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242
241화
주혁 씨. 반갑습니다.
저에게 아주 관심이 많으신 줄 알고 있으니, 굳이 자기소개는 할 필요 없겠죠.
한번 통성명한 사이기도 하고요.
그때 나눴던 대화는 즐거웠습니다.
바로 본론에 들어가는 걸 선호하는 당신이라면 이 편지의 요점이 뭔지 궁금하실 겁니다.
다만 본론을 꺼내려면 제 이야기부터 해야 할 것 같군요.
먼저, 저는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알고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과거로 돌아온 것일 수도 있겠네요.
솔직히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직접 그 삶을 살았던 건지. 아니면 미래의 기억이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온 건지 말이죠.
물론 그 덕에 이 자리까지 쉽게 올라올 수 있었네요.
다른 ‘나’는 다 늙어서야 겨우 도달한 위치인데 말이죠.
결국 주혁 씨가 망가뜨린 새사람 교회.
미래의 지식에 예언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니, 무지한 인간들이 간이라도 빼줄 듯이 몰려들더군요.
주혁 씨도 그렇지 않던가요?
놀라실 거라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당신도 눈치채고 있었을 테니까요.
당신은 내가 본 미래와 전혀 다른 행보를 걷고 있으니 모르는 게 이상하지 않겠어요?
애초에 나 혼자 그런 일을 겪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전 세계에서 초자연적인 현상이 딱 나 한 사람에게만 일어난다? 이건 오만한 생각이니까요.
그리고 이건 제 생각인데, 주혁 씨 당신에게 그 ‘현상’이 일어난 건 작년 5월쯤 아닌가요?
행적을 추적해 보니, 뭔가 특이한 행동을 하기 시작한 게 그쯤이더군요.
주혁 씨의 아버지, 이정호 씨가 사망한 이후로 말이에요.
이정호 씨…….
의인이죠. 목숨을 바쳐 12명의 생명을 살린.
사실, 저도 이정호 씨에게 빚이 있어요. 내 생명을 살려 줬거든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죠?
10살 때. 도로 한복판에서 갑자기 펑크가 난 적이 있었어요.
갑작스러운 상황에 기사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고, 결국 나 혼자 타 있던 차는 전복됐죠.
그 순간이었어요. 미래에 일어날 일들이 머릿속으로 흘러 들어온 게.
의식을 잃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웬 남자가 나와 기사를 차에서 끄집어 냈더라고요.
주혁 씨가 자주 들여다보는 이정호 씨 책장. 거기 놓인 용감한 시민상이 바로 절 구하고 받은 거예요.
이정호 씨는 극구 사양했지만, 절 많이 아끼는 아버지가 기어코 손에 쥐여 드렸죠.
결국 운 좋게 목숨을 건졌어요. 주혁 씨의 아버지 덕분에요.
뭐, 주혁 씨는 효자시니 아버지를 원망하진 않겠죠.
다만 아쉽긴 하겠네요. 그런 생각들 하잖아요? 히틀러가 아기일 때 죽였으면 어땠을까, 이런 상상.
이런다고 나와 그 학살자가 같은 부류의 인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길 바랍니다.
나는 그런 저열한 사상을 가지고 있진 않거든요.
자꾸 이야기가 새네요.
그 후로 난 내 목표를 위해 밤낮없이 움직였어요.
멍청할 정도로 자식을 소중히 생각하던 아버지를 이용해 세력을 불려 나갔죠.
이미 내 손으로 포섭한 미래를 봤기 때문에 그리 어렵진 않았어요.
니즈. 동기. 그리고 약점까지. 전부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순조롭게 진행해 나가는데, 어느 날 이런 소식이 들려오는 게 아니겠어요?
누군가 주철수의 뒤를 캐고 있다.
접근하려고 하는 정보가 꽤 민감한 쪽이라, 잴 것 없이 바로 입막음하려 했죠.
그런데 이게 어쩐 일인지.
이쯤 되면 주혁 씨도 알겠죠? 그 누군가가 누군지.
네. 맞아요.
당신의 아버지이자 내 생명의 은인, 이정호.
그 남자가 우리의 뒤를 캐고 있었어요.
아이러니하죠? 날 살려 준 사람을 죽여야 하는 상황이라니.
여기까지 읽었다면 주혁 씨도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 거예요.
그 지하철역. 약에 미친 사람이 닥치는 대로 기다리고 있던 승객들을 선로 아래로 밀어 떨어뜨렸죠.
그들과 같이 떨어진 이정호 씨는 자신과 12명의 목숨을 맞바꿨죠.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가만히 지켜볼 사람이 아니니까. 스스로 생을 포기하면서까지 그들을 구할 사람이었으니까.
