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254
#254화
콱!
빠르게 몸을 뒤로 젖힌 라세흠의 가슴팍을 스치듯 지나간 탄알이 나무 바닥에 틀어박혔다.
“이 색……!”
예상치 못한 화기의 등장에 라세흠은 당황하며 바깥으로 물러났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고상미는 바닥을 확인했다.
거기 꽂혀 있는 건 총알이 아니라 마취용으로 쓸 법한 주사기였다.
“실탄 아냐!”
고상미는 그리 외치곤 라세흠을 스치며 진입했다.
그리고 칼을 쥐고 뛰어내리는 상대를 향해 옆차기를 꽂았다.
예상치 못한 반격이었는지, 팔로 막은 상대가 뒤로 훌쩍 물러났다.
“너 뭐냐?”
인상을 구긴 라세흠이 으르렁거리며 물었다.
경호대의 부대장, 모재욱은 한 손으로 복면을 고쳐 쓰며 대치하고 있는 두 사람을 살폈다.
SA시큐리티의 라세흠. 직책은 부장.
전직 HID 교관으로, ‘1급’ 수준의 무력을 지닌 강자.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여자는 이름은 모르지만, SA의 협력자다.
제대로 밝혀진 건 없으나, 최소한 ‘2급’ 수준.
‘설마 이 두 사람이 같이 움직일 줄이야…….’
기습도 실패했고, 이 둘을 동시에 상대하는 건 어지간한 사람은 불가능한 일이다.
누군가 접근하는 걸 확인한 뒤, 조용히 제압해 입막음하려고 했던 모재욱으로선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우선 몸을 빼내야겠다는 생각에 모재욱은 뒤쪽의 창문을 의식했다.
여기서 당해 그의 대계가 틀어지게 둘 순 없는 노릇.
“누구냐고. 이 새끼야.”
라세흠은 상대의 장비가 나이프밖에 없다는 걸 확인하고 앞으로 성큼 나섰다.
기척을 숨기고 기습한 건 위협적이었지만, 지금 둘의 전력이면 한 사람 정도는 제압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아마 지금쯤 기다리고 있을 주혁이 녀석에겐 조금 미안하긴 해도, 척 봐도 수상함을 풀풀 풍기는 이 복면남을 잡는 게 우선이었다.
고상미도 상상한 것보다 이질적인 차림새의 상대에서 적의를 뿜어냈다.
“대답하기 싫다니까, 그 복면부터 벗겨줄게. 답답하지?”
반쯤 군인 같은 복장에다가, 자신을 위기에 빠뜨렸던 마취총까지 사용하는 걸 보니 더 열이 뻗쳤다.
두 사람의 기세를 받던 모재욱은 마음을 다잡았다.
진심을 다하지 않으면 이곳을 빠져나가는 건 요원해 보였다.
그리고 모재욱의 지시로 얼떨결에 남아 있던 유정태는 이 분위기에 숨이 멎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X, X발! 여기 있다가 휘말려 뒈지는 거 아냐?’
그렇게 터지기 직전의 긴장감이 맴돌던 순간.
끼익.
“거기 누구 있소?”
누군가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잉?”
문이 열린 걸 보고 안을 슥 들여다본 중년이 깜짝 놀랐다.
“아니, 빈 건물에서 뭐 하는 거요?”
그에 라세흠은 슬쩍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저씨. 지금은…….”
“어엇! 저저……!”
중년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복면남은 이미 창문으로 뛰어내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저 새끼가.”
“가만.”
라세흠은 튀어나가려는 고상미를 손을 들어 막고선, 뒤에서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는 중년에게 고개를 숙였다.
“멋대로 들어와 죄송합니다.”
“아니, 크흠. 내가 이 건물 주인이요. 아무리 사람이 없다 해도 막 들어오면 안 되지.”
헛기침을 하던 중년이 라세흠과 고상미를 보며 의아한 듯 물었다.
“그나저나, 난 가끔 들어오는 노숙자가 또 왔나 해서 올라와 봤는데, 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던 거요?”
“음. 그게…….”
건물주는 수상한 사람을 보는 눈빛으로 두 사람을 쳐다보다, 아직도 빠져나갈 타이밍을 잡지 못한 유정태를 발견했다.
“어? 저놈이 왜 여기 있어?”
“아는 사람입니까?”
“이 근방에서 질 안 좋기로 유명한 놈 아뇨!”
불편한 표정을 짓던 중년이 라세흠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혹시 그쪽도?”
“아닙니다.”
“쯧. 어쨌든 이제 나가쇼. 너도!”
중년이 소리치자 유정태가 중얼거렸다.
“망할 영감이…….”
그리고 문밖으로 나서려다, 그 앞에 선 라세흠을 마주하고 멈칫했다.
“비, 비켜.”
