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03
102화
조용한 룸 안.
최철호 의원이 담뱃갑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냈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최용달이 그걸 보고 일어나 불을 붙여 줬다.
치익-.
“후……. 최 사장.”
“예.”
“요새 얼굴 보기 힘드네?”
“하하, 예. 더 자주 찾아봬야 했는데, 요새 일이 너무 바빠서…….”
“그래? 무슨 일 하는데.”
천안에서 이주혁의 SA흥신소를 운영하는 일이지만,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는 일.
“운 좋게 주류 도매 라인 하나를 먹게 됐습니다.”
“도매? 소주, 뭐 이런 거 하나?”
“예. 원소주라고 작년에 나온 건데, 인기가 꽤 좋았습니다. 병도 워낙에 잘 뽑혀서 선물용으로도 일품입니다.”
“그럼 최 사장, 돈 좀 만졌겠네?”
최용달은 괜히 말을 꺼냈다고 생각했다.
‘에이, 구란데 X발……. 괜히 더 뜯기겠네.’
하지만 최용달이 걱정하던 말은 나오지 않았다.
연기를 훅 내뿜은 최철호 의원이 글라스에 위스키를 따르며 입을 열었다.
“최 사장도 바쁘고, 나도 바쁘니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고.”
“예.”
“아, 그 도매한다는 소주. 나한테도 좀 보내 줘.”
역시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
최용달은 사회인의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따로 챙겨 드리겠습니다.”
“그래.”
툭툭.
재를 턴 최철호 의원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최 사장. 내가 오랜만에 부탁 좀 하려는데.”
“예. 말씀하십쇼.”
“주철수 알지?”
“아, 당연히 알지요.”
고개를 끄덕인 최용달은 속으로 생각했다.
‘네가 갈아타려고 했는데 당연히 알지. 이 X발럼아.’
“혹시 한 명만 처리해 줄 수 있나?”
“예? 처리해 달라고요?”
“최 사장이 생각하는 그거 맞아.”
설마 지금 살인을 지시하는 건가?
지금까지 폭행, 협박은 했어도 대신 사람을 죽인 적은 없었다.
‘간땡이가 부었나? 내가 녹음이라도 하고 있으면 어쩌려고 이러는 거야?’
최용달이 당황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최철호 의원이 위스키를 따른 글라스를 밀어서 건넸다.
“걱정할 필요 없어. 뒷일은 내가 다 커버쳐 준다.”
“아……. 예. 그런데 도대체 누구길래 의원님께서 이렇게 직접 처리해 달라고 부탁하시는 겁니까?”
“주철수.”
최용달은 잘못 들었나 해서 다시 물었다.
“……누구요?”
“강남파 주철수. 되겠어?”
“음.”
최철호가 갑자기 왜 주철수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최용달은 위스키를 쭉 들이키고 말했다.
“일단 위치부터 알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위험 부담도 있습니다. 주철수가 혼자 다니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말입니다.”
“저번에 보니 운전기사 하나만 데리고 다니던데? 아무래도 수배자 신세라 그런지 소수로 움직이더라고. 뭐, 어쨌든 부탁 좀 하지.”
‘X발. 그게 말이 쉽지…….’
애초에 주철수가 부하들 힘으로 강남을 먹은 게 아니다.
주철수 본인도 손에 꼽히는 전국구 주먹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 운전기사 하나밖에 없다면서 주철수를 치라고?
‘우리 애들 다 데리고 가도 부족하겠구만.’
그리고 주철수가 데리고 다니는 기사가 그냥 일반 기사일 리가.
이주혁 같은 놈과 가는 게 아니면 기사 하나도 처리 못 할 거다.
‘아!’
그러고 보니 이 건도 이주혁에게 보고해야겠다. 어차피 주철수를 싫어하는 것 같던데, 그럼 알아서 해결해 주겠지.
어떻게 보면 한 사업을 맡고 있다 할 수 있는 최용달이 곤경에 빠졌으니, 당연히 도와줘야 하지 않겠는가.
“알겠습니다. 대신…… 시간을 조금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2주 안에만 부탁하지.”
“감사합니다.”
자리를 파하고, 룸에 혼자 남은 최용달은 남은 위스키를 글라스에 더 따랐다.
‘이렇게 된 이상, 주철수는 무조건 끝장이다.’
그동안 서울 남쪽을 꽉 쥐고 있던 주철수의 몰락으로 중소 조직들이 슬슬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만약 곽환성 그 양반 칠순 잔치에 참석한다면, 주철수는 몸 성히 돌아가기 어려울 정도.
게다가 최철호가 지시한 사항을 이주혁에게 전달하면, 이주혁도 주철수의 모가지를 이참에 날려 버리려 할 것이다.
‘주철수가 사라진 뒤에 서울의 세력 구도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군.’
몇 개월 전까지 서울의 1번은 강남파.
그리고 그 밑으로 서울광목파, 미추리파, 강북도끼파, 용달파 등 쟁쟁한 중소 조직들이 이권 경쟁을 펼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이주혁이라는 생태계 교란종이 나타나 어느 순간 다 정리해 버렸지.’
