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291
#291화
턱.
이주혁은 질질 끌고 온 J를 바닥에 내려놨다.
“크윽.”
“아프냐?”
“후……. 제기랄. 그럼 괜찮겠나?”
J는 인상을 구기며 대꾸했다.
살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한 탓에 태도가 아주 비협조적이었다.
“너무 일찍 포기해 버린 거 아닌가? 어쩌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이주혁의 말에 J가 실소했다.
“개소리. 날 무사히 보내 줄 거였으면 이런 짓을 저지르지도 않았겠지.”
“그거야 모르는 거고.”
드륵-
“사무실 삭막하게 잘 꾸며 놨네.”
J가 일을 보는 공간에는 정말 업무를 위한 집기만 존재했다.
이주혁은 대충 손에 집히는 의자 두 개를 끌고 와 J와 마주 앉았다.
턱.
엉덩이를 붙이고 앉자, J가 실핏줄이 다 터진 눈으로 입을 열었다.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되나.”
“네가 질문할 입장이야?”
“…….”
“뭔데. 말해 봐.”
“처음부터 한편이었던 거냐?”
J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애초에 넌 선생을 제거했다고 알려진 사람이다. 하지만 지금은 경호대와 함께 날 치러 왔지.”
“뭐, 그래.”
“선생은 죽은 척을 한 건가.”
그 질문을 들은 이주혁이 눈썹을 까딱였다.
‘하긴, 직접 얼굴을 봤으니 저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하겠지.’
SA시큐리티가 민지훈의 세력과 함께 움직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자연히 이주혁이 놈을 처리했다는 건 거짓 정보가 된다.
J는 어차피 갈 사람이니 그렇다 쳐도, 앞으로 활동하며 더 주의해야 하는 것 중 하나다.
이주혁은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조병철 비서실장과 호정기획의 박광훈의 입단속을 철저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후…….”
이주혁이 말없이 웃기만 하자, J는 허탈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봐라. 대답해 주지.”
“DS컴퍼니를 무너뜨릴 정보도 말이냐?”
“……몇 주 전이었다면 입을 다물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지금의 DS컴퍼니를 보호할 이유는 없다.”
“쿠데타 때문인가?”
내부에서 반란이 일어나 임원들이 대규모로 숙청당했다고 하던데, 민지훈은 J가 거기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이주혁의 물음에 J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친구이자 쿠데타의 중심이 되었던 H를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놈은 분명히 알고 있었어.’
H 이사, 헨리 가필드.
그 음험한 놈이라면 분명히 J가 뒤로 다른 계획을 꾸미고 있다는 것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언젠가 서로 충돌하는 건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설마 이렇게 자신을 작업할 줄은 몰랐다.
‘선생이 그놈의 뒷배였던 게 분명하다.’
아무리 H가 배짱이 좋다 하더라도 쿠데타 같은 정신 나간 짓을 혼자 저지르지는 않았을 거라고 예상했었다.
그 일이 있고 선생의 경호대가 J를 덮쳤다.
거기다 선생과의 화상 통화를 통해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 맞춰졌다.
-도움은 무슨. 그저 몇 가지 조언을 드렸을 뿐입니다.
선생의 그 말을 들은 J는 강한 배신감을 느꼈다.
사실 이번 일은 민지훈의 독단적인 결정이라 H는 크게 관련되어 있지 않았지만, J는 당연히 그도 동조했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버려진 거, 뭐든 물어봐라. 성실하게 대답해 주지.”
“그래?”
갑자기 이주혁이 목소리를 낮췄다.
“그럼, 지금부터 우리가 나눈 대화를 죽을 때까지 함구할 수 있겠나?”
“아무래도 좋다. 어차피 오래 가진 않을 테지만.”
“오케이.”
대답을 들은 이주혁은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널 버린 DS컴퍼니에게 복수하고 싶나?”
“……그렇다.”
“그리고 살고 싶지?”
J는 냉소적으로 입꼬리를 올렸다.
“어차피 모든 걸 잃었다. 더 살아봤자 무슨 의미가 있지?”
이미 DS컴퍼니 내에선 자리를 잃었다.
다른 곳에서 재기한다 해도 과거의 이력으로 발목 잡힐뿐더러, 여기서 살아 나갈 확률도 없다.
다만 이주혁의 물음에 의문이 생긴 J가 의아한 듯 말했다.
“그나저나 DS컴퍼니에게 복수해줄 것처럼 말하는군. 넌 어차피 선생과 한편 아닌가?”
“일단은 그런데……. 나도 DS컴퍼니는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든.”
