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93
092화
“살려 달라뇨? 그게 무슨 말입니까. 혹시 또 협박 문자 받으셨어요?”
“장난치지 마시고…… 진지하게 말씀드리는 겁니다.”
흠. 들켰나.
“부장님이 그렇게 굴려요?”
“예. 무슨 강해지는 방법이라면서 팔굽혀펴기 100개, 윗몸일으키기 100개, 스쿼트 100개…….”
“잠깐, 100개요?”
“예. 아니, 어지간하면 하겠는데 어떻게 하루에 100개를 합니까.”
어이가 없네. 1,000개도 아니고 고작 100개로 힘들어했단 말이야?
이거 부장님한테 적당히 조절하라고 말씀드릴까 했는데, 엄살이 괘씸해서 안 되겠다.
“부장님한테는 제가 잘 전달하겠습니다.”
“하……. 감사합니다. 정말.”
나는 안도하는 우재성을 보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좀 괜찮아지셨나 봅니다? 아까는 다리가 덜덜 떨리던데.”
“아. 그래도 제가 운동을 좀 했었습니다.”
“운동이요?”
전혀 그런 것처럼 보이지 않는데 운동을 했다니.
“무슨 운동이요?”
“주짓수요. 거기서 근육 관리하는 법을 배워 놔서, 지금까지 뭉친 근육을 풀고 있었습니다.”
“주짓수를 하셨다고요?”
보통 주짓수 같은 유술을 오래 수련하면 흔히 ‘만두귀’라고 하는 형태의 귀를 가지게 된다.
하지만 우재성은 귀도 멀쩡했고, 손의 악력은 40kg이 될까 싶은 정도로 하얗고 여리여리했다.
“얼마나 하셨는데요.”
“음……. 한 6개월?”
에라이. 뭐? 6개월?
“가서 주무시죠.”
“아, 네.”
“부장님한테 운동은 저녁으로 미루라고 전달하겠습니다. 오전에는 회의해야 하니까요.”
“예?”
나는 당황한 우재성을 향해 씩 웃어 줬다.
“체력, 기르셔야죠.”
.
.
탁.
나는 화이트보드에 붙여 놓은 지도에서 손을 거뒀다.
“여기가 비스트 갱의 마지막 아지트입니다.”
내 설명을 듣던 라세흠 부장이 팔짱을 낀 채 물었다.
“이것들은 아지트가 뭐 이렇게 많아? 토끼굴이야?”
“아지트를 모두 파괴하고, 조직원 모두를 전투 불능으로 만드는 게 이 계획의 최종 목표입니다.”
라세흠 부장의 눈치를 보며 앉아 있던 우재성이 손을 들었다.
“네. 우재성 씨.”
“조직원들이 최소 200명은 넘을 거고, 이해가 얽힌 다른 집단이 개입할 확률도 있습니다. 전부 다 처리하는 건 힘들지 않을까요?”
“굳이 다 처리할 필요는 없습니다.”
“……?”
“사실 기습을 통해 절반만 지워 버려도 비스트 갱은 우재성 씨를 건드리지 못할 겁니다.”
“그렇겠죠.”
“하지만, 여기엔 변수가 존재합니다. 갱놈들이 약쟁이한테 약과 총을 쥐여 주면서 제이슨과 옆에 있는 놈들 다 쏴 버려. 이렇게 해 버리면, 상황은 최악이 돼 버리죠.”
“…….”
우재성이 생각에 빠졌는지 미간을 좁혔다.
뭐, 우리 방식대로 하면 그런 일이 일어나진 않을 거다.
“그렇다고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건, 일어나지 않을 일이니까요.”
“음.”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겁니다.”
나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손가락 하나를 들었다.
“SA시큐리티에 대한 소문.”
그 말에 임유나가 의아한 듯 물었다.
“주혁 씨 회사가 그랬다는 게 소문나면 더 위험한 거 아닌가요?”
“대신 얻는 게 더 크겠죠. 갱들이 연대해 저희를 치는 건 충분히 대처가 가능한 사항이고, 대형 갱단을 우리가 밀어 버렸다는 게 알려지면 사업을 확장하기도 쉬워지니까요.”
