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17
116화
왕후성이라.
기억을 더듬어 봐도 내 기억엔 없는 이름이었다.
강남파 안에서 어지간한 조폭들 이름은 지나가면서 들어 봤다. 삼합회 쪽도 마찬가지고.
홍콩 지부장의 오른팔이라면 꽤 실력이 있는 놈일 텐데, 왜 내 기억에 없는 거지?
‘내가 개입해서 미래가 바뀐 건가.’
아마 삼합회와 협력하며 서울을 쥐락펴락했던 주철수가 나가떨어져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내 눈치를 보던 중개사 김병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아는 건 다 말했습니다. 살려 주십쇼.”
“아, 그렇지.”
나는 땅에 떨어진 칼을 주워 김병관 옆에 있는 놈의 무릎에 박았다.
푹!
“끄아아악!”
“흐아!”
화들짝 놀라는 김병관의 묶인 손에 칼을 들려 줬다.
“알아서 입단속 해.”
“예, 예!”
“그리고, 주철수가 차명으로 돌린 것들 있지?”
“예, 예?”
주철수한테 붙어있던 배상훈도 한마디 거들었다.
“나도 한창 주철수랑 도망 다닐 때 들었다. 그 새끼가 돈 필요해서 건물 급처하고 다닐 때 자기 명의가 아닌 것들은 못 팔아 준다 하더라고.”
“쟤가?”
“어.”
모두의 시선이 김병관을 향했다.
놈은 칼로 케이블 타이를 끊으려다 멈칫하고 우리를 올려다봤다.
나는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는 김병관의 손에서 칼을 뺏어 들고 놈을 풀어 줬다.
촥.
“어어.”
그리고 놈의 멱살을 잡고 일으키며 말했다.
“지금부터 뭘 해야 하는지 알겠지? 이제 와서 안 된다, 못 한다는 개소리 지껄이면 큰일 난다.”
“대, 대신 제 신변은 보호해 주셔야 됩니다.”
“완벽하게 처리해 놓으면 해결해 준다. 상훈, 덩치. 지켜보면서 제대로 하나 확인해 봐.”
“오케이.”
“옙.”
배편은 흥신소를 통해 구하면 되지 않을까.
어쩌다 보니 뭐만 하면 SA흥신소를 이용하는 것 같긴 한데……. 뭐, 내가 대표니까 상관없지.
시신 처리해 줬던 흥신소 직원한테 문자 한 통을 넣고, 사무실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차에 탔다.
조수석에 오른 우재성이 머리를 쓸어 넘기며 물었다.
“걱정이 많아 보이십니다.”
“하……. 요즘 들어 정신이 없네요.”
“어떻게 된 게 사건이 끊이질 않는 것 같습니다.”
“흐.”
웃으며 시동을 걸자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대표님. 죽은 그 사람과는 무슨 얘기를 하신 겁니까? 혹시 사망한 것과 관련이…….”
“그건 확실히 아닙니다. 아마 잡히면 죽으라는 지시를 받지 않았을까요.”
“마치 사이비나 테러 조직에서 볼 것 같은 행동이네요.”
“세뇌되었을 가능성은 있죠.”
미래 지식이 있는 선생 놈이라면, 그걸 이용해 사람을 조종할 수도 있었을 거다.
“…….”
“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요? 잘생긴 얼굴 닳겠네.”
“아닙니다.”
“뭐가 아닌데요. 안 잘생겼다고?”
“그냥,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서요.”
우재성의 마음에 걸리는 문제라.
나도 궁금했지만, 물어도 말해 줄 것 같진 않아서 생각을 접었다.
일단 돌아가서 주철수가 남기고 간 부동산들을 어떻게 쓸지 고민해 봐야겠다.
나는 하늘 쪽으로 고개를 들다 말고, 아스팔트 바닥으로 시선을 돌리며 히죽 웃었다.
위가 아니라 지옥에 있다는 걸 깜빡할 뻔했네.
‘고맙다. 잘 쓸게.’
***
며칠 후, 서해결 검사는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며 서류를 책상에 내려놨다.
“하…….”
드디어 신라연회장에서 구속된 조폭들의 기소 및 재판 준비가 끝났다.
갑작스러운 주철수의 죽음 탓에 윗선은 빨리 이 사건을 마무리하려고 했고, 그 때문에 갈려 나가는 건 검사들이었다.
