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touch it, it'd all be profit RAW novel - Chapter (96)
몇, 몇 층짜리라고?
8층? 지하까지 합쳐서 9층?
미친······.
상상도 못한 스케일인데?
“······그럼 엄청 비싼 거 아니에요?”
“호호, 비싸죠. 아마 고객님 집값의 2배 정도는 될 거예요.”
2배?
진짜?
내가 입을 멍하니 벌리고 있자.
한강희가 고개를 내젓더니 손사래를 쳤다.
“고객님이 말해준 조건이랑 너무 착붙이라 말씀은 드려봤는데. 호호, 아무래도 좀 과하죠? 조금 더 저렴하고 괜찮은 매물들로 찾아보고, 연락줄게요.”
“······아뇨.”
“응?”
“안 과해요. 저도 딱 그 정도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한강희의 눈이 동그래졌다.
“······정말로요?”
“네, 100억. 저도 딱 100억 생각하고 왔어요.”
*
몇 시간 전.
신촌점 앞 놀이터.
나는 다시 그네로 돌아가 김규태가 보낸 이미지를 보며 물었다.
“250만 달러? 이렇게나 많이요? 저번에 저희 백자가 얼마였죠?”
[ 그땐 딱 180만 불이었습니다. ]미니멈 개런티.
경매품이 낙찰되지 않아도 경매사에서 지불 보증을 해주는 가격.
그리고 소더비가 제시한 미니멈 개런티는.
무려 250만 불, 대략 30억 원이었다.
[ 물론 ‘유럽 최초’로 감정되기 전에 제시한 미니멈이었으니까요. 실제 미니멈은 200만 이상이었다고 봐야겠죠. ]“그럼 그때랑 비슷한 거네요. 우와······.”
소더비, 이 녀석들.
마음에 든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지르며 다음 이미지로 넘겼다. 그리고.
“······.”
몇 번이고 다시 0의 개수를 세고, 숫자를 확인했다. 계속 그대로였다.
“······변호사님, 이거 맞아요?”
[ 크리스티 조건 말입니까? ]“네, 미니멈이 550만 달러라고요? 이게 말이 되나?”
저번 백자의 낙찰가가 700만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미니멈부터 550만이라니.
[ 크리스티 쪽에서 작품의 가치를 높이 산 덕분이죠. 그리고 본래, 미술품 중에서도 회화 작품들이 제일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기도 하고요. ]김규태는 덤덤한 어조로 답했지만, 그의 목소리에서도 떨림이 느껴졌다.
[ 소더비 이야기를 조금 했더니 제가 딱히 흥정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크리스티에서 어찌나 적극적인지. ]“와······.”
[ 또, 이번에도 저희가 원하면 패스트 트랙을 밟게 해주겠다고 약속했고, 수수료 1% 인하 조건도 제시했습니다. ]크리스티와 한 번 거래를 텄다고 이렇게 잘해주는 건 아닐 테고. 그만큼 >웃고 있는 기사>가 대단하단 뜻이겠지?
“이러면 낙찰가도 저번보다 더 높을까요?”
맞다, 그랬지.
결국 승부는 경매 현장의 분위기에 달려 있었고, 그건 우리가 계산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좋습니다. 김칫국 그만 마실게요. 우선 크리스티와 차근차근 진행하시죠.”
[ 네, 좋습니다. ]그래도 미니멈 개런티 550만 불이면.
최악의 경우에도 한화로 70억.
최악의 경우가 발생해도 대출 30~35%만 껴도 100억짜리 빌딩을 살 수 있다는 뜻이었다.
‘빌딩 매매에서 대출 30% 정도는 오히려 건전한 편이더만.’
그렇게 도출된 예산이었다.
100억이란 금액은.
*
다시 한강희의 부동산.
나는 사무실을 나서며 한강희와 인사를 나눴다.
“그 주인이랑 계속 연락 주고 받으면서 의사를 좀 물어볼게요. 그리고 확실히 매물로 나왔다, 하면 바로 연락줄게요. 같이 임장도 하고.”