강북도끼파, 동식이파 둘 다 보스를 날려 버리고, 십 년만 있어도 강남파의 아성을 넘봤을 용달파도 먹어 버렸다.
미추리파는 서울광목파의 고광목이 정리했는데, 최근 보니 고광목도 이주혁한테 협조하는 모양이었다.
‘잠깐. 그러면 이주혁이 서울을 먹은 거 아닌가?’
생각해 보니까 그랬다. 사실 더 이상 이주혁의 위치를 넘볼 조직이 남아 있지 않았다.
깡패도 아닌 놈이, 서울의 뒷세계를 그냥 먹어 버린 것이다.
‘아니. 아직 모르는 거지. 주철수가 행사에 나타나지 않으면 나가리니까.’
계속 혼자 망상에 빠져 있던 최용달이 고개를 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컥-.
“크, X발. 일이나 하러 가야지…….”
이런 생각할 시간에 이주혁이 시킨 건이나 조사해야겠다.
안 그래도 요새 사람을 구한다고 돌아다니는 것 같던데, 수틀리면 최용달을 쳐내고 다른 사람을 이 자리에 앉힐 수도 있는 노릇이 아닌가.
최용달은 핸드폰을 꺼내 이주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또 이런 중요한 일을 바로 보고하지 않으면 바로 갈굼이 날아온다.
뚜르르-. 툭.
-여보세요?
***
탁.
그날 늦은 저녁. 내 사무실로 돌아와 커피믹스를 뜯었다.
“후…….”
아까 유선규와 나눴던 대화 탓에 마음이 영 불편하다.
-전국 조폭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칠순 잔치라…….
-그래. 아무리 도망자 신세라도 분명히 올 거다. 주 사장이랑 관계가 깊은 양반의 칠순이거든. 그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비빌 언덕이니 안 올 수가 없지.
-……왜 이렇게 쉽게 얘기 해주는 거지? 주철수는 너희 삼합회와 협력 관계 아니었나?
-이용 가치가 떨어졌거든.
이용 가치라.
주철수가 몰락한 이상 어느 정도 예상한 답변이긴 하지만, 이해가 잘되지 않았다.
부자는 망해도 삼대는 간다는 말이 있듯이, 주철수도 양지로 나갈 수 없다뿐이지 아직 세력은 건재하다.
그런데 주철수를 노리는 티를 팍팍 내는 나한테 놈의 위치를 그냥 말해 준다니.
“흠.”
정보 없이 더 고민해 봐야 머리만 아프겠지.
종이컵에 뜨거운 물을 받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어. 이 대표. 바쁜가?
“지금은 시간 좀 나는데. 무슨 일이에요? 아, 제가 시킨 건 알아봤어요?”
-아귄지 뭔지 하는 놈?
돈 귀신들은 전생에서 봤기에 알았지만, 아귀는 처음 보는 놈이었다.
그래서 혹시 정보가 있나 해서 SA흥신소를 관리 중인 최용달에게 부탁 좀 했었다.
“예. 뭐 나온 거 없어요?”
-습. 알아보고 있긴 한데, 이놈이 주로 활동하던 지역이 중국이라 정보 찾기가 힘들더라고.
“그래요? 그럼 그건 됐고, 뭐 하나만 물어봅시다.”
-뭘?
최용달도 나름 깡패 생활을 꽤 했으니, 보름 뒤에 열리는 칠순 잔치의 주인공에 대해 아는 게 있겠지.
“주철수가 강남파 만들기 전에 서울 꽉 잡고 있던 조직이 있었는데, 혹시 기억해요?”
-아, 환성파? 들어는 봤지. 전대의 전설 곽환성이 잘려 나간 이후로 망하긴 했지만.
“깡패가 전설은 개뿔. 그래서, 그 양반이 얼마나 대단했길래 칠순에 전국의 깡패 새끼들이 다 몰려오는 건데요?”
-음…….
최용달은 잠깐 고민하더니, 무슨 자기 전에 옛날얘기를 해 주는 할아버지처럼 서두를 열었다.
-과거, 낭만과 두 주먹만으로 서울을 제패한다는 꿈을 가진 남자가 있었지. 중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주먹의 세계에 뛰어든 곽환성은, 성인이 되기 전 동네 하나를 정리하고 세력을 키우기 시작해서….
“사설은 패스하시고.”
-어. 짧게 설명하자면, 몸뚱어리 하나로 서울 주먹계를 통일한 걸출한 인물이다. 그런데 돈보단 의리인 양반이라고 들었다.
“주철수도 환성파였어요?”
-어. 말단으로 시작해서 간부까지 올라갔지. 올드한 방식으로 벌어먹던 환성파가 제대로 된 사업을 할 수 있게 만들기도 했고.
“그럼 주철수가 곽환성을 은퇴시켰겠네.”
그놈 성격상, 사업 확장도 하지 않고 낭만이니 뭐니 하는 보스를 두고 보지 않았을 거다.
