랐네.
그렇게 말씀하셨다니 고맙고······.
이 녀석, 나 몰래 이걸 계획하고 있었구나!
“오늘 드린 선물도 저희 어머니께서 다 결제하셨어요. 저랑 같이 찾아뵀으면 좋았을 텐데 못 내려가서 아쉽다며.”
“그, 그래요?”
“그만큼 저희 집에서 유원 오빠를 아끼고, 존중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어요.”
채연이는 진심어린 눈빛으로 말했다.
그게 먹혔던 걸까.
부모님은 이제야 누그러진 얼굴로 말했다.
“아이구, 뭘 그렇게 꼼꼼히 신경을 써주셨대. 너무 고맙네.”
“우리 유원이를 또 그렇게 예뻐해주신다니, 참. 감사하다고 꼭 어머님께 인사 전해주세요.”
“그럼요, 아버님.”
참, 집안 꼬라지 자알 돌아간다.
‘진짜로 잘 돌아가네, 크큭.’
흐뭇한 웃음이 자꾸 새어나왔다.
분명 1년 전 이 무렵에도.
이렇게 인사드리고, 상견례 하고 그랬는데······.
어쩌면 그때와 같은 출발선상에 선 셈이었다.
그런데.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아. 그런 거 같아.’
좋은 예감만이 가득했다.
“그럼 좀 궁금한 게, 너희 결혼 날짜는 생각하고 있니?”
엄마가 그렇게 앞서가지만 않으면 다 잘 될 것 같긴 해요······.
나와 채연이는 하하하, 멋쩍게 웃고 말았다.
오빠는 꿈을 이룬 거네요?
“아······ 제가 모셔온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