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22
#322화
쩌억-!
뼈가 박살 나는 소리와 함께, 장내에 환호 대신 정적이 흘렀다.
원형 경기장을 쳐다보던 VIP들은 깨끗한 얼굴로 서 있는 남자를 보며 중얼거렸다.
“대단하군. 왕리우를 순식간에…….”
“초신성의 등장인가.”
투기장은 총 16명의 참가자를 받고, 일대일 승부를 통해 토너먼트 형식으로 진행된다.
그중 첫 번째 경기가 시작한 지 10초도 지나지 않아 끝나 버렸다.
내용은 말 그대로 압도적이었다.
안면이 함몰된 채 바닥에 누워 있는 저 남자도 이름 없는 이가 아니다.
저번 경기에서 3위의 자리를 차지한 인물이었다.
그런 사람이 처음 보는 얼굴의 청년에게 초살당한 것이다.
환성이나 박수는 없었지만, 구경하던 VIP들은 그의 실력을 보고 감탄하고 있었다.
“스, 승자는 킴-!”
킴, 유현은 차가운 눈으로 좌중들을 둘러보곤 조용히 원형 링에서 내려왔다.
-왕리우가 전투불능이 되었으므로, 킴이 8강에 진출합니다!
사회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유현은 어깨를 돌렸다.
방금 상대는 여유롭게 잡아냈으나, 결승전까지 향하면서 만날 적들도 마찬가지라는 보장은 없었다.
우승할 자신은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강자가 튀어나올 수도 있는 노릇이다.
이 투기장에서 우승하는 건 부가적인 목표였기에, 여기에 힘을 다 소모할 순 없었다.
‘그놈을 처리할 때까진…….’
혹시 그랬다가 중요한 순간에 불상사가 생길 가능성이 있었다.
시선을 슬쩍 돌리니, 돈을 땄는지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는 퉁퉁한 남자가 보였다.
유현은 이내 신경을 끄고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대기실로 이동했다.
.
.
.
그 뒤로 유현은 두 번 더 승리했다.
한 사람은 양팔이 불구가 됐고, 나머지 하나는 생각보다 성가셔 목을 꺾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름값을 믿은 VIP들은 손해를 봤고, 새로운 실력자에게 한번 걸어 본 이들은 돈을 땄다.
“최단 시간 승리, 최단 시간 연승을 기록하며 결승까지 올라온 최강의 초신성- 킴!”
사회자의 소개에, 유현은 성큼성큼 걸어 경기장으로 들어섰다.
다른 장소였다면 환호성이라고 들렸겠지만, 체면 때문인지 VIP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와인을 즐기고 있었다.
유현은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듯한 느낌에 불쾌한 감정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참아야 할 때다.
“그 상대는, 이전 경기의 우승자이자 투기장 최강의 주먹! 커페이-!”
쿵! 쿵!
유현은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거구의 남자를 조용히 살폈다.
그의 등장을 본 몇몇 관객이 환성을 냈다.
“죽여 버려!”
“너한테 다 걸었다! 이겨!”
실제로 VIP들은 흥분하고 있었다.
원래 투기장은 참가자들의 죽고 죽이는 싸움을 구경하는 재미로 보는 것인데, 킴이라는 놈은 한 대도 얻어맞지 않고 결승까지 올라왔다.
그들의 내면에는, 깨끗한 얼굴의 저 청년이 피떡이 되도록 맞고 처절하게 죽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이런 유혈이 낭자한 싸움은 어디 가서 쉽게 보지 못할 구경거리였고, 다른 지역에서 여기까지 찾아오는 이유이기도 했다.
턱.
거구의 남자가 유현의 앞에 섰다.
그의 반짝이는 머리와 근육질 몸에는 복잡한 문신이 가득했다.
“어이. 애송이.”
“……나 말인가?”
“그럼 너지. 건방진 놈아.”
“?”
“내가 지금까지 어떤 수라장을 거치며 이 자리까지 올라왔는지 넌 모를 거다.”
남자는 비열하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유현을 가리켰다.
“네가 운으로 여기까지 온 건지, 아니면 그래도 실력이 있어서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절대로 항복하지 마라.”
“뭐?”
“그럼 재미없거든. 항복하면 죽인다.”
그 말에 유현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벌써 혓바닥이 길군.”
“하! 이런……!”
“사회자. 시작 안 하나?”
“어? 아, 예. 각자 위치로 가 주십시오.”
결국 남자는 이를 갈며 링의 한쪽으로 향했다.
“자, 베팅이 끝났습니다. 양 참가자, 준비…….”