“네, 연락오면 바로 튀어가겠습니다. 저번에 보니까 속도가 생명이던데요?”
“호호, 그쵸. 그리고 다른 매물들도 좀 찾아볼게요. 나는 고객님이 100억까지 생각하고 있을 줄 몰랐어요. 범위를 좀 넓혀서 뒤져보지, 뭐.”
“네, 사장님만 믿습니다!”
그리고 밤이 다 되어서 돌아온 집.
대학가 1.5룸.
이사를 앞두고, 이 집에서 마지막으로 보내는 하루였다.
“참, 너도 고생했다.”
대학생 때부터 쭉 살았으니까 이게 몇 년이야.
내가 계속 터주대감처럼 버티고 있어서 제대로 된 대청소 한 번, 리모델링 한 번 못해본 방이었다.
“이제 나는 간다. 그동안 즐거웠고 다시는 보지 말자!”
나는 방에게 마지막 인사를 보내고, 짐을 쌌다.
사실 가져갈 것도 많이 없었다.
세인트 한강포레에 입주하면서 전부 다 새로 사버려서.
반대로, 버릴 것들은 넘쳐났고.
대형쓰레기 신청해서 붙이고, 이것저것 분류해서 버리고, 남은 방까지 청소하려면 밤을 새도 다 못할 것 같았다.
그러나.
‘대신 해줄 사람 다 불렀지롱!’
나중에 전문가가 와서 모든 걸 버리고, 치워주시기로 했다. 이삿짐은 이사업체에서 전부 옮겨주기로 했고.
돈을 썼더니 내가 할 일이 거의 없었다.
‘이사가 이렇게 쉬운 거였나!’
다만, 돈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시급한 문제가 하나 있었다.
──코로로로로······
바로 코코에게서 그림을 돌려받는 것.
경매는 몇 주 뒤에 열리겠지만.
당장 내일 이사하고 나면 가전과 가구가 속속 도착할 터였고, 거기에 「핫 핸드」를 쓰려면 코코가 지금 가지고 있는 작품부터 뱉어내야 했다.
그런데.
──코로로!
녀석이 언제부터 눈치가 이렇게 빨라졌는지.
김규태와 나눈 통화를 엿듣고는 계속 날 피해다녔다.
──크르르릇!
심지어 내가 가까이 다가가면 이빨을 드러내며 경계할 정도였다.
‘코코야······.’
뉴욕에서는 잠깐만 꺼내주면, 금방 돌려준다고 거짓말해서 살살 구워삶았었는데.
──크릇! 크르르릇!
······이제는 택도 없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코코에게 뺏길까 봐 아끼고 있던, 비장의 수를 꺼내기로 했다.
나는 박스들 옆에 세워둔 하드 케이스 하나를 열었다.
철컥─
금속 잠금장치가 열리며 스케치북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부탁할게! 코코를 꼬셔줘!’
철통 보안 하에 고이 보관하고 있던.
멜라니 플로이드의 습작 스케치북이었다.
이게 바로 성공의 냄새인가
멜라니 플로이드.
내가 크리스티 뉴욕에서 3만 달러에 낙찰받은 브로치, >이름 없는 이름표>의 작가.
오랜만에 김규태와 크리스티 이야기를 하다가 그녀의 이름이 떠올랐고.
혹시나 싶어서 인터넷을 뒤졌다가 업데이트된 정보들이 있었다.
[ 베니스 비엔날레를 휩쓴 MZ 열풍······ 20대에게 돌아간 황금사자상(최고작가상) ] [ 막 내린 베니스 비엔날레, 본 전시 황금사자상은 美 신진 작가, 멜라니 플로이드 ]바로 멜라니 플로이드가 베니스 비엔날레의 황금 사자상을 수상한 것.
‘미친······ 이 사람, 천재였잖아?’
재능러인 건 진즉에 눈치챘지만 이 정도일 줄은 전혀 몰랐다.
베니스 비엔날레라면 ‘비엔날레의 어머니’, ‘미술 올림픽’으로 불리는 국제 미술전.