요 몇 달 사이 재판받는 범죄자만 수십 명이 넘었다. 경범죄를 제외해도 그랬다.
‘정말 죽을 뻔했어.’
과로사가 뭔지 깨달을 뻔했다.
퀭한 눈을 비비는 서해결 검사에게 동료 검사 윤현오가 말을 걸었다.
“서 검사. 많이 힘들어 보이네?”
“말도 마. 사흘 밤낮으로 일하느라 죽는 줄 알았다.”
“그래 보인다. 요새 분위기가 달라졌고. 어째 수사과인 나보다 범죄자들을 더 많이 기소하는 거 같네? 원래 이런 성격은 아니었잖아?”
윤현오의 말대로다.
원래 사건 청탁은 절대 받지도 않던 서해결 검사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주혁이 하는 부탁은 다 들어주고 있었다.
마음의 빚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서해결이 호구는 아니다.
“글쎄. 이 나라 범죄자가 너무 많아서 그런가.”
“그렇긴 해. 주철수 수배 때렸을 때 많이 숨어들긴 했는데, 그래도 아직 바글바글하지. 요새 고등학교엔 생기부 진로 칸에 조폭이라 적는 애들도 있단다.”
서해결 옆에 놓인 의자에 앉으려던 윤현오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윤 검사!”
“예. 갑니다-. 서 검사, 수고해.”
“어. 수고해라.”
서해결 검사는 대충 손을 흔들어 주고 자리에 앉았다.
급한 건 다 끝냈지만, 아직 처리할 업무가 남아 있었다.
주철수가 소유한 부동산 서류를 쭉 넘겨보던 서해결이 미간을 찌푸렸다.
‘누락된 게 많아.’
유령회사나 다른 사람의 명의를 이용한 건지, 서해결 검사가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것보다 리스트에 적힌 게 더 적었다.
이러면 이 부동산의 실소유주가 주철수라는 걸 증명하기도 힘들뿐더러 몰수하기도 난감했다.
하지만 여기 빠진 것들을 이대로 남겨 두면 다른 깡패들의 손에 들어가 다시 불법적인 사업장으로 이용될 게 분명하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서해결 검사의 책상 위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이주혁에게서 온 전화였다.
“여보세요?”
-검사님. 잘 지내셨습니까.
“아, 예. 이주혁 씨는요?”
“저도 잘 지냈죠.”
서해결 검사가 콧잔등을 긁적이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죄송하지만 제가 지금 많이 바빠서…… 용건만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알겠습니다. 주철수가 차명으로 돌려서 소유하고 있던 부동산, 제가 손에 넣었습니다.
“네?! 그게 정말입니까?”
이주혁의 말에 앉자마자 다시 벌떡 일어났다.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주철수의 비밀 자금을 도맡아 거래하던 공인중개사를 찾았습니다. 중국의 삼합회와도 연관이 있는 놈이더군요. 그대로 두면 삼합회 손에 넘어갈 것 같아서 제가 일단 소유하고 있기로 했습니다.
서해결 검사는 당당한 이주혁의 태도에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어쨌든 이주혁이 합법적이지 않은 경로로 그 부동산들을 손에 넣었단 말 아닌가?
“무슨 의도로 저한테 그런 말을 하시는 겁니까? 이러시면 저도 정식으로 조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검사님.
“예.”
농담조로 말하던 이주혁이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주철수가 왜 죽었는지 아세요?
“원한 범죄잖습니까. 범인들이 과거 속해 있던 조직을 주철수가 와해시켰다고 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범인들의 동료들이 살해당했고요. 그 원한으로….”
-아닙니다. 그걸 사주한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주철수를 뒤에서 조종하다 버린 거죠.
“?!”
이주혁의 입에서 나온 충격적인 말에 서해결 검사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핸드폰을 손으로 가렸다.
“확실한 겁니까?”
-네. 아직 정체를 파악하진 못했지만, 확실합니다. 제가 통화까지 했거든요. 하나 확실한 건, 삼합회와도 연관이 있다는 뜻입니다.
“…….”
서해결 검사가 들고 있던 서류를 책상에 던지며 중얼거렸다.
“그럼, 주철수가 끝이 아니라는 건가…….”
-그 사람은 어마어마한 세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놈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놈도 있을 정도니까요.
“……대체 뭐 하는 사람입니까?”
-그건 이제 알아봐야죠. 날림으로 주철수 부동산을 입수한 건 사과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급한 사안이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일이 다 끝나면 정식으로 조사받겠습니다.