그런데 주혁 씨.
그 사건의 범인은 누구에게서 마약을 사고 있었을까요?
그리고, 범인은 왜 갑작스럽게 마약을 공급받지 못했을까요?
이정호 씨는 누구의 연락을 받고 그 지하철역에서 기다리고 있었을까요?
내 말을 믿든 믿지 않든 슬슬 이 지겨운 상황을 끝내죠.
주소를 동봉했으니, 사흘 뒤에 그곳으로 오세요. 이주혁 씨.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 *
꾸욱.
우재성은 부릅뜬 눈으로 편지를 읽어 내려가는 이주혁의 상태를 살폈다.
이마의 핏줄이 꿈틀대는 게 심상치 않았다.
‘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슥.
이주혁은 다 읽은 건지 편지에서 눈을 뗐다.
그리고 그와 눈을 마주친 우재성은 처음 보는 이주혁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겉으로는 그리 티가 나지 않지만, 속으로 들끓고 있는 분노가 느껴졌다.
금방이라도 터져 버릴 듯한 모습에 우재성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대표님. 괜찮으신 겁니까?”
“……예. 괜찮습니다.”
우직.
이주혁의 손안에서 편지가 처참하게 구겨졌다.
“우재성 씨.”
“예.”
“밖에 나도는 애들 싹 다 불러들여요. 싸울 줄 아는 사람들은 전부.”
“가, 갑자기요?”
당황한 우재성의 물음에 이주혁이 고개를 돌렸다.
차가운 눈빛이었으나, 모순적이게도 그 안은 오갈 데 없는 분노로 가득했다.
그리고, 이주혁은 지금부터 그 분노를 쏟아낼 생각이었다.
‘너는 내 손으로 죽인다.’
* * *
나는 경호를 위해 곳곳에 흩어져 있던 팀원들을 불러들였다.
그 빈자리는 박건과 송태석이 맡았다.
두 사람은 우리 쪽 사람들이 습격당했던 일을 접수해 경찰 인력으로 그들을 경호하겠다고 했다.
비록 날림으로 과정을 처리하긴 했지만, 그 정도 권한은 있는 사람들이니 별문제는 없을 거다.
“그래서, 대체 무슨 바람이 불었길래 이러는 거냐?”
배상훈이 턱을 괸 채로 물었다.
우리 편 사람들의 안전을 우선으로 생각하던 내가 갑자기 왜 팀원 전부를 소집했나 궁금하겠지.
부장님, 팀원들, 우재성을 포함한 SA시큐리티 측의 인원들이 다들 같은 게 의문인지 내 쪽으로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에 나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선생이 아버지를 살해했습니다.”
“……!”
“뭐?!”
“그게 무슨…….”
회의실에 있던 모두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던 부장님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너희 아버지는…… 사람들을 구하고 돌아가셨잖냐. 그런데 살해당했다고?”
“네. 약쟁이가 승객들을 밀어 떨어뜨리는 상황을 그놈이 만들었답니다.”
“이런 미친 새끼가.”
부장님이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당장 죽여 버리러 가자.”
“그러려고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우재성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괜찮을까요? 자기가 있는 주소를 알려 준 걸 보면 철저히 대표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 놨다는 말일 텐데…….”
우재성은 나한테 전해 들은 공리회의 전력을 생각했는지 표정이 영 밝지 않았다.
“대표님이 그러셨잖습니까. 민지훈 휘하에 특수부대 출신 경호대가 백 명 가까이 존재한다고.”
우려하는 것도 당연하다.
게다가 백 명은 엄연히 정예만 포함한 숫자다.
경호대에다 강 권사가 군사 훈련을 진행하던 새사람 교회 신도들이 아직 남아 있을 거고, 선생이 돈으로 부리는 조폭들도 분명 우릴 막아설 테니까.
어쩌면 박광훈의 수하나 야쿠자, 삼합회, 러시아 마피아처럼 해외 세력까지 끼어들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한발 물러날 순 없었다.
그저 사람들을 구하다 돌아가셨다고 생각한 아버지가, 실은 선생에 의해 살해당하셨다는 걸 알게 됐다.
“더 이상 미룰 거 없잖습니까. 나중에 쳐들어간다 해서 놈이 대비를 하지 않을 리도 없고.”
“음…….”
내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부장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난 찬성이다. 정찰만 하고 최대한 빠르게 타격해야 승산이 있을 거야.”
“나도 찬성.”
부장님의 의견에 고상미가 동의했다.
고상미 또한 선생에 의해 부모님을 잃은 탓인지 말에 감정이 실려 있었다.
“그리고 우리도 무장이 필요해.”