그런 곳에서 최고작가상을 탈 줄이야.
게다가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 충격적인 파쇄 퍼포먼스, 12억에 낙찰된 미술품이 찢어진다면? ] [ 의문과 경악에 휩싸인 美 소더비 경매장··· 현대미술인가, 기행인가? ]멜라니 플로이드는 예술적 기행으로 뉴욕, 아니 세계 미술계에 파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우리나라에 기사로 소개될 정도였으니.
현지의 반응은 더 뜨거우면 뜨거웠지, 덜하진 않을 터였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
기사에 실린 사진, 그 속에서 파쇄되고 있는 작품은 눈에 익은 그림이었다.
‘어, 저거?’
멜라니 플로이드의 스케치북에서 봤던 녀석이었으니까.
‘호재네?’
여러모로 이 스케치북의 가치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비엔날레 수상으로 작가의 가치도 떡상하고.
원작 파쇄로 습작의 가치도 떡상하고.
게다가 아직 고점도 아니었다.
[ 모마와 구겐하임이 주목하는 신진 작가 6인······ 잭 콜린스부터 멜라니 플로이드까지 ] [ >국제미술 동향> 멜라니 플로이드, 구겐하임에서 개인전 연다 ]멜라니 플로이드의 미래는 앞으로도 창창할 예정이었다.
‘이 스케치북 계속 가지고 있어야겠는데?’
와인을 숙성시키듯.
내가 오래 가지고 있을수록 그 가치가 올라질 일만 남아있는 스케치북이었다.
‘흐흐흐.’
그러니.
고양이가 어물전을 그냥 지나칠 수가 있을까.
팔락─
스케치북 커버를 넘기는 소리에 코코가 반응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크르르······
코코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면서도 스케치북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눈빛도 어딘가 누그러진 느낌.
‘그치? 너도 관심이 가지?’
나는 보란 듯이 스케치북을 바닥에 놓았다.
그리고 계속 넘겼다. 어차피 모작은 모작일 뿐, 다른 작가를 따라 그린 그림들은 필요없었다.
팔락─ 팔락─
이어서 멜라니 플로이드, 본인의 습작들이 나타났고.
──코로로로······
구조사에게 마음을 연 야생동물처럼 코코는 한 발, 두 발 조심스레 다가왔다.
‘좋아, 좋아.’
나는 종이를 계속 넘겼고, 마침내 내가 원하던 페이지를 찾아냈다.
세상에서 사라진 문제작.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을 바이탈 사인으로 상징화한 작품, >바이탈 아일랜드>였다.
나는 슬쩍 코코의 눈치를 살폈다.
‘이건 못 참겠지?’
그리고 역시 코코는 코코.
작품의 가치를 바로 알아보고, 단숨에 뛰어왔다.
──코로로로로로로!
스케치북 위로 올라와 차분히 감상할 생각인 듯했다.
‘그렇게 둘 순 없지.’
나는 스케치북을 집어 한껏 높이 처들었다.
그러자 반사적으로 뜀박질을 치는 코코.
내가 다시 스케치북을 바닥으로 내려도 마찬가지였다. 코코는 바로 자세를 낮추며 스케치북과 눈높이를 맞추려 했다.
나는 다시 스케치북을 처들었다.
“꽤 마음에 드나 봐?”
──코로로로로로!
“그럼 앉아. 대기.”
──코로.
딱 제자리에 앉은 코코.
‘거의 다 왔어.’
나는 얼마 전에 봤던 강아지 채널을 떠올렸다.
원반던지기를 할 때, 녀석이 물고 있는 원반을 뺏으려면 다른 원반을 미끼로 주면 되던데.
‘코코한테도 먹힐까?’
나는 조심스레 스케치북을 주둥이 앞에 내밀었다.
“이거 먹을래?”
──코로로!
“그럼 뱉어 봐. 그래야 먹지.”
──코로?
고개를 갸우뚱하는 코코.
“싫어? 싫음 말고.”
