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161
160화
공리회에서 강 권사라 불리는 남자.
선생의 심복으로 연락책을 맡고 있는 강유찬이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없다.’
주철수의 강남파가 건재하던 시절, 그를 통해 맡긴 일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판교신도시의 투자 건.
과거 공리회의 회원들에게 재개발 사업이 진행될 거란 ‘예언’을 풀었고, 긴밀한 관계를 유지 중인 건설사들을 사업에 꽂아 넣었다.
상류층들만 받아들이는 공리회의 회원들답게 그 투자금은 어마어마했고, 나라에서도 선생님이 선정한 건설사들을 채택해 천문학적인 이득을 취했던 건이다.
강유찬은 얼마 전, 이걸 맡아 처리한 주철수의 고문 변호사 한인석이 그 투자자들과 건설사의 리스트를 가지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것도 개인 비밀 금고에.
‘대체 어디 있는 거지?’
분명 한인석의 금고는 그의 출장용 집에 있다고 전해 들었다.
그래서 어제 부산에서 올라온 이후로 한인석의 집을 싹 다 뒤져봤지만, 금고라곤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한인석이 거짓 정보를 흘린 건가? 아니면 누군가의 선수?’
강유찬은 집 안 구석구석을 다 뒤져봤지만, 금고가 있었던 위치조차 특정하지 못했다.
주인이 자리를 비운 지 꽤 됐으니, 만약 금고를 가져갔다면 그 자리만 먼지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금고의 형태로 먼지가 비어있는 곳은 보이지 않았다.
“후…….”
결국, 아무것도 찾지 못한 강유찬의 입에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다른 사람의 손에 그 리스트가 들어가게 둘 순 없었다. 분명 선생님에게 해가 될 것이다.
털썩.
강유찬은 한인석의 거실 소파에 기대앉았다.
온종일 집만 뒤지니까 정신적인 피로감이 느껴졌다.
게다가 이주혁 암살에도 실패했다니 스트레스가 확 치밀어 올랐다.
만약 ‘물건’들까지 잃었다면 정말로 이성의 끈을 살짝 놓았으리라.
슥.
핸드폰을 꺼낸 강유찬이 자신이 SA시큐리티에 심어 놓은 사람 중 한 명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잠시 시간이 흐르고, 풍원한정식의 직원 강예원의 목소리가 전화 너머에서 들려왔다.
-……여보세요?
“강예원 씨. 취직은 잘하셨습니까?”
-아, 네. 이번 주부터 출근할 것 같아요.
꿈틀.
“그걸 왜 제가 전화할 때까지 말씀 안 하신 겁니까?”
-…….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이런 식이면 강예원 씨를 지원해드릴 수 없습니다. 보고는 즉시 해주시죠.”
강유찬이 싸늘하게 말하자 강예원이 주눅 든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어요.
“이번에 제가 전화 드린 이유는, 강예원 씨가 꼭 알아내야 할 정보가 있기 때문입니다. 잘 기억하십시오.”
-네.
“한인석 변호사. 금고. 판교신도시. 리스트.”
단어 몇 개를 내뱉은 강유찬이 당부했다.
“만약 이주혁이나 다른 사람들이 제가 말한 내용에 관해 얘기한다면, 반드시 여기에 대해 캐내 주셔야 합니다.”
-음……. 이게 뭔데요?
“자세한 건 아실 필요 없습니다. 강예원 씨는 그냥 시킨 것만 하시고, 보수만 받아가시면 됩니다.”
강예원은 뭐라 말하려다 입을 꾹 다물었다.
잠시 침묵하던 강유찬이 한층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중요한 일이니,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강유찬은 전화를 끊고서, 강예원 말고 다른 스파이와 다시 통화를 연결했다.
이번엔 SA시큐리티의 신입 사원으로 들어간 황성빈이었다.
강예원은 아직 믿을 수 없었다.
이주혁과 친분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주요 업무에서 벗어난 외부인.
솔직히 핵심 정보를 가져올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대를 걸어볼 만한 사람은 황성빈이다. 듣기론 그래도 SA시큐리티의 핵심인 작전팀으로 들어갔다고 했으니.
뚜르르-.
강유찬이 전화를 걸자, 황성빈은 금방 전화를 받았다.
-전화 받았습니다.
“황성빈 씨. 황성빈 씨가 알아내야 할 게 생겼습니다.”
-어떤 걸 말입니까?
강유찬은 강예원에게 말한 것보다 조금 더 자세히 금고에 관한 정보를 설명했다.