사회자가 경기 시작을 선언하려던 그때, 거구의 남자가 갑자기 돌진했다.
심판 겸 사회자는 링 바깥에 있었기에, 바로 말리는 건 불가능했다.
그리고 애초에 제지할 생각도 없었다.
룰이 없는 건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최소의 규칙이다.
거기다 이런 돌발 상황이 더 보는 재미가 있는 법이었다.
“방심했구나-!”
유현은 달려드는 남자를 보며 피식 웃었다.
“이게 방심한 걸로 보이나?”
“흡!”
주먹을 내지를 것처럼 팔을 뒤로 젖힌 남자는, 손에 쥐고 있던 무언가를 던졌다.
촤륵!
“……!”
남자가 던진 것은 잘게 쪼개진 자갈들이었다.
유현이 본능적으로 팔을 들어 막는 순간, 남자는 반대 손으로 주먹을 날렸다.
퍼억-!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유현은 공중으로 붕 떴다.
뒤로 날려지다시피 한 유현은 케이지에 등을 부딪쳤다.
철컹!
유현은 땅에 발을 디디며 중심을 잡았다.
주먹을 막은 팔이 조금 욱신거렸다.
“……이래도 되는 건가?”
“으하하! 그래서 네가 애송이라는 거다!”
“좋아.”
탓!
박차고 나간 유현이 뒤로 발을 들었다.
“그럼 나도 내 방식대로 하지.”
그리고 남자의 사타구니를 올려 찼다.
퍽!
겨우 손을 내려 막아 낸 남자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이, 이런 미친놈이……!”
남자가 핏발을 세운 채 고개를 드는 순간.
콰악-!
“크아윽!”
얼굴이 길게 찢어진 남자가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주르륵-
남자의 상처에서 피가 잔뜩 흘러나왔다.
유현은 일그러진 그의 눈을 마주하며 손에 든 버클을 들어 올렸다.
“왜. 이래도 된다며?”
“개 같은 놈이……!”
유현은 아쉬움에 혀를 내둘렀다.
원래는 눈을 뚫어 버릴 생각이었는데, 상대가 머리를 돌린 탓에 뺨부터 눈가를 쭉 찢은 것이다.
쩍!
무릎 옆을 가격당한 남자가 살짝 휘청거렸다.
바로 반격하려 했지만, 계속 눈으로 흐르는 피 때문에 시야가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쥐새끼 같은!”
부웅-!
유현은 평정심을 잃은 듯 팔을 마구 휘두르는 남자의 뒤를 점했다.
그리고 손에 든 버클의 날카로운 부분을 남자의 목을 향해 찔렀다.
하지만 그는 기민하게 몸을 돌리며 주먹을 날렸다.
후웅-
유현은 빠르게 몸을 숙였다.
‘이놈…….’
머리카락이 휘날리는 걸 느끼며 상대를 살폈다.
남자의 눈빛은 행동과는 달리 침착했다.
붕!
자세를 낮추자 곧바로 킥이 날아왔고, 중심이 흐트러지니 빠르게 공격을 몰아쳤다.
상대는 확실히 싸울 줄 아는 사람이었다.
‘흥분한 것도 연기였나.’
방심을 유도할 생각이었다면 좋은 전략이었다.
그러나 그건 이미 가정하고 있었다.
유현은 침착하게 공격을 회피해 나갔다.
그러자 화끈한 타격전을 기대하고 있던 관객 일부가 야유를 터뜨렸다.
“제대로 싸워라!”
“재미없게 굴지 마!”
아까부터 들려오는 목소리들이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었다.
꾸욱.
회피에 집중하던 유현은 하체에 힘을 줬다.
* * *
거구의 남자, 커페이는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겉으로는 본능에 몸을 맡기는 야만적인 전사를 가장하고 있으나, 사실 그는 생각보다 영악한 타입이었다.
신입이 오면 눈에 흙이나 자갈을 뿌리며 환영 인사를 했고, 방심한 놈은 변칙적인 공격으로 눈구멍이나 고막을 터뜨려 버렸다.
그리고 VIP들에게 즐거움도 줄 겸, 상대를 감정적으로 도발하곤 했다.
가진 실력도 꽤 출중했기에 그는 지난 경기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것이다.
쓰윽.
커페이는 눈가에 흥건한 피를 닦은 뒤, 쥐새끼처럼 피하는 상대를 향해 흩뿌렸다.
‘이건 몰랐을 거다.’
그동안 카지노 관리인의 수하로 일하며 쌓아 왔던 실전 경험에서 우러나온 잡기술이었다.