나는 스케치북을 덮어서 하드케이스에 다시 넣었고, 녀석은 순식간에 다가와 케이스 안에 앞발을 넣었다.
“왜? 닫지 말라고?”
──코로로!
“먹고 싶어? 그럼 뱉어.”
──코로로로로······
순백의 털 아래.
콕콕 박혀있는 까만 두 눈이 서글프게 빛났다.
나도 마음이 아프지만 어쩔 수 없단다, 코코야.
그거 9층짜리야, 9층짜리.
나는 코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코코야, 매일 같은 밥만 먹으면 질리잖아. 가끔 라면도 먹고, 햄버거도 먹어줘야지. 안 그래?”
──코로로로로로······
“지금 아니면 이건 다시는 못 먹는다?”
──코로로로!
마침내 마음을 바꿔먹은 걸까.
코코는 크게 공중제비를 돌았다.
‘그래, 이래야 내 새끼지!’
그 궤적을 따라 청백색의 마법진이 그려졌고.
희대의 위작, >웃고 있는 기사>가 그 속에서 튀어나와 사뿐사뿐, 아주 젠틀하게 낙하했다.
“휴우······.”
드디어 내 손에 돌아온 9층짜리 작품.
미리 생각해둔 보관법은 있었다.
내 생각이 참 짧았던 게.
처음부터 코코한테 줄 필요가 없었다.
그땐 어떤 작품인지 알기 위해서.
훼손 없이 잘 보관하기 위해서 내린 결정이었지만.
“탐!”
어차피 탐한테 줘도 똑같잖아?
그리고 우리 순진무구한 탐한테는 이런 걸작이나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합판이나 다 똑같다고.
──퓨퓨퓨!
먹으라면 먹고.
뱉으라고 뱉고.
진짜 탐, 너밖에 없다!
“이거 좀 가지고 있어.”
──퓨퓨퓨퓨퓨!
시골 햇살처럼 밝게 웃는 녀석.
나는 씩 웃으며 작품을 그대로 먹였다.
‘이제 한시름 덜었고.’
그새 코코는 스케치북을 달라고 난리를 쳤다.
──코로로로로!
그렇게는 안 되지.
“코코야, 내일 우리가 할 일이 좀 많거든? 그거 잘 끝내면 줄게, 진짜야!”
철컥─!
나는 하드케이스를 닫았다.
──코······ 로로?
코코는 고개만 갸우뚱할 뿐, 아직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러면 알아야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코코야, 어차피 내일 이것저것 핫 핸드로 돌릴 거거든? 그때 포식하자.”
──코로?
“그 정도면 뷔페잖아?”
순식간에 돌변한 코코.
──크르르르릇!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이삿짐을 쌌다.
코코의 불만 섞인 소리가 한동안 들려왔지만, 애써 무시했다.
‘코코야, 미안해······ 그치만 어쩌겠니.’
그 채널에서 또 배운 것이었다.
성견이 되기 전, 퍼피 시절의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
나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
다음날.
대망의 이사일.
불과 9평짜리, 창문을 열면 반대쪽 건물이 보이던 내 방은.
“우와······ 다시 봐도 뷰 죽인다, 진짜.”
한쪽에는 너른 한강 물결을 품고, 반대쪽에는 초록의 수목을 품은 초호화 아파트로 「양질 전환」되었다.
거실에서 창밖을 바라보기만 해도 속이 뻥!
‘이제 이걸 매일매일 보겠구나!’
이사도 속전속결이었다.
이삿짐이 얼마 안 돼서 업체에서 나온 분들이 2~3번 왔다갔다 했더니 끝.
“어이쿠, 이게 마지막인데?”
“혼자 사셔서 그런가, 짐이 거의 없으시네. 집은 대궐인데.”
정리할 짐도 거의 없었다.
그나마 옷이랑 당장 쓸 집기 정도?
“이것들은 어디다 넣을까요?”
“아, 이건 제일 큰방 빌트인 옷장에 넣어주세요. 이 박스는 주방 수납장 한 곳에 몰아서 넣어주시구요.”
“이거는요?”
“아, 그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