완전히 다 믿을 수 있는 말은 아니었지만, 서해결 검사는 일단 이 건은 덮기로 했다.
괜히 이주혁과 대립할 이유도 없었고, 이유를 들어 보니 나름대로 타당하다고 할 수 있었다.
어차피 다른 범죄 조직의 손에 들어갈 것들이라면, 그냥 확실하게 이주혁의 소유로 만들어 주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닿았다.
“알겠습니다. 일단 이주혁 씨를 믿고 이건 제가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검사님. 정보는 바로바로 공유해 드리겠습니다.
“예. 그럼 일이 바빠서 이만 가 보겠습니다.”
-고생하십쇼.
전화를 끊고 서해결 검사는 다시 문서를 들고 살폈다.
이내 그 서류들을 들고 소유주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던 서해결 검사는, 궁극적인 정의를 위해 타협하기 시작했다.
거기엔 이주혁이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
흡족한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
야매로 날린 서류라 자세히 캐 보면 문제가 생겼겠지만, 서해결 검사가 손을 대준다고 했으니 걱정할 건 없겠지.
핸드폰을 책상에 놓고 보던 종이로 시선을 돌렸다.
‘왕후성…….’
문서에는 중개사가 말했던 왕후성이라는 놈의 신상 명세와 내력이 적혀 있었다.
곽환성 쪽에서 며칠 전 연락이 왔었다. 그때 받은 서류에 들어있던 정보였다.
뭐 날 싫어하지만 믿는다고 하더니, 이렇게 도와주면 나야 좋다.
‘곽환성이 이놈의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라. 아마 왕후성도 선생 놈과 관련이 있다는 뜻이겠지.’
어떻게 그쪽에서 그걸 파악하고 있는진 몰라도, 주는 건 감사히 이용해 주는 게 인지상정.
나는 선글라스를 쓴 장발 남자의 사진이 클립으로 끼워져 있는 종이를 들었다.
[왕후성 – 36세. 연변 출신 조선족. 삼합회 홍콩 지부의 2인자.]밑바닥이었던 이놈이 어떻게 삼합회에 들어가 2인자까지 올라갔는지 대충 살펴보니 아주 가관이었다.
왕후성은 중국의 중소 조직의 말단으로 들어가 인신매매에 종사했다.
그러다 공안의 수사망이 가까워지자 수장을 죽인 뒤 조직원들을 데리고 홍콩으로 넘어갔다.
거기서 새로운 조직을 만든 뒤 다시 인신매매 라인을 파고, 그걸 삼합회에 가입하며 그대로 상납했다.
삼합회는 짭짤한 돈벌이를 가져온 왕후성을 후하게 대접했고, 뒤에서 사람들을 팔아넘기며 삼합회의 지갑을 채워준 놈은 결국 3인자까지 올라갔다.
‘악질 중의 악질이지.’
주철수도 사람 장기를 떼서 팔진 않았다.
그리고 그 후로도 경쟁자를 몰래 담그고 넘버 투 자리까지 먹었다고 쓰여 있었다.
괜히 문서 맨 밑에 위험한 미친놈이라고 적힌 게 아니었다.
이놈이 서울로 들어와서 사업을 확장하는 건 막아야 했다. 무슨 사업 할지 뻔히 알고 있는데 그냥 놔둘 수야 있나.
탁.
‘다시 찾아가야겠네.’
유선규. 삼합회 성남지부장으로, 내가 저번에 찾아가 주철수의 정보를 뜯어냈던 놈이다.
삼합회 조직원에 관한 건 삼합회 조직원이 잘 알 거다.
그때 이야기가 잘 마무리됐으니, 이렇게 불쑥 찾아가도 잘 답변해 주겠지?
안 해 주면 성남지부를 굳이 남겨 놓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어차피 한국에서 쳐내야 할 놈들이니까.’
나는 운동 중일 부장님한테 전화를 걸었다.
수신음이 몇 번 울리자 부장님이 전화를 받았다.
-어, 왜?
“잠깐 놀러 갑시다.”
-갑자기 놀러 가자고? 어디를?
“짜장면 먹으러요.”
-갑자기?
“짜장면은 역시 차이나타운 아니겠어요?”
그 말에 내가 하는 말뜻을 알아차린 건지, 부장님이 음흉한 웃음을 흘리며 답했다.
-흐흐, 5분, 아니다. 3분 안에 튀어간다.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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