‘시야가 가렸을 때…… 어?’
커페이는 당황해 눈을 크게 떴다.
눈 깜빡한 사이, 시야에서 상대가 사라졌다.
“무…….”
쩌억-!
뒤쪽 옆구리에서 충격과 함께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커헉!”
귀에서 이명이 들릴 정도의 격통이었다.
아무래도 콩팥을 제대로 맞은 모양이었다.
커페이는 혈관을 잔뜩 세운 채로 거리를 벌리기 위해 뒤로 오른팔을 휘둘렀다.
휘익!
하지만 손에 걸리는 감촉은 없었다.
이어 이번엔 날카로운 무언가가 갈비뼈 사이를 파고드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카아악!”
핏발 선 눈으로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 또다시 아무도 없었다.
순간 커페이는 공포를 느꼈다.
‘설마, 나를…….’
몸이 굳은 커페이의 귀에 관객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뒤! 뒤에 있잖아!”
철컹!
‘가지고 놀고 있…….’
케이지를 박차는 소리와 함께, 커페이는 어쩐지 공중을 나는 느낌을 받았다.
쿠당탕!
“커헉. 어윽…….”
시야가 빙글빙글 돌았다.
그리고 얼굴은 부서질 것처럼 아팠으며, 코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 호흡을 방해했다.
“큽.”
지혈을 위해 코를 강하게 쥐면서 회복한 시야로 상대를 찾았다.
그러나 커페이의 무릎이 갑자기 확 꺾였다.
퍽!
그의 한쪽 무릎이 확 내려갔다.
그리고 눈앞에 뭔가 번쩍이더니.
푸욱!
“끄아아아악!”
한쪽 시야가 붉어졌다.
“이봐.”
그제야 하나 남은 눈으로 상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가만히 선 채 무표정하게 커페이를 쳐다보며 말했다.
“항복하진 마라. 재미없으니까.”
“이 개X끼가-! 크윽!”
분노하던 커페이는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느껴지는 고통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상체가 절로 오그라들 정도로 아픈 왼쪽 신장과 길게 찢어진 왼쪽 눈가.
날카로운 벨트의 버클에 쑤셔진 오른쪽 눈까지.
커페이는 자존심이 상한 건지, 겁에 질린 건지 모를 표정으로 소리쳤다.
“죽여 버리겠다……!”
“할 수 있으면.”
어깨를 으쓱이는 상대를 본 커페이는 순간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
“…….”
“…….”
간간이 환성을 지르던 VIP들이 표정을 굳힌 채 자신을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몇몇 이들은 꽤 큰돈을 베팅한 듯 잔뜩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아, 아아…….”
뿌득!
소리가 나도록 이를 간 커페이가 상대를 노려봤다.
“너만, 너만 죽이면 원래대로 돌아올…….”
그 순간, 관객석에서 누군가 큰소리를 쳤다.
“이 병신 같은 새끼!”
그에 호응하듯, 다른 사람들도 커페이를 야유하기 시작했다.
“멍청한 놈! 내가 얼마를 걸었는데!”
“죽을 때까지 싸우라고!”
“어이! 빨리 커페이를 죽여!”
“죽여라!”
“죽여 버려! 끝장을 내라고!”
전 우승자가 아무것도 못 할 만큼 압도적인 실력에 흥분한 VIP들이 한 마디를 연호했다.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꾸드득!
“그러라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커페이는 말없이 땅을 박차고 달려나갔다.
상대가 쥐새끼같이 빠른 탓에 시야의 사각으로 들어가면 눈으로 좇기 힘들다.
그래서 그는 상대도 마주 다가오는 걸 확인한 뒤, 눈을 부릅뜨고 입가에 잔뜩 고인 피를 머금었다.
그리로 거리가 좁혀지자 피를 전방으로 뿜었다.
푸우-
안개처럼 뿜어진 피가 상대의 시야를 가렸다.
아니, 그랬다고 생각했다.
우직!
바닥을 쓸며 몸을 날린 상대의 발차기에 발목이 돌아가기 전까진 말이다.
유현은 몸을 일으키며 허물어지는 커페이의 얼굴을 무릎으로 차올렸다.
퍽! 뚝!
쿠웅.
경추가 90도 가까이 꺾인 그는 땅바닥에 엎어진 뒤 거품을 물었다.
그걸 본 유현은 발로 커페이의 목을 밟아 분질렀다.
콰득!
“…….”
그리고 사회자를 돌아보며 물었다.
“이러면 내가 우승. 맞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