“…….”
“비켜……요. 나가게.”
“같이 나가지.”
“뭐? 아, 아니.”
라세흠은 눈가를 떠는 유정태의 어깨에 팔을 턱 걸쳤다.
“그럼, 실례했습니다.”
그렇게 세 사람은 건물주를 뒤로하고 계단을 내려갔다.
턱.
건물 바깥으로 나온 라세흠은 번개같이 손을 움직였다.
“힉!”
유정태는 허리춤에 있던 칼이 라세흠의 손에 들린 걸 보고 다리에 힘이 풀릴 뻔했다.
자신을 어디 으슥한 곳으로 데리고 가면 어떻게든 도망치려고 했는데, 칼을 뺏긴 이상 계획은 무용지물이었다.
라세흠은 그의 축 처진 어깨를 보며 이빨을 드러내고 미소지었다.
“야.”
“예, 예.”
“잠깐 같이 갈까?”
그 말에 유정태가 고개를 푹 숙였다.
거절은 할 수 없었다.
***
“음?”
오랜만에 보는 팀원들과 인사를 나눈 후 바비큐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저 입구 쪽에서 한참을 안 보이던 부장님과 고상미가 걸어 들어왔다.
나는 숙이고 있던 몸을 일으켜 그쪽으로 다가가며 물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요?”
“일이 좀 있어서.”
입맛을 쩝 다신 부장님이 어딘가 익숙한 얼굴의 뒷덜미를 잡고 데려왔다.
“이놈은?”
“그놈이지? 횟집.”
“예.”
“어쩐지 목소리가 익숙하더라니.”
부장님은 조금 전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나는 그걸 다 듣고 생각에 잠겼다.
“복면을 쓴 수상한 놈이라…….”
“상황이 좀 꼬여서 놓치긴 했는데, 아무래도 알아봐야 할 것 같아서 이놈이라도 잡아 왔다.”
“잘하셨어요.”
나도 부장님과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구린내가 난단 말이지.
척 봐도 군사 훈련을 받은 놈이, 뜬금없이 동네 깡패랑 같이 있었다?
“일단 애들 기다리고 있으니까…… 어디 묶어 놓고 내일 심문합시다.”
“그래.”
내 말에 놈이 사색이 되었다.
그에 놈에게 미소를 지으며 격려해 줬다.
“너무 걱정하진 마라. 담요 정도는 넣어 줄게.”
“……”
내가 통째로 빌린 펜션은 빈 방이 많았다.
.
.
.
“위하여~”
부장님의 건배사에, 옆자리에 앉아 있던 배상훈이 작게 중얼거렸다.
“언제 적 위하여냐.”
“네가 할래?”
“아니.”
배상훈은 들고 있던 잔을 쭉 비우곤 잘 구워진 고기를 한 점 집어 먹었다.
나는 시선을 돌려 고상미를 향해 말했다.
“동생분도 왔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네요.”
“걔가 이런 자리에 올 애냐. 죽어도 안 간다더라.”
“씁.”
고세운 이 자식.
선생한테 복수도 끝냈겠다, 슬슬 선을 그으려는 모양인 것 같은데.
어림도 없지. 이미 네 누나가 내 손아귀에 들어와 있거든.
씨익.
내가 갑자기 웃자 고상미가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왜 그런 음흉한 눈으로 쳐다보는 거야? 임자도 있으면서.”
임자라는 말에 다른 쪽 옆에 있던 유나 씨가 살짝 수줍은 표정을 지었다.
“그런 게 아니라, 나중에 동생분이랑 한번 자리 좀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려 했습니다.”
“아하. 안 될 거 없지.”
“그리고, 자꾸 이상한 농담 하지 마십쇼.”
“농담이라니. 진짜 음흉했다니까?”
꿈틀.
내 표정을 본 고상미가 히죽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부장님 쪽으로 가 버렸다.
“쯧.”
나는 의자에 등을 기대며 주변을 둘러봤다.
팀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고상미의 부하들과 춘식이네는 그 일 이후로 돌아오지 않았다.
부하들은 할 일이 있다며 어디론가 떠났고, 춘식이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굳이 남아 있을 이유는 없으니까 그냥 뒀다. 필요할 때 다시 부르면 되니까.
춘식이 녀석도 받아먹은 돈이 있어서 그런지 언제든 불러 달라고 말했다.
“흠…….”
내가 길게 숨을 내쉬자, 그런 날 지켜보던 유나 씨가 물었다.
“표정이 안 좋아요. 무슨 일 있는 거예요?”
“아, 별거 아닙니다. 그냥…… 조금 취해서.”
“그래요? 멀쩡해 보이는데.”
동그랗게 뜬 눈으로 날 이리저리 살피는 유나 씨가 귀여워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차가운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왜요?”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나서요.”