그걸 들은 황성빈이 담담하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뭐라도 나오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그리고 그 외에도 직원들의 신상 정보나 실력, 성격에 대해 알아내면 전달해 주십시오.”
-아직 같이 업무를 진행한 적은 없긴 한데…… 기회가 된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강유찬은 전화를 끊고 잠시 미간을 찌푸리다 걸음을 옮겼다.
‘이주혁……. 선생님은 아직 위협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시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놈은 위험분자다.
그것도 공리회 자체를 흔들 거물이 될 만한.
주철수와 왕후성을 아무 피해도 없이 보내버린 걸 보면 답이 나온다.
실력, 계책, 배짱에 잔머리까지. 확실히 난 놈이 분명했다.
물론 선생님이 진심으로 세력을 이끌고 나서면 금방 제거당하겠지만, 선생님을 움직이게 한다는 것 자체로써 이미 불온하다.
하지만 강유찬의 선에서 쉽게 정리하기엔 꽤 몸집이 크다.
‘어쩔 수 없이…… 조금 더러운 방식으로 가야겠군.’
탁.
운전석에 오른 강유찬이 눈빛을 날카롭게 빛냈다.
***
항구에서 총격전이 있고 다음 날.
“후……. 일하기 더럽게 싫네.”
어제 하루 휴가를 즐기고 나니, 더더욱 업무에 복귀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늦는다면 부장님의 불호령이 떨어질 터.
“에휴. 걔네들 번호도 따 놨는데…….”
호텔에서 나온 배상훈이 커피를 마시며 터벅터벅 해변을 걸었다.
겨울이라 그런지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해수욕장은 여름에 와야 하는데…….’
입맛을 쩝 다신 배상훈이 슬슬 모이기로 한 장소로 걸어가는데, 옆을 지나가는 한 커플의 대화가 귀에 들려왔다.
“자기야. 어제 그 사람들은 뭐 하는 사람들일까?”
“그러게.”
무슨 얘긴가 해서 슬쩍 돌아보니, 둘은 해변을 보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이 한겨울에 웃통 까고 해수욕장이라니. 무슨 혹한기 하는 줄 알았어.”
“혹한기가 뭔데?”
“아, 군대에서 겨울에 하는 미친 짓.”
그들의 대화에, 배상훈은 순간 어제 부장님이 자신에게 한 말이 떠올랐다.
-부장님도 데려가 드릴까요? 슬슬 솔로 탈출하셔야지.
-쯧쯧. 이 발랑 까진 새끼들. 진정한 남자는 그런 곳에서 만남을 가지지 않아. 자고로 부산은 해수욕장. 난 거기서 내 운명을 찾아볼 거다.
-하. 그래요?
“큭. 진짜 간 거야? 미친…….”
그땐 그냥 실없는 소리겠거니 했는데, 정말로 그런 또라이 같은 짓을 할 줄은 몰랐다.
“그걸 따라간 새끼들도 진짜 어지간하다.”
그 녀석들은 부대에서 전역하고 사회화가 아직 덜된 게 분명하다.
입꼬리를 비죽 올린 배상훈은 팀원들을 놀려줄 생각을 가득 안고 모이기로 한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
.
팀원들이 모여있는 곳에 도착한 배상훈은 만면에 짓고 있던 미소를 삭 지웠다.
‘이거, 분위기가 생각보다 안 좋네.’
해수욕장을 선택한 팀원들 모두가 침울한 표정이었다.
“어?”
옹기종기 모여 떠들던 덩치가 배상훈을 보더니 후다닥 달려왔다.
“상후이햄! 오셨십니꺼.”
“그래. 어제 잘 들어갔냐?”
“예. 이야, 마 술이 비싸니까 술술 넘어가던데예. 어제 그 누님이랑은 어떻게 잘 되셨십니꺼?”
배상훈은 신나서 말하던 덩치를 툭 쳤다.
“아…….”
“나중에, 인마. 이 눈치 없는 새끼.”
조용히 핀잔을 준 배상훈이 담담한 표정의 라세흠에게 다가가 물었다.
“다 온 거죠?”
“어. 네가 마지막이다.”
잠깐 눈치를 보던 배상훈은 결국 내면의 본성을 이기지 못하고 툭 내뱉었다.
“부장님. 솔직히 저 따라갈 걸 하고 후회 중이시죠?”
“아니. 우린 우리끼리 재밌게 놀았다. 안 그러냐, 얘들아?”