-음. 뭐 일단은 적대 조직한테 당했다고 알려져 있긴 한데, 솔직히 나도 주철수가 저지른 짓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진짜면, 주철수는 자기가 조진 사람 생일에 왜 가는 걸까요. 좋은 꼴 볼 것 같진 않은데.”
-글쎄다. 그만큼 절박하거나, 뭔가 계획이 있겠지.
분명히 이런 조폭들의 전국적 이벤트에는 경찰 인력이 투입될 텐데, 무슨 깡으로 얼굴을 비춘다는 건지.
믿는 구석인지, 도박수인지 아직 판단이 서지 않았다.
“일단 아귀는 계속 알아보고, 주철수와 곽환성의 관계도 정리해서 넘겨 줘요.”
-알았다. 이제 전화한 용건이 남았군.
“음?”
그러고 보니 최용달이 먼저 전화했었네.
최용달이 어느새 신경 쓰지 않고 있던 이름을 꺼냈다.
-조금 전에 최철호 의원이 부탁한 게 있다. 일 하나만 처리해 달라고.
최철호라면…… 최용달이 나한테 털리기 전에 뒤를 닦아 주던 인간 아닌가?
“그놈이 뭐라던데요.”
-주철수, 처리할 수 있냐고…….
“하, 지랄.”
용달파 쳐내고 강남파로 갈아타려 할 때가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또 얘네한테 주철수를 처리해 달라고 부탁해?
최철호 의원의 뻔뻔한 그 마인드에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뭐라고 했어요?”
-일단 알겠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 했지. 그러니까 2주 정도 시간을 주더라.
“아니, 그걸 그냥 수락했다고?”
-그럼 뭐 어떡하냐. 어차피 이 대표가 해결해 줄 거라 생각했지.
이놈도 만만찮게 뻔뻔하네.
물론 내가 해결하긴 하겠지만…… 뭔가 열 받는데?
“당당하시네. 맡겨 놨어요?”
-어차피 처리할 생각이었잖아. 아니야?
“됐고, 시킨 거나 조사해서 보고해요. 최철호는 한번 자리를 만들어 봐야겠네.”
-알았다.
뚝.
조만간 기강을 다시 잡아야 하나.
살짝 식어 버린 커피를 쭉 마시고 버리자, 사무실 문을 누가 두드렸다.
똑똑.
“행님. 난쟁입니더.”
“들어와.”
달칵.
난쟁이가 씩씩대며 들어와 소파에 털썩 앉았다.
“우재성 씨? 한국 와서 볼일은 다 보셨습니까?”
“아, 예.”
그런 난쟁이의 뒤에서 우재성이 실눈을 찌푸리며 따라 들어왔다.
“표정이 썩 좋지 않으신데.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아뇨. 그…….”
“행님. 이 양반 뭡니꺼?”
억울한 표정의 난쟁이가 우재성을 가리켰다.
“음?”
“아니, 제가 맡은 일이 있는데 막 와서 지가 다 처리한다꼬 안 합니까. 뭐 행님한테 5년 동안 일임을 받았담서…….”
“네 일 대신 해 주면 좋은 거 아냐?”
“그래도 선배 가오가 있는데.”
난쟁이 녀석, 후임 들어왔다고 신났을 텐데 웬 엘리트가 와서 당황했을 거다.
“가오는 무슨……. 미국 유학파라 능력 좋으니까 잘 지내봐. 너는 우재성 씨한테 전문적인 내용 좀 배우고. 우재성 씨는 이 친구한테 사업체랑 주식 현황 전달받고요.”
“알겠습니다.”
우재성이 다리를 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표정에 뭔가 난쟁이를 무시하는 느낌이 언뜻 보였다.
우재성도 자신에 비해 아무래도 능력이 낮은 난쟁이가 위에 있다고 하니, 자존심이 상하긴 했겠지.
하지만 직원끼리 반목하게 둘 순 없는 일.
“난쟁이. 우재성 씨가 성격은 좀 있어도, MBA 출신에다 배울 게 많은 사람이다. 너무 안 좋게 보지 말고.”
“아, 예. 알겠심더.”
“우재성 씨도 마찬가집니다. 물론 아직 성에 차지 않으실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머리가 돌아가는 녀석이니까 잘 챙겨 주세요. 선배 대우도 좀 해 주시고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나이가 직급보다 중요한 거 아니었습니까?”
그 말에 난쟁이가 당황했는지 눈동자를 굴렸다.
“그럼 알아서 상호 존중합시다. 가족 같은 회사가 제 모토거든요.”
“아……. 죄송합니더, 행님.”
“죄송할 건 없고, 나중에 밥이나 한 끼 같이 하면서 얘기하자.”
“예. 그래도 호칭은 정하고 들어가게 해 주십쇼. 최소한 선배 소리는 들어야겠습니더.”
나는 우재성을 돌아보며 대충 해 주라는 손짓을 보냈다.
그러자 우재성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선배.”
“그래. 이게 맞는 기지.”
난쟁이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걸 떨떠름한 얼굴로 보던 우재성이 난쟁이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 저한테도 형이라고 부르시죠. 선배.”
“뭐, 뭐?”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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