그 말을 들은 J의 표정이 바뀌었다.
“혹시, 선생과 너는 일시적인 동맹인 거냐? 그래서 여기서 나눴던 대화는 비밀로 해 달라 한 거고?”
“상황 파악을 이렇게 잘하면서 왜 뒤통수를 맞으셨을까.”
J는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정말 DS컴퍼니에게 복수해 줄 건가?”
“그래. 아예 뿌리를 뽑아 버릴 작정이다.”
“좋아. 협력하겠다.”
온갖 더러운 일은 자신에게 다 맡겨놓고 자기네들은 고고한 척, 건실한 사업가인 척 뻗대는 임원 놈들.
다수가 숙청당하긴 했지만, 그동안 DS컴퍼니에게 쌓여 온 불만들이 터져 나오며 J의 감정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주혁은 그걸 느끼고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이야기가 빠르겠어.’
* * *
나는 J에게 민지훈이 무슨 질문을 했는지 들었다.
DS컴퍼니 내부에 남은 인원의 정보와 조직도, 그리고 H의 약점과 같은 기밀들을 알아갔다고 하던데.
‘눈치가 빠른 놈이야.’
복수심에 불타는 듯 보이는 J는 묻지도 않은 것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알려 줬다.
아무래도 믿을 구석이 나밖에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모양이다.
이 정보는 돌아가서 다른 내용과 대조하며 점검해 봐야겠지.
“여기까지가 내가 아는 정보다.”
“그렇군.”
스윽.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J가 체념한 얼굴로 물었다.
“이제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글쎄.”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
“여기서 바로 죽을 수도 있고, 어디 강바닥에 조용히 가라앉을 수도 있고.”
“…….”
“어쨌든 내 용건은 여기서 끝이다. 로운아.”
나는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로운을 불렀다.
녀석이 J를 보는 눈빛은 곱지 않았다.
J는 갈 곳 없는 고아들을 모아 킬러로 키운다는 계획을 세웠다.
한 마디로, 이 녀석이 두들겨 맞으며 개고생을 한 원흉이 바로 J 이놈이란 소리다.
“직접 마주하니까 기분이 어때?”
“……화가 나요.”
“어떻게 하고 싶어? 직접 복수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
“그래도 되는 건가요?”
끄덕.
“그래. 이놈이 어떻게 되든 내가 다 커버쳐 줄 수 있다.”
“커버라면…….”
“내가 책임질 수 있단 뜻이다.”
내 확고한 말에 이로운이 굳은 표정으로 J를 돌아봤다.
놈은 의자에 앉은 채 무기력한 눈으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저벅.
걸음을 옮긴 이로운이 J의 앞에 섰다.
그리고 몸을 살짝 비틀더니, 놈의 명치를 향해 정권을 꽂아 버렸다.
퍼억-!
“크어억……!”
J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의자째 뒤로 넘어갔다.
쿵!
“끄윽. 끄으으……!”
놈은 정말 고통스러운지 핏대를 잔뜩 세운 채로 땅에서 꿈틀거렸다.
방탄조끼는 진작 벗겨 놓은 탓에, 아마 멍들고 부러진 곳에 제대로 맞았겠지.
“아프냐?”
“큭, 커헉……!”
“이 정도면 싸게 먹힌 거, 알지?”
부러진 갈비뼈가 장기라도 찌른 듯, J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신음하기만 했다.
어차피 이놈에게 더 이상 볼일은 없다.
뭔가 있을 것처럼 말을 흘린 것도 협조적인 태도를 위해서였지, 정말로 복수를 도와줄 생각은 아니었거든.
애초에 됐다 하기 전까진 DS컴퍼니를 치지 말라는 게 민지훈과의 협상 내용이다.
요약해서, 이놈의 필요는 다했다는 거다.
“챙겨 나갈까?”
“부탁드립니다.”
결국 J는 부장님에 손에 뒷덜미를 잡힌 채 다시 질질 끌려 나왔다.
경호대장 육진모가 J의 몰골을 보고 흠칫했다.
“……고문한 건가?”
“그건 아니고, 개인적인 복수.”
“그렇군.”
육진모도 이놈이 다친 건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으득.
J가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렸지만, 놈은 나와 나눈 대화를 흘릴 생각은 하지 못한다.
DS컴퍼니를 칠 사람이 나 이외에 아무도 없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오래 걸리셨네요.
“음?”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시선을 돌리니, 육진모가 영정사진처럼 든 태블릿 속에 있는 민지훈이 보였다.
“아직도 있었냐?”