“그렇죠.”
“맞습니다!”
몇몇 팀원들이 동조했지만, 배상훈은 그들의 촉촉한 눈가를 보고야 말았다.
‘시커먼 남정네들끼리 물놀이 한다고 재밌었겠습니까…….’
안타까움에 고개를 젓던 배상훈은 차에 기대서 하품을 쩍 하는 백기준과 눈이 마주쳤다.
다른 팀원들처럼 우울해하지 않는 모습에 배상훈이 툭 던지듯 물었다.
“넌 괜찮냐?”
“뭐가. 아, 난 재밌게 놀았는데?”
“…….”
배상훈이 불쌍하다는 듯 쳐다보자 백기준이 손가락 하나를 들었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라. 난 취미를 공유할 수 있는 여자가 이상형이거든.”
“미친놈. 너 같은 사람이 한 명 더 있으면 그건 재앙이다.”
“자. 다들 주목.”
라세흠의 목소리에 떠들던 둘은 시선을 돌렸다.
“이제 놀 만큼 놀았으니, 다시 빡세게 일하자고. 백기준. 추적기 달아놓은 러시아 놈 위치는 계속 파악 중이지?”
“예. 이제 족치러 갑니까?”
씨익.
라세흠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 족치러 간다.”
그 말에 침울하던 팀원들이 음흉하게 웃었다.
분명 총을 가진 마피아들을 치러 가는 거지만, 그걸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복면 챙겨라.”
***
탁.
“하…….”
풍원한정식의 직원 휴게실.
핸드폰을 내려놓은 강예원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오늘은 토요일. 내일이면 SA시큐리티에 출근하는 일요일이었다.
좋은 조건의 직장이었으나, 강예원은 출근이 하기 싫었다.
출근하게 되면, 이주혁에게서 강유찬이 말한 정보를 빼내 와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냥 못한다고 할까.’
강유찬의 돈이 필요하지 않냐는 제안을 들었을 때는, 엄마와도 다툰 직후라 깊게 생각하지 못하고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제 와서 보니, 강예원은 친구의 정보를 남에게 팔아넘겨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었다.
그렇다고 강유찬의 말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
강예원은 자신의 엄마를 생각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도 돈은 필요해.’
그녀의 엄마는 내일 있을 예배를 준비한다며 현금을 인출하기 위해 은행을 향했다.
이렇듯 계속해서 돈이 빠져나가다 보니 생활비가 부족해지고, 결국 그 돈은 강예원이 메꿔 넣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혼자서 벌어오는 돈으로는 아무리 아껴 써도 이 생활을 유지하기가 버거웠다.
그 탓에 강예원이 강유찬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가 돈을 준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아……. 미치겠네, 진짜.”
강예원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분명 이주혁의 정보를 넘기면 강유찬에게 꽤 큰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건 자신을 믿고 일자리를 만들어준 이주혁의 뒤통수를 치는 일이다.
이주혁에게 호감을 가진 임유나 사장님도 자신을 곱게 보지 않을 거다. 어쩌면 잘릴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강유찬에게 못하겠다고 한다면, 엄마의 헌금 탓에 계속해서 이 빈곤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어느새 제안을 받은지 한참의 시간이 지났지만, 강예원은 아직도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후…….”
그렇게 휴게실 의자에 앉아 한참을 끙끙대던 강예원이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리고 고개를 들었다.
‘그래. 그냥 주혁이한테 다 말해버리자.’
이렇게 혼자 고민해봤자 결론은 나지 않을 거다.
그럴 바에 그냥 이주혁에게 솔직히 말하는 게 낫다.
똑똑한 사람이니, 어쩌면 강예원의 이 딜레마를 해결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만약 비밀로 하고 있다가 걸리면, 이주혁은 강예원을 아예 적대할 테니 말이다.
물론 상황이 꼬여서 이주혁과 강유찬 둘 모두한테 버려질 수도 있겠지만, 강예원은 누군가를 배신하는 것보단 차라리 버려지는 게 마음이 편했다.
‘내일 출근하면 바로 말하는 거야.’
결심을 하자 강예원은 조금은 홀가분한 마음이 되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할걸.’
.
.
그렇게 길었던 토요일이 지나가고, 다음 날.
똑똑-.
강예원은 출근하자마자 한 사람을 찾아갔다.
-문 열려 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주혁아, 난데…… 잠깐 시간 돼?”
이주혁이었다.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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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4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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