“이름은 알려지겠지만….”
행여 위험한 상황이 생길까 봐 걱정하는 임유나였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다.
위험이 클수록,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
한마디로, SA시큐리티가 미국에 진출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말이지.
“뭐, 그런 고로.”
탁.
지도의 한 부분을 찍었다.
비스트 갱의 주요 활동 구역 중 하나였다.
“여기부터 시작할 겁니다.”
“언제부터?”
부장님. 뭘 당연한 걸 물으시나.
“당연히 오늘부터.”
***
비스트 갱의 지부장, 매너티는 광고 문구를 고민하고 있었다.
“파티 납품 전문……. 음. 별론가.”
달마다 일정 금액 이상의 상납금을 내야 했기에, 그는 이런 식의 광고를 붙여 술과 함께 위에서 내려오는 약을 팔곤 했다.
“쯧.”
안 그래도 인원이 많은 편이 아닌데, 빅 보스는 뭔 학생 하나를 찾겠다고 온종일 부하들을 풀어놓으라고 지시했다.
‘그렇게 애들이 빠지니 이런 잡일도 내가 하고 있지.’
매너티는 적성에 맞지도 않는 작문을 때려치우고 담배나 꺼내 물었다.
팅-.
‘음?’
불을 붙이려던 순간, 부하 하나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보, 보스. 찾았습니다.”
“뭘?”
“그놈, 찾았습니다!”
“새끼. 무슨 말인지 똑바로…… 아, 설마 그놈?”
“예! 그놈이요! 제인인지 제이슨 우인지 하는 그놈 말입니다!”
“이런 X발!”
쾅!
매너티는 상기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만약 자신이 제이슨 우를 잡아 빅 보스에게 넘긴다면, 사채뿐만 아니라 중요 사업의 운영권까지 노려볼 만했다.
“당장 차 준비해!”
매너티의 말에 부하가 머뭇거렸다.
“저, 보스. 그런데 그놈이 혼자가 아닙니다.”
“무슨 말이야?”
“웬 동양인 한 놈이랑 같이 있답니다.”
“동양인?”
그러고 보니 빅 보스가 제이슨을 경호하는 놈을 조심하라고 했었다.
무슨 총 든 부하 열 명을 혼자 박살 냈다고 했나.
‘말도 안 되는 소리.’
빅 보스도 아마 주변에 지원이 있었을 거라고 말했다.
그러니 실수하지 않을 것이다.
“올 수 있는 놈들 다 오라고 해.”
“예!”
“아. 여기 지킬 녀석들은 남겨 놓고.”
매너티는 기대가 담긴 눈빛으로 재킷을 둘러 입었다.
‘제이슨. 그놈은 무조건 내 손으로 잡는다.’
***
매너티의 부하는 동료 셋과 함께 으슥한 골목길로 들어가고 있었다.
분명히 이 근방에서 목표가 포착됐는데, 우르르 몰려왔더니 금세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흩어져서 수색하라는 매너티의 지시를 받고 주위 골목을 샅샅이 뒤지는 중이었다.
“이봐. 정말 우리끼리 찾을 수 있는 거 맞아?”
“나야 모르지. 일단 오더 내려왔으니까 우린 그냥 찾으면 돼.”
“엄청나게 강한 놈도 있다며.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잡아?”
매너티의 부하가 심기 불편한 얼굴로 바지춤에서 총을 슥 꺼냈다.
“이게 있잖아. 아무리 잘 싸우는 놈이라도 이거 한 방이면 골로 가는 거 몰라?”
“그건 맞지. 근데 너 총 더럽게 못 쏘잖아.”
“뭐?”
자존심이 상한 부하가 걸쭉한 욕을 내뱉으려던 순간.
후욱-, 뻐억!
“큽.”
묵직한 벽돌이 날아와 그의 뒤통수를 강타했다.
눈을 뒤집으며 쓰러지는 부하의 뒤로, 마스크를 쓴 한 남자가 담벼락을 뛰어넘어 달려왔다.
타닷-!
“X발!”
“뭐…….”