“부장님. 혹시 고무탄 더 구해 주실 수 있어요?”
“당연하지. 이쪽 애들 쓸 것들도 더 구해 올 거다.”
끄덕.
나는 후배 녀석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우린 총알이 빗발칠 수도 있는 곳으로 간다. 너희는 본진 지켜.”
“행님!”
“군대도 안 갔다 온 새끼들이……. 이번엔 안 돼.”
그동안 함께 지내며 꽤 정이 든 녀석들이다.
혹시라도 눈먼 총알에 맞아 다치거나 죽게 되면 곤란하다.
하지만 이렇게 말한다고 들어먹을 녀석들이 아니었다.
드르륵!
자리에서 일어난 덩치, 돼지, 난쟁이가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행님. 행님 아버님한테 해코지한 쉐끼가 있는데 저희보고 가마이 있으란 말씀입니꺼.”
“절대 안 되지예. 저희도 행님 복수 돕겠습니더.”
“저번처럼 운전만 해도 좋십니더. 델꼬만 가 주십쇼!”
“하…….”
이렇게까지 말하면 별수 없네.
억지로 떨어뜨린다고 떨어질 놈들이 아니다.
녀석들 말대로 운전병으로라도 써먹어야겠다.
“이 대표. 내가 선봉에 서겠다.”
서울광목파의 보스, 고광목이 거구를 일으켰다.
삼합회의 왕후성과 싸우다 잘린 탓에 의수가 되어 버린 오른손이 눈에 들어왔다.
“선봉에 선다고? 왜.”
내 물음에 고광목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차피 나와 동생들은 네가 아니었다면 진작 죽었을 목숨이다. 이번엔 내가 목숨을 걸고 너를 도울 차례지.”
사실 나는 목숨까지 걸고 구해 준 건 아니었지만, 고광목의 의지가 느껴졌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
별명이 김두한이라더니, 의리는 있네.
스윽.
전 강남파의 이사이자 현재는 SA시큐리티의 인턴.
마종석이 조용히 손을 들고 말했다.
“미안하지만, 난 반대다.”
“뭐?”
발끈하는 부장님을 말리며 물었다.
“왜지?”
“솔직히 말하지. 내가 항복하긴 했어도, 돈을 받고 고용된 입장에서 목숨까지 걸면서 싸워 줄 의리는 없다.”
마종석의 말에 훈훈하던 분위기가 조금 이상해졌다.
하지만 이해 못할 건 아니었다.
“그럼 벗어난 곳에서 지원은 가능한가?”
“그 정도라면.”
“똥식이. 너도?”
구석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던 지동식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내가 원소주를 서울에 런칭할 때 주류 유통으로 장난질하던 놈인데, 나한테 딱 걸려서 좀 두들겨 맞은 놈이다. 돈도 수십억은 뜯기고.
그 뒤로는 원소주 유통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너 싸움 좀 하잖아.”
부장님한테 호되게 당해 기가 죽긴 했지만, 190이 넘는 덩치를 보아 영 맹탕은 아닐 거다.
지동식은 관심이 자신에게 돌아오자 당황으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예, 예?”
“왜. 너도 하기 싫어?”
“그게 아니라…….”
“아니면, 같이 갈 거냐?”
몰아치는 압박 질문에 지동식은 어버버거리기만 할 뿐 뭐라 말을 잇지 못했다.
“됐다, 됐어. 우유부단한 새끼. 넌 저기 마 인턴 뒤치다꺼리나 해라.”
“옙. 가, 감사합니다.”
부끄러움 탓인지 녀석의 얼굴이 시뻘게졌지만, 위험한 곳으로 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안심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어쩌나. 거기 과연 안전한 곳이 있을지는 나도 모르겠네.
스윽.
나는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는 황성빈을 돌아보며 물었다.
“황 인턴.”
“예!”
“너는?”
내 물음에 황성빈은 잠시 침묵하다 답했다.
“대표님 덕에 동생이랑 좋은 아파트에서도 살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저도 같이 갈 겁니다.”
“오케이.”
“대신…… 혹시라도 제가 잘못되면.”
“걱정 마라. 네 동생 결혼 비용까지 대 줄 테니까.”
“가,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이는 황성빈의 뒤로 팀원들의 든든한 얼굴이 보였다.
다들 자기 몫은 하는 녀석들이라 그리 걱정은 되지 않았다.
“좋습니다. 여러분.”
사실 여기 모인 인원들이면 북쪽의 수령님 모가지 정도는 충분히 따올 수 있을 거다.
나는 인생 잘못 살진 않았다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그럼, 준비합시다.”
지긋지긋하던 이 전쟁의 마지막을.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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