꾹.
유나 씨가 아랫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확 돌렸다.
그리고 민망한지 잔에 담긴 칵테일을 마시기 시작했다.
나는 흐뭇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봤다.
‘뭘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도 내 마음은 편해질 기미가 없었다.
갑자기 나타난 수상한 놈.
그놈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뭔가 있다. 분명히.
잠시 심각한 표정을 짓던 나는, 유나 씨가 다시 이쪽을 쳐다보자 표정을 풀었다.
“다른 칵테일 레시피도 있는데, 만들어 드릴까요?”
“정말요? 너무 좋죠. 나눠 마셔요, 우리.”
“그래요.”
오늘을 위해 미리 갈고 닦은 칵테일 레시피를 되뇌며 부정적인 생각을 지워 나갔다.
지금은 어려운 생각하지 말자. 정보를 캐낼 사람도 생겼으니까.
스윽.
셰이커를 집어든 나는 숙소 건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크흐흑…….
어쩐지, 아까 그 녀석이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
05시. 해가 뜨기까진 꽤 남아 아직 어두컴컴한 시간대.
나는 조용히 옷을 챙겨 입고 개인 숙소를 나섰다.
문을 열고 바깥을 슬쩍 내다보자, 복도 저편에서 백기준이 상기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가자.”
“흐흐.”
백기준은 내 말에 대답 대신 음흉한 웃음을 흘렸다.
“그동안 참느라 힘들었다.”
고문 전문가를 넘어 성애자인 백기준은 아무도 덤비지 않는 평화로운 일상이 고역이었던 모양이다.
지하실에 감금되어 있던 놈들도 입단속 후 풀어 줬으니까.
다들 자고 있을 시간대라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왜 이렇게 맛탱이가 간 거냐? 네가 한니발이야?”
“네가 얌전히 살고 있던 날 이렇게 만들었잖아. 책임져야지.”
“개소리야. 피에 맛 들인 개도 아니고.”
“왈왈.”
“입 다물고 따라와.”
나는 신난 발걸음으로 내 뒤를 따르는 백기준과 함께 어제 잡아 온 녀석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
끼익-
문을 열고 들어가자, 침대에 손을 뒤로한 채 묶여 있는 녀석이 고개를 숙인 채 자고 있었다.
“태평하네.”
내 목소리에 깼는지, 녀석이 비몽사몽 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으, 으읍-!”
비명을 지르려는 것 같은데, 입에 발린 청테이프 때문에 소리는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이 새끼. 침도 질질 흘리고, 제대로 주무셨구만?”
다리를 툭툭 차며 비아냥대자, 녀석은 끅끅대며 오열했다.
“으급. 으으음!”
“말하고 싶어?”
끄덕끄덕.
격하게 머리를 흔드는 녀석에게서 시선을 돌려, 백기준에게 말했다.
“적당히 말랑하게 만들어 놔.”
“오케이. 지금을 위해서 어제 술도 안 마셨다. 흐흐흐.”
“으으! 으으응읍!”
큰일 났다는 걸 느꼈는지, 놈이 발작하며 몸을 꿈틀댔다.
지금 테이프 뜯고 물으면 조상님 이름까지 말할 기센데, 나도 어쩔 수가 없네.
우리 팀원이 고대하던 일이라. 그래도 조금은 당해 줘야 하지 않겠니?
나는 간절하게 이쪽을 쳐다보는 녀석에게 손을 흔들고 바깥으로 나갔다.
“으으으! 으으으으!”
탁.
그렇게 5분이 지나고, 다시 문을 열고 들어갔다.
“끄으. 끄으으…….”
“후. 개운하네.”
백기준이 흐르지도 않은 땀을 닦는 시늉을 했다.
그런 녀석의 아래에는 눈코입에서 물을 줄줄 흘리는 녀석이 널브러져 있었다.
“적당히 한 거 맞냐?”
“물론.”
“씁.”
덥석.
나는 정신을 못 차리는 놈을 침이 묻지 않게 잡고 다시 앉혔다.
그리고 눈을 똑바로 보며 경고했다.
“다들 자니까 소리 지르지 말고, 묻는 말에 알고 있는 모든 걸 총동원해 답하기. 하나라도 어기면 난 다시 나가 있는다.”
무표정하게 말하니 녀석이 경기를 일으키며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찌익.
이 정도면 됐다 싶어 집게 손으로 테이프를 뗐다.
“…….”
놈은 입을 헤벌린 채 허공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럼 지금부터…….”
그 멍한 눈빛을 보곤 손을 뻗어 놈의 머리채를 확 틀어쥐었다.
콱!
“끅!”
그 상태로 사람 좋은 미소를 짓자 놈의 얼굴이 공포로 물들었다.
“진솔한 대화를 좀 나눠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