순식간에 달려온 남자가 칼을 꺼내 들려던 조직원의 가슴팍을 뻥 차서 날렸다.
“커헉-!”
콱!
자신의 옆을 지나 담벼락에 처박힌 동료를 보던 조직원은, 눈앞에 날아드는 주먹을 확인함과 동시에 의식이 끊어졌다.
그걸 지켜보던 다른 조직원이 떨어진 총을 줍기 위해 다급하게 허리를 숙였다.
텁.
“이 마덜퍽…….”
조직원이 어금니를 꽉 깨물며 겨눈 총을 어느새 다가온 남자가 꽉 붙잡았다.
“……커가?”
꽈악.
“이런 X발!”
조직원은 남자에게 총알을 박아 주려 했지만, 아무리 손가락에 힘을 줘도 방아쇠가 당겨지지 않았다.
남자가 다른 손으로 권총의 손잡이를 잡고 탄창을 뺀 뒤, 안전장치를 돌려 슬라이드를 당겨 뽑아 버렸다.
탁. 철컥!
“!”
당황한 조직원을 향해 동양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유창한 영어로 말했다.
“이런 위험한 걸 가지고 놀면 쓰나.”
“어, 어…….”
씩 웃은 남자는 슬라이드를 든 손으로 조직원의 머리를 후려쳤다.
빡!
“항복!”
그러자 혼자 남은 조직원이 두 손을 번쩍 들었다.
‘괴물 같은 새끼!’
남자는 그걸 보더니 피식거리며 천천히 걸어왔다.
“뭐야. 갱스터가 이렇게 나약해서 되겠어?”
그 말에 조직원은 품 안에 나이프가 있다는 걸 기억해 냈다.
‘그래……. 오면 찌른다. 오면 찔러 버린다……!’
눈치를 보던 조직원이 들고 있던 손을 움찔거림과 동시에, 남자가 그에게 귀싸대기를 날렸다.
퍽-!
“악!”
귀 안쪽에서 폭탄이 터진 듯한 고통에 허리를 숙인 조직원의 얼굴에 발이 날아가 꽂혔다.
북 터지는 소리와 함께 조직원이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갱스터 모두가 쓰러진 걸 확인한 남자가 손을 툭툭 턴 뒤 품에서 무전기를 꺼냈다.
“아, 아. 다들 들리십니까?”
-잘 들린다.
-굿.
“바깥에 나온 놈들은 다 정리 완료됐습니까?”
각 아지트가 있는 지역마다 흩어진 SA시큐리티 직원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진작 끝냈지.
-시작하면 되냐?
-진입해?
“오케이. 이제 빈집이겠네요.”
이주혁은 쓰러진 조직원의 품에서 나이프를 꺼내 들며 미소지었다.
“그럼, 시작합시다.”
***
탁.
라세흠 부장은 무전기를 집어넣고 쓰러진 조직원들을 잘 숨긴 뒤 몸을 일으켰다.
눈앞에는 비스트 갱의 지부 건물이 있었다.
‘5층. 안에는 대충 여섯 명 정도?’
주혁이 말대로, 우재성이 나타났다는 보고가 들어가자마자 아지트가 텅텅 비어 버렸다.
“이거 너무 날로 먹는 거 같은데.”
불만스럽게 중얼거린 라세흠 부장이 건물의 창문을 열고 살금살금 들어갔다.
사사삭.
-그래서 그놈이…….
-푸하핫! 진짜냐?
계속해서 발소리를 죽이고 이동하던 라세흠 부장의 앞에 복도 창문 바깥을 보며 이야기하고 있는 두 사람이 보였다.
‘총은 없구만.’
라세흠 부장은 양손을 들고 천천히 그들의 뒤로 다가갔다.
그리고 순식간에 팔을 둘의 목에 건 뒤, 허리를 젖혀 번쩍 들었다.
확!
“컥!”
“켁……. 케헥……!”
버둥거림이 잦아들 때쯤 둘을 바닥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끄륵…….”
거품을 물고 있는 둘을 지나친 라세흠 부장은 복도 끝에 보이는 계단을 향했다.