-전달해 드릴 말이 남아서요.
“뭔데.”
-DS컴퍼니는 당분간 제가 컨트롤할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서클’의 다른 집단은 무슨 행동을 할지 모릅니다.
“그걸 알려 주는 게 조건 아니었나.”
-맞는 말씀입니다.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단 소리군. 용건은 이게 다야?”
내 물음에 고개를 저은 민지훈이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한국의 고위층을 포섭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소문 빠르네. 누구한테 들었냐?”
-혹시 제 상황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나야 그걸 다 알진 못하지. 그건 왜?”
-최대한 비밀로 해 주십사 해서요.
“당연히 그럴 거다.”
지금으로선 무조건 비밀에 부치는 게 맞다.
물론 상황이 달라지면 생각도 바뀌겠지만.
-하긴, 이주혁 씨가 알아서 잘하실 거라 믿습니다. 그럼 이만 말 줄이겠습니다.
“그래라.”
팟.
민지훈의 얼굴이 화면에서 사라졌다.
내가 대화에서 예의를 많이 덜어냈다는 걸 느꼈는지 경호대원들의 눈빛이 영 곱지 않았다.
그런데 뭐 어쩌겠어. 박박 긁어도 예의라곤 한 줌도 안 나오는데.
‘그것까지 바라면 양심이 없는 거지.’
솔직히 만나자마자 주먹이 날아가지 않은 게 용하다.
나는 생각을 접고 육진모를 돌아보며 말했다.
“상황은 대충 정리된 것 같은데……. 슬슬 시마이하자고.”
“그러지.”
“확실히 뒤탈 없는 거 맞지?”
괜히 현지 경찰이랑 엮여서 입출국에 지장을 받으면 곤란하다.
그런 내 의문에 육진모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장하겠다.”
“좋아. 그럼 여기서 찢어지는 걸로.”
“그러지.”
끄덕.
나는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이쪽을 보고 있는 팀원들을 향해 씩 웃으며 말했다.
“집에 갑시다.”
* * *
늦은 오후.
대통령비서실의 수장, 조병철은 자신의 사무실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침묵하던 그의 입가에 미소가 슬쩍 걸렸다.
‘애비 닮아서 아주 똑 부러지는구만.’
이주혁은 꼭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고 싶은 사람이었다.
마침 딸이 하나 있었기에 그쪽으로 엮어볼까 했는데, 그가 풍원한정식의 임유나 사장과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래서 사실을 가미한 약간의 이간질로 이주혁과 떨어뜨리려 했지만.
-그건…… 제가 직접 물어보고 결정할게요.
임유나의 확고한 태도에 조병철은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아주 잘 컸어.’
임유나의 아버지와 인연이 있었다는 건 사실이었기에 거기서 더 몰아붙이고 싶진 않았다.
괜히 여러 번 언급했다간 반감과 의심만 살 뿐이니 말이다.
조병철은 그에 대한 생각을 접고 문 바깥에 서 있을 남자를 불렀다.
“정우야.”
벌컥.
그 말에 한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이주혁이랑 친한 사인가?”
“예?”
“아니, 저번에 그 녀석이 아는 척을 하는 것 같던데.”
조병철의 은근한 시선에 선생의 전 하수인이자 군대에 있을 때 라세흠의 전우였던 김정우가 난색을 보였다.
“친하긴요. 아닙니다.”
“그래?”
“예. 아시잖습니까. 저도 목숨 걸고 그놈들이랑 싸운 거.”
“흠…….”
잠시 침음성을 내던 조병철이 돌연 질문을 던졌다.
“자네가 보기엔 어떤가. 정말 이주혁이가 선생이랑 짜고 쳤다고 생각하나?”
“……글쎄요.”
김정우가 고민 끝에 답을 내놓았다.
“솔직히 긴가민가합니다. 제가 볼 때는 진짜로 죽일 듯이 싸웠으니까요. 그 녀석 성격상 부하들을 미끼로 던졌을 거 같지도 않고.”
“역시 그렇지?”
그 대답을 기다렸다는 듯 조병철의 입꼬리가 죽 올라갔다.
“재밌네. 아주 재밌어.”
“……뭐가 그리 재미나신 겁니까.”
“흐흐. 흐하하하!”
김정우는 난데없이 웃음을 터뜨리는 조병철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드디어 노망이 났나…….’
그리 생각하던 김정우는 귓가에 꽂히는 조병철의 말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네, 그럼 이주혁이랑 친해져 볼 생각 없나?”
잠시 황당해하던 김정우가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