‘혹시 정보 있으면 다 긁어 오고, 연락 수단과 이동 수단도 최대한 없애라고 했지.’
끼이익-.
‘음?’
그때, 갑자기 바깥에서 차가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설마 나갔던 놈들이 벌써 복귀했단 말인가?
라세흠 부장은 무전기를 꺼내 이주혁에게 무전을 쳤다.
“여기는 부장. 이쪽 애들이 갑자기 복귀하는 것 같은데, 혹시 작전 중 변동 사항 있나?”
잠시 기다리자 무전기가 치직거리며 답변을 내놨다.
-음……. 그냥 그대로 진행하시면 됩니다.
“확인.”
라세흠 부장은 기대 가득한 표정으로 몸을 풀었다.
이내 2층에서 놈들을 기다리기 위해 계단을 훌쩍 뛰어 올라갔다.
‘이놈들은 총 가지고 있으려나?’
몸에 가지고 있던 거추장스러운 짐들을 내려놓고 준비를 마친 라세흠 부장의 눈에 입구에서 들어오는 조직원들이 보였다.
씨익.
‘간만에 총질 좀 해 볼까.’
그가 야수 같은 미소를 복면으로 가린 뒤,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
“휴…….”
별장에 혼자 남은 임유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 빼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위험을 무릅쓰고 작전에 투입됐는데, 혼자만 안전한 곳에 남아 편하게 있는 것 같다는 이유였다.
‘뭐라도 도움이 될 만한 게 없을까.’
임유나도 연변 킬러들에게 보호받기 위해 미국에 따라온 입장.
장소를 제공했다는 것 하나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영 마음이 불편했다.
“청소라도 할까.”
대강 정리하긴 했지만, 주방에는 어제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었다.
임유나는 덜 치워진 접시를 닦고 병과 쓰레기들을 봉투에 나눠 담았다.
시간이 흐르고, 벌떡 일어난 임유나가 허리를 짚으며 몸을 뒤로 젖혔다.
우드득-.
“아으…….”
나이가 들긴 했나.
예전에는 밤새워서 술을 마셔도 멀쩡했는데, 이제는 조금만 마셔도 다음날 컨디션이 확 떨어지는 것 같다.
‘설마 이상한 소리 하진 않았겠지?’
생각보다 술이 잘 들어가서 평소 주량보다 많이 마셔 버렸다.
임유나는 예전에 아버지랑 대작할 때마다 들었던 말을 떠올랐다.
-우리 딸은 취했을 때가 제일 귀엽다니까?
불안한 마음에 발걸음 닿는 곳으로 가다 보니, 어느새 이주혁이 쓰던 방 앞에 도착했다.
어제 쭉쭉 들이켜던데, 속 좀 괜찮은 걸까.
SA시큐리티 직원들은 그렇게 술을 퍼마셔 놓고 아침 회의 때는 다들 멀쩡해 보였다.
임유나는 의식의 흐름대로 이주혁이 밤을 보낸 방에 들어섰다.
달칵-.
‘아직 짐을 풀지도 않으셨네.’
하긴, 오자마자 사격 대결에 식자재를 사러 갔다 왔으니 쉴 시간이 없었겠지.
대신 짐이라도 정리해 줘야겠다는 생각에 임유나는 이주혁의 반쯤 열린 캐리어로 다가갔다.
그 안에서 옷을 꺼내려던 순간, 캐리어 안에 있던 지갑 하나가 보였다.
그 지갑은 이주혁의 깔끔한 겉모습과 달리 꽤 낡은 상태였다.
‘돈도 많은 것 같던데, 왜 아직도 이런걸…….’
의아한 마음에 지갑을 들어 올리자, 그 안에 들어있는 사진 한 장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사진 안에는 좀 더 앳된 얼굴의 이주혁이 중년 남자와 어깨동무를 한 채 활짝 웃고 있었다.
‘음?’
임유나는 사진 안의 중년 남자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중년 남자의 얼굴이 어딘가 익숙한 까닭이었다.
놀라서 입을 가린 임유나가 떨리는 눈빛으로 사진을 들여다봤다.
‘날 구해 주신 분이 왜 